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장억제'가 어떻게 논의·합의될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평가할 핵심적인 지표도 확장억제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출국 직전에 대통령실은 "확장억제 강화가 가장 중요하고 큰 성과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해온 확장억제는 1950년대 '핵우산'에서 시작되어 재래식 군사력, 미사일방어체제(MD), 비핵 첨단무기로까지 영역이 확대되어왔다. 기본적인 취지는 미국이 북한에 가공할 보복의 위협을 가해 동맹국인 한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데에 있다. 북한이 최근 고체연료를 이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등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나서고 있어 확장억제의 강화와 구체화는 필수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확장억제 결핍 착각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 억제, 한미연합사령부 및 유엔사령부의 대북 억제,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가 이미 강력하고도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확장억제가 부족하다고 호소하면서 이를 갈구하는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900조원에 육박하는 국방비를 쏟아부어 이미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갖춘 상황이다.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올해에는 우리가 통상 '군사대국'이라고 부르는 일본보다 2단계, 군사적 억제의 대상인 북한보다는 28단계나 높다. 이 기관의 평가에는 핵무기가 포함되지 않아 한계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군사력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 첨단무기로 무장한 미군 약 3만명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한반도 유사시 전력공여를 약속한 16개의 유엔사 회원국들도 있다.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도 군비증강의 목표 가운데 하나를 대북 억제 강화로 잡고 있다. 확장억제 제공자인 미국은 현존 세계 최강의 핵무기·재래식·MD·비핵첨단무기 보유국이다. 이런 미국은 최근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북 억제력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양국도 상호방위조약 체결 70년을 맞이해 한미동맹이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70년 동안 북한의 남침을 성공적으로 억제해왔다는 점에 기초한다.
억제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이다. 그리고 이는 지피지기를 해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한미동맹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에 있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이를 상쇄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은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오래전부터 경고·예측해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악순환'이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있는 한미, 혹은 한미일이 대북 억제력, 특히 미국의 전략자산이 투입되는 확장억제를 강화할수록 북한도 핵무력 강화를 향한 폭주를 거듭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확장억제가 아무리 강해져도 안보 불안을 씻을 길은 없어지고 만다.
또 하나는 미국의 확장억제가 북한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자신을 겨냥한 군사적 조치로 간주하면서 맞대응에 나서고 있고, 이는 이미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중·한러관계에 더더욱 큰 부담과 위험을 야기하고 말 것이다.
끝으로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에 매달릴수록 미국이 한국에 내민 경제적 청구서에 당당히 대응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법 등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에조차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 노골적인 자국 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선물로 간주하면,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대미 발언권도 약해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비판하면 '대안이 뭐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대안의 핵심은 확장억제 강화에 있지 않다. 이미 대북 억제는 강력하고도 실효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게 있다면, 북한의 핵무력 강화를 향한 질주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