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 岳岩

乙巳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힘이 되는 짧고 좋은 글귀-인생명언

자랑하면 도리어 깎인다

'논어옹야(군자의 마음가짐을 배우려면)'

맹지반 (孟之反) 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해 달아날 때 후미에서 엄호하고서도, 자신의 말을 채찍질하면서 '내가 감히 뒤에서 엄호하려 한 게 아니라, 말이 가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공자(孔子)가 살았던 시대에는 전쟁에서 패했을 때 군의 가장 뒤에서 적을 막아가면서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美德)이었다노나라의 대부 맹지반은 제나라와의 전쟁에서 아군이 패해 퇴각할 때 후미에서 엄호(掩護)했으나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공자는 이렇게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자세를 칭찬했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면 오히려 그것을 깎아먹는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생색내면 고마움보다는 오히려 반감(反感)을 살 수 있듯이, 겸손(謙遜)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논어옹야(군자의 마음가짐을 배우려면)'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선(限界線)을 긋고 있는 것이다. 염구가 공자에게 자신이 공자가 주장하는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아가려고 해도 힘이 부족해서 더 나아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가 스스로 한계선을 그어놓고 행하지 않기 때문이지, 힘이 부족해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우리가 무엇을 성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의식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 있다. 나를 한계 짓는 그 의식이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할 뿐이지,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만약 염구( 冉求 )가 술이나 소고기를 좋아하듯 배움을 즐겼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염구는 힘이 부족하다고 말한 그 순간에 바로 자신의 한계선을 그은 것이다.

 

가난에 마음을 얽매이지 마라

'논어옹야(군자의 마음가짐을 배우려면)'

어질구나, 안회 (顔回 )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방에서 지내는구나.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구나, 안회여! 가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안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말은 안회가 가난함을 즐겼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내면의 중심을 잡고 정진(精進)한 자세를 칭찬한 것이다. 

만약 현재 가난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근심하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가난한 현실은 가치 중립적(中立的)이다. 사람들이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근심하는 것일 뿐이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스스로 인간의 도리를 공부하고, 인격 완성(人格完成0의 길을 가는 것에 집중하고,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즐거움을 얻는다면, 근심은 사라질 것이다.

 

허물을 되풀이하지 마라

'논어옹야(군자의 마음가짐을 배우려면)'

(안회는) 자기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자들 중 가장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공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자 안회가 가장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자가 안회를 높게 평한 것은 안회의 배움이 단순히 책에 나온 글을 외우거나 글을 짓는 범주(範疇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안회는 인간다움의 길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하고 적극 실천했다. 종로(鍾路)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은 아직 자신의 감정에 지배(支配)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 번 잘못하고 나서 배움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어리석다. 안회는 자신을 객관적(客觀的)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이겨내는 경지에 다다랐다.

 

좋은 사람인 척 꾸미지 말라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며,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다. (孔子)도 마찬가지다. 원망을 숨기고 그 사람과 친한 척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다. 나도 마찬가지다. 좌구명은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공자는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대할 때 말과 행동을 꾸미고, 친한 척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행동은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한편, 상대가 권력이 있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로움을 따르는 것일 수 있다. 혹은 권력이나 위세에 굴복(屈服)하는 것이다. 싫은 사람과 친한 척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인정욕구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려는 것은 왜곡된 욕망(慾望)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고 좋은 사람임을 가장하는 행동은 부끄러운 것이다.

 

사람을 알려면 행동을 살펴라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처음에 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행동을 믿었지만, 이제는 그 행동을 살펴본다. 공자에게 재여 (宰予) 라는 제자가 있었다. 재여는 말을 잘했지만, 행동이 말하는 것과 달랐다. 하루는 재여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본 공자가 '배움에 힘쓰지 않고 낮잠 자는 제자를 보고 무엇을 꾸짖겠는가? 꾸짖을 것조차 없다'라고 혹평(酷評)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一致)해야 믿을 만한 사람이다.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지 않고 말만 들어서는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공자도 말은 그럴듯하게 잘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지 않은 재여를 통해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정확히 알려면 그의 말과 함께 반드시 행동을 살펴보자.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공어는 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공자가 공어 (孔圉) 에게 ''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공어는 사람됨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알려지지 않았기에 의아하게 여긴 제자들이 자공에게 그 까닭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에 공자는 그가 비록 악인(惡人)이지만, 배우는 데 민첩하여 누구에게든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자존심(自尊心) 때문이다. 보통 모르는 것을 자기보다 모자라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체면이 구겨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존 맥스웰'

삶의 궁극적인 발전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모르고 있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의지(意志0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스마일스의 말처럼 스스로 의지로 일어설 때 성장하고 성공할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부족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채우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현재의 자신과 꿈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다보면 반드시 꿈에 도달(到達0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결과를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허물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고쳐라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그만 내버려두겠다! 나는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을 바라볼 때는 남을 볼 때와는 다르게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지극히 주관적(主觀的)이다남의 허물을 찾는 데는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지만, 그 칼날이 자신으로 향할 때는 무뎌진다. 

어렵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고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쳐 나가는 행동에는 용기와 결단(決斷)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고 스스로 고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탄식했다.

 

욕심이 많으면 외부의 자극에 흔들린다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나는 강직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신정 (申棖 )은 욕심이 많으니 어찌 강직하다 할 수 있겠는가? '강직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공자의 말에, 어떤 사람이 신정이라는 제자는 강직(剛直)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욕심이 있는 자는 강직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강직하다는 것은 내면이 굳세고 단단하다는 의미다외부의 압력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내면의 도덕과 양심을 따르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욕심이 많으면 외부의 자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신정이라는 제자의 실제 성품(性品)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그를 강직하다고 판단했다. 아마도 그가 자신의 욕심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겉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그 이면에 있는 욕심을 꿰뚫어보고 강직할 수 없다고 평한 것이다.

 

용서는 자신을 위한 것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아서 원망이 적었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말기 고죽국 왕의 장남과 막내 아들이다. 주무왕(周武王)이 상나라의 주왕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우자, 주나라의 양식을 먹는 것을 수치로 여겨 수양산(首陽山)에서 은거하며 나물로 근근이 연명하다 굶어 죽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원망이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원망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단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상대방도 그 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남을 미워하면 자신도 원망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용서(容恕)하면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허물을 잊는 것, 용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생각이 지나치면 행동이 늦다

'논어공야장(올바른 덕을 실천하려면)'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이후에야 행동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말했다. "두 번 생각해도 충분하다." 계문자 (季文子) 는 신중하고 검소한 것으로 알려진 춘추 시대 노나라의 현인(賢人)이다.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행동하기에 앞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은 순간에 낚싯대를 들어 올려야 하고,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어떤 일은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後悔0하기도 한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말도 있듯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거울이다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보면 그를 본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자신에게도 그런 잘못이 있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에 비난(非難)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본받아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 된다. 굳이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데 힘을 낭비(浪費)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비난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런 단점이 있지는 않은지 성찰(省察)해보는 것이 좋다. 그를 비난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괜한 분란(紛亂)만 생길 수 있다. 남을 부러워하거나 비난할 시간에 자신을 계발하고, 성찰하는 것이 현명하다.

 

오직 마음을 선하게 가져라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진실로 인덕(仁德)에 뜻을 두고 실천한다면, 나쁜 생각과 행동은 사라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티끌만큼의 허물이나 잘못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태교(胎敎)하듯' 살아가면 잘못을 덜 하지 않을까? 순백(純白)의 새 생명이 내 속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나쁜 것을 보지 말고, 나쁜 말과 행동을 하지 마라. 좋은 것만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려 하면, 나쁜 생각이나 행동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사람은 자주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아 물들어가기 마련이다. 선(善)한 것에 마음을 주고 본성적으로 좋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을 멀리해보자.

 

정의와 양심을 기준으로 삼아라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군자(君子)는 세상일에 대해 '반드시 이렇다. 저렇다'하지 않는다. 오직 의, 합리적인 원칙에 비교할 뿐이다. 큰 목소리와 강한 어조로 상대편을 비난하면서 자신이 맞다고 하는 주장(主張)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근거나 기준이 이익이나 욕심인 경우가 많다. 이익과 욕심에서 비롯한 주장일수록 그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세다.

상대를 이겨야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正義)와 양심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이익을 논하는 대부분의 세상일에 대해 초연하다. 꼭 이것이 맞고 저것이 맞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준(基準)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자는 의롭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단호하다.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군자는 말에 있어 더듬는 것처럼 신중(愼重)하고, 행동에 있어 민첩하게 하려 한다. 말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함부로 말하기 쉬우니 마치 더듬는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잘 선택해서 말하라는 것이다. 행동은 생각한 것, 말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행동을 통해 자신을 증명(證明)할 수 있다. 기회를 놓치면 실행할 수 없다. 힘써 행할 수 있을 때 민첩하게 해야 한다.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敏捷)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 처신하는 방법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가?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군자는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인은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군자는 법과 양심(良心)을 두려워하여 지키려 하지만, 소인은 사사로운 은혜와 이익을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가치관(價値觀)에 따라 살고, 가치관에 따라 죽는다.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가에 따라 삶의 드라마가 달리 펼쳐진다. 가치관이 한 사람의 운명이자,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가? 

공자는 &논어& 전편에서 이익과 편안함 그리고 의리와 양심을 대결구도(對決構圖)로 놓고 반복해서 다룬다.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의리와 양심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편안함이나 이익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窮極的)인 가치는 아니다. 올바른 삶을 원한다면 성인들이 추구한 가치관에 대해 공부하자.

 

이익만을 좇지 말라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원망을 많이 산다. 이익의 세계는 본질적(本質的)으로 한쪽의 이익과 다른 쪽의 손실을 합하면 0이 되는, 제로섬게임과 같다. 내가 많이 얻으면 다른 사람은 적게 얻거나 전부 잃는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인 것이다. 때문에 다른 가치와 충돌(衝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익만을 추구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살 수밖에 없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려운 이유가 있다. 이익을 좇는 것은 생존(生存)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행위다. 하지만 이익만을 따라가지 않고 인간다운 덕성(德性), 즉 정의, 도덕, 양심을 따르는 것이 원망이 적다.

 

자기를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하라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공자: 나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

증자: 선생님의 도는 ()과 서()일 뿐이다. 

공자가 어른 제자인 증자에게 자신의 도가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들은 증자는 그것이 충()과 서()임을 깨달았다. 공자가 말하는 인간의 도리는 인()이다. 인이란 다른 말로 충서다. 충서란 '자기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대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좋은 것은 남에게 권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것, 나쁜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보아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理解)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 남이 잘되게끔 해주는 그 마음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인간의 도리다.

이미지 출처

너무 잦은 충고는 독이 될 수 있다

'논어이인(배우는 자가 가져야  생각과 처신)' 

임금을 섬길 때 간언을 자주 하면 욕을 당하고, 친구를 사귐에 충고(忠告)를 자주 하면 사이가 멀어진다. 자유의 말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해서 듣게 되면, 번거로워지고 더 듣고 싶지 않다. 이치(理致)에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충고를 계속 듣다 보면, 기분이 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명성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크다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오랫동안 친한 사이라서 쓴소리를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錯覺)을 버려야 한다. 친구에게 충고할 때는 가볍게 자주 하기보다 진지하게 한 번, 제대로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방법이다.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