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의 외설(外說·ExTalk) 이승만, 졸속 휴전 반대 한미상호방위조약 주장 美 골칫덩이 없애자며 '에버레디 작전' 검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한 이승만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 /타임지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풍전등화입니다. 대통령 젤렌스키는 까맣게 다 타고 끝자락만 아슬아슬하게 남은 초 심지 같습니다. 3년간 대국 러시아의 침공에도 사력을 다해 버티고 전세를 역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원치 않는 ‘굴욕 휴전’의 압박을 다름 아닌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영토를 빼앗긴 상태로 휴전된다면, 그 자체로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판정패가 됩니다. 무엇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서 남의 나라의 영토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의 불법적 행위를 국제사회가 용인해주는 꼴이 됩니다.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연대와 힘을 뒷배 삼아 용감하게 버틴 젤렌스키는 패장으로 낙인찍히고 다른 성향의 지도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3년간 피 흘린 군인과 국민의 희생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미국은 휴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는 초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 등을 상대로 말싸움했습니다.
“당신은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의 노골적인 표현도 점잖지 못했지만, 흥분해서 상대방 말을 자르며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이렇게 우리한테 잘해줬는데, 너희는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시종일관 따진 젤렌스키의 태도도 무례했고 무엇보다 그의 처지에서 전략적이지 못했습니다. 딱했습니다.
약소국의 현실이 어떤지를 소름 돋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금의 우크라이나의 처지를 보며, 그리고 이 나라 지도자 젤렌스키의 모습을 보며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6ㆍ25전쟁 때 우리도 똑같이 원치 않는 조건으로 조기 휴전 압박을 받았고, 그때 이승만 대통령도 젤렌스키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그보다 덜하지는 않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서둘러 휴전하고 병력을 한반도에서 빼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휴전하더라도 북한이 다시 남침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지금 이 기회에 북진해야한다고 미국 측에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북진통일론 및 휴전 반대를 주장하는 이승만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존 B. 코치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와 바튼 번스타인 스탠퍼드대 역사학 박사 등이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해 해제한 미 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가지 옵션을 고려했습니다.
첫째는 ‘상시 준비 작전(Operation Ever-ready)’으로, 이승만을 강제 구금하며 그를 축출하려 했습니다.
둘째는,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후반 무렵부터 주장하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미군 철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미국이 선택한 방안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이디어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조약을 끌어내기 위해 2만명의 반공포로 석방 같은 어쩌면 무모할 정도의 승부사적 조치 등을 결단하며 협상력을 키웠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으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의 조약입니다.
엔비디아 같은 세계 초일류 첨단 기술 대기업이 구멍가게 수준으로 매출도 제로(0)이고 미래 가치도 사실상 전무한 신생 기업에 대규모 연구진을 보내 상주 근무하도록 하고 거액의 자금을 아예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수준의 ‘이해 불가’의 계약을 체결한 것과 같은 조약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리튬, 티타늄, 흑연 등 천문학적 가치의 희토류 광물이라도 매장돼 있어,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이 광물로 재건 사업을 하자며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나 72년 전인 1953년이나 한국에는 미국이 눈독을 들일만한 규모의 천연자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한미 동맹의 근간이 된 조약을 그 시대에 끌어냈다니 기적적인 딜(deal)입니다.
기밀해제된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딜런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의 면담 기록.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전쟁 때 북진 통일을 주장했고, 무엇보다 재발 우려가 있는 졸속 휴전은 안 된다고 미국에 요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 협상 이후에도 딜런 부장관 등에게 북진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기밀해제된 미 문서에서 확인됐다. /조선DB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국이 만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주지 않으면 코리언들은 서로 싸우다가 다 죽을 것”이라고 썼는데, 실제로 이 조약은 1953년 이후 북이 재남침하지 못하는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10월 1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나선 “이제 우리 후손이 앞으로 누대(屢代)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란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 또한 현실이 됐습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우크라이나에 너무 모질게 한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1952년 트루먼, 1953년 아이젠하워 때도 미국은 약소국 한국의 전쟁터에서 얼른 발을 빼고 싶었습니다.
전쟁비 지출이 막대했고, 미국 내 여론이 부담됐습니다. 오죽했으면 이승만 축출 계획까지 세웠겠습니까?
국제사회의 현실은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할 정도로 냉엄하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지금까지 한미 동맹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픽=김현국
하지만 75년 전 스탈린을 믿고 북한이 남침했던 것과 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버젓이 일어나고, 미국 주도의 세계 패권에 중국이 노골적으로 도전하고 있으며, 유엔 등 국제기구가 유명무실해지고 각국이 군비를 늘리며 무장하기 바쁜, 각자 도생의 시간이 코앞까지 찾아왔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유지되던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뒤바뀌고 있습니다.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