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라는 말만 나오면 ‘두통’과 ‘입시’를 떠올리며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영국 수학자로 브리스톨대 정보이론 교수인 지은이는 수학은 현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숨은 도구라고 강조한다. 현대 문명의 새로운 이기가 한결같이 수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외국어를 실시간으로 옮겨주는 구글번역이나 말을 걸면 알아듣고 답해주는 시리·알렉사 같은 인공지능(AI) 비서 프로그램도 그렇다. 과거 내가 선택했던 시청 작품을 바탕으로 내 취향을 파악해 프로그램을 추천해주는 넷플릭스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뉴턴과 장영실의 동상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수많은 데이터는 대중이 알아보기 쉽게 간략한 그래픽으로 전달됐다.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 이토록 간명하고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 뉴턴은 만유인력을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했다. 뉴턴이 위대한 이유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존재를 직감한 것이 아니라, 이를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었다는 데 있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수학적 언어로 표현한 방정식이 있어 인간은 달에 가기도 전에 그곳의 중력을 알 수 있었다.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는 기술도 수학적 사고와 표현을 바탕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2차 세계대전 중 통계와 확률을 앞세운 수학적 방식으로 독일 잠수함의 통신암호인 애니그마를 해독했다. 이는 전쟁의 방향을 바꿔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튜링은 이를 응용해 컴퓨터 연산의 기본 개념을 공식으로 정리했다. 수학이 만든 신세계다.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분량은 18~24개월에 두 배씩 증가한다’며 반도체 성능 향상을 전망한 ‘무어의 법칙’도 수학에서 나왔다. 지수적 증가가 그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감염자 증가 양상을 설명하는 수학적 방법이기도 했다. 은행 이자나 주식시장에도 적용된다.
지은이는 이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 기술, 데이터 네트워크 등과 관련한 기술은 모두 수학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기존의 데이터를 해석하고 설명하며,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오지 않는 상황을 예측한다. 날씨나 주가는 하늘을 보거나 거래소를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 맹신하면 오류를 만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감염병 전망 실패나 주가 예측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수학을 제대로 파고들어야 할 이유다. 지은이는 ‘수학은 생각하는 방법이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지은이가 인용한 “수학의 본질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AI 시대에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를 위한 해법과 정석은 수학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AI는 수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입시용이 아니라 생존용 과목이다. 원제 Numbercrunch.
수학에 대해 생각해볼 다른 책들도 나왔다. 스웨덴의 두 경제학자가 쓴 『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김영사)는 수치화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숫자 이용이 무어의 법칙 뺨치듯 늘어나는 ‘수량 통제사회’와 숫자에 대한 해석 오류를 파고든다. 미국 스탠퍼드대 수학 교수의 『수학이 좋아지는 스탠퍼드 마인드셋』(와이즈베리)은 수학 공부에 타고난 머리는 없다고 강조한다. 수학은 타고난 재능이라는 미신과 오해를 버리고 수학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수학은 머리 좋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가 호흡하는 공기와도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