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전(古典)주의자는 아니다. 따라서 복고(復古)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고문(古文)을 좋아해서 고전을 독학(獨學)하고 고전을 사랑해서 고서(古書)를 장서(藏書)한다.
시대의 조류(潮流)에서 현대적인 감흥(感興)을 느낀다. 전통적인 고전(古典)에서 유적(遺跡)된 고아(高雅)함을 느낀다. 물론 새로운 신향(新香)도 좋지만 오래된 고향(古香)도 좋다.
옛 문장은 고아(高雅)하다. 고전(古典)을 애호(愛好)하는 것은 고인(古人)의 숨결과 호흡(呼吸)이 농후(濃厚)한 덕성과 지성(知性) 때문이다. 이것이 고문(古文)의 보감(寶鑑)이다. 수십 년간 나는 고전에 심취(心醉)돼 거의 광기(狂氣)에 가깝다.
중국의 고전(古典)을 독학하고 고조선의 고문을 탐독(耽讀)하면서 무등 희열(喜悅)했고 열광(熱狂)했다. 고전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전이란 어원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높이 평가된 저술(著述) 또는 작품”이라 했는데 나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옛 정취가 묻은 “古”자가 더 좋았다. “전(典)은 존중하여 얹어 두는 것이다. 경을 존중(尊重)하여 얹어 두는 것이기 때문에 경전(經典)”이라 한다. 중국 문명의 경전은 뭐니 해도 고전(古典)으로 창제된 것들이 옛 됨을 자랑한다. 고조선의 고전은 우리 조상(祖上)들의 슬기와 지혜를 후세에 길이 전했다.
실제적으로 나는 고전의 창연(蒼然)한 모습에서 어떤 육중한 문명의 감각(感覺)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옛 글에서 감지(感知)되는 옛 사람의 따스한 숨결과 체온이 감지된 온기(溫氣)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발하고 오묘(奧妙)함의 극을 나타낸 중국의 화려한 문풍에서 잔잔하고 은은한 부드러운 정취(情趣)의 미를 느낀다. 그러나 중국 고전도 좋지만 감정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우리 겨레의 고문에서 민족의 정조(情操)과 선조들의 땀 냄새와 따사로운 몸의 체온을 느껴서 너무 좋다.
균형(均衡)을 잃지 않은 조선시대의 문장에서 우리 조상들의 재치 있는 기상(氣像)을 방불케 하는 그런 모습이 너무 좋다. 그야말로 실물(實物)로는 만날 수도 없는 몇 십 세대의 옛 겨레들과 만나는 대체물(代替物)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냥 좋다.
내가 고문을 사랑하게 된 계기(契機)는 전적으로 증조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백의의 두루마기를 입으신 조부님은 조선 풍모(風貌)를 풍기는 올곧은 선비였다. 만주 땅에 건너온 강릉출신의 이민 1세로 해방 전에 용정(龍井)에서 훈장을 하시던 중 어느 시골학도를 방문 갔다가 그만 폭설에 동사(凍死)하셨다.
못 다하신 많은 일들을 두고 무한의 한(限)을 안고 돌아가셨을 것이다. 증조할머님께서 장롱(欌籠)에서 조심스레 보자기로 싼 낡은 책을 꺼내 나한테 주면서 “네 증조할아버지가 쓰던 것으로는 이것과 책 밖에 없다”고 하시었다. 이 고서는 그 시절에 아주 귀한 명심보감(明心寶鑑), 격몽요결(擊蒙要訣), 동몽선습(童蒙先習), 자치통감(資治通鑑)이었다.
나는 증조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지금도 그것을 소중히 지니고 왔다. 강릉최씨(江陵崔氏)의 장손인 내가 이 가보(家寶)들을 특별히 오동나무 함을 얻어서 잘 소장(所藏)하고 있다. 고인(古人)의 고락(苦樂)과 손때와 숨결이 스민 것이 어찌 내 선조의 몇 권의 고서뿐이랴!
나는 짬이 나면 고서가(古書街)와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사냥물을 노리는 사냥꾼 같이 원하는 고서들을 수집(蒐集)하곤 했다. 특히 고서(古書)에 애착을 느낀 나는 근대 조선 인물을 비롯해 중국과 조선의 고서를 많이 보고 때로는 구입(購入)해 들이기도 했다. 고서의 공부는 진짜 진품이나 명품 또는 진품이 아니더라도 진짜를 사놓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느껴야 마음에서 느끼는 법이다. 삶의 모든 것은 상응(相應)한 대가를 안 치르고 쉽게 얻으려는 요행은 허용(許容)하지 않는 법이다. 얻은 만큼 지불(支拂)을 해야 한다. 가지려면 먼저 주라는 말도 있듯이...
고서는 이런 의미에서 조상의 지혜를 배우는 묘미(妙味)가 있다. 나는 고서를 통하여 많은 것을 얻었다. 고서의 길은 기실 배움의 길이었다. 나는 서울의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옛 거리와 청계천(淸溪川)의 먼지 묻은 고서들의 고풍스러운 냄새가 좋았다. 또 인천 배다리의 헌책방 골목을 누비면서 고서 문화의 고색(古色)을 감상하며 고서점가(古書店街)를 거니는 문화 산책길이 좋았다. 왜냐 하면 이 모든 문화의 옛 재부 모두를 독차지하듯 좋다. 억만장자(億萬長者)도 부러워 할 문화재부의 귀한 가치를 이루 계산(計算)할 수 없다.
허송세월 하느니 차라리 고서를 읽고 고서의 먼지를 터는 일이 신난다. 애면글면 무엇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차라리 고서를 읽으면서 명상(瞑想)에 잠기면 더 좋다. 억지로 글을 짜내기 보다는 차라리 고묵(古墨) 묵향에 취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자신이 21세기를 살지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고풍(古風)의 남자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의 책을 장서(藏書)를 하는 재미는 별미다. 어느 애독자가 “고서가 왜 그렇게 좋은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고인과 직접 대화(對話)를 나누는 것이 좋다”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 고서는 내게 있어서 취미를 넘어서 수집벽(蒐集癖)을 넘어선 일종 옛 문화와의 만남이다.
만남이란 연인(戀人)이나 아는 친지(親知)들과 만나서 차를 마시고 음식 나누는 그런 생신(生身)의 만남이 아니다. 만나려고 해도 만나기 힘든 보서(寶書)을 곁에 두고 애용(愛用)하던 옛 사람과 만나게 주선하는 것은 고서의 몫이다. 수백 년의 고인의 넋과 호흡(呼吸)과 만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상심열목(賞心悅目)이다. 그러나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과 같이 너무 탐닉(耽溺)하여 품은 바 뜻을 꺾으면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우(愚)”를 범하게 된다.
우리의 선대들은 이미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교훈을 남겼다. “완물생지(玩物生志)”를 슬기로 바꾸는 지혜도 가르쳐 준다. 아무리 제언(贅言)을 늘어놓아도 보배 같은 고서의 무한한 즐거움을 만끽한다. 재력에 넘치는 진품명품을 수집(蒐集)하는 것으로 허영심(虛榮心)을 채워주는 고서는 싫다. 그저 내가 탐독하는 고서만이 내게 필요한 진가(眞價)이다.
고전문화를 사랑하듯 나는 고서를 사랑한다. 고(古)는 역사 문화의 "古"이기도 하다. 또 ‘考, 故, 高, 孤, 稿, 鼓, 苦’와 이어져 있다. “書”는 ‘胥, 序, 敍, 舒, 抒’하고 통한다. 이 모든 글자의 중심과 연결(戀結)되는 하나의 시공(時空) 세계를 이룬 것이 곧 고서의 미(美)이다. 고서를 통해 나는 시공을 넘어 또 다른 고전세계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만권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