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년 홍콩 시위는 홍콩 정부(香港政府)의 2019년 도주범죄인(逃走犯罪人) 및 형사법 관련 법률 지원 개정 법안 도입(法案導入)으로 촉발된 일련의 시위이다. 현재 홍콩에는 인도법(引渡法)이 없으며 해당 법안이 법률이 될 경우 수배(手配)된 범죄 용의자들과 범죄자들의 인도가 가능해지며 이 지역에는 중국 본토와 타이완(臺灣)이 포함된다. 법안이 홍콩의 거주자들과 방문객들을 사법부와 중국 본토의 법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고 일국양제(一國兩制)와 시민들의 자유를 무시하고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侵害)한다고 판단한 몇몇 이들은 우려를 표했다. 시위가 진행될수록 시위자들은 법안의 철회, 홍콩 경찰들의 잔혹성과 과잉진압(過剩鎭壓)에 대한 조사, 체포된 시위자들의 석방, 시위를 공식적으로 "폭동"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철회, 그리고 홍콩의 행정장관 캐리 람(Carrie Lam)의 사퇴와 홍콩 행정위원 및 행정장관의 선거의 보통선거 도입(導入)을 주장하고 있다.
2019년 6월 9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시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정부는 법안을 고집(固執)했다. 시위자들은 6월 12일 법안의 제2차 낭독을 막기 위해 입법회(立法會) 종합 빌딩 바깥에 모였고 이로 인해 경찰들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들은 최루탄(催淚彈)과 고무 탄환을 발사했다. 법안이 정지된 지 하루 후인 6월 16일,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폐(撤廢)를 주장하고 6월 12일 경찰의 과도한 무력행사에 맞서기 위해 더 큰 시위를 열었다. 2019년 7월 1일 법안이 인계되면서 입법회 종합 빌딩 습격 사건이 발생하였고, 여름 내내 홍콩의 여러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擴散)되었다. 2019년 7월 21일 시위자들과 통근자들을 공격한 위엔 롱 공격,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습격 사건(襲擊事件), 그리고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제70주년 기념행사(記念行事) 동안 일어난 대규모 시위 등은 시위를 더욱 촉진(促進)시켰다.
캐리 람은 2019년 9월 4일 법안을 철회(撤回)했지만 시위대의 다른 4개의 요구는 거부(拒否)했다. 이후의 시위를 막기 위해, 캐리 람은 2019년 10월 4일 가면방지법을 시행하고자 긴급사태(緊急事態) 규정 조례를 발동했는데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시위가 길어짐에 따라 양측에서의 대치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의 잔혹(殘酷)한 진압 및 과잉진압의 수가 증가했다. 몇몇 시위자들은 화염병(火焰甁)을 던지거나 선동가들에 맞서 자경단원으로 공격을 하거나 친베이징파(親北京派)들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파괴행위(破壞行爲)를 가하는 등 극단적인 방식을 취했다. 홍콩 시위대와 시위 반대 세력의 활동가들이 서로를 공격함에 따라 홍콩 사회 내에 균열(龜裂)이 더욱 깊어졌으며 양쪽의 법조가들과 시위 조직대원(組織隊員)들은 모두 공격을 받거나 겁을 먹게 되었다. 2019년 11월 두 학생이 사망하고 비무장 시위대에게 총격이 가해지면서 시위는 더욱 고조(高潮)되었다. 시위대의 대학교 캠퍼스 점령은 홍콩 정부의 포위로 끝이 났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하고 체포(逮捕)되었다.
홍콩 정부와 홍콩 경찰은 1997년 홍콩 반환(香港返還) 이래 국민 여론 조사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받았다. 홍콩 정부의 시위 대처 태도로 인해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친민주 진영(親民主陣營)이 승리를 거두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는 시위를 1997년 홍콩 반환 이래 "홍콩에서의 최악의 위기"로 규정했고 외국 세력이 분쟁(紛爭)에 개입하고 있다고 논쟁했다. 하지만 2020년에도 진행 중인 홍콩 시위는 지도 세력이 없다고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1월 27일 미국은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을 통과시켜 홍콩 시위를 공식적(公式的)으로 지지했다.
홍콩의 넥스트디지털(壹傳媒)의 창업자인 지미라이(黎智英)을 체포한 사건은 중공이 홍콩의 자유를 박탈(剝奪)하려는 사실을 더욱 확인시켜 주었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공이 홍콩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목 졸라 죽이려는 이유는 자유(自由)에 대한 두려움이다. 중공은 홍콩의 자유, 개방, 법제를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통치에 위협이 되는 대적(大敵)이라고 본다. 중공은 더욱 겁먹고 있다. 홍콩의 항쟁폭풍(抗爭暴風)이 대륙을 석권하는 것으로 이는 중공에게는 멸정지재(滅頂之災)가 될 것이다.
중공이 '홍콩판 국가안전법'을 강행(强行)하여 홍콩을 망가뜨리는 것은 홍콩인에 대한 목줄을 죄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서방 각국의 강렬한 반대에 부닥친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서 반공(反共)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은 홍콩의 특수대우(特殊待遇)를 취소하고 11명의 중국,홍콩관료를 제재했으며 최근에는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에 반드시 '중국제조(Made in China)'라고 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미국이 이미 홍콩을 대륙의 중국도시와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제 홍콩의 국제금융중심(國際金融中心)의 지위도 위태롭게 되었다.
지금까지 홍콩은 중공정부가 해외자금(海外資金)을 취득하는 주요 채널이었다. 중공의 공식통계자료에 따르면, 약 70%의 해외유입자금은 홍콩에서 왔다. 홍콩은 이로 인하여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중공이 무역전(貿易戰)과 바이러스의 이중 타격 하에 경제가 곤경에 빠지자 외부에서 말리는 것에도 불구하고 홍콩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것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중공은 자신의 퇴로(退路)를 막았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중공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타이완의 경제학자인 우자룽(吳嘉隆)은 이렇게 분석했다. 중공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중공의 경제상황(經濟狀況)이 이미 살계취란(殺鷄取卵) 즉 닭을 잡아서 달걀을 얻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중공의 체계와 홍콩의 자유민주(自由民主)가 맞지 않았다고 본다. 이것이 더욱 중요한 원인(原因)일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 홍콩총독인 Chris Patten(彭定康)은 8월 12일 미국 싱크탱크 대외관계협회에서 거행된 홍콩과 국가 안전법(國家安全法)에 관련한 영상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공이 홍콩에서 하는 행위는 서방의 장, 민주와 공민사회(公民社會) 등 이념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起因)한다.
"홍콩은 자유, 개방, 법치사회(法治社會) 등이 각 분야에서 정확하게 체현되어 있다. 이들은 중공이 2013년 자신들의 통치에 대적(大敵)이라고 규정해버리게 된다." 패튼의 말이다. 시진핑(習近平)은 홍콩에 손을 쓰기 시작했고 이는 중공이 2013년에 내놓은 반서방의 9호문건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2013년 4월 22일 중공중앙판공청은 ‘현재 체계분야상황에 관한 통보’에서 중공은 서방의 헌정민주(憲政民主), 보편가치(普遍價値), 공민사회, 신자유주의, 역사 허무주의 등 7대 위험에 직면(直面)하고 있으니 반드시 경계하고 뿌리뽑아야한다고 하였다.
1997년 홍콩의 주권회귀(主權回歸)이후, 중공의 홍콩에 대한 통제는 계속 조여 왔다. 홍콩인의 항쟁도 계속 격화(激化)된다. 2003년 50만 홍콩인의 ‘기본법’제23조 입법반대, 2014년의 우산운동, 다시 2019년의 반송중활동, 그리고 금년의 ‘홍콩 국가안전법(香港國家安全法)’ 반대항쟁까지 중공의 '일국양제'라는 거짓말은 하나하나 들통 났다. 홍콩인의 항쟁의 창끝은 중공을 직접적으로 향하고 있다.
전 미국국방부 중국사무주임이었던 Joseph Bosco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공은 몇 달 전 홍콩에 대한 행동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우한폐렴(武漢肺炎)이 전 세계에 만연(蔓延)한 시기가 가장 좋은 때라고 여겼다. "그들은 서방국가가 바이러스대응에 정신이 없을 때 심지어 바이러스로 마비되었을 때 홍콩문제에 대해 강력(强力)한 대응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중공은 서방지도자(西方指導者)들은 바이러스대응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고 홍콩의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행각했다. "이는 나의 추측(推測)이다. 비록 악의적(惡意的)인 것 같지만 중공은 분명 이렇게 행동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학회의 외교정책프로젝트 연구원 Ryan Hass는 7월 17일 발표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는 아마도 홍콩인들의 '홍콩판 국가안전법'에 대한 대규모항의(大規模抗議)를 조직하는 것을 제한했을 것이다. 이는 마아도 베이징의 냉혹(冷酷)한 계산속에 들어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국내경제가 하락(下落)하고 민중은 공중건강과 안전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데 중공당국이 홍콩에 독수(毒手)를 쓰게 되면 대륙민중의 민족주의정서(民族主義情緖)를 자극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내민중의 시선을 옮길 수 있다.
보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중공은 그들이 홍콩문제에서 타협(妥協)하는 것으로 잃는 것은 홍콩만이 아니라 타이완과 대륙도 포함한다고 여긴다. "만일 홍콩이 그런 방식으로 베이징에 반항(反抗)해도 징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중국민중에 있어서 하나의 선례(先例)가 되는 것이다."
"그들(중공)은 텐안먼사건(天安門事件)을 겪으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더욱 나은 체제, 하나의 민주체제(民主體制)를 원한다고 표명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보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진핑(習近平)과 그의 공산당 동료들은 홍콩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반드시 모종의 방식으로 홍콩을 진압(鎭壓)해야 했다. 당연히 가장 좋은 것은 탱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시사평론가인 텐전(田震)은 이런 글을 썼다. 중공은 홍콩과 대륙에서의 성격이 완전히 같다. 그들이 탄압하는 것은 모두 법제건설(法制建設), 국가발전과 민주자유에 대한 열정이 충만(充滿)한 공민이다. 중공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容納)하지 않는다."
중공정권은 홍콩에서 '일국일제(一國一制)'를 실행하려 한다. 가장 겁나는 점은 홍콩의 자유민주항쟁(自由民主抗爭)이 대륙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 인민이 항쟁에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공정권은 끝장이다.
글에서는 현재 홍콩인의 항쟁은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중국대륙(中國大陸)의 민중도 각성하고 있다. 성화요원(星火燎原)으로 금방 중공정권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중공이 홍콩문제에서 급진적(急進的)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서방으로 하여금 중공을 대하는 문제에서 갈수록 일치단결(一致團結)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의 주도(主導)하에 전 세계에서 중공을 반대하는 행동이 정치, 경제, 과기, 매체, 인권, 군사 등의 분야에서 동시에 전개되면, 중공은 대처(對處)할 방법이 없게 될 것이다. 홍콩의 정치 '겨울'은 '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19년 2월 홍콩 정부는 2018년 푼히우윙 살해(殺害)에 대응하기 위해 2019년 도주범죄인 및 형사법 관련 법률 지원 개정 법안을 제안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화민국의 주권(主權)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화민국에는 인도법(引渡法)이 없었고 홍콩 정부는 도주범 법안과 형사법상 상호 법률적 지원 법안을 개정하여 도주범을 홍콩 행정장관(行政長官)의 명령에 따라 처리하고자 했다.
개정 법안에 중국 본토가 포함된 것에 대해 홍콩 사회에서는 우려(憂慮)가 있었다. 친민주파들은 1997년부터 실행되어온 일국양제 원칙이 침해(侵害)되고 중국 공산당이 다스리는 중국 본토의 법안으로 인해 홍콩의 사법적 독립성(司法的獨立性)이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 이에 더해 홍콩 시민들은 과거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彈壓)한 중국의 역사로 인해 중국의 사법체계와 인권 보호에 대해 의구심(疑懼心)을 품었다. 법안의 반대 세력은 홍콩 정부에게 중화민국에만 해당 법안을 적용시킨다는 다른 수단을 강구하고 용의자가 인도된 후에는 "일몰 조항(日沒條項)"을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홍콩 시위(香港示威)는 2014년 우산 혁명 이후 4년 반 뒤에 발생한 시위였다. 우산 혁명은 2014년 홍콩 선거 개혁과 관련하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에 대한 결정을 내린 이후 해당 결정이 자유를 제한(制限)한다고 판단되어 발발(勃發)했다. 그러나 우산 혁명은 정부가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 홍콩의 민주화(民主化)는 진전되지 않았다. 홍콩 입법회(香港立法化) 중 직접적으로 선출된 의원은 절반에 불과했고 나머지 절반은 선거위원회에서 선출되었다. 2017년 홍콩 민주운동가 구금으로 인해 홍콩의 정치적 개혁은 더욱 차질(蹉跌)을 빚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홍콩의 사건들에 지나치고 두드러지게 개입(介入)하기 시작하면서 홍콩 시민들은 홍콩 기본법에 따른 "고도의 자치"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특히 홍콩 입법회 맹세 사건은 6명의 법조가(法曹家)들이 자격을 박탈(剝奪)당하고 뒤이어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들의 통치를 시작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또한 커즈웨이 베이 북스 실종 사건은 중국 정부가 제재하는 용의자(容疑者) 인도와 비사법적 구금에 대한 우려를 증폭(增幅)시켰다. 홍콩의 기본법의 일부로 보통선거가 명시(明示)되어 있음에도, 2019년 홍콩의 민주화지수(民主化指數)는 6.02/10으로 비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2016년 NT 동부 선거에서 운동가 에드워드 륭의 선거 운동으로 홍콩 지역파와 독립파(獨立派)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홍콩에 사는 젊은이들이 점점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니라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홍콩 대학교가 시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더 젊은 응답자(應答者)일수록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홍콩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2012년 덕육급 국민교육 논란으로 홍콩의 젊은이들은 권리를 보장(保障)해주고 있었다고 믿은 체제 자체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홍콩 기본법이 만료(滿了)되는 2047년이 다가옴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홍콩의 젊은이들은 도주범(逃走犯)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부 시위자들은 우산 혁명이 정치적 각성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평화로운 방법이 효율적(效率的)이지 않다고 느낀 다른 시위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表出)하기 위해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언론들 역시 2014년 우산 혁명과 달리 2019년의 시위자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고 시위의 목표 역시 법안을 철회(撤回)하는 것에서 더 큰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홍콩 주민들의 분노를 촉발(觸發)한 요인으로는 불안정한 집값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홍콩은 세계에서 집을 사기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이다. 홍콩은 도시 인구에 적합(適合)한 수준의 주택을 확보하지 못했다. 비즈니스 엘리트들이 큰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함에 따라 홍콩은 경제적 불평등(不平等)을 겪고 있다. 홍콩은 2017년 세계에서 지니 계수가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홍콩의 젊은이들은 사회 이동(社會移動)이 거의 없으며 중국 본토와 직업적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 2018년 대학 졸업자들의 수입은 30년 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홍콩의 학자들이 2019년 6월 9일부터 8월 4일에 있었던 시위 기간 동안 6,600명의 사람들에게 수행한 설문지(設問紙)에 따르면 시위자들의 60% 이상이 30세 이하였고 시위자(示威者)들의 75% 정도가 3차 교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11월에는 자살이나 의문사(疑問死)를 제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복면금지법(覆面禁止法)을 비상대권법을 통해 실시한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으나 정부가 상고(上告)하였고 친중파의 반발로 시행을 공표하는 것이 보류(保留)되었다.
미국 상원은 홍콩 선거 전에 홍콩 인권법(香港人權法)을 통과시켰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는 민주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홍콩 선거가 끝난 후 미국 상하 양원을 통과한 홍콩인권법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署名)하였다.
선거 승리 축하 시위가 있었다. 12월 10일에는 홍콩 고등법원(高等法院)이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을 공고(公告)하여 대법원 판결이 있을 때까지 복면금지법의 효력이 정지(停止)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