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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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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花는 왜 有名할까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라고 칭송됩니다. 높은 기상과 품격을 지닌 국화는 늦가을의 첫 추위와 서리를 이겨내며, 깊은 산 속이나 아늑한 정원에 그 어느 곳에 피었어도 고고히 향기를 냅니다.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군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사회에서, 고난과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국화를 많은 문인들이 한없이 사랑하였고 극구 절찬하였습니다. 즉 국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변함없는 뜻과 마음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며, 고아하고  탈속한 경지를 추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화(菊花)는 문인들의 굳은 절개와 지조(志操)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 국화의 약리(藥理)작용에 대한 연구자료 역시 풍부합니다. 조선시대의 허준(許浚)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국화는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달면서 약간 쓰지만 독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중국 명(明)나라의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국화는 능히 풍열을 덜고 간을 유익하게 하여 음(陰)을 보하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가 좋고 몸을 가볍게 하여 쉬늙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菊花를 가리켜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고, 가을에는 꽃을 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고 합니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국화는 머리와 피를 맑게 하고, 뼈와 골수(骨髓)를 튼튼히 하고, 국화주는 불로연명장수(不老延命長壽)의 영험한 존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럼 옛날 선비들이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때 즐겨 마셨던 국화주의 유래와 전설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옛날 중국 주(周)나라 때 국자동(菊慈童)은 목왕(穆王)을 섬겨 그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왕의 베개를 타넘은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호랑이가 우글우글 출몰하는 남양(南陽)의 여현산(酈縣山)으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왕은 자동(慈童)을 가엾게 여겨 법화경(法華經) 두 구절을 적어주면서 매일 아침 그것을 외우게 했습니다. 자동은 쓸쓸한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왕에게서 받은 게(偈)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는 소옥 옆에 자라고 있는 국화 잎에 그 글을 써서 냇물에 띄우고는 임금이 계신 궁궐(宮闕)에 가 닿아주기를 빌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홀연히 한 백발의 신선이 나타나 “자동(慈童)아, 너는 게를 띄운 감곡(甘谷)의 물을 마시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 몸은 영원히 젊을 것이며 머지않아 네가 원하는 서울로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답니다.

 

꿈에서 깨어난 자동은 놀랍고 괴상한 꿈이었지만 신선이 일러준 대로 감곡의 물을 마셨습니다. 이미 그 물은 국화의 꽃과 잎에 얹혀 있던 이슬이 냇물에 떨어져 영약(靈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감로(甘露)처럼 맛이 좋았고 호랑이도 겁이 나서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장기적으로 복용한 결과 8백 년을 지나도 동안(童顔)을 그대로 지닌 채 늙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동은 이름을 팽조(彭祖)라 고친 후, 국화주의 비법(秘法)을 알려주어 15살 밖에 못산다는 예언(豫言)을 듣고 있던 위(魏)나라 문제(文帝)를 장수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재앙(災殃)을 물리치고 장수하는 비법으로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허나, 도가 지나치면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생로볃사(生老病死)는 사람의 임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인 소옹(邵雍), “술을 마심은 흠뻑 취하는 데까지 가지 않게 하고, 꽃을 완상함은 만개한 데까지 이르지 말도록 삼가네.(飮酒莫敎成酩酊 賞花愼勿至離披)”라고 읊었습니다. 소옹은 만개(滿開)할 때 꽃 보는 것을 삼가고 반개(半開)한 꽃을 더 좋아했는데, 이는 ‘좋은 장소는 오래 연연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곳은 다시 가지 말라.(優好之所勿久戀 得志之地勿再往)’고 말했던 처사(處士) 진단(陳摶)의 충고를 재강조하는 것으로 됩니다.

 

또한 물극즉반(物極則反)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극에서 극으로 치다닫게 되면 도리어 그 반대가 된다는 합니다. 이 이치를 깨달은 노자(老子)는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맹목적인 극(極)을 결사(決死) 추구하는데,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친  행동을 부디 자제하십시오.

 岳岩 執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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