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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 岳岩

乙巳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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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성공하여 함께 즐긴다는 가여락성(可與樂成)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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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옳을 가(可), 줄 여(與), 풍류 악(樂), 이룰 성(成). 요약: 일이 성공하여 함께 즐긴다. 출전(出典):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

옳을 가(可)의 구성(構成)은 입(口)의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입 구(口)와 ‘ㄱ’자모양(模樣)의 농기구(農器具), 혹은 ‘숨막힐 고(亏)의 자형(字形) 하부(下部)로 이루어진다. 가(可)에 대한 해석(解釋)은 두 개로 나뉜다. ‘ㄱ’자 모양(模樣)의 농기구(農器具)로 땅을 일구면서 입(口)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누군가 뭔가를 요청(邀請)했을 때 잠시(暫時)의 주저(躊躇)함도 없이(ㄱ), ‘숨 막힐 고(亏)’의 반대 모양의 입(口)에서 나오는 소리는 곧 ‘옳다(是)’거나 ‘허락(許諾)’한다는 뜻을 의미(意味)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가(可)자는 형부(形部)인 입(口)과 성부(聲部)인 ‘막힐 하(丅)’자가 ‘가(可)’로 전음(轉音) 된 형성자(形聲字)이다. 그러니 막혔던(丅) 입(口)이 말을 튀어나게 하는 것은 가늠해본 후 옳아서 허락(許諾)하는 것이니 ‘옳다, 허락(許諾)하다, 가늠하다(可)’라는 뜻이다. 성부(聲部)인 하(丅)자는 ‘옳을 가(可)’자의 본의(本意)를 담고 있다. 하(丅)자는 곤(丨)자를 좌우로 뒤집은 꼴로, 곤(丨)자는 기(氣)가 편안(便安)하게 나오려는데 위‘一’에서 방해(妨害)를 하여 ‘고(亏)’ 꼴이 되어 ‘막히다(丅)’라는 뜻이다. 따라서 막혔던 말을 튀어나오게 하는 입의 동작(動作)을 나타내는 가(可)자는 입(口)이 막혔던(丅) 말을 튀어나게 하는 것은 가늠해본 후 옳아서 허락(許諾)하는 것이니 ‘옳다, 허락(許諾)하다, 가늠하다(可)’라는 뜻이다. 입(口)이 막혔던(丅) 말을 튀어내어 허락(許諾)하는(可) 것은 가늠해보고(可) 할 수 있는 가능성(可能性)과 할 만한 희망(希望)이 있는 가망성(可望性) 때문이다. 즉 가능성(可能性)이나 가망성(可望性)을 가늠하여 가부(可否)를 결정한다.

줄 여(與)의 구성(構成)은 마주 들 여(舁)와 짚이나 끈 등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본뜬 여(与)로 이루어졌다. 여(舁)는 네 손을 사용(使用)하여 무언가를 함께 들어 올리는 모양(模樣)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다. 자형상부의 두 손으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모양(模樣)은 본래는 절구를 뜻하는 구(臼)가 아니라 밑변이 떨어져 있는 ‘국’이었는데, 많은 자형에서 혼용(混用)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전(字典)에서 찾을 때도 구(臼)부수에서 찾아야 할 만큼 원래의 뜻이 무시(無視)되고 있다. 자형(字形)의 하부는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들어 올린다는 ‘두 손으로 받들 공(廾)’이다. 그래서 여(舁)의 의미(意味)는 두 사람이 양손(臼 + 廾)을 사용(使用)하여 어떤 물건(物件)을 마주 들고 있는 모양(模樣)을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여(與)의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여러 사람이 양 손(舁)을 이용(利用)하여 부족(部族)의 결속(結束)을 다지기 위해 함께 꼬아 만든 동아줄(与)을 들어 올린다는 데서 ‘더불다’ ‘참여(參與)하다’ ‘함께하다’의 뜻이 생겨났으며, ‘주다’의 뜻은 확장(確定)된 것이다.

풍류 악(樂)자는 본디 나무(木) 위에 작은 (糸) 실들(絲)을 매놓은 꼴이다. 후에 '흰 백(白)'자가 추가(追加)된 락(樂)자는 나무(木)가 실들(絲)이 걸친 상태(狀態)에서 밝게(白) 웃으며 풍류(風流)를 즐기며 좋아하는 의미(意味)에서 '즐겁다, 풍류(風流), 좋아하다(樂)'라는 뜻이다. 락(樂)자의 본디 꼴은 기원전(紀元前)에 그려진 것으로 단군(檀君)과 고조선(古朝鮮) 내지(內地)는 기원전(紀元前)의 부족국가(部族國家) 시절(時節)로 돌아가서 제천행사(祭天行事)의 명칭(名稱)에서 실마리를 유추(類推)할 수 있다. 지금은 무속(巫俗)으로 밀려났지만 고대국가(古代國家)의 불교(佛敎) 이전에 부족국가(部族國家) 시절(時節)의 원시(原始) 종교(宗敎)를 생각하면 풍년(豊年)을 빌고 풍성(豊盛)한 수확(收穫)을 주신 하늘에 감사(感謝)하는 일종(一種)의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락(樂)자는 본디 나무(木) 위에 작은(糸) 실들(絲)을 매놓은 꼴인데, 먼 옛날의 제천행사(祭天行事)가 지금은 마을의 동신제(洞神祭)에 이런 모습(模襲)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부족국가(部族國家) 시절에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라는 제천의식(祭天行事)에서는 의식(儀式) 직전(直前)에 신(神)을 맞이하는 영신제(迎神祭)라는 맞이굿을 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時節)에도 지금(只今)의 동신제(洞神祭)와 흡사(恰似)한 방법(方法)으로 나무에 끈을 매달아서 신(神)이 그 실을 타고 오시라는 의도(意圖)로 나무에 끈을 매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락(樂)자에 '흰 백(白)'자가 들어간 때는 제정(祭政)이 분리(分離)되어갈 무렵인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이지만, 이후 천년(千年)이 더 흐른 10세기 즈음인 고려시대(高麗時代) 팔관회(八關會)의 태평무(太評舞)에서 나무(木)가 큰북(白)을 중심(中心)으로 양옆에 작은북(糸) 여러(絲) 개를 매달고 즐겁게(樂) 풍류(風流)를 즐기며 좋아하는(樂) 장면(場面)을 연상(聯想)시킨다. 팔관회(八關會)는 고려(高麗) 역대(歷代) 그 대상(對象)은 천령(天靈)과 용신(龍神)으로 서경(西京)에서는 10월에 각각 팔관회(八關會)를 열어 등불을 밝히며 음악(音樂)과 가무(歌舞) 등으로 군신(君臣)이 같이 즐기면서 천신(天神)을 위무(慰撫)하고 국가(國家)와 왕실(王室)의 태평(太平) 낙원(樂園)을 함께 기원(祈願)하였다. 이 같은 즐거움은 천년(千年)이 또 흐른 지금(只今)까지 즐거운 춤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神)께 감사(感謝)의 마음을 아뢰고 북(鼓)을 연주(演奏)하며 풍류(風流)를 즐기며 좋아하는 '樂'자는 이런 배경(背景)들 때문에 '아뢰다, 풍류(風流), 즐기다(樂)'라는 뜻과 '좋아하다(樂)'라는 뜻이 있다.

이룰 성(成)의 글자 형성(形成)은 '십간(十干)인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과 관련(關聯)이 깊다. 십간(十干)은 곡식(穀食)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收穫)되어 창고(倉庫)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播種)되는 일련의 순서(順序)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播種)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갑(甲)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을(乙)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模樣)을, 병(丙)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形態)를 갖춘 것을, 정(丁)은 장성(長成)하게 자라난 모양(模樣)을, 무(戊)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利用)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程度)로 성장(成長)한 모양(模樣)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長成)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程度)가 되면 식물(植物)의 성장(成長)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해석(解析): 상군(商君)은 위나라의 여러 첩(妾)들 사이에서 태어난 공자(公子)중의 한사람으로 성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앙(鞅)이다. 일찍이 위(魏)나라의 재상 공숙좌(公叔座)를 섬겨 중서자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중용(重用)되지 못하자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열심히 피력(披瀝)했다.

그런데 효공은, "저 자의 말은 너무 허망해. 도무지 뜬구름 잡는 애기잖은가.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

상앙이 돌아간 뒤 효공은 그를 천거(薦擧)한 경감이라는 신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앙(商鞅)의 신법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경감의 간청(懇請)으로 중임되자 상앙은 묘안을 짜냈다. 열  여덟 자가 넘는 나무에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 10금을 준다'고 썼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옮기지 않자 이번에는 50금을 준다고 썼다. 어떤 이가 장난삼아 그것을 옮기자 그를 불러 50금을 주고 새 법을 공표(公表) 시행하여 진나라를 부강(富强)하게 만들었다. 상앙이 말하기를 '일이 성공하였으니 함께 즐기자' 하였다.

내용(內容): 이 성어는 전국시대 진(秦)의 효공(孝公)을 도와 진나라의 발전에 기여한 상앙(商鞅)의 말에서 유래(由來)한다.

상군(商君)은 위(衛)나라 왕의 여러 첩이 낳은 공자(公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름은 앙(鞅)이고 성은 공손(公孫)이며 그 조상의 성이 희(姬)였다. 공손앙(公孫鞅)은 젊어서부터 법가의 학문을 좋아하고 위(衛)의 재상 공숙좌(公叔座)의 중서자라는 관직에 있었다.

商君者,衛之諸庶孽公子也,名鞅,姓公孫氏,其祖本姬姓也。鞅少好刑名之學,事魏相公叔座為中庶子。

공숙좌(公叔座)가 세상을 떠나자 공손앙은 진(秦)나라 효공(孝公)이 전국에 어진 선비를 찾는다는 포고령(布告令)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진나라로 들어와 효공의 신하 경감(景監)을 통해 효공을 세 번 만나 후 등용(登用)하게 되었다. 

효공은 위앙(衛鞅; 공송앙, 상앙)을 등용했지만, 위앙이 법을 바꾸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誹謗)할까 봐 매우 걱정이 되었다. 위앙(衛鞅)이 말했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共鳴)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非難)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智慧)를 가진 자는 반드시 오만하다는 비판(批判)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商議)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民不可與慮始而可與樂成。). 가장 높은 덕을 강구(講究)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妥協)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商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禮樂制度)를 좇지 않습니다.”

효공이 대답했다. “옳은 말이오.” 

孝公既用衛鞅,鞅欲變法,恐天下議己。衛鞅曰:「疑行無名,疑事無功。且夫有高人之行者,固見非於世;有獨知之慮者,必見敖於民。愚者闇於成事,知者見於未萌。民不可與慮始而可與樂成。論至德者不和於俗,成大功者不謀於眾。是以聖人苟可以彊國,不法其故;苟可以利民,不循其禮。」孝公曰:「善。」

부록(附錄): 오는 6일부터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동(可動)하던 정부 규제(規制)를 생활방역으로 전환(轉換)한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어제 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분주다망(奔走多忙)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너무 방심(放心)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전 사회가 위생방역 규칙(規則)을 잘 준수(遵守)하면서 경제 활성화를 하루빨리 재개(再開)해야 한다. 그러자면 가여락성(可與樂成)의 성어처럼 전 국민이 단합(團合)하여 각자의 생계(生計)도 잘 꾸려나가고 또 개인방역도 잘 실천(實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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