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프랑스 방문 첫날인 5일부터 파리 시내는 시진핑을 위한 ‘비상 경호 체제’에 돌입했다. 시진핑이 여장을 푼 파리 16구의 페닌슐라 호텔 인근은 차량과 시민의 통행이 아예 차단되고,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됐다. 프랑스 경찰은 호텔 전방 200m 주변에 여러 대의 대형 밴과 철제 바리케이드를 배치, 차도와 인도를 완전히 가로막고 접근하는 이들을 일일이 통제했다. 한 시민이 “왜 이렇게 통행의 자유를 방해하느냐”고 항의하자 경찰은 “안보상의 문제”라고 짤막하게 응수했다.
호텔 주변에 사는 이들은 “별도 통행허가 없이는 빵 하나도 사러 나갈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한 50대 남성은 “엊그제부터 경찰과 보안 요원들이 드나들며 건물을 살펴보고 경비를 서고 있어 집을 드나들면서도 계속 통제받는다”며 “마음 놓고 창밖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러시아 대통령 다 파리에 왔다 갔지만 이렇게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건 처음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랑스 정부는 시진핑 경호를 위해 호텔 인근을 지나는 지하철 6호선의 운행마저 막았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에투알’역에서 호텔 옆에 있는 ‘클레베’역을 지나 ‘부아시에르’역까지 구간 운행이 시 주석이 파리에 머무는 3일(총 48시간) 동안 완전히 중단됐다. 파리 지하철을 운영하는 RATP 측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파리 경찰청의 요청으로 특별히 운행을 중단하게 됐으니 시민들의 양해를 바란다”고 공지문만 내건 채 지하철 입구를 걸어 잠갔다.
“中 억류 언론인 119명 석방하라” - 6일 프랑스 파리 에투알 개선문 인근에서 국경없는기자회 회원들이 ‘중국에 억류된 119명의 언론인을 석방하라’는 주장이 담긴 팻말과 함께 입에 검은 테이프를 붙이는 모습으로 시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문한 5일부터 파리 곳곳에서 반(反)중국 시위가 벌어졌다. /EPA 연합뉴스
샤를 드골 에투알과 부아시에르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던 시민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30대 여성이 닫혀 있는 지하철 입구를 보고 “예정에 없던 파업이냐”고 묻자 곁에 서 있던 점퍼 차림의 남성이 “페닌슐라에 묵고 있는 시진핑 경호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제히 “그렇다고 지하철 운행을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운행 중단 구간 직전 역인 트로카데로역에선 지하철 승객들이 모두 영문도 모른 채 강제 하차당했다. 짐가방을 든 한 40대 여성은 “개선문까지 이걸 들고 20분 이상 걸어가게 생겼다”며 “한두 역을 무정차 통과하면 될 일을 왜 운행 중단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려 지상으로 올라가던 한 중국계 프랑스인 여성은 “독재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민의 발마저 묶다니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가 시진핑에게 이렇게 철저한 경호를 제공하는 것은 중국의 인권 침해와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한 주변국 압박, 중국의 러시아 지지 등을 비판하는 반(反)중국 시위 때문이다. 이날 오후 파리 시내 곳곳에선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여러 시위가 이어졌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선 1000여 명의 티베트인과 반정부 성향 중국인이 모여 반중 시위를 벌였다. 몇몇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중국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학살 전쟁 지원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페닌슐라 호텔에서 멀지 않은 개선문에선 티베트 인권 운동가 두 명이 “유럽은 시진핑의 학살을 거부하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다 체포됐다. 신장 위구르인 100여 명도 파리 시내 중심가의 마들렌 성당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위구르족 탄압 및 학살 책임자인 시진핑을 국빈으로 맞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