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총선 투표가 시작된 지난 19일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에서 한 투표관계자가 유권자의 검지손가락에 보라색 잉크를 바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권자는 9억7000만명에 달하고 선거 기간만 6주인 인도 총선의 두 번째 투표가 26일 실시됐다. 이날 라자스탄·우타르프라데시·아삼 등 13주(州) 88곳의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했다. 다음 달 1일까지 다섯 번 더 투표를 한 뒤 사흘 뒤에 하원 543석의 당선자가 발표되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유권자 숫자도 선거 기간도 지구촌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매머드급 선거인 인도 총선에서는 다른 나라 선거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투표소에서 나오는 유권자들의 왼손 검지 손가락을 물들인 보라색 잉크를 집중 조명했다. 인도 선거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이 잉크는 기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식별하기 위한 용도로, 주민등록증 같은 신원 인증 도구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인도에서 중복 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쓰인다.
인도 총선의 두 번째 투표가 실시된 26일 서북부 라자스탄주(州)에서 한 유권자가 보라색 잉크가 묻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인도에서 개발 및 제작한 이 잉크는 기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쓰이며, 최장 4개월간 지워지지 않는다./AFP 연합뉴스
인도는 2009년부터 ‘아드하르’라는 디지털 신분증 시스템을 운용 중이지만, 인구 1억만명은 여전히 발급받지 못한 상황이다. 보라색 잉크는 인도 국립물리연구소가 개발하고 인도 유일의 잉크 제조 업체에서 제작한 것으로, 질산이 함유돼 있어 피부와 손톱에 스며든 후엔 최소 4주 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비누나 세제 등으로 박박 닦아내도 끄떡없다. 손톱에 묻은 얼룩은 새 손톱이 자랄 때까지 최장 4개월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는 1962년 총선 때 이 방식을 개발해 현재까지 모든 선거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나이지리아 등 30국이 인도에서 해당 잉크를 수입해 선거를 치른다.
인도의 또 다른 독특한 선거 문화 중 하나는 ‘프리비(freebies)’다. 프리비는 정당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사은품이나 보조금을 뜻하는 말로, 힌디어로는 ‘선물’이라는 뜻의 ‘레브디(revdi)’라고도 한다. ‘프리비’에 속하는 품목은 생수·전기 같은 생활 필수품부터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현금까지 다양하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각종 ‘프리비’들을 유권자들에게 뿌리고, 실제로 누가 더 좋은 ‘프리비’를 주느냐를 두고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당장 부정선거 논란을 일으킬 법한 사안이지만, 인도에서는 이런 ‘프리비’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사은품 배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없는 탓에 위법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2013년 인도 대법원은 “프리비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뿌리를 크게 흔들고 있다”며 별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을 뿐 후속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다만 인도선거관리위원회(ECI)가 정한 선거 청렴성 유지 지침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경우 살포된 프리비를 회수될 수 있는 정도의 조치만 취하는 상황이다. CNN에 따르면 ECI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총 5억5000만달러(약 7589억원) 상당의 프리비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인도 선거 역사상 가장 큰 금액으로, 특히 집권 인도국민당 거점인 라자스탄에서 가장 많이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수민족 간 갈등이 첨예한 지역에서는 투표소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1일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주(州)에서는 무장 폭도들이 최소 11개 투표소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렸다. 마니푸르주는 19일 첫 투표가 실시됐던 선거구 중 한 곳이다. 약 300만명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지난해 5월 힌두교도인 메이테이족과 기독교를 믿는 쿠키조 부족이 유혈 충돌을 벌여 약 200명이 사망한 이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인도 선관위는 해당 투표소들에서 이뤄진 투표를 무효화하고 재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