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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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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우성(天祐星)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

[圖片信息  천우성(天祐星)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 


천우성(天祐星) 금창수(金槍手) 서령(徐寧)의 별호는 금창수(金槍手)이며 별호답게 금창(金槍)을 잘 쓰며 특히 구겸창(鉤鎌槍)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호걸(豪傑)이다. 

호연작(呼延灼)의 연환갑마에 양산박이 발리고 있을 때 탕륭이 연환갑마(連環甲馬)를 깨뜨릴 무기인 구겸창(鉤鎌槍)을 사용할 것을 건의한다. 하지만 구겸창의 사용법은 몰랐고 탕륭(湯隆)은 구겸창의 달인이자 자신의 고종사촌형인 서령(徐寧)을 양산박에 데리고 와야 연환갑마에 대응(對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서 양산박의 서령을 납치(拉致)할 작전이 실행된다. 

금군 창술 부대인 금창반(金槍班)의 사범이자 황제를 호위하는 무장인 서령(徐寧)이 도적떼에 들어올리기 만무하기에 독한 계략(計略)을 꾸민다. 시천(時遷)이 서령이 자랑하는 갑옷인 안령체취귄금갑(雁翎窃就圈金甲)을 몰래 훔치고 다음 날 탕륭(湯隆)으로 하여금 서령을 찾아가 갑옷을 보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어 서령으로 하여금 갑옷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했다. 갑옷을 도둑맞았다는 것을 안 서령이 탕륭과 함께 도둑놈을 먼 길을 쫓아 양산박(梁山泊) 근처의 주점에서 겨우 잡았지만 탕륭과 악화(樂和)가 준 몽혼약(曚昏藥) 탄 술에 쓰러지게 된다. 덤으로 이 둘은 서령의 이름으로 도적질까지 하고 설영(薛永)은 서령의 가족들을 양산박(梁山泊)으로 데려와서 돌아갈 길까지 완전히 끊어버린다. 

결국 송강의 사과와 함께 서령(徐寧)은 양산박에 합류하게 된다. 서령에게 구겸창(鉤鎌槍) 사용법을 훈련받은 양산박군은 호연작(呼延灼)의 관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양산박에선 팔표기 기병두령으로 은창수(銀槍手) 화영(花榮)과 함께 중군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다만 구겸창법(鉤鎌槍法)을 알려주고 난 후의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장청(張淸)에게 안면에 돌팔매로 맞았고 요(遼)나라편에서 아리기에게 죽을 뻔한 굴욕(屈辱)을 찍었다. 그래도 요나라 명궁인 천산용을 죽였고 전호(田虎)의 성을 계략으로 얻는다. 방납(方臘) 토벌전에서는 여사낭를 죽이는 전적을 올리지만 항주성 전투 중에 학사문(郝思文)과 같이 정찰하다가 학사문이 잡히자 이를 구원하러 가는 도중에 목에 독화살을 맞고 사망한다. 하필 안도전(安道全)이 송휘종(宋徽宗)에 불려간 직후라서 손을 쓸 수 없었다. 

서령(徐寧)은 동경 금창반(金槍班)의 교두로 탕륭(湯隆)의 고종사촌이며 임충(林冲)의 친구이다.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구겸창(鉤鎌槍)술의 달인이다.  

호연작(呼延灼)의 연환갑마(連環甲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송강(宋江)은 대장장이인 탕륭(湯隆)에 의해 서령(徐寧)을 소개 받는다. 서령에게는 4대 째 전해 내려오는 안령절취권금갑(雁翎窃就圈金甲) 또는 새당예(賽唐猊)라는 갑옷이 있었다. 오용(吳用)은 시천으로 하여금 서령의 집에서 새당예를 훔쳐오도록 지시하였다. 야심한 밤에 시천(時遷)은 서령의 집 2층 대들보에서 궤짝에 들어있는 새당예를 훔치는데 성공한다.  

다음날 갑옷을 도둑맞은 사실을 안 서령(徐寧)은 어쩔 줄 몰라 하던 중에 탕륭이 서령의 집을 방문한다. 서령은 가보를 도둑맞은 것을 탕륭(湯隆)에게 알리자 탕륭은 갑옷을 넣은 궤짝과 비슷한 모양을 한 상자를 들고 간 사내를 보았다고 말한다. 서령은 즉시 탕륭과 집을 나서 그 사내를 추적(追跡)하였다. 절름발이로 위장하고 궤짝을 들고 가던 시천(時遷)을 잡았지만 갑옷은 이미 대종에 의해 양산박(梁山泊)으로 빼돌린 후였다. 시천은 갑옷을 찾게 해주겠다며 도중에 만난 악화(樂和)와 함께 양산박으로 서령을 유인하였다. 주귀의 주막에 도착한 탕륭 일행은 서령에게 몽혼약(曚昏藥)을 탄 술을 먹게 하고 양산박에 데려왔다. 송강(宋江)은 서령을 해독하고 양산박에 합류(合流)시키기 위한 계책이었음을 사죄(謝罪)하고 갑옷을 돌려줌은 물론 가족들을 데려와 살게 하였다.  

구겸창법(鉤鎌槍法)을 익힌 양산박군은 반격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강(宋江)이 보병을 거느리고 출전하는 것을 안 호연작(呼延灼)은 부장 한도(韓滔)로 하여금 연환갑마를 이끌고 출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미리 갈대숲에서 매복하고 있던 구겸창병들에 의해 연환갑마(連環甲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호연작은 서둘러 구원하러 나섰으나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모든 병력을 잃고 한도까지 사로잡히는 수모(受侮)를 겪는다. 호연작은 그 길로 청주(靑州)로 달아나 버렸다. 

이후 화주, 망탕산(芒碣山), 동평부(東平府), 동창부(東昌府) 등에서 활약하였고 108호걸이 모인 뒤 기병군 팔표기(八驃騎) 겸 선봉사 중 한 명이 되었다. 요나라의 전호(田虎), 왕경(王慶) 토벌을 종군하고 방납(方臘) 토벌 중 학사문(郝思文)과 함께 항주성 정찰에 나섰다가 독화살에 목을 맞았다. 뒤따라온 관승(關勝)에 의해 구출(救出)되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보름 만에 죽고 말았다. 

연환갑(連環甲)을 격파할 수 있는 갈고리 달린 구겸창법(鉤鎌槍法)의 전수자인 서령(徐寧)은 먼저 양산박에 입단한 탕륭(湯隆)의 고종사촌형으로 임충(林冲)과도 함께 금군에서 근무하며 친하게 지낸 사이이다.  

가보인 새당예(賽唐猊)라는 갑옷을 갖고 있는데 연환갑마(連環甲馬)를 격파하기 위해 탕륭이 시천(時遷)을 시켜 갑옷을 훔치자 이에 속아서 양산박으로 끌려온다. 그 사이에 탕륭(湯隆)이 새당예를 입고 행객을 털어 지명수배(指名手配)가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할 수 없이 입단한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구겸창법(鉤鎌槍法)을 전수해 양산박을 공격하러 온 호연작(呼延灼)의 연환갑마를 격파하는 공훈(功勳)을 세웠다. 

양산박이 조정에 귀순(歸順)한 뒤 요나라의 천상용을 비롯한 전호(田虎)의 장수 안사영, 사정, 섭신, 지방을 살해했다. 방납(方臘) 토벌 중에 방랍군의 장수 여사낭을 살해하는 공적을 세웠으나 임평산에서 학사문(郝思文)을 구하려다 목에 독화살을 맞고 반 달 뒤에 전사(戰死)하고 말았다. ​역시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상황(狀況)에 몰려서 입단하게 된 경우이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양산박 일당은 범죄자(犯罪者)가 맞긴 하다.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인물 개성에 대한 묘사(描寫)는 거의 없다. 

서령(徐寧) 또는 서녕(徐甯)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양산박 108성 중 18위로 천우성(天雨星)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기마술에 능하고 금창(金槍)과 구겸창(鉤鎌槍) 등의 창술에 통달하여 금창수(金槍手)라는 별호가 붙었다. 

금군(禁軍) 금창반의 사범 직위에 부임해 있었으며 창봉 교두였던 표자두(豹子頭) 임충(林冲)의 옛 동료였다. 고종 사촌동생은 양산박의 기장(機匠)인 금전표자(金錢豹子) 탕륭(湯隆)으로서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 장군이 태위 고구(高俅)의 명을 받아 양산박을 공략할 당시 양산박은 연환갑(連環甲)을 입힌 기병 부대를 상대할 저력(底力)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기마 부대의 약점(弱點)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구겸창(鉤鎌槍)의 활용법을 유일하게 파헤치고 있는 서령(徐寧)을 포섭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고상조(鼓上蚤) 시천(時遷)이 밀파되어 그의 가보인 안령체취권금갑(鴈翎砌就圈金甲)을 도둑질해 오고 다음 날 탕륭(湯隆)이 서령의 가택에 찾아와 안령갑을 보고 싶다고 시치미를 떼면서 서령에게 안령갑(鴈翎甲)의 도난을 확인시킨다. 탕륭과 함께 시천(時遷)을 잡으러 집을 나온 서령은 양산박 근처의 주점에서 시천을 잡게 되나, 그곳에서 철규자(鐵叫子) 악화(樂和)가 권한 술에 탄 몽혼약(曚昏藥)에 쓰러지게 되며 서령의 이름으로 도둑질을 한 다음 몰래 병대충(病大蟲) 설영(薛永)을 시켜 서령의 가족까지 양산박으로 모셔오게 된다. 서령은 약효(藥效)가 깬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크게 노하지만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의 설득과 융숭(隆崇)한 대접으로 화를 풀게 되어 양산박(梁山泊)의 창술 사범 및 팔표기 기병두령(騎兵頭領)의 위치에 오른다. 

서령(徐寧)의 훈련으로 구겸창(鉤鎌槍) 사용법을 익힌 병사들은 호연작(呼延灼)의 연환마를 상대로 대승(大勝)을 거두었으며 그 이후로도 은창수(銀槍手) 소이광(小李廣) 화영(花榮)과 함께 창기병대(槍騎兵隊)를 이끌게 되면서 여러 전투에서 활약한다. 요나라의 명궁인 천산용(天山勇)을 처치하고 계략으로써 전호(田虎)의 성을 획득(獲得)하는 등의 공을 세우다가 방납(方臘)의 난 때 여사낭(呂師囊)을 죽인 후 항주성 전투 중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이 사로잡히자 구출하러 적진(敵陣)으로 말머리를 돌리다가 목에 독화살을 맞고 당하여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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