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박 두령 천기성(天機星)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은 산동 제주(濟州) 운성현(鄆城縣)에서 서당을 운영하던 훈장으로 자는 학구(學究), 호는 가량(加亮)이다. 쇠사슬의 명수(名手)이고 지모가 뛰어나 제갈공명(諸葛孔明)과 필적(匹敵)한다고 한다. 그의 지모(智謀)를 높이 산 조개(晁蓋)와 생신강(生辰綱)을 강탈, 양산박(梁山泊)으로 도주한다. 양산박의 기밀담당군사(機密擔當軍師)로 활약한다.
조개(晁蓋)가 유당(劉唐)의 권유로 채태사(蔡太師)에게 보낼 생신강 선물을 강탈하려 계획하자 결정적인 계책(計策)을 마련한다. 오용(吳用)은 조개와 다른 호걸들을 대추 장수로 위장(僞裝)케 하고 생신강(生辰綱)을 호위하던 양지(楊志)에게 접근한다. 황니강(黃泥岡) 고개에서 백승(白勝)을 통해 몽혼약(曚昏藥)이 든 술을 호위일행에게 먹이게 하고 조개일행은 생신강을 낚아채어 운성현(鄆城縣)으로 돌아갔다.
백승(白勝)이 관아에 붙잡히자 오용(吳用)은 조개(晁蓋)와 함께 백장촌(百丈村) 에 몸을 은신(隱身)했다. 뒤좇아 온 즙포사신(緝捕使臣) 하도(何濤)와 그의 병졸들을 계략으로써 몰살(沒殺)시키고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가 무능한 두령 왕륜(王倫)을 임충(林冲)에게 죽이게끔 부추기는 역할을 해낸다. 셋째 두령자리에 앉은 뒤 황안(黃安)이 이끄는 관군(官軍)과 싸울 때도 계략을 써 승리한다.
각지의 호걸(豪傑)들을 산채로 불러들이고 관군을 물리치는 계략(計略)을 꾀어내 뛰어난 지모(智謀)를 어김없이 발휘했다.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잔인(殘忍)한 면모도 보여주지만 이로 인해 양산박(梁山泊) 호걸들이 모여들게 되는 계기(契機)가 된다. 제주(濟州) 도두(都頭)로 있던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 청주(靑州) 청풍채(淸風寨)의 소이광(小李廣) 화영(花榮)과 벽력화(霹靂火) 진명(秦明), 북경의 대상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도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에 의해 양산박(梁山泊)에 들어왔다. 또한 호보의(呼保義) 송강(宋江)이 강주(江州)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위조문서(僞造文書)를 계획하는 등 양산박의 두뇌(頭腦)로써 활약하였다.
양산박 제일의 책사(策士)로 별명도 꾀 많은 별인 지다성(智多星)이다. 학사에 백우선(白羽扇) 내용이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과 비슷하다. 자는 학인(學人) 혹은 학구(學究)이며 본래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고 있었고 동계촌(東溪村)의 토박이 중 한명이고 조개(晁蓋)하고 소꿉친구였다.
첫 등장은 유당(劉唐)과 뇌횡(雷橫)이 싸울 때 등장하고 사슬로 이 둘의 싸움을 잠시 말린다. 나중에 조개(晁蓋)가 유당, 뇌횡을 말리고 조개의 첫 노상강도 작전의 입안자(立案者)로 등장하며 완씨(阮氏) 삼형제, 백승(白勝)을 끌어들이고 이를 멋지게 성공시킨다. 이후 산적 왕륜의 본거인 양산박으로 도망하여 반란(叛亂)을 입안하여 원래 주인 왕륜(王倫)을 몰아내고 조개를 새로운 양산박의 두령(頭領)으로 세운다.
이 후 거의 모든 양산박(梁山泊)의 전투와 호걸들의 영입(迎入)에 그의 책략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이 가량선생(加亮先生)으로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을 능가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용이 사용하는 전략의 자질(資質)에서는 상대가 안 되고 인격적(人格的)인 측면에서 보자면 더욱 상대(相對)가 안돼서 비교를 하는 게 미안한 정도이다. 사실 다른 의미로 제갈량을 능가한다 하더라도 양산박의 온갖 사악한 술수(術手)가 다 이 인물의 머리속에서 나왔으며 술에 약 타기, 어린아이를 죽이고 거짓 살인 누명 씌우기, 반역 누명 씌우기 등등 악행(惡行)이라면 그 질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능란하게 사용하는 마구니 같은 존재이다. 오죽하면 노준의(盧俊義)를 속여 양산박으로 꾀어 오는 과정에서 살인귀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가 오용의 계책을 보고 "와 이 형님 진짜 개 나쁜 놈"이라고 했을 정도로 책략(策略)을 오용(誤用)해서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을 어떻게 보면 흑선풍 이규보다 더 반사회성 성격 장애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몇 번이나 실수(失手)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위기에 빠진 송강(宋江)을 구출하기 위해 중간에 태사(太師) 채경(蔡京)의 명령서를 훔쳐서 위조(僞造)했다가 실수로 한림학사(翰林學士) 시절의 채경의 인장(印章)을 위조해서 찍는 바람에 명령서(命令書)를 전달한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까지 위기에 빠뜨렸다. 결국 오용(吳用), 공손승(公孫勝), 임충(林冲), 진명(秦明)을 제외한 양산박의 두령들이 다 출동(出動)해서 힘으로 몽땅 때려 부숴야 했는데 이것 또한 낭리백도(浪裡白跳) 장순(張順)이 등장해서 돕지 않았다면 강에 막혀서 실패했을 계획이었다. 요(遼)나라 정벌 때에는 올안광의 태을혼천상진을 간파(看破)를 못했고 방랍전(方臘戰)에서 몇몇 책략이 간파당하여 절반의 호걸(豪傑)들이 죽었다.
양산박의 전병력을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라 펼쳐놓는 이른바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陣)"에 집착이 있다. 극중 등장 장면만 보아도 실전(實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대 진영에게(사실은 독자에게) 양산박군의 위용(威容)을 과시하는 용도이다. 방위(防衛)에 맞춰서 부대별로 무기와 갑옷, 깃발 색을 갖추어야 하는 만큼 이 진형(陣形)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과 수고가 호락호락 하지는 않을 것인데 굳이 이걸 작중에서 3번이나 사용한다. 진형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은 3인자 신기군사(神機軍師) 주무(朱武) 쪽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사실 실용성(實用性)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송나라쯤 되면 중세시대긴 하지만 그래도 겉모습이 번쩍번쩍하면 사기에 막대한 영향(影響)을 끼치기 때문에 묵과(默過)할 수 있다.
은근히 실패(失敗)하는 사건이 부각(浮刻)되다보니 '사실은 개그 캐릭터'가 아니냐는 설이 있다. 오용(吳用)의 발음이 중국어에서는 쓸모없다는 무용과 같기 때문에 '무용지물 군사(無用之物軍師)'를 뜻하는 게 아니냐는 추량(推量)을 해본다.
양산박의 조정 귀순(朝廷歸順) 이후 요(遼)나라 전호(田虎), 왕경(王慶), 방랍전(方臘戰)에서 지략을 발휘했지만 방랍 토벌 후에 간신(奸臣)들에게 독살당한 송강(宋江)이 꿈에 나타나자 불안하여 찾아갔더니 정말로 송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비탄(悲嘆) 속에 화영(花榮)과 같이 목을 달아 죽는다.
지략가적 이미지 때문에 자주 간과(看過)되는 건데 상기된 부분에서 이래 봬도 구리사슬의 명수라고 한다. 조개(晁蓋)를 찾아온 유당(劉唐)과 유당을 체포한 뇌횡(雷橫)이 충돌할 때 그 둘 사이에 구리사슬을 집어 던져서 싸움을 말린 전력(前歷)이 있다. 그런데 구리사슬 사용 장면은 그 장면뿐이다.
오용이 가지고 있는 유물인 묵철천상선(墨鐵天上扇)은 검은 철을 얇게 펴서 만든 것으로 표면에 매우 복잡한 문양(文樣)이 새겨져 있다. 이 자체로는 무기가 되지 못할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이 유물(遺物)이 가진 천기의 천변만화(千變萬化)다. 천변만화는 날씨를 조종(操縱)하는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날씨는 더위(炎), 비(雨), 추위(寒), 바람(風)으로 모두 네 가지다. 그리고 네 가지 강도(强度)로 이를 조종할 수 있는데 '미'로 갈수록 약해지고 '극'으로 갈수록 강해진다. 하지만 좁은 범위(範圍)에 한정되며 최대 두 시진(약 네 시간) 동안 유지되는 게 한계(限界)라고 한다. 하지만 날씨가 중요한 전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이다.
또한 어떤 날씨로 바꿨느냐에 따라 다른 불이익을 받는데 '炎'을 쓰면 한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雨'를 썼을 때는 참기 어려운 졸음이 쏟아지고, '寒'을 쓰면 오한이 들어 떨게 되며, '風'을 쓴 후에는 잠시 마비(痲痹)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불이익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일대일 전투에서는 별 쓸모가 없지만 병력을 가지고 싸우는 전투에서는 막강(莫强)한 능력이다.
오용(吳用)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3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기성(天機星)에 해당한다. 자는 학구(學究)이며 도호는 가량(加亮)이다. 만 권의 책을 읽었으며 아는 것이 많다 하여 지다성(智多星)이라는 별호로 불린다. 그 지모는 삼국 시대의 군사(軍師)인 제갈량(諸葛亮)과 필적하며 쇄분동(鎖分銅)의 명수이기도 하다.
본래는 제주(濟州) 운성현(鄆城縣)에 은거하며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서생이었다. 동계촌(東溪村)의 촌장(村長)인 조개(晁蓋)에게 그 지모를 인정받아 서로 친하게 지냈다. 이후 조개가 유당(劉唐)과 함께 북경(北京)의 유수사(留守使)인 양세걸(梁世傑)이 자신의 장인인 채경(蔡京)의 생일 선물로 보내는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들에게 협력했으며 동시에 친분이 있던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 완소칠(阮小七) 형제를 자신들의 계획에 끌어들였다. 후에 합류한 공손승(公孫勝)까지 총 7명으로 생신강 강탈(生辰綱强奪)을 계획했으며 오용(吳用)은 술장수로 변장하여 생신강을 운반하는 병사들을 속이고 약을 탄 술을 먹여 생신강 탈취(奪取)에 성공했다.
그 뒤 관군의 추격을 피해 양산박(梁山泊)에 몸을 의지하려는 조개(晁蓋)를 따라 함께 양산박(梁山泊)으로 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산박의 두령인 왕륜(王倫)이 자신의 지위 보전(保全)을 위해 조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임충(林冲)이 왕륜을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失敗)했고 결국 임충이 왕륜을 살해(殺害)한 뒤 조개를 새로운 두령으로 삼자 오용 또한 양산박의 일원(一員)이 되었다.
이후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여 관군(官軍)과의 전투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는 데 공헌(貢獻)했으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노준의(盧俊義)나 주동(朱仝) 등 능력 있는 호걸들을 차례차례로 양산박 군에 합류(合流)시켰다. 비록 강주(江州)로 유배를 떠난 송강(宋江)을 구하기 위한 가짜 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를 범해 대종(戴宗)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 종종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으나 양산박(梁山泊) 동료들에게 받는 신뢰도(信賴度)는 높았다. 송강(宋江)과 강한 신뢰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양산박의 인물들 중에서는 송강의 심정을 가장 잘 헤아렸던 인물 중 하나였다.
108성 집결(集結) 이후에는 양산박의 군무 및 기밀을 담당하는 군사(軍師)로 임명되었으며 다양한 지략과 계략으로 관군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좋은 활약(活躍)을 보였다.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한 뒤 양산박 군이 해산(解散)한 이후에는 무승군(武勝軍), 승선사(承宣使)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거부한 뒤 송강이 독살(毒殺)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영(花榮)과 함께 송강의 무덤이 있는 요아와(蓼兒洼)에 가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自決)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