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인 병(丙)자는 '병 병(病)'자의 본의를 담고 있습니다. 병(丙)자는 一部 글자로 제물을 차린 제사상 위에 밝혀 놓은 불을 본뜬 글자로 '불 밝히다'라는 뜻이다. 한편 병(丙)자는 형부인 일(一)과 '안 내(內)'로 풀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內)자는 '멀 경(冂)' 또는 '집 면(宀)' 과 '들 입(入)'이 모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안'을 뜻하는 회의자(회의자)입니다. 그러니 굳이 푼다면 병(丙)자는 하나(一)가 집 안(內)을 '밝히다(丙)'라는 뜻이 된다.
음양오행설에서는 병(丙)자가 셋째 천간으로 하나(一)의 양기(陽氣)가 피어나 표면으로 드러나고 음기(陰氣)는 속으로 들어가는 상으로, '冂'은 문(門)의 뜻이니 음기(陰氣)가 안으로 들어간 모습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촛불을 연상시키는 견해입니다. 촛불은 밝게 빛나며 주위를 밝히지만 불의 뿌리 격인 심지는 검고 속으로 들어간 형상을 연상시킵니다. 결국 병(丙)은 양기(陽氣)가 가장 강한 화기(火氣)를 지니고 있습니다. 병화(丙火)는 순수한 양(陽)의 속성 때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하늘에 있으면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昞=昺)', 땅에 있으면 용광로처럼 불로 쇠를 녹여 '굳어지는(冂)'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배경에서 자기 하나를 태워 주위를 밝히는 병의 성질을 나타내는 병(病)자는 녁(疒)이 주변에 기대니(丙) '병(病)'라는 뜻이 됩니다.
병 병(病)은 병들어 기댈 녁(疒)과 셋째 천간 병(丙)으로 구성(構成)되어 있습니다. 녁(疒)은 사람이 질병에 걸려 침상에 드러누운 모양을 본떴습니다. 자형 중에 ‘丄’모양은 침대(ㅡ)에 누워 있는 환자(丶)를 뜻하고 나뭇조각 장(爿)의 간체자 모양인 ‘장(丬)’은 다리가 달린 침대인데, 붓으로 쓰기에 편리하게 세워 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역(疒)자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대부분 질병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됩니다.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되는 천간(天干)은 식물의 성장과정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象形文字)들인데, 씨앗에 뿌리가 내리고(甲), 싹이 움터 자라나(乙), 땅속(內)으로부터 나무줄기(一)가 형성된 모습이 바로 丙자에 해당합니다. 이에 따라 病(병) 자에는 부상이 아닌 몸 속 장부의 부조화(不調和)로 발생된 내과(內)적 질환(一)으로 병석에 누워(疒)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병(病)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 사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은나라 사람들은 병이 귀신의 재앙(災殃), 나쁜 꿈, 기후의 변화, 더러운 음식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점을 쳐서 병의 원인이 귀신이나 꿈 때문이라면 귀신에게 제사(祭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칼이나 화상에 의한 외상에 대해서는 점을 치지 않았고, 약초(藥草) 등을 이용하여 치료(治療)하였습니다. 의원 의(醫)자에 보면 술 유(酉)자가 들어가는데, 술이 마취제(痲醉劑)와 소독제(消毒劑)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술이 병을 낫도록 하는 약효(藥效)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병 녁(疒)자는 침대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인 나무조각 장(爿→ㅕ)자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人→丄)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병 녁(疒)자는 병의 이름에 관련되는 모든 글자에 들어갑니다. 암 암(癌), 천연두 두(痘), 염병 역(疫)자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수척(瘦瘠), 피곤(疲困), 마비(痲痺), 고질병(痼疾病), 치료(治療) 등의 글자에도 병 녁(疒)자가 들어갑니다.
증세 증(症)자는 증상(症狀), 증세(症勢), 증후(症候), 통증(痛症) 등에 사용됩니다. 결핍증(缺乏症)은 '몸에 필요한 물질이 결핍(缺乏: 모자람)되어 일어나는 증세(症)'로,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夜盲症), 비타민 B가 부족하면 각기병(脚氣病)이 걸립니다.
피곤(疲困)하면 병에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피곤할 피(疲)자는 '피곤은 병이 아니지만 병(疒)의 껍질(皮)과 같다'는 뜻입니다. 피곤(疲困), 피로(疲勞) 등에 사용됩니다.
흉터 흔(痕)자는 '병(疒)이 그친(艮) 자리에 흉터가 남는다'는 뜻입니다. 흔적(痕跡)은 '흉터(痕)와 발자취(跡)'라는 뜻으로,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를 말합니다. 조흔색(條痕色)은 '줄(條)을 그을 때 나타나는 흔적(痕跡)의 색(色)'으로, 광물로 조흔판(條痕板) 위에 줄을 그을 때 나타나는 흔적의 색을 말합니다.
치매(癡呆)나 바보 천치(天癡)라는 글자에 들어가는 어리석을 치(癡)자는 '정신이 헛갈리어(疑) 갈팡질팡 헤매는 병(疒)'이란 뜻입니다. 간체자(簡體字)나 약자로 사용되는 어리석을 치(痴)자는 '지(知)적인 능력에 병(疒)이 생겼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마취(痲醉), 마약(痲藥) 등에 사용되는 저릴/마비될 마(痲)자에는 삼 마(麻)자가 들어 있는데, 마(麻)는 삼베를 짜는 원료이지만 동시에 대마초(大麻草)라고 부르는 마약(麻藥, 痲藥, 魔藥)의 원료입니다. 마(麻)의 잎에는 THC(Tetra Hydro Cannabinol)를 주성분으로 하는 마취(痲醉) 물질이 들어 있어 담배로 만들어 흡연하면 중독 증세(中毒症勢)를 보입니다. 예전에 농촌에서 마를 길러 줄기는 삼베를 짜는 원료로 사용하고 잎은 태워버렸는데, 태울 때 나는 연기 근처에 아이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부서진뼈 알(歺/歹) | 죽음을 의미하는 글자
중국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병에 걸린 것으로 여겼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상형문자(象形文字)를 사용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글자로 부서진뼈를 사용하였습니다.
부서진뼈 알(歺/歹)자는 사람이나 짐승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해골(骸骨)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뼈만 남아 있는 모습은 죽은 모습으로 죽음이나 위험(危險)에 관련되는 글자에 들어갑니다.
- 죽음과 관련되는 글자 ▶ 사(死:死:) : 죽을 사, 부서진뼈 알(歹) + 비수 비(匕) ▶ 장(葬:葬:) : 장사지낼 장, 풀 초(艹) + 죽을 사(死) + 풀 초(艹→廾) ▶ 순(殉:殉:) : 따라죽을 순, 부서진뼈 알(歹) + [열흘 순(旬)] ▶ 잔(殘:残:残) : (죽어서 뼈만) 남을 잔, 부서진뼈 알(歹) + [해칠 잔(戔)] ▶ 수(殊:殊:) : 다를 수, 부서진뼈 알(歹) + [붉을 주(朱)→수]
죽을 사(死)자는 죽은 사람(歹) 옆에 다른 사람(匕)이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사자(死者)의 서(書)는 '죽은(死) 사람(者)을 위한 글(書)'이란 뜻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사람들을 미라(mirra)로 만들어 묻을 때 함께 묻었던 문서(文書)입니다. 지상에 남은 미라의 온전한 보존(保存)과 심판을 받으러 사후 세계로 가는 영혼을 위한 주술(呪術)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죽은 사람의 영혼이 만나게 될 신들을 달래고 영혼(靈魂)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장사지낼 장(葬) 장례(葬禮), 장사(葬事), 화장(火葬) 등에 들어가는 장사지낼 장(葬)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풀이 무성한 수풀(艹)에서 죽은 사람(死)을 장사 지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송곡(葬送曲)은 '장사 지낼(葬) 때 죽은 사람을 보내기(送) 위해 부르는 곡(曲)'입니다.
고대 국가에서 왕이나 귀족의 장례(葬禮) 때 부인, 신하, 종 등을 함께 매장(埋葬)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순장(殉葬)이라 부르는데, 순(殉)자는 따라죽을 순(殉)자입니다. 은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왕의 무덤을 발굴해 보면 수백 명이 순장(殉葬)되어 있습니다. 따라 죽을 순(殉)자는 '목숨을 바치다'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종교, 나라, 직업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殉敎), 순국(殉國), 순직(殉職)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순애보(殉愛譜)는 '사랑(愛)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殉) 이야기(譜)'로, ‘낙랑공주’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대표적인 순애보입니다.
남을 잔(殘)자는 원래 '창(戈)으로 사람을 죽이다(歹)'는 뜻입니다. 이후 '죽이다→해치다→잔인(殘忍)하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또 죽이고 남은 뼈(歹)라는 뜻에서 '남다'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잔액(殘額)은 '남(殘)은 금액(金額)'입니다. 잔해(殘骸)는 '남은(殘) 뼈(骸)'라는 뜻인데, '부서지거나 못 쓰게 되어 남아 있는 물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다를 수(殊)자는 원래 '칼로 베어 죽이다(歹)'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만, 나중에 '다르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특수교육(特殊敎育)은 '특별히(特) 다른(殊) 교육(敎育)'이란 뜻입니다.
벌일 렬(列)자는 '죽은(歹) 짐승이나 가축에서 뼈와 살을 칼(刀/刂)로 갈라서 벌여 놓다'는 뜻입니다. '그물(网/罒)을 벌여 놓다'는 의미의 벌일 라(羅)자와 합치면 나열(羅列)이 되고, 열도(列島)는 '일렬(一列)로 길게 줄을 지어 있는 섬(島)'입니다.
재앙 앙(殃)자는 '죽음(歹)이 재앙(災殃)이다'는 뜻입니다. 지어지앙(池魚之殃)은 '연못(池)에 사는 물고기(魚)의(之) 재앙(殃)'이란 뜻으로,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일로 인해 엉뚱하게 화를 당한다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없어진 구슬이 연못에 있다는 거짓말을 믿고 연못의 물을 다 퍼내고 찾아보았지만, 구슬은 없고 아무 죄도 없는 물고기들만 모두 죽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由來)합니다.
위태할 태(殆)자는 '죽을(歹) 정도로 위태(危殆)롭다'는 뜻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적(彼)을 알고(知) 나(己)를 알면(知) 백(百) 번 싸워도(戰) 위태롭지(殆) 않다(不)'라는 뜻으로,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