서양 철학의 중심은 '이성'이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의 페이지에서 인간의 '감정'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동안 이성에 가려졌던 감정이라는 변수는 현대사회로 오면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감정의 역사>를 펴낸 김학이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이러한 감정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추적한다. 김 교수는 독일의 근현대사를 통해 이를 분석하는데, 그는 "감정이 도덕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였고, 그리하여 감정은 근본적으로 언제나 도덕감정이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특히 16~18세기까지는 감정이 종교와 밀접하게 결합되면서 도덕공동체 수립의 핵심기제로 작동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15세기 말부터 독일에 분출하기 시작한 예언서들, 그 시기에 나왔던 괴물에 대한 보고서들, 루터를 비롯한 신학자들의 종말론적 발언들, 매독과 페스트, 정신병에 대한 의사들의 진단 등에서 감정이 동일한 방식으로 의미를 가졌다는 점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근대 의학과 화학의 기초를 닦은 파라켈수스가 1530년대 페스트 독이 만연한 곳에서 페스트를 두려워하면 페스트에 걸린다고 단언했다면서, 이런 식으로 감정을 활용한 것은 "공포를 금지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공포를 금지하는 것은 인간에게 신적인 감정만을 허용함으로써 중세의 굴레에서 해방된 인간을 공동체에 다시 묶어두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인간의 감정은 경제적인 부문과 관련되어 규정됐다. 김 교수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감정은 "생산 자원"이 됐다고 주장했다.
"1844년 6월,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가난한 직조공>을 있게 한 직조공들의 봉기가 발발했을 때 사회주의 진영이든 부르주아 진영이든 한결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직물업 선대(先貸) 상인 고용주들의 탐욕을 비난했다. 산업혁명에 돌입한 시점에 경제 활동의 목적이 윤리적 인간의 생산과 도덕공동체의 수립에 놓였던 것이다.
이후 1911년 기업이 대형화되고 관료화된 대공업의 시대에 노동조합 대표, 역사학파 경제학자, 산업심리학자, 일부 기업인들이 '노동의 탈영혼화'를 걱정했다. 노동이 공장과 기계의 단조로운 작업에 종속되어 노동자의 창조적 자아가 말소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그 때도 경제는 이윤 이외에 윤리였던 것이다.
당시 기업가들이 중시하던 감정은 노동의 기쁨 외에 명예, 신뢰, 충성이었다. 노동에서 기쁨을 느끼고 기업에 충성하는 것, 즉 노동자가 기업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보다 강력한 생산자원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19세기에 감정은 생산자원이 되었다. 그런 감정을 강조하고 생산하는 노력은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 외에 자본주의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이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발상이 나치시대의 노동법도 관통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법의 조항은 신뢰, 충성, 명예, 배려, 공동체로 구성돼 있었다.
그는 "16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독일 감정사를 관찰함으로써 도달한 결론은 감정에 역사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라며 "도덕적인 감정공동체를 구축한다는 목표는 언제나 같았지만 감정에 대한 평가, 문제적인 대표 감정, 부정적 감정을 해결하는 방식, 그리고 그 모두에 깔려있는 인간학적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감정의 역할은 독일이나 서양 근대뿐만 아니라 <난중일기> 속 이순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난중일기 초입 15개월 동안의 기록을 세어보니 기쁨은 6회였고 그조차 대부분 타인의 감정이었던 데 반하여, 이순신이 '분노'한 경우는 무려 38회였다.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이 특히 원균의 장수들이 여자를 전함에 태우거나 왜군이 포구에 숨어서 나오지 않을 때 분노한 것을 보면, 이순신의 분노는 유교적인 본분, 그리하여 유교적 도덕질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감정이 유교적 도덕질서를 수립하는 힘으로 작동한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요소 역시 이성 못지않게 역사를 써 내려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던 감정사(史)가 앞으로 인간의 역사를 분석·평가하는 데 있어 어떠한 통찰을 가져다 둘지, <감정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