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조설근은 일개 이야기꾼이지 '홍루몽'의 작자가 아니라는 견해에 대하여

图片信息 红楼梦人物外貌摘抄


'홍루몽(紅樓夢)'의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가? 이제 고증(考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홍루몽'의 제1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설근(曹雪芹)이 일찌기 도홍헌(悼紅軒)에서 십년동안 피열(披閱)하면서 5번 덧붙이고 빼며(增刪) 목록을 편찬하고 장회(章回)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 '조설근(曹雪芹)'은 그저 '홍루몽'의 제1회에 나오는 허구(虛構)의 인명이다. 즉 소설가(小說家)가 하는 말일 뿐이다. 이 말이 은유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도대체 '홍루몽(紅樓夢)'의 창작에 어떤 공헌(貢獻)을 했는지? 이제는 알아볼 방법이 없다. 

정위원(程偉元)이 '홍루몽'을 출판하면서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홍루몽의 본명은 석두기(石頭記)이다.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전해지는 바가 일치(一致)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의 손에 쓰여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오직 소설 안에서는 조설근선생(曹雪芹先生)이 여러 번 첨삭(添削)한 바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출판상(出版商)인 정위원(程偉元)도 조설근(曹雪芹)이 작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주족 시인인 돈성(敦誠), 돈민(敦敏) 형제의 시문을 보면 그들의 친구인 "조설근(曹雪芹)"이 나온다. 그런데 이 조설근(曹雪芹)이 바로 홍루몽 제1회에 나오는 그 조설근(曹雪芹)인가? 필연적인 인과관계(因果關係)는 보이지 않는다. 확인(確認)할 방법이 없다. 또한 돈성(敦誠), 돈민(敦敏) 형제는 한 번도 그들의 친구 조설근(曹雪芹)이 석두기(石頭記)이든 홍루몽이든 어떤 소설을 썼다고 적은 적이 없다. 몇몇 친구들이 함께하면서 교분(交分)이 이렇게 밀접(密接)하다면 왜 이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몰랐을까?

건륭(乾隆) 때 명의(明義)는 '녹연쇄창집, 제홍루몽(綠煙鎖窓集, 題紅樓夢)'이라는 절구 제목 아래에 소서(小序)를 남겼다. "조자설근(曹子雪芹)은 그가 쓴 홍루몽이라는 책에 나오는데 풍월번화의 번성함을 썼다. 아마도(蓋) 그의 조상이 강녕직부였던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소위 대관원(大觀園)은 아마도 지금의 수원(隨園) 옛부지(故地)인 것 같다. 아쉽게도 그 책이 전해지지 않아서 세상에 아는 사람이 적다. 나는 그 초본(抄本)을 보았을 뿐이다." 

이를 보면 명의(明義)는 조설근(曹雪芹)이 누구인지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도'라는 말로써 조설근(曹雪芹)의 출신이 아마 강녕직조(江寧織造)의 사람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명의(明義)의 말을 증거로 믿을 수 있는가? 명의가 말한 홍루몽이 지금 우리가 읽는 홍루몽(紅樓夢)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명의와 원목(袁牧)의 '수원시화(隨園詩話)'의 기재는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똑같은 의문(疑問)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청나라 건륭 때의 사람인 영충(永忠)은 '인목향득관홍루몽소설조설근(仁穆香得冠红楼梦小说赵雪芹)'에서 "전신문필족천추(傳神文筆足千秋), 불시정인불누류(不是情人不淚流), 가한동시불상식(可恨同時不相識), 기회엄권곡조후(幾回掩卷哭曹侯)"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을 썼다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억측(臆測)이다. 이 시에는 명확히 "안타깝게도 동시대에 살면서 서로 알지 못했다(可恨同時不相識)고 하지 않은가? 이를 보면 그는 조설근(曹雪芹)과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그저 항간(巷間)에 떠도는 말을 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 때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썼다. "듣기로 옛날에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다른 이름으로 '석두기(石頭記)'라고 한다.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른다. 조설근(曹雪芹)이 이를 얻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쓴 내용이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과 약간 비슷했다. 그리하여 이를 활용하여 이 책을 다섯 번 수정(修訂)했고 갈수록 뛰어나졌다...." 그리고 또한 "설근이라는 두 글자는 생각하기로 그의 자(字)나 호(號)이다.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조씨성의 한군팔기사람인데 어느 기(旗)에 속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말도 썼다. "소문에 듣기로 '보옥(寶玉)'이라는 자는 그의 숙부뻘의 어떤 사람을 가리키지 자신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를 보면 그는 특별히 이것들이 모두 '들은 것'이라는 것을 강조(强調)한다. 즉 항간의 소문이라는 것이지 홍루몽(紅樓夢)의 작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조설근(曹雪芹)이 이를 얻었다'는 것도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서기1921년 호적(胡適) 선생이 '홍루몽고증(紅樓夢考證)'을 발표한다. 청나라 때 문헌과 억척에 나오는 '대개" '아마도"의 조설근(曹雪芹) 가족을 고증하는 기초 하에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의 작자로 확정(確定)시키고 정설이 된다. 호적 선생은 실증주의자(實證主義者)이다. 모든 것은 증거(證據)를 믿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증거를 중시(重視)하지 않았는가? 가족의 족보기록에 신빙성(信憑性)이 있는가? 청나라 사람들의 필기, 시문에 신빙성이 있는가? 정말 웃기는 일은 소위 조씨족보에 아예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모르겠다. 한 푼의 증거이면 한 푼의 말을 하는 호적 선생이 왜 이런 식으로 사료고증(史料考證)을 했는지 말이다. 호적(胡適) 선생은 이에 대한 고증문제(考證問題)에 있어서 증거의 합법성(合法性)을 고려하지 않았고 전혀 합법성(合法性)이 없는 필기와 전설을 가지고 견강부회적(牽强附會的)으로 짜 맞추었다. 이는 고증의 범주(範疇)에 속하지 않는다. 차라리 무당이 헛소리하는 것과 같다.

기녀가 자신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는 그저 '소설가의 말'일 뿐이다. 낭만주의(浪漫主義) 시가와 같이 이를 진실로 믿을 수는 없다. 전설에 따르면 강녕직조(江寧織造)의 조씨후인들이 정말로 조씨후인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족보(族譜)에 한 마디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족보에 '조설근(曹雪芹)'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기녀가 자신이 전 국가지도자의 아들이라고 자칭(自稱)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엄격하게 말해서 설사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소설 '홍루몽'을 썼다는 증명(證明)이 되지는 않는다. 설사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가 바로 강녕직조(江寧織造) 조씨의 후손이라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설사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홍루몽이 이 홍루몽(紅樓夢)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현재까지 모든 증거(證據)는 믿을만한 것이 없다. 직접 증거가 아니다. 모든 증거는 조설근이 강녕직조(江寧織造) 조씨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證明)해주지 못하고 조설근(曹雪芹; 그런 사람이 있든 없든)이 홍루몽(紅樓夢)의 작자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필자가 보기에 조설근(曹雪芹)이 도대체 누구인가를 절명(竊名)하거나 혹은 누가 홍루몽(紅樓夢)의 작자인지를 증명하려면 반드시 합법적인 증거(證據)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현재까지 홍루몽 전80회이든 후40회이든 모두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지를 고증(考證)해낼 수가 없다. 홍루몽의 진정한 작자(作者)가 누구인지를 고증할 수 없는 바에야 아예 '무명씨(無名氏)"라고 적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엄격한 학문적(學問的)인 태도이다.

조설근(曹雪芹)을 치켜세우는 사람들, '홍학'을 '조학'으로 바꾼 사람들은 역사의 죄인이고 학술의 삐에로이다.

조설근은 일개 이야기꾼이다
리즈치(李知其)는 작자를 알 수 없다는 견해(見解)를 유지했기 때문에 두스졔(杜世傑)보다는 번거로운 일이 줄어서 작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조설근(曹雪芹)에 대해서는 리즈치(李知其)도 마찬가지로 색은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合理化)하는 이론을 설정했다. 즉 '홍루몽(紅樓夢)'은 금기를 범하여 만주족(滿洲族)에 반대하는 소설이니 작자가 진짜 성명을 밝혀 재앙(災殃)을 초래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조설근(曹雪芹)’은 작자의 성명이 아니라 수수께끼라는 것이다.

하지만 리즈치(李知其)의 이런 설명 자체는 미리 '홍루몽(紅樓夢)'이 만주족(滿洲族)에 반대하는 소설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실증해야 할 명제(命題)를 오히려 논증의 중요한 전제(前提)로 삼아 버린다. 조설근(曹雪芹)이라는 단어에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리즈치(李知其)가 조설근(曹雪芹)이라는 단어에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그는 조(曹)는 조위(曹魏)를 가리키는데 위(魏)자는 예(囈)자와 발음이 비슷하고 설(雪)자는 설(說)과 발음이 비슷하며 근(芹)자는 인(人)자와 발음이 비슷하니 “예설인(囈說人)은 잠꼬대를 하는 사람이니 바꿔 말하자면 바로 '홍루몽(紅樓夢)'을 들려주는 이야기꾼(說書人)”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세상 사람들이 예전부터 이야기꾼을 부를 때 설서선생(說書先生)이라고 했는데 작품 속에서 조설근도 ‘선생’이라고 불린 경우가 많으니 조설근(曹雪芹)은 이야기꾼이라고 주장(主張)했다.

이 추론 자체는 설득력(說得力)이 충분하지 않지만(예를 들어서 ‘근(芹)’자와 ‘인(人)’자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한 것), 어쨌든 조설근(曹雪芹)을 이야기꾼이라고 함으로써 조설근과 '홍루몽'의 관계(즉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상의 관계)를 끊어 버렸으니 가세 결정론을 주장하는 자서전설 논자들의 설명도 근거를 잃어버리게 된다. 리즈치(李知其)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객관적으로 이런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조설근(曹雪芹)과 '홍루몽' 저작 사이의 관계를 끊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리즈치(李知其)가 어떻게 조설근(曹雪芹)을 색은파(索隱派)에게 유리한 인물로 변화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두스졔(杜世傑)와 마찬가지로 리즈치(李知其)도 조설근(曹雪芹)을 만주족에 반대하는 작가라고 주장한다. 두스졔(杜世傑)가 해운(諧韻)의 독법을 근거로 ‘설근’을 ‘사근(寫勤)’으로 읽은 데에 비해 리즈치는 “‘설근’이라는 이름은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여 한을 씻는다는 의미의 ‘설한(雪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조(曹)’자에 대해서 리즈치(李知其)는 “조(曹)자는 호(號)자와 발음이 비슷하여 호곡(號哭)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울부짖을 ‘호(嚎)’ 또는 울 ‘도(啕)’와 발음이 비슷하니 조설근(曹雪芹)이란 곧 울부짖으며 한을 얘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는 이유는 색정(色情)의 일이 한바탕 꿈처럼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멸망한 한 때문”이라고 했다.

‘조설근(曹雪芹)’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수많은 해음(諧音)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왜 가명(또는 수수께끼)이냐는 것이다. 앞서 서술한 두스졔(杜世傑)와 리즈치(李知其)의 예에서 보건대 ‘조설근(曹雪芹)’이라는 단어를 색은의 대상이나 수수께끼로 만드는 것은 소극적인 측면에서 조설근(曹雪芹)의 저작권을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조설근(曹雪芹)을 ‘만주족에 반대하는’ 작자를 지칭(指稱)하는 말로 바꿔 버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런 ‘해운’의 독법은 반만설과 결합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각종 문헌이 보여주듯이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지 가명이 아니다. 이 사실은 ‘해운’의 독법이 직면(直面)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물론 그들이 직면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상의 논술을 종합하자면 자서전파(自敍傳派) 연구자들은 종종 조설근(曹雪芹)의 기인 출신이라는 신분에 집착(執着)하여 그가 만주족에 반대하는 의식을 가졌을 리 없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반만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또 다른 작자론을 자신들을 주장에 배합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서전파의 기인 작자론을 모른 척할 수 없었으니 반만설(反滿說)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몇몇 사람들은 자서전파의 추론(推論)을 묵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도 조설근(曹雪芹)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데에 급급하거나 심지어 ‘조설근(曹雪芹)’이라는 단어에 대해 갖가지 일반인의 의표를 넘어서는 해석(解釋)을 해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