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바이두
어린 시절
나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부러웠다.
새에겐 날개가 있는데
인간은 왜 날개 없을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새 날개 모양을 관찰하려고
온동네 참새를 쫓아다녔지만
뛰는 놈 어찌 나는 놈 잡으랴!
허나 새 날개와
인간 양각(兩脚)의
운니 (雲泥)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지금 생각해도 유치하지는 않았다.
사색이라는 “둥지”가 있었기 때문에
점차 크면서
많은 독서와 사유를 통해
나는 깨달음과 상상의
날개를 키울 수 있었다.
지성과 미성의 둥지를 꾸준히
마련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고로 새는 곧
날개를 갖추어서
창공을 날아가는
동물로서 혼과 정신의 승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프로이트 설에 따르면
새는 원래 男根의 심벌로서
그것이 승화를 이루어
정신적 사랑의 행동을
의미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은
새들보다 더 발달되고
위대한 “날개”를 갖게 된 것은
사유, 상상과 지성이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날개”를
키운 것은 아무래도
“둥지”의 덕분이다.
그 둥지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자주 새를
자신에 비유한 이유는
“둥지가 있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둥지가 오래돼서
삭아서 썩기 전에
새 둥지를 만들겠다.
또한 욕심 같아서는
천사 같은 새새끼들을
잘 키워내고 싶다.
악암(岳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