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을 가진다는 것은 사회문제를 약자의 입장에 서서 살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나의 사회적 지위와 고정관념은 잠시 내려놓자. 약자에 온전히 공감하고 있을 때면, 이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가 마치 내 일과 같이 느껴지게 된다. 사회적 지위는 바로 이때 필요하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하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의 눈이 추구하는 참뜻이다.
왜 가해자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하는가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다고 치자. 누군가가 크게 다쳐 사망에 이르렀고 가해자는 범죄혐의를 인정받아 사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의 유족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비통해하며 신속하고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고, 가해자는 감형을 원하며 항소를 제기한다. 그 와중에 가해자의 신상이 비공개 처리되면서 범죄자의 인권을 위해 피해자의 인권이 무시된다는 여론이 거세진다. 자, 이 상황에서 어떠한 인권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장해야 할까.
먼저,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로 인해 소중한 생명권을 박탈당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이를 보상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고인을 위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가해자를 합당하게 처벌하는 것이 남겨진 과제가 된다.
다음, 피해자 유족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허일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유족은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 절망감, 가정의 해체, 경제적 어려움, 주위의 시선에 따른 삶의 난관에 봉착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는 기본권이 일순간 저하되는 것이다.
특히 범죄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부실한 지원 조치는 유족에게 큰 상처가 된다. 실제 한국에서 범죄피해자들은 까다로운 구조 신청, 범죄피해에 상응하지 않는 구조비용 등으로 인해 삶을 복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피해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의 핵심 내용이며, 대한민국 헌법 30조에서 정한 '법률 구조를 받을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바로 한국의 '범죄피해자구조법'이 범죄피해자에 대한 시혜적, 복지적 발상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독일의 '범죄피해자보상법'은 '범죄행위를 통한 폭력 행위 및 상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책임은 국가가 부담한다'는 관점에 서 있다.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니, 범죄 예방과 대응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2004년 '범죄피해자권리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피고인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사건에 대해 고지받을 권리, 소송절차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기소검사와 협의할 수 있는 권리, 피해자의 존엄과 사생활에 대한 존중을 보장받으며 공정하게 처우 받을 권리 등 피해자 인권을 명시하여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마지막, 가해자의 인권 또한 생각해야 한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인권 보장이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절대 옹호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게 생명권, 신상의 자유와 안전권을 보장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인류는 오랜 세월 사형을 언도함으로써 범죄를 단속해왔다. 이에 사형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을 가진 존치론자들은 사형이 범죄 억제에 효과적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탈리오의 법칙을 인용하며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안타깝게도 사형 집행으로 인한 범죄억지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이미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 일찍이 사형제를 폐지한 스웨덴(1921년 폐지), 노르웨이(1905년 폐지), 네덜란드(1870년 폐지) 등 국가들은 사형제 폐지 후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음을 보고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사형제도가 없는 13개 주가 사형제도가 있는 37개 주보다 살인율이 높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도, 사형제가 있다면 범죄자들은 '무서워서라도' 범죄유혹을 억제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으나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사형의 범죄 예방적 효과는 학문적 가설일 뿐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또, 실제 범죄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금지되어 있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사형에 해당하는 행위인지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경우에는 법망에 걸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기에 이 경우, 오히려 사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범죄 발생의 메커니즘, 인권의 눈으로 보기
그럼에도 가해자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꺼려진다고? 자, 바로 이때 인권의 눈이 필요하다.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범죄자에게 인권으로써 특혜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는 자세로 세상을 보면, 사회문제 대다수가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누려야 할 사회적 가치를 보편적으로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정의롭고 인간다운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형벌도 범죄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범죄의 발생 맥락을 이해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인권의 눈이다.
국제사형반대위원회 라지브 나라얀 정책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연구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사형제 폐지 국가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11월 기준 109개 국가가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폐지한 상황이고 한국을 포함한 27개 국가들은 지난 10년간 사형선고를 했음에도 집행하지 않았다. 나머지 사형제 존치국가들 또한 사형 적용이 가능한 범죄의 종류를 줄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 사형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민족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있는 국가일수록 사형제를 존치하려는 의지가 높았다. 또한 이러한 국가들은 개인의 권리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쉽게 자유를 억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일수록 '형벌 포퓰리즘'을 통해 시민을 통제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인권감수성, 경계에 선 사형제
사형이 국민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의 생명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할 만큼 특정 부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사형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권의 눈'의 다른 말은 인권 감수성이다. 사형제의 존치는 국민의 생명권과 직접 관련된 사안이기에 국가의 인권감수성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지난해 7월 사형제 위헌 심판 공개 변론 이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그런데 2023년은 다수의 헌법 재판관 교체가 예정된 해이다. 아마도 연내 사형제에 관한 위헌 판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사형제 폐지를 부르짖는 종교계, 시민단체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한국의 인권감수성은 과연 향상되었는가?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개논문> 라지브 나라얀·아순타 비보 카발레르. 2021. "사형제도가 변곡점에 도달했는가?" 인권연구 4(2): 1-53.
<다운로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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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urnal.kci.go.kr/jhrs/archive/articleView?artiId=ART002793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