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모기는 스트레스 지수를 엄청나게 올린다. 습기가 많은 공원과 산, 바닷가 그늘진 곳에선 낮에도 안심할 수 없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에선 모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기 매개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상당하다. 전문가들은 매년 100만~200만 명이 모기 매개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숫자가 연간 약 47만 명인 것과 비교해보면 모기 매개 질병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대표적인 모기 매개 질병이 바로 말라리아(Malaria)다. 이탈리아어 'malus(나쁜) + aria(공기)'라는 의미인데, 과거 병원체 존재를 몰랐을 땐 나쁜 공기가 병을 일으킨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8년 약 2억2800만 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0만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자의 90%는 말라리아 종류 중 가장 독한 열대열말라리아 때문이고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특히 사망자의 75%는 5세 이하 어린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C. 와인가드는 자신의 저서 <모기 :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서종민 옮김, 커넥팅 펴냄)에서 "오늘날 풍토성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매년 300억~400억 달러의 손실을 일으킨다"라고 지적한다. 말라리아 모기 방역과 퇴치에 연 3조 원가량이 투입되고 있지만, 인류는 큰 효과를 보고 있지 않다. 현재 말라리아 백신은 2021년 WHO에 승인된 단 1종뿐이다.
우리나라에도 말라리아가 있다. 그나마 치사율이 1~2% 정도인 삼일열말라리아가 많다는 게 다행스러운 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말라리아 발생지역이 더욱 확대한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모기는 냉혈동물이기에 섭씨 10도 이하와 40도 이상에선 살아남지 못하고, 24도 이상일 때 최상의 활동성을 보여준다. 와인가드는 "따뜻한 기후에서라면 모기는 1년 내내 활동하면서 모기 매개 질병을 풍토병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악역으로 그려진 모기
영화 등 대중문화에선 모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희화된 캐릭터도 있지만, 흡혈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반적으로 악역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까지 이어진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시리즈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 선보였다. 영화에서 공룡 복원의 결정적 단서는 공룡의 피를 빤 채로 호박 속에 갇힌 모기였고, 모기 피에서 공룡 DNA를 분리해낸 순간 인간의 탐욕이 더해져 재난이 시작된다. 1993년 B급 정서 가득한 영화 <스키터(Skeeter)>는 독성 산업폐기물 때문에 돌연변이로 거대해진 살인 모기를 다뤘다. 1995년 제작된 영화 <모스키토(Mosquito)>는 지구로 추락한 외계인의 피를 빤 모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정이다. 1995년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쥬만지(Jumanji)>에서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당 중엔 모기떼가 빠지지 않았다. 2006년 우리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은 신선한 소재로 전국에서 100만 관객을 모았다. 영화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고성에서 드라큘라의 피를 빤 모기가 항공 배달을 타고 한국에 도착해 강력계 형사 나도열(김수로)을 흡혈귀로 감염시킨다. 영화는 코미디, 액션 장르답게 성적 자극으로 에너지를 얻는 ‘흡혈귀 히어로’를 만들어 냈다. 웹툰 중에서도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 2017년 연재된 정지훈 작가의 『모기 전쟁』은 모기가 지구 최강의 포식자가 되기 위해 흡혈 대상의 DNA 정보를 축적해 변이를 일으킨다는 설정이다. 사람 크기만 하게 변이된 모기는 단 일주일 만에 인류의 절반을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겨우 5000여 명만 남은 인류는 행성을 되찾기 위해 1조5천억 마리로 불어난 모기와 생존을 걸고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모기가 등장하진 않지만, 모기 매개 질병이 언급된 작품도 있다. 2022년 11월 개봉한 안태진 감독, 류준열·유해진 주연의 영화 <올빼기>가 그렇다. <올빼미>는 러닝타임 118분 동안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야말로 '잘 빠진' 궁중 스릴러를 보여줬다. 덕분에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작품상, 신인감독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했고, 330만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을 정도로 흥행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주맹증을 알고 있는 침술사 천경수(류준열)다. 야맹증과 달리 주맹증은 빛이 없어야 사물을 구분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경수는 어의가 소현세자를 독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세자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되려 범인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한다. 경수는 병약한 어린 동생을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고, 누명을 벗기 위해서 세자 독살을 지시한 궁중의 최고 권력자인 인조(유해진)와 맞서게 된다. 경수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길 추천한다.
'학을 떼다'의 어원은?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한 후 명을 달리했다. 역사에 기록된 사망 원인은 학질(봬疾)이다. 다만 <인조실록>엔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세자의 비명 횡사 이후 석연치 않은 인조의 여러 행보 때문에 현재도 독살설 논란이 거듭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여러 대중매체에선 다양하게 변형되는데, 무능하고 광기 어린 인조와 비운의 소현세자를 다룬 드라마 <추노>(2010), 영화 <창궐>(2018) 등의 작품이 계속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질이 바로 말라리아다. 학질은 '제구실', '하루걸이' 등으로 불렸는데, 고려시대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할 정도로 만연했던 질병이라는 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말이다. 구한말 재야 학자인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학질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병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10명 중 4~5명은 사망할 뿐 아니라 힘이 강한 소장년층도 수년 동안 폐인이 된다"라고 기록했다. 그 때문에 ‘학을 떼다’란 말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사실 인류의 모기 전쟁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할 때부터 시작됐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6억~8억 년 전 출현했다고 한다. 1억7천만 년 전에 나타난 모기가 말라리아 기생충을 탑재하고 600만~800만 년 전 시작된 원시 인류(호미니드)를 괴롭혔다. 대략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현생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말라리아에 대응한 유전자의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다. '겸상적혈구'가 대표적이다. 적혈구는 타원형이 정상인데, 대략 8700년 전부터 초승달 모양의 적혈구를 지닌 인류가 등장했다. 일종의 기형으로 이 겸상적혈구 체질은 열대열말라리아에 90% 면역력을 갖는데, 대신 평균수명 23세가 됐다. 말라리아 때문에 면역력과 수명을 교환해서 진화한 셈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5000만~6000만 명이 겸상적혈구 보인자라고 한다. 이 때문에 열대열말라리아를 ‘인류의 진화압’의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계피, 바질 등의 향신료와 차 마시는 문화 그리고 커피 역시 말라리아 증상 완화와 모기 기피용으로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모기 전쟁에서 인류의 최선의 방어 대책은?
인류 역사의 전쟁 등은 말라리아 확산의 또 다른 통로였다. 한편으론 중요한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와인가드는 기원전 정복왕 알렉산드로스가 32살에 단명한 것은 모기 매개 질병 때문이며,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 중엔 로마 주변 습지 서식 모기도 있다고 봤다. 19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독립을 선언한 아이티 공화국은 모기 매개 질병에 약했던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군대를 모기 덕분에 손쉽게 물리칠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20세기 전쟁에서도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질병은 골칫거리였다. 미군은 2차 대전 때 별도의 모기 킬러 부대를 운영했다. 이 무렵부터 모기 퇴치에 DDT 살충제가 사용됐다. 뛰어난 살충 효과에 습지 등 자연 공간만이 아니라 군인과 민간인 몸에 직접 뿌렸고, 전쟁 후인 1945년부턴 시중에 판매됐다.
1955년 WHO는 DDT 등을 기반으로 지구적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프로그램 종료가 선언된 1960년대 말까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는 물론 미국, 유럽의 말라리아 감염률이 최대 90%까지 격감했다. "인간이 말라리아를 지배하다(Man’s Mastery of Malaria)"라는 선언도 이어졌다.
그러나 DDT는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봄을 만든 원인 물질이었다. 모기를 잡으려다 생태계를 훼손시켜 6번째 대멸종을 부추겼다. 게다가 1950년대부터 DDT 내성 모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7년 정도 만에 DDT 내성을 획득했다는 분석이다. 와인가드는 "오늘날 108개국 40억 명의 사람이 모기 매개 질병에 걸릴 위험에 놓여 있다"면서 "기후위기가 현재 추세로 이어지면 2050년 총 6억 명을 더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최근엔 유전자 편집 가위를 이용해 모기를 불임화 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유전자 편집 가위는 논란이 많은 기술이다. 통제되지 않으면 지구 생물 전체에 치명적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또 이 기술이 모기에 절대적으로 통할지 여전히 미지수다.
독일 출신 생물학자 프라우케 피셔 등은 <모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저서에서 "말리리아 모기를 죽이려고 사용한 화학적 조치에 포식자 곤충이 더 많이 죽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모기는 새들과 박쥐, 어류, 파충류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다양한 식물의 꽃을 수분하기 위해선 벌만으로 부족한데, 모기도 이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좀모기과의 모기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꽃의 유일한 수분자다. 천연 바닐라는 같은 무게의 은보다 비싼데, 맞춤 수분자가 없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수분을 해주기 때문이다. 모기가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초콜릿 먹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지구는 기후위기와 함께 생물 다양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피셔 등이 "모기의 천연 천적을 육성하고 좋은 모기장을 사용하는 게 훨씬 더 타당해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구 행성 차원에서 생물 다양성 관점으로 모기를 봐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