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명(辜鴻銘)과 양계초(梁啓超)의 비교
고홍명(辜鴻銘)과 양계초(梁啓超)의 비교 글: 정만군(程萬軍) 청나라말기, 부패하고 썩은 청나라조정은 이미 백족지사(百足之蛇)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각종 신구 "애국지사"가 연이어 등장하여, 각자의 파벌의 정견으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였다. 신구파로 나뉜 "변사(辯士)"의 무리중에서, 두 명의 대표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하나는 철저한 수구의 "소변남인(小辮男人)" 고홍명이고, 또 다른 사람은 '소년중국'을 주장한 "영원년소(永遠年少)" 양계초이다. 고홍명은 청나라말기 민국초기의 완고한 수구파로 이름을 날린 문화괴걸이다. 그는 '노고동(老古董, 골동품)'으로 이름난 '소변남인'이었고, 평생동안 활력이 결핍된 수구적인 억지주장을 아주 잘 펼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외국인이 그에게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