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어느 유명 작가가 지난 가을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이라는 섬뜩한 제목으로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명성 덕분인지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소리가 들린다. 외교 평론을 하는 사람이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엉뚱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재로 쓴 것일지라도 대개 소설에는 작가의 주관적 상상력 또는 허구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것은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할 것이므로 함부로 논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가 이번 소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라며 밝힌 주장이 있는데 그는 대중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작가인 만큼 그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논평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잘 모르는 우리 사회를 더욱 오도할 수 있다고 우려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점을 바로 잡는 일은 오히려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러시아는 맘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공격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나토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지 않다 보니 유례가 없는 불공평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러시아의 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핵무기가 없었다면 다국적군이 벌써 모스크바에 진주하여 전쟁은 일찍이 끝났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우선 그가 말하는 '불공평한 전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전쟁이 발발할 때 상호 군사력이 대등하고 동등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은 무정부 사회인 국제사회에서 공허한 소리이다. 전쟁이 체급이 있는 운동경기인가? 작가의 주장은 러시아가 져야 한다는 편견에서 출발한, 궤변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직설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대폭 늘리라고 주장하면 될 텐데 '불공평한 전쟁'이라는 희한한 개념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이번 전쟁 발발 조짐이 이미 2021년 초부터 있었음에도 발발 직전까지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 등 푸틴 대통령이 내건 요구조건에 대해 협상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쟁 발발을 방조한 면이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유를 수호하겠다고 하면서도 전쟁이 나기 전부터 미군 파병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러시아가 침공하면 혹독한 제재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을 뿐이다. 미국은 당연히 전쟁이 '불공평한 전쟁'이 될 것임을 예견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전쟁의 발발을 막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전쟁 초기에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을 포함한 집단서방은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이래 8년간 우크라이나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를 겨냥한 칼로 만들어왔다.
미국 등 집단서방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불쏘시개로 하여 러시아의 힘을 빼는 데에서 그친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애초부터 우크라이나군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벌일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러시아가 핵 공격을 할까 봐 두려워 장거리 공격용 무기를 지원하지 않거나 직접 참전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우크라이나 상황이 러시아에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는 반면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에 실존적 안보 위협은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명 작가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공공연히 세계의 종말을 언급했으며 만약 이 전쟁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핵을 터뜨릴 거라는 협박을 노골적으로 해댄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필자는 그가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푸틴은 러시아군의 침공을 전쟁이라고도 하지 않고 '특수군사작전'이라고 하였으며 이 군사작전의 목표로서 우크라이나의 비(非)무장화와 비(非)나치화를 내걸었을 뿐이다. '비무장화'는 우크라이나가 최소한의 무력만 보유하고 중립국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비나치화'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에게 '인종청소'라고 할 정도로 만행을 저지른 우크라이나 내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것이다.
핵 공격을 먼저 거론한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집단서방 쪽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이 수세에 몰리자 지난 8월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핵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I am prepared to unleash nuclear destruction)'라고 강경 발언을 하였으며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핵 대비 태세를 점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간 영국과 미국은 핵폭탄은 아니나 방사능 오염이 수반되는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였다. 올해 3월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하면서 미국이 유럽 내 이미 오래전에 배치한 전술핵을 철거한다면 러시아도 벨라루스에 배치하는 무기를 철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난 9월에는 나토가 냉전 종식 이래 최대 규모로 내년에 러시아에 대한 핵 공격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20년에 개정된 핵 독트린에 따르면 러시아는 적대세력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으면 핵무기로 반격하되 선제 타격은 하지 않으며, 다만 재래식 공격이더라도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때에는 예외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핵전쟁을 적극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집단서방이다.
그는 또한 '푸틴의 핵 협박이 승리로 귀결된다면 자유민주주의 대신 전체주의와 독재가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 인류가 이 최초의 핵 협박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을 인류에게 최초의 핵 협박을 가하고 있는 최대 악이라고 지목한다'라고 하였다. 우선 작가는 '핵 협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묻고 싶다. 냉전 기간 동안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미국과 소련 양국이 상대방에 대해 '핵 협박'을 하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핵 공격을 하면 그 공격을 흡수하고 그 결과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할테니 경거망동하지마라'가 핵전쟁을 막고 있는 핵심 메카니즘이다.
소위 상호 '확증파괴'이다. 작가가 핵 문제에 있어 일방의 핵 협박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국제정치 지식이 부족함을 스스로 밝히는 셈이다. 최근 러시아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 대한 비준을 취소하였다고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우려와 비난을 하였는데, 정작 CTBT에 서명만 하고 거의 30년째 비준을 미루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이야기가 없을까? 그리고 러시아를 전체주의와 독재로 평가했는데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현지인들과 적지 않은 접촉을 하였던 필자로서는 러시아를 '전체주의'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푸틴에 대해 독재를 운운하는데 독재보다는 '매우 권위주의적'인 국가지도자라 평가하는게 적절하다고 본다. 푸틴은 전쟁 전에도 러시아 국민으로부터 70%가 넘는 지지를 받은 지도자이다. '전체주의', '독재' 등 용어를 함부로 쓰면 우리 자신의 사고체계가 온전히 기능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서 가장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전쟁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제사회에서는 국내 사회보다 훨씬 더 이중기준과 내로남불이 판을 치는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엔 총회에서 그간 규탄 결의가 여러 번 있었고 회원국의 절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졌으나 실제로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캠페인에 동참하는 나라는 49개국에 불과하며 내부를 들여다 보면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연합국가들 외에는 한국, 일본, 싱가폴 등 정도이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은 이번 전쟁의 배경을 알고 집단서방의 이중기준과 내로남불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악의 축'이며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국제사회에서 수적으로는 소수인 집단서방의 자기 위안이다. 지난 60년간 대단한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이루어 이제 '다른 나라'가 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 집단서방보다 한술 더 뜨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이번 전쟁은 분명히 피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보면서 병자호란을 자초한 17세기 조선 조정의 어리석음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