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자신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실감할 때는 언제일까? 무료 교통카드가 발급 됐을 때나 국민연금 수령 연령에 도달했을 때? 만원 버스나 전철에 서 있으면 누군가 슬그머니 자리를 양보했을 때? 아니면 친구들과의 대화가 온통 건강 관련 주제로 도배될 때? 한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죽음을 비교적 담담하고 실용적이기까지 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책 <초보 노인입니다>(김순옥 지음·민음사·264쪽)는 1957년생 저자가 사회에서 인정한 노인의 기준 혹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사회적으로 '노인'으로 규정되는 경험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낸 에세이다. 저자에 따르면 "관찰한다고 해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인생 마지막 여정의 시작"인 "노인으로 입문한 나의 푸념이며 관찰 기록"이다.
책은 수년 전 막 60대에 접어 든 저자가 실버아파트에 입주하며 시작된다. 60대 이상만 입주할 수 있는 실버아파트 '입주 자격'을 갖추게 된 저자는 4살 많은 남편과 함께 실버아파트에 들어선다. 노인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실버아파트 입주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니다. 당초 전원주택에 정착하려 했지만 집값 급등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가격에 맞춰 "준비도 생각도 없이 덜컥 실버의 세계로 들어와 버렸다."
공인중개사를 방문할 때부터 실버아파트에 대한 설명은 다른 주택에 대한 설명과 달랐다. 30~40대에 집을 살 땐 편리한 교통과 좋은 학군, 향후 집값이 오를 가능성 등이 주요하게 설명되지만 실버아파트에 대한 설명에선 대형 병원과의 거리, 세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단지 내 식당, 인접한 장례식장과 그에 딸린 커다란 주차장이 강조됐다. 그곳은 생존을 의미하는 밥과 병원, 죽음을 의미하는 장례식장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노년의 삶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버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저자는 공식적으로 "할머니"가 됐고 직원들에겐 "어르신"으로 불리는 동시에 주민들에겐 "젊은 사람"으로 불린다. 평균 80살이 넘어 보이는 주민들 사이에서 저자는 처음엔 이곳이 "요양원" 같다고 느끼지만 곧 입주민들이 다양하고 생기 있게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 통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는 게 최고라며 모임과 나들이를 주도하는 '인싸' 할머니부터 뒷산 등산 때 만난 예전 불어 교사였던 남성 노인, 아파트 내 식당의 가격 인상에 항의하던 노인들까지. 단지 내 기타 동호회도 있어 실버아파트에 비교적 만족하며 거주했던 저자의 남편이 동호회장을 맡기도 한다.
실버아파트에선 '죽음'이란 단어가 자주 오간다. 실버아파트에 거주하기엔 너무 "젊은 사람"이었던 저자 부부가 2년 여 뒤 실버아파트를 떠날 때 이웃 할머니는 "나 죽기 전에" 다시 오라며 작별 인사를 건넨다. 저자의 남편이 기타 동호회장을 맡게 된 건 그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서 였다. 열심히 회장 일을 하던 남편은 "회장은 죽어야 그만두는 거 아닌가"하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뒷산 등산 때 늘 만났던 노인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저자의 머릿 속엔 자연스레 "돌아가셨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아파트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라며.
저자는 실버아파트에서 나온 뒤 언젠가부터 죽음을 말하는 것이 좀 더 "평범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30대부터 이어 온 모임에서 "멤버들 나이가 평균 60이 되면서부터 죽음은 좀 더 가깝고 평범해졌다. 그동안 부모나 시부모, 가끔은 친구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아직 멤버들이나 그들의 배우자가 죽음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친구와 배우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까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대중교통에서 젊은이도 아니고 심지어 나이든 이에게 자리를 양보 받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지만 100살을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몸과 정신이 건강하실 때" 이왕이면 따뜻한 봄날에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나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대형병원과 장례식장이 인접한 실버아파트의 홍보 조건이나 부모의 죽음이나 나의 죽음까지도 덤덤하게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일반적'이지 않고 '낯설게' 느껴졌다면 우리 사회에서 생산된 담론 중 노년층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너무 적은 탓일 것이다. 저자가 "초보 실버기"에 들어서 "당황"하게 된 것도 노년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고 세밀하지 않은 탓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주변의, 그리고 먼 곳의 60대 이상 인물들의 삶을 떠올려 보면 저자 부부와 같이 은퇴 생활에 접어든 이들도 있고 정년 뒤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있으며 오히려 청년 시절보다 더 고된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도 많다.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에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사회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도 있다. 다른 모든 연령대의 삶과 같이 노년의 삶도 하나의 이야기로만 묶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