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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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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상성(天傷星) 행자(行子) 무송(武松)

[圖片信息 = 천상성(天傷星) 행자(行子) 무송(武松)] 


천상성(天傷星) 행자(行子) 무송(武松)은 수호지의 등장인물이며 양산박(梁山泊)의 108 두령 중 한 명이다. 별호는 행자(行者)이고 중이 되기 전 수행(修行)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천상성(天傷星)에 해당한다. 

힘과 싸움 능력이 엄청난 인물로 작중에서 손꼽히게 뛰어난 무술가(武術家)인데 무기도 없이 그냥 맨손으로 마을에서 식인(食人)으로 악명 높은 호랑이를 때려잡아서 장사(壯士)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무력을 갖춘 인물이다. 전략이나 계책(計策)이 아니라 그냥 주먹으로 사건을 해결(解決)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수호지(水滸志) 내에서 노지심(魯智深), 이규(李逵)와 더불어 무력일변도(武力一邊倒)의 이미지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무송(武松)은 공부 따윈 안한 티가 나는 단순무식과격의 대명사인 다른 두 사람과 달리 머리를 활용(活用)할 줄 알기 때문에 사안(事案)에 대해 나름 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우는 치밀함도 갖추고 있으며 상대방의 책략(策略)을 꿰뚫어 보고 위기(危機)를 넘기는 장면도 꽤 나온다. 

이처럼 나름 매력(魅力)이 넘치는 인물이지만 술버릇이 나쁘고 건달 기질(氣質)이 있어서 자주 폭력(暴力)을 휘두르는 탓에 수호지 팬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린다. 특히 반금련(潘金蓮)을 잔혹하게 죽인점이랑 쾌활림(快活林)에서 하룻밤에 무려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학살(虐殺)한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많다. 

예전에 고향인 청하현(清河県)에서 술에 취해 관리와 시비가 붙어 그와 싸움질을 하다가 그 관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무송(武松) 자신은 관리가 죽은 줄 알고 벌을 피해 도망쳐 시진(柴進)의 저택으로 피신해 1년 가까이 머물고 있었다. 시진의 집에서도 술만 마시면 하인들에게 주먹질을 해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중간에 그 관리(官吏)가 죽지 않았음을 알긴 했지만 덜컥 학질(虐疾)에 걸리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을 무렵 송강이 시진의 저택으로 피신(避身)해왔고 술에 취한 송강(宋江)과 부딪쳐 제 버릇대로 시비를 걸며 멱살을 잡는다. 그러나 시진이 와서 질책하며 송강을 소개해주자 그 자리에서 사과하면서 의형제(義兄弟)를 맺었다. 송강은 무송의 호걸(豪傑)다운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재물을 털어 무송을 돌봐주었고 무송은 곧 학질도 떨어지고 말끔한 외모가 되었다. 하지만 향수(鄕愁)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시진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다. 

수호전(水滸傳)에서 무송(武松)이 활약하는 10회 분량을 무십회(武十回)라고 부른다. 무십회는 제23회에서 제32회에 해당한다. 수호전에서 단독(單獨)으로 10회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은 송강(宋江)을 제외하면 무송뿐이다. 특히 호랑이를 때려잡은 일화가 나름 유명해서 수호전을 잘 모르는 사람도 무송하면 대뜸 호랑이를 때려잡은 인물로 연상한다. 이 일화는 수호전을 대표하는 만큼 수호전 관련 삽화(揷畫)나 책 표지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이다. 

고향 청하현(清河県)으로 돌아가던 중 청하현의 이웃 고을인 양곡현(陽穀県)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경양강(景陽岡)에서 식인 호랑이가 나오는 고갯길을 지나가게 된다. 주막 주인은 혼자 가다가는 호환(虎患)을 당할 수 있으니 술이나 마시고 기다리다가 일행이 모이면 넘어가라고 한다. 이 술은 세 잔 마시면 고개를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독하다 하여 주막에다 '삼완불과강(三碗不過崗)'이라고 써놓았다. '세 잔을 마시면 고개를 못 넘는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송(武松)은 열여덟 잔도 더 넘게 독주(毒酒)를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한 다음 호랑이 따위가 뭐가 무섭냐며 주인의 말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경양강(景陽岡)을 올라간다. 그리고 도중에 진짜로 그 호랑이와 만나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그것도 독한 술을 십여 사발이나 마시고 말이다. 대결 양상을 보자면 처음에는 몽둥이로 싸웠는데 이 몽둥이가 나무에 빗맞아서 부러지자 그냥 주먹으로 5, 60대 두들겨서 잡은 거다. 그러나 무송도 전력을 다했기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며 호랑이를 죽이고 나서도 기운을 전부 소진할 정도로 지쳤었다. 그러다보니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써서 호랑이로 위장(僞裝)한 사냥꾼들을 보고는 '난 이제 죽었구나' 하며 기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호랑이 사냥꾼들을 만나자 그들이 위험한데 뭐하고 있냐며 "그 호랑이 저기서 때려죽이고 왔는데요. 못 믿겠음 가보시던가."고 태연히 말하고 아니나 다를까 무송(武松)의 주먹질로 초주검이 되어 죽어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보고서는 모두 기겁한다. 당연히도 사냥꾼들은 그 호랑이를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 양곡현(陽穀県) 지현 진문소에게 무송을 데려가고 진문소는 호랑이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을 내리나 무송은 이를 거절하고 상금을 사냥꾼들에게 나눠준다. 무송(武松)이 맘에 든 지현은 무송에게 도두(都頭) 벼슬을 내려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백수 신세였던 무송은 보병도두로 양곡현(陽穀県)에 눌러앉아 호걸로 이름을 날린다. 

도두가 된 무송(武松)과 한편 양곡현(陽穀県)에는 무송의 형 무대랑(武大郎)도 이사를 와 있어서 형제 상봉(兄弟相逢)도 하게 된다. 무송은 형의 집에 이사해서 들어가게 되고 무대랑도 아우와 같이 살게 되어 매우 기뻐한다. 무대랑은 무송과는 달리 체구도 작고 어리숙하고 외모(外貌)도 못생겨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무시를 당하지만 무송은 그런 형에게 매우 예의바르게 대하고 깊은 우애(友愛)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무대랑(武大郎)의 아내인 형수 반금련이 무송에게 반하는 바람에 사건이 복잡해진다. 반금련(潘金蓮)은 남편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무대랑 몰래 무송(武松)과 불륜 관계(不倫關係)를 맺으려고 여러 차례 유혹(誘惑)하지만 강직한 무송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 화가 난 반금련은 무송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무대랑에게 거짓으로 일러바치지만 평소 무송이 강직(剛直)하고 자신을 많이 도와주는 데다 우애가 깊어 아우를 철석같이 믿는 무대랑도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무송은 형수(兄嫂)를 피해 다시 관사로 거처를 옮긴다. 

한편 무송(武松)이 지현의 명령으로 서울에 심부름을 하러 떠난 틈을 타서 반금련(潘金蓮)은 서문경(西門慶)과 바람을 피우다가 무대랑(武大郎)에게 들키고 만다. 이때 서문경에게 맞아서 다친 무대랑이 무송이 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선언하자 서문경은 왕파(王婆)와 함께 무대랑을 독살(毒殺)한다. 돌아온 무송은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하여 하구숙, 운가의 협력(協力)을 받아 진상을 밝히려 하나 서문경이 관청(官廳)에 뇌물을 써서 조사가 막혀버리고 만다. 할 수 없이 사적으로 반금련과 서문경을 참살(斬殺)하여 복수하게 된다. 

반금련(潘金蓮) 파트는 수호전에서 상당히 독특한 부분인데 이 파트가 다른 부분과는 등장인물(登場人物)이 거의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송(武松)을 제외하면 이 파트에 나오는 인물은 다른 파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호전(水滸傳)이 본래는 여러 개의 별개의 이야기였다가 하나로 조합(組合)되었다는 가설(假設)에 자주 인용된다. 여기서 분기점(分岐點)을 만들어서 반금련(潘金蓮)과 서문경(西門慶)이 살아남고 무송은 귀양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중국 문학 4대 기서의 하나인 최초의 에로 동인지 금병매(金甁梅)다. 

살인을 저지른 무송(武松)이 자진해서 진문소에게 출두하자 진문소는 사건의 경위와 무송의 그 동안의 공적(功績)을 생각하고 또 서문경(西門慶)의 뇌물을 받아먹고 사건을 묻으려 한 것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한 것도 있어서 무송을 선처(善處)해준다. 무송은 간단한 장형(杖刑)만을 받고 맹주(孟州)로 유배형을 받게 된다. 

맹주(孟州)로 가는 귀양길에 한 술집에 들르게 되는데 재수 없게도 거기가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靑)과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娘)의 술집이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무송(武松)은 예사 술집이 아님을 간파(看破)하고 일부러 손이랑을 도발(挑發)한 후 그녀를 제압(制壓)한다. 그 모습을 본 장청이 살려 달라 사정하니 놓아주고는 서로 안면(顔面) 트고 나중에는 이들이 무송을 도와준다. 

맹주(孟州)에서 교도소 지부의 아들인 시은(施恩)을 만났으며 시은은 무송을 잘 대접해 주고 서로 친해졌다. 당시 시은은 유흥가인 쾌활림(快活林)의 이권을 놓고 장문신(장문신은 별명이고 이름은 '장충'.)과 싸우게 되는데 장문신에게 무력으로 밀렸던 시은은 쪽도 못쓰고 털렸으며 세력싸움으로도 안되는지라 쾌활림 역시 장문신에게 넘어가 버렸다. 이에 시은은 무송(武松)에게 후한 대접을 해 주면서 복수를 부탁하고 무송은 이를 받아들인다. 무송은 쾌활림(快活林)으로 찾아가서 나름 한 주먹 하는 장문신을 가볍게 털어버리고 시은이 다시 쾌활림의 주인이 되게 도와주어 그와 의형제를 맺는다. 

이에 장문신은 멀리 떠나는 척 하면서 자신의 뒤를 봐주던 장 단련사(단련사 장씨라는 뜻.)에게 무송에게 털리고 쾌활림(快活林)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렸고, 장 단련사는 장문신(蒋门神)의 뒤를 봐주기 위해 맹주의 수어도감 장몽방(張蒙方)을 끌어들여 무송(武松)을 얽어매려고 한다. 장도감(張都監)은 일부러 무송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다음 후한 대접을 하는 척 하면서 한바탕 연극을 꾸미고는 막판에 무송을 절도범(竊盜犯)으로 몰아세워 체포한 다음 고문하고 옥에 가둔 다음 귀양을 보낸다. 무송은 억울하다며 결백을 주장했으나 장도감이 만든 거짓 증거로 인해 통하지 않았고 고문(拷問)을 못 이겨 없는 죄를 시인했다. 그러는 사이에 장문신은 다시 시은을 털어버리고 쾌활림(快活林)을 재탈환한다. 

장문신(蒋门神)과 장단련은 아예 후환(後患)을 없앨 목적으로 귀양 가는 길목에 부하들을 매복(埋伏)시켜놓고 무송(武松)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시은을 통해 장도감(張都監)과 장문신, 장단련이 짜고 무송을 함정(陷穽)에 몰아넣고 죽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무송은 무거운 칼을 쓴 상태로 괴력을 발휘하여 칼을 부수고 암살자(暗殺者)들을 오히려 역관광시켜 전부 쳐 죽이고 자신을 음모(陰謀)에 빠뜨린 장도감의 집에 단신으로 쳐들어간다. 하룻밤 사이에 무송은 장도감(張都監)은 물론 그의 일가족과 같이 있던 장 단련사와 장문신, 옥란 등 다수의 하인과 하녀를 몰살(沒殺)시킨다. 전술한 15명의 대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 자리에 있던 술과 음식을 전부 먹고 벽에다 "이 자들을 죽인 사람은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이다(殺人者, 打虎武松也)"라고 써놓는다. 맹주는 무송(武松)의 학살 사건에 발칵 뒤집어졌으며 관가에서도 무송을 체포(逮捕)하려고 관원들이 추적에 나서게 된다. 

결국 무송(武松)은 관원들에게 쫓겨 다니면서 이리저리 도망치다 도착한 술집에서 털리고 진짜로 만두 속이 될 뻔했는데 그 술집의 주인이 장청(張靑)과 손이랑(孫二娘)이어서 살았다. 이곳에서 손이랑(孫二娘)의 꾀로 행자로 변장한다. 마침 예전에 한 행자를 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행자의 물건이었던 사람뼈(人骨)로 만든 염주와 두 자루 계도, 도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송이 작중 후반까지 애용(愛用)하던 계도 한 쌍을 얻은 시점이 바로 여기다. 행자(行子)로 변장한 후엔 이미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가 자리 잡고 있던 이룡산(二龍山)에 찾아간다. 

하지만 도중에 주점에서 주점 주인과 공량(孔亮) 패거리와 시비가 붙어서 공량과 주점 주인을 때리는 바람에 문제를 만든다. 시비도 무송(武松)이 잘못한 것인데 자기한테 고기를 안 준다며 주점 주인을 때리자 그것에 화가 난 공량이 이를 질책(叱責)하자 화김에 그를 때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일단 이기고 공량을 쫓아낸 다음 공량의 술과 음식을 뺏어먹고 무송은 주점(酒店)에서 만취(滿醉)한 채로 나와 길을 가다가 누렁개 한 마리와 시비가 붙었는데 그 개를 잡으려다 발을 헛디뎌서 시냇물에 빠져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된다. 정신 차려보니 보복(報復)하러온 공량이 데려온 패거리에게 붙잡혀서 공량(孔亮)의 집으로 끌려와 매를 맞는다. 그래도 마침 그 곳에 있던 송강(宋江)과 다시 만난 덕분에 풀려나고 공량(孔亮)에게 사과하여 화해한다. 며칠 동안 공량의 집에서 후한 대접(待接)을 받은 뒤 무송은 송강과 헤어져 이룡산(二龍山)으로 들어갔다. 

무송(武松)의 별호는 행자(行者)이며 천상성(天傷星)에 상응한다. 둘째로 태어났다 하여 무이랑(武二郞)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청하현(淸河縣)에 살았는데 그 곳의 기밀(機密: 송대의 관직)과 싸움이 붙어 주먹으로 쳤는데 상대가 정신을 잃자 죽은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시진(柴進)의 장원에 숨어 있다가 학질에 걸려 화로를 끌어안고 땀을 빼던 중 송강(宋江)과 부딪혀 시비가 걸렸으나 시진이 그가 송강임을 가르쳐주자 그 자리에서 형님으로 모셨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중 술에 취한 채 경양강(景陽岡)을 넘다 관청에서 잡지 못해 골치인 호랑이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어 주먹으로 때려죽였다. 이 일로 바로 옆 고을인 양곡현(陽穀縣)의 보병도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양강(景陽岡)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도두(武都頭)'라고 천하에 널리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친형 무대가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으나 형수 반금련(潘金蓮)이 자신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어오자 참지 못하고 관청(官廳)으로 돌아가 지내게 되었다. 그 뒤 지현이 동경성 안에 있는 친척에게 예물을 가져다주는 임무를 맡기자 두 달이 걸려 다녀왔는데 그 사이 형 무대랑(武大郞)이 죽어있자 의심이 생겨 하구숙과 운가의 도움을 받아 관청에 고소하였으나 반금련의 샛서방 서문경(西門慶)이 여기저기 뇌물을 뿌려놓은 탓에 잘 되지가 않았다. 그러자 무대의 49재를 빌미로 이웃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뒤 반금련(潘金蓮)과 뚜쟁이 왕씨 할멈을 붙잡아놓고 자백을 받아낸 뒤 반금련의 염통과 간을 꺼내 무대의 제삿상 위에 올린 뒤 반금련(潘金蓮)의 머리를 들고 서문경(西門慶)을 찾아가 그 또한 누각 아래로 집어던진 뒤 목을 잘라 버렸다. 이어 왕씨 할멈을 끌고 관가에 가서 자수하니 맹주(孟州)로 귀양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몽한약(曚昏藥)을 탄 술을 먹이려는 손이랑(孫二娘)을 혼내주다 장청이 와서 말려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들 부부의 극진한 대접과 정에 감동해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 맹주(孟州)에 가서 시은(施恩)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시은의 안내를 받아 장문신(蒋门神)을 때려눕히고 쾌활림(快活林)의 모든 것을 빼앗아 원주인인 시은에게 돌려주었다. 후에 병마도감(兵馬都監) 장몽방(張蒙方)이 그를 불러 쓰게 되었는데 도둑을 잡으려다 되려 도둑으로 몰리게 되어 은주(恩州) 노성으로 유배가게 되었다. 

시은(施恩)이 장도감과 장문신(蒋门神), 장단련이 짜고 무송을 함정에 몰아 놓았음을 말해주자 무송(武松)은 유배 가는 도중 자신을 해치려는 장문신의 제자와 공인들을 죽이고 맹주로 달려가 장도감(張都監)의 가족과 장단련, 장문신(蒋门神)을 모조리 죽인 뒤 벽에 자신의 이름을 써 놓고 도망치다 우연하게도 장청(張靑), 손이랑(孫二娘) 부부가 부리는 일꾼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맹주(孟州)의 사건 때문에 공인들이 시골까지 돌아다니자 손이랑(孫二娘)의 제안으로 머리를 밀고 도첩(度牒), 염주(念珠), 계도(戒刀) 등을 받아 출가한 스님으로 변장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행자(行者)라는 별호가 붙게 되었다. 그 길로 이룡산(二龍山) 보주사(寶珠寺)로 가서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와 한 패가 되어 지내다가 호연작(呼延灼)이 토벌군을 이끌고 온 것을 계기로 양산박에 들 게 되었다. 

108인이 다 모인 뒤에는 보군두령의 한 명으로 활약하였으며 방납 토벌전에서 목주를 칠 때 포도을의 현천혼원검(玄天浑圆剑)에 맞아 왼팔을 잃어 방납을 토벌한 뒤에는 송강에게 청해 벼슬을 하지 않고 육화사(六和寺)에 출가해 여든까지 살다가 삶을 마쳤다. 

무송(武松)은 청하현(清河県) 출신으로 둘째로 태어나 '무이랑(武二郞)'이라고 한다. 고향에서 기밀(하급관리의 하나)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주먹으로 쳐 기절하자 죽은 줄 착각(錯覺)하여 도주했다. 방랑생활을 계속하던 중 고향으로 가기 위해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의 장원에서 묵던 중 학질에 걸린다. 학질(虐疾)을 낮게 하기 위해 화로를 들고 움직이던 무송(武松)은 그만 술 취한 송강(宋江)과 부딪히게 된다. 화로가 엎어져 불꽃이 얼굴에 튀자 무송은 송강의 멱살을 잡았고 당황한 시진(史進)은 송강(宋江)을 소개하며 상황을 수습한다. 이로써 송강과 무송(武松)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송강과 이별하고 고향으로 가던 중 경양강(景陽岡) 고개 근처에서 '삼완불과강(三碗不過崗)'이란 술을 파는 주막을 들른다. 세 잔만 마시면 고개를 넘지 못할 정도로 독한 술이란 뜻이다. 때문에 투병향(향기가 술병을 뚫는다), 또는 출문도(문 밖을 나가자 쓰러진다)라 한다. 그러나 무송은 그 술을 열여덟 잔이나 마시고 어두워지는 경양강(景陽岡) 고개를 유유히 올라간다. 취기가 오른 무송(武松)이 산 길 바위에 누워 쉬던 중 짐승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마을 관청의 골치를 썩이는 식인 호랑이를 만난 것이다. 무송은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며 싸우던 중 호랑이의 머리를 주먹으로 수 없이 강타(强打)하여 죽일 수 있었다. 때마침 몰이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을 만나 이 소식이 알려지고 무송(武松)은 옆 고을인 양곡현의 보병도두(步兵都頭)가 되어 형인 무대를 만나게 된다. 

무대랑(武大郎)의 아내는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인 반금련이다. 반금련은 평소 못생긴 무대를 혐오하고 있었다. 반금련(潘金蓮)은 시동생인 무송에게 추파를 던지고 마을에서 약방을 하는 호색한인 서문경(西門慶)과의 밀회를 즐긴다. 결국 반금련은 서문경과 옆집 왕씨 할멈의 계략으로 무대랑을 독살하고 만다.  

일 때문에 두어 달 동안 동경에 갔다 온 무송(武松)은 형의 부고를 믿지 못했다. 그는 시체검시관 하구숙과 과일장수꼬마 운가의 도움으로 서문경(西門慶)과 반금련의 불륜을 알게 된다. 무송은 여러 이웃과 왕씨 할멈을 집에 초대하여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반금련(潘金蓮)을 죽인다. 이웃을 부른 이유는 그녀의 악행을 자백 받은 뒤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자백을 받고 반금련을 죽인 무송은 술집에서 계집을 끼고 있는 서문경(西門慶)에게 간다. 서문경은 무송과 대결했으나 그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2층 건물에서 떨어져 뒤쫒아 온 무송(武松)에게 죽임을 당한다. 무송은 반금련(潘金蓮)과 서문경의 머리를 무대랑(武大郞)의 영전에 두고 곧바로 자수하여 맹주(孟州)로 유배된다. 왕씨 할멈은 간통(姦通)을 도운 죄로 사지가 잘렸다. 

맹주(孟州)로 가던 중 십자파(十字坡) 고개의 주막에서 쉬던 중에 그곳이 몽혼약(曚昏藥)으로 사람을 취하게 한 뒤 도륙해 만두를 만드는 곳임을 알아차린다. 주막 여주인을 속이고 역으로 반격해 주먹을 내지를 찰나, 여주인의 남편이 돌아와 사정하며 말린다. 그들은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靑)과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娘)으로 한때 노지심(魯智深)도 죽었다 살아났음을 알려준다. 이들과 헤어지고 맹주(孟州)로 유배온 무송은 금안표(金眼彪) 시은(施恩)의 도움으로 호의호식을 누리던 중 시은(施恩)이 장문신(蒋门神)에 의해 술집을 빼앗긴 사연을 듣게 된다. 무송은 시은의 복수를 위해 술집이 있는 쾌활림으로 장문신(蒋门神)을 찾아가는데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주점에서 술을 마신다. 쾌활림(快活林)에 도착한 무송은 취한 상태로 장문신과 싸워 박살을 내버렸다. 시은의 복수를 한 무송은 그러나 장문신의 친척인 병마도감 장몽방의 꾀임에 넘어가 죄를 물어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를 가던 중 비운포(飛雲浦) 다리에서 모든 것이 장몽방의 계략임을 알게 되고 호송 중인 두 공인을 죽인 뒤 장몽방의 집을 찾아가 장문신은 물론 장몽방(張蒙方)의 일가까지 모두 몰살한다. 무송(武松)은 피로 자신의 이름을 벽에 쓰고 십자파(十字坡)로 도망을 오게 된다. 

무송(武松)의 사정을 들은 손이랑(孫二娘)은 일전에 죽인 행자(行者)의 옷가지와 도구들을 무송에게 입히고 두 자루의 계도(戒刀)를 사용하게 한 뒤 노지심(魯智深)이 있는 이룡산(二龍山)을 추천한다. 훗날 호연작(呼延灼)의 도화산 토벌에 출전하여 싸운 뒤 양산박에 합류하여 보병군 두령이 된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때 목주(睦州)에서 영응천사 포도을에게 왼 팔이 잘리고 종군(從軍)하여 노지심(魯智深)과 함께 육화사(六和寺)에 머문다. 송강에게 벼슬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육화사(六和寺)에 출가하여 여든 살까지 살다 세상을 떠난다. 황제는 무송(武松)에게 청충조사(淸忠祖師)란 칭호를 내린다. 

취중에 관인을 때려 쓰러뜨리고 시진의 장원으로 도피했다가 송강을 만난다. 25세에 경양강(景陽岡) 고개에서 취중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양곡현(陽谷縣)의 도두가 되었으나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형수 반금련(潘金蓮)과 그 정부를 죽이고 자수한다. "이 대목은 후에 4대 기서의 하나인 '금병매(金甁梅)'로 만들어지게 된다." 

맹주(孟州)로 귀양 가 유형소 수교의 아들인 금안표(金眼彪) 시은(施恩)을 돕다가, 병마도감(兵馬都監) 장몽방(張蒙方)의 음모 때문에 장도감(張都監) 일가를 죽이고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靑) 내외의 도움으로 머리 깎고 이룡산(二龍山)으로 향한다. 이룡산 도적패에 가담한 뒤에 주변의 도화산(桃花山), 백호산(白虎山) 패거리와 함께 양산박에 합류한다. 양산박의 보군두령으로써 노지심(魯智深)과 더불어 다니며 전투에 앞장섰다. 

무송(武松)과 노지심(魯智深)은 참으로 잘 맞는 콤비이다. 둘 다 정의감이 넘쳐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다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무송이 노지심(魯智深)보다는 분별이 있는 성격이다. 학력(學歷)이 높은 건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견식을 지니고 있고 조정에 대한 반감(反感)이 많아서 마지막까지 귀순(歸順)을 반대했던 한사람이다. 썩은 조정(朝廷)에 귀순해봤자 잘 될 리 없다는 것을 많이 배운 송강(宋江)보다도 훨씬 더 현실을 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일각에서 수호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무송을 허무주의자(虛無主義者)라고 표현한다. 장도감 일가의 몰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처럼 살인을 한다. 물론 당시로써는 갓난아기라도 살려두면 화근(禍根)이 된다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기도 했지만 무송의 경우는 복수를 하고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두 차례의 배신한 반금련(潘金蓮)과 장도감(張都監)이 그를 허무주의자(虛無主義者)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처음 등장하여 송강을 만나 기뻐하던 때와 비하면 무송의 성격은 뒤로 갈수록 차가워져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시은이 죽었을 땐 울기도 했다. 

무송(武松)은 수호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천상성. 행자. 무이랑. 보군두령의 1인. 경양강에서 사람을 잡아먹고 다니는 호랑이를 때려잡아 그 공으로 양곡현의 도두가 된다. 친형 무대랑이 형수 반금련(潘金蓮)과 서문경의 불륜에 의해 죽자 그 둘을 죽이고 자수한 뒤 맹주로 유배가게 된다. 이후 병마도감(兵馬都監) 장몽방(張蒙方) 휘하에 있다 누명을 써 다시 은주 노성으로 유배간다. 유배 중에 장도감(張都監)과 장문신(蒋门神), 장단련이 짜고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고는 모조리 죽인 후 도망치다 장청, 손이랑 부부의 제안으로 스님으로 위장한 뒤 이룡산(二龍山) 보주사에서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와 한패가 되었다.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이 양산박에 토벌군을 이끌고 공격하자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한다. 

조정에 귀순한 후에는  전쟁에 참전해서 요나라의 야율득중을 살해하고,  반란군 전호의 장수 심안, 방납의 동생 방모, 패응기 등을 죽이는 공적을 세웠다. 하지만 방납(方臘)의 부하인 영응천사 포도을에게 왼팔을 잃고 토벌을 마친 뒤에 돌아가지 않고 육화사(六和寺)에 출가하였다. 황제에 의해 청충조사에 봉해진다.  

방랍 토벌전에서 포도을에게 왼팔을 잃은 후 난이 제압된 뒤 벼슬을 거부하고 육화사(六和寺)에서 출가해 여생을 스님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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