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는 지역 주민들과 전국의 시민, 종교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22년 12월 30일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남원시의원들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산악열차 시범사업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동의안에는 시범사업 구간의 노선 확보를 위해 지리산의 나무를 베어내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이는 '기존 도로만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생태 훼손은 없다.'고 했던 남원시 발표가 거짓말이었고, 그 거짓말이 탄로났어도 남원시의회는 기꺼이 시청의 개발사업 들러리가 돼주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가 '친환경적'이며 산간벽지 주민들의 교통 기본권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지리산 산악열차의 본질은 관광수익을 노려 지리산 훼손을 불사한 대규모 토목사업이다. 지금 남원시는 1000억 원을 들여 수년 동안 지리산을 갈아엎고 열차를 들여놓는 토목사업을 지리산 생태계 보전을 위한 친환경 사업으로 포장하고 있다.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이 왜 문제인지 다시 짚어보자.
산악열차는 백두대간법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백두대간보호에관한법률(백두대간법)'에 따르면 백두대간 핵심구역에서 궤도 설치는 '반드시 필요한 공용, 공공용 시설'에 한정한다. 지리산 산악열차가 운행하는 정령치 인근은 백두대간 핵심구역에 해당한다. 남원시는 산악열차가 눈이 와도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산간지역 주민들의 교통 기본권을 보장해 줄 것이며, 따라서 이 사업은 '반드시 필요한 공용, 공공용 시설'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고기삼거리에서 정령치에 이르는 구간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구간에 개설되는 철도는 순전히 관광을 목적으로 한 것이며, 산간지역 주민들의 교통 기본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므로 이 구간에 개설되는 철도는 '반드시 필요한 공용, 공공용 시설'이라 할 수 없다. 남원시는 지리산 산악열차의 백두대간법 규제 통과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시범사업 협약을 강행했다.
산악열차가 산간지역 주민들의 교통기본권을 보장?
현재 남원시가 내세우는 가장 큰 산악열차 건설 명분은 산간지역 주민의 교통기본권 개선이다. 육모정에서 고기리에 이르는 구간은 동절기에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데, 산악열차가 도입되면 동절기 운행이 가능해지므로 주민들의 교통기본권이 크게 개선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관광 목적만으로 지리산 산악열차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은 남원시의 꼼수에 불과하다.
남원시의 시범사업 공모제안서를 보면 산악열차가 도입될 경우 도로는 폐지된다. 일반 차량은 통행이 금지되며 주민들은 오직 산악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남원시는 주민 반발을 우려해 도로 폐지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런데 산악열차는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행될 예정이다. 이 시간을 제외하면 주민들은 육모정에서 고기리 구간으로 통행이 불가하다. 만일 사고나 질병으로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외려 신속한 대처가 곤란해지는 것이다. 또한 성수기에 관광객이 집중되면 산간지역 주민들은 산악열차 티켓 구매가 힘들 수도 있다. 여유 좌석이 생길 때까지 상당 시간을 대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교통권 보장이 될 수 있는가. 더 우스운 일은 산악열차 예정지 주변 마을을 지나는 새 도로와 터널 건설사업이 착공 예정에 있다는 점이다. 이들 도로와 터널이 개설되면 겨울철 상시 차량 통행이 가능해진다. 결국 지리산 산악열차의 교통기본권 개선효과는 0에 수렴하게 된다.
산악열차는 자연공원법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자연공원법'에 따르면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는 50명 이하 승차 규모의 열차만 들여놓을 수 있다. 정령치 인근 도로가 바로 자연보존지구에 해당한다. 애초 남원시가 계획한 지리산 산악열차의 정원은 82명이었으니 명백한 법 위반이었다. 이를 지적받자 남원시는 '시범사업 공모제안서'에서 열차 정원을 42명으로 축소했다. 시범사업 대상기관으로 선정되기 위해 설계 변경도 하지 않고 정원만 자의적으로 50명 이하로 축소한 것이다. 이 조악한 행정에 대한 남원시의 변명은 '산악열차 규모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50명 이하로 탑승시키면 합법'이라는 주장이다. 남원시 논리대로라면 KTX조차 50명 이하로만 태우면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환경부 '자연공원법' 담당자는 이에 대해 '50명 이하로만 탑승시킨다고 해서 모든 열차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산악열차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원시는 환경부 협의조차 없이 산악열차를 추진하고 있다.
▲(오른쪽) 매년 발생하는 산사태를 방지하거나 사태 후 복구를 위해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공사. ⓒ환경운동연합
산악열차가 친환경이라고?
남원시가 산악열차사업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매연 뿜는 자동차 통행을 금지시키고 전기 운행하는 산악열차를 도입하니 '친환경'이란 것이다. 그런데 친환경 운송수단이 전기버스나 수소버스가 아니라 꼭 산악열차여야 할 이유가 없다. 산악열차를 들여놓기 위해서는 1000억 원을 들여 수년 동안 지리산을 파헤치는 공사를 벌여야 하는데 무슨 친환경인가. 더구나 겨울에 산악열차는 명백히 '반환경적'이다. 차량이 통제되는 겨울은 지리산이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다. 눈 속에서 편히 쉬던 지리산에 난데없이 진동과 소음을 발생시키는 산악열차가 오르내리는데 어찌 친환경일까. 게다가 강설시 산악열차를 운행하려면 결빙구간의 궤도를 가열해야만 하는 에너지 낭비가 불가피하다. 또 산악열차는 멸종위기의 야생생물들에게도 치명적이다. 무엇보다, 산악열차 궤도가 반달가슴곰이 서식지를 통과한다는 게 문제다. 정부의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통해 늘어난 반달가슴곰들이 지리산에 살고 있다. 강철톱니 기어로 움직이며 소음과 진동을 일으키는 지리산 산악열차는 반달가슴곰 서식지를 파괴하고 곰들을 서식조건이 나쁜 곳으로 몰아낼 가능성이 크다. 반달가슴곰만 문제인 게 아니다.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 표범장지뱀, 새호리기 등 40여 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지리산에 산다. 산악열차는 이들의 서식지와 생존에 치명적이다. 산악열차의 외부 소음은 90데시벨이 넘는다. 사람이라면 이런 소음에 지속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이 발생한다. 산악열차는 공차 중량만 해도 46톤이다. 사람을 태우면 50톤이 되는 산악열차가 강철톱니 기어로 오르내리며 발생시킬 진동 문제는 어쩔 건가. 산악열차가 예정지 주변 야생생물을 내쫓는 주거지 파괴범이 될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산악열차는 인명피해 부를 재난이 될 가능성 커
육모정에서 정령치에 이르는 도로는 해마다 빠짐없이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한다. 이 도로는 준공된 지 수십 년이 지나 곳곳이 갈라지거나 절벽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여기에 승객을 태우면 50톤을 넘나드는 산악열차가 종일 운행되며 소음과 진동을 일으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산악열차는 가장 빨리 달려도 시속 50~60km를 넘지 못하며 급경사 구역에선 시속 10~20km의 낮은 속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급경사지에서 낙석이 발생해도 신속한 회피가 불가능하다. 이런 우려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7월 8일 육모정에서 고기리로 향하는 구간에 산사태가 발생하여 도로가 완전히 막혔다. 며칠 뒤인 7월 13일에는 정령치 휴게소로부터 300m 인근 지점에 도로 꺼짐이 발생하여 1개 차선이 통제됐다. 이런 상황들은 산악열차 사업이 강행될 경우 대형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악열차 궤도에는 삼곡교, 비폭교, 대성교 3개 교량이 존재한다. 이 교량들의 문제는 산악열차 중량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곡교 통과제한중량은 약 36톤이고 비폭교 통과제한중량은 약 26톤인데 비해 산악열차는 공차 중량만 46톤이고 만차 중량은 54톤에 달한다. 교량들은 여기에 더해 강철톱니와 레일이 포함된 콘크리트 궤도 중량을 추가로 감당해야 한다. 결국 이 구조적 하중 문제를 피하려면 도로와 접한 경사면을 콘크리트로 바르고, 새 교량을 만들고, 절벽으로 기운 도로를 보강하는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다. 곧 혈세로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을 깎고 헐어 쇠막대를 박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어 흉물로 만드는 거대한 시대착오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