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과 2012년 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했다가 공익성, 경제성, 환경성 기술성 모두 기준 미달이라 퇴짜를 맞았던 산청군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조건부 승인에 편승해서 올해 4월 케이블카 담당 TF팀을 만들더니 주민공청회나 사업설명회 등 공론화 과정 없이 지난 6월 23일 케이블카 사업계획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제출한 이 사업계획서는 실상 2016년에 준비했던 사업계획서를 연도와 일정 등만 고치고 거리도 조금 줄여 접수한 것이다. 사업예산만 1179억 원에 달하는 사업인데 이렇게나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다니 어이가 없다. 더 놀라운 건 이승화 산청군수가 지난 7월 12일 MBC경남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군수는 "합의가 된 것입니다. 지사님이 저하고 시장 군수가 있는 데서 산청군이 먼저 하고 함양군은 좀 있다가 하고"라고 말했다. 궤변이다. 경남도지사가 지시하고 산청과 함양군수가 합의하면 지리산에 케이블카 놓는 게 당연히 될 일인가? 우스운 건 이 인터뷰로 함양군청이 뒤집혀 함양군의회와 함께 도지사에게 공식항의하기로 결정하는 등 케이블카를 두고 지자체들의 기선 잡기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리산권역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경쟁
산청군과 함양군만 케이블카 경쟁에 뛰어든 건 아니다. 구례군도 경쟁에 적극적이다. 구례군은 지난해까지 네 번이나 케이블카 사업을 반려당했는데 올해 다시 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함양군은 2011년과 2015년, 2016년에 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 5월 함양에서 '지리산케이블카함양유치위원회'가 출범했고 7월 14일에는 진병영 함양군수가 '산청군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신청과 무관하게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유치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산청, 함양, 구례 모두 케이블카 사업에 매달리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주장은 지리산에서 한 곳 또는 영남과 호남에 각각 한 곳으로 지자체끼리 교통정리가 되면 허가해 줄 수도 있다는 '환경부의 방침'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환경부의 입장은 '그런 원칙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각 지자체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신청서를 접수하면 법적 절차를 밟아 사업 승인 여부를 결정할 따름'이라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국립공원 설악산에 케이블카 건설사업을 허용한 환경부인지라 저 입장의 속내가 퍽 컴컴하다 싶지만, 액면 그대로 보자면 함양, 산청, 구례는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블카, 정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돼?
지리산 케이블카가 공익성도 부족하고 또 경제성마저 없다는 점이 지금까지 환경부가 케이블카 신청을 여러 차례 반려한 가장 큰 이유였다. 지리산 케이블카는 결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에서 수십년 동안 '사업 반려'를 통해 입증해온 셈이다. 사실, 지자체마다 우후죽순처럼 설치한 케이블카들이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개점휴업 상태라는 사실을 보면 케이블카는 20세기 시절의 후진적 관광상품이라는 게 여실히 증명된 바다. 엄중한 기후위기시대를 맞아 관광 패러다임이 지역 체류형 생태체험 위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케이블카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의 대척점에 있다. 빠르게 경관을 소비하고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이동하는 구시대적 관광 패러다임을 물적으로 뒷받침하는 케이블카는 끝내 혈세 먹는 하마가 될 운명이다.
케이블카가 등산객들에 의한 환경훼손을 감소시켜?
현재 환경부의 입장은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도 상부 정류장에서 등산로와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산청군의 케이블카 사업계획은 '시천면 중산리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5km 구간'이 대상이다. 그러나 환경부 공언대로라면 케이블카 탑승객들은 상부 정류장인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등산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설령 케이블카가 설치된다 해도 천왕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의 수는 줄지 않을 것이다. 등산 문화의 수준이 높아져 환경 훼손을 하며 등산하는 등산객들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산청군의 케이블카 사업은 지리산 훼손을 전제로 한다. 등산객들이 케이블카를 이용할 리 없다. 이용객은 그저 경관 소비를 위한 탐방객일 뿐이다. 등산객이 지리산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케이블카가 지리산을 훼손한다는 게 맞는 말이다. 등산객을 욕보일 일이 아니다.
장애인과 노약자들도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고?
케이블카가 생기면 장애인과 노약자도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지리산권역의 케이블카 추진세력의 주장이지만 앞서 환경부의 공식 발표대로,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 정류장으로 올라간들 탐방객들은 산행을 할 수가 없고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하부 정류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설령 등산로를 개방하더라도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 거리의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건장한 성인도 2시간이나 걸리는 만만치 않은 등산로이다. 어떻게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쉽게 천왕봉에 오를 수 있겠는가. 결국 케이블카 추진세력은 엄한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사업 추진의 수단으로 대상화한 것이다. 장애인들이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동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선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하는 장애인들이 케이블카 있는 곳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 케이블카 건설에 장애인들을 명분으로 동원하는 비열한 일을 그만두고 장애인들의 일상적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국가사회적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친환경적 공법 케이블카 건설?
기술과 공법이 발전해서 지주탑의 개수를 줄인다거나 선로 구역에 벌목을 안 해도 된다거나, 자재 운반도 헬기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2012년에도 똑같이 나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2023년 현재 케이블카 설치 예정 구간에는 오히려 더 많은 수의 반달가슴곰 가족들이 서식하고 있고 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죽어가고 있는 구상나무 복원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자재 운반은 헬기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수시로 오르내려야 할 작업자들의 이동통로는 또 어찌할 건가.
게다가 케이블카 설치 후 발생할 소음은 지리산의 원래 주인인 동식물들에게 심각한 고통과 피해를 줄게 불을 보듯 뻔하다. 수많은 멸종위기종의 서식처인 지리산이다. 있는 그대로 잘 보존해 한반도의 허파로, 환경생태교육의 현장으로 지켜간다면 지리산은 인근 권역 주민들의 생계를 대대로 보장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될 텐데 당장의 사업이익에 눈이 멀어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쇠말뚝을 박고 쇠줄을 쳐 훼손하려는 일은 만세의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지리산 케이블카가 지리산공동체를 허물고 있다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현재 산청군과 함양군은 '밀실 이면 합의'를 운운하며 경남도지사까지 끌어들인 이전투구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구례군까지 가세해서 서로 케이블카 건설 적지라며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일은 지자체 단체장들의 치적 쌓기 경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 휘말린 지자체 주민들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나아가 같은 지역 주민들끼리도 케이블카 찬반 논란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 지리산 케이블카는, 행정구역은 달라도 지리산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지리산공동체 사람들을 반목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수십 년 묵은 자해의 칼이다. 지리산이 어찌 산청, 함양, 구례, 남원, 하동만의 산이겠는가. 지리산은 국민 모두, 지리산에 깃든 야생의 생명 모두의 것이다. 케이블카로 모두의 것을 해칠 셈인가. 누구도 그럴 권리는 없다. 지리산을 그대로 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