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한 이슬람 성직자가 이란이 이스라엘을 무장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한 이후 테헤란의 영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반이스라엘 시위에 14일 참가한 모습. 이란과 이스라엘은 지난 45년 동안 대립해 왔지만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AP 연합뉴스
이란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이스라엘을 드론과 미사일 300여 기로 공격했다. 두 나라 간 첫 전면 군사 충돌로 6개월 이상 이어져 온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범중동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은 이전에도 다른 무장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해 이스라엘을 대신 공격하도록 부추겨 왔다. 이 두 나라는 어쩌다 이 같은 불구대천 원수가 됐을까. 문답으로 정리했다.
그래픽=김성규
◇1. 이란과 이스라엘은 원래 이렇게 앙숙이었나
아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던 주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이란은 이스라엘 건국 2년 뒤인 1950년에 일찌감치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경제·외교적으로 협력해 왔다. 1950~1970년대 두 나라의 우호 관계는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친미 성향인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던 이란은 미니스커트와 청바지가 유행하던 개방적 사회로, 종교만 다를 뿐 이스라엘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였던 두 나라는 인적 교류가 활발했고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 개발에 협력하고 이란이 이스라엘에 석유를 공급할 정도로 긴밀하게 협력했다.
그래픽=김성규
◇2. 그런데 왜 사이가 틀어졌나
이슬람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세속주의 팔레비 왕정을 1979년 무너뜨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신정(神政) 체제를 구축하면서 두 나라 관계는 단절되고 적대 관계로 바뀌었다. 미국을 적으로 규정한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이슬람의 적이며,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고 부를 정도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도 양국은 사안에 따라 은밀하게 물밑 협력하며 ‘적대적 공존’을 이어갔다. 사담 후세인이 이끌던 이라크를 공동 위협으로 여겼다는 점이 양국의 유대감을 유지시킨 동력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이란에 무기를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쪼그라들어 ‘공공의 적’이 무기력해지자, 이란과 이스라엘은 상대국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픽=양인성
◇3. 이란은 왜 그동안 이스라엘 직접 공격을 피했나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다. 우선 두 나라는 접경국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국경도 1000㎞ 떨어져 있고 중간에 레바논·시리아·이라크 등이 있다. 영토 분쟁 등 전면전을 치를 요인이 많지 않다. 시아파를 신봉하는 이란으로서는 종파 분쟁을 벌여온 수니파 군사 대국 사우디와 튀르키예 같은 곳이 우선시됐다. 사우디는 미국의 군사 협력국이고 튀르키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아울러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력 차도 크다. 이란은 핵 개발 추진 과정에 받은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상당수 무기가 노후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이스라엘은 인도·파키스탄·북한과 함께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간주되고, 아이언돔 등 최첨단 무기를 다수 갖췄다. 이런 이유로 이란은 직접 공격 대신 시아파의 세가 강한 시리아·이라크·레바논 무장 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견제하고 중동 내 영향력 유지를 꾀해 왔다. 미국 국무부는 2019년 이란이 돈세탁 등을 통해 헤즈볼라에 지원하는 액수가 1년에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14일 새벽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른에서 포착된 이스라엘군 방공 시스템의 드론·미사일 요격 장면. 전날 밤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미사일 300여기를 발사하며 전격 공습을 강행했으나, 이스라엘군은 이 가운데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4. 그런데 이번엔 왜 직접 공격했나
최근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전과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드론·미사일 공격의 원인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다마스쿠스 이란 영사관 폭격이다. 사망자 10여 명 중엔 이란 혁명수비대 해외 공작 부대인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도 포함돼 있다. 앞서 지난 1월엔 이란의 국민적 영웅으로 미군 공습에 사망한 혁명수비대 장군 카셈 솔레이마니 4주기를 기리는 행사장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벌어져 100명 넘게 사망했다. 이란은 이 사건도 이스라엘을 배후로 본다. 잇따라 타격을 받은 이란으로선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안팎에 발신할 필요가 있었다. 경제적 목적으로 이번 공격을 단행했다는 관측도 있다. 세계 원유 매장량 4위 산유국으로 전체 수출 비율 중 원유가 60%에 이르는 이란이 유가 상승 반사 이익을 얻고자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몰고 갔다는 것이다.
◇5. 양국 충돌이 주변 국가들에 미칠 여파는
이스라엘·이란의 주변국들은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미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주변 3국인 이집트·레바논·요르단에서 23만명이 빈곤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본거지를 빼앗긴 무장 단체 대원들이 자국으로 흘러 들어와 안 그래도 불안한 내부 정세가 불안해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자국 민간인 피해를 우려한다며 가자지구의 유일한 탈출 통로인 라파 국경을 막기도 했다.
☞저항의 축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라크·북한 등 적대 국가를 ‘악의 축’이라고 부르자 이슬람권 언론이 반감을 드러내며 쓰기 시작한 용어. ‘미국에 저항하는 국가들’이란 뜻이었지만 이후 점차 이란이 지원하는 중동의 반(反)이스라엘 무장 단체 등을 묶어 부르는 말로 굳어졌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