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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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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도 수호자인 설보채와 봉건제도 반역자인 임대옥에 대한 포폄과 비교

图片信息 【红楼梦】   薛寶釵

설보채(薛寶釵)와 임대옥(林黛玉)은 '홍루몽'의 아주 중요한 여자 주인공(主人公)이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에 대하여 '홍루몽(紅樓夢)'이 처음 나타나 유행하던 때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임대옥(林黛玉)과 설보채(薛寶釵)에 대한 포폄(褒貶)이 다른 것 때문에 주먹질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저명한 홍학가(紅學家)인 유평백(兪平伯)의 경우 작자는 설림위일(薛林爲一), 즉 설보채(薛寶釵)와 임대옥(林黛玉)을 하나로 보았으므로 무슨 포폄(褒貶)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主張)했다. 

이 두 인물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見解)가 나타난 이유는 바로 독자들이 보는 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어떤 홍학가(紅學家)는 설보채(薛寶釵)는 봉건제도의 수호자(守護者)이고 임대옥(林黛玉)은 봉건제도의 반역자(叛逆者)라고 보고 그리하여 임대옥(林黛玉)은 치켜세우고 설보채(薛寶釵)는 내리까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체 가부(賈府, 가씨집안인데 홍루몽의 배경이 된 집)에서 사실상 가정배경(家庭背景)이든 경제조건(經濟條件)이든 처세(處世)든 관리능력(管理能力)이든 거주환경(居住環境)이든 건강상황(健康狀況)이든 애정혼인(愛情婚姻)이든 모두 설보채(薛寶釵)는 임대옥(林黛玉)보다 낫다. 그래서 필자는 설보채(薛寶釵)의 가부 내에서의 지위는 임대옥(林黛玉)을 훨씬 초과한다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일곱 개 분야에서 이를 논증(論證)해보기로 한다.

1. 가정배경상
1. 설보채(薛寶釵)의 설가(薛家)는 "4대가족"에 속한다. 자미사인(紫微舍人) 설공의 후예로서 현재의 영내부탕은행상이다. 모친은 가부의 주인인 왕부인의 여동생이다. 설보채(薛寶釵)의 외삼촌인 왕자등(王子騰)은 일찌기 경영절도사를 지냈다. 즉 경성의 군대를 장악한 인물로 명실상부한 군부요인이다. 나중에 구성통제사에 이른다. 왕자등(王子騰)의 계속되는 승진은 설보채(薛寶釵) 모친일가의 가부 내에서의 지위상승(地位上昇)에도 도움이 되었다.

2. 임대옥(林黛玉)의 임가(林家)는 종정지족(鐘鼎之族), 서향문제(書香門第)이지만 "4대가족"에는 끼지 못한다. 부친인 임여해(林如海)는 과거급제출신이고 탐화(3등)를 한 바 있으며 관직은 난태사대부에 이른다. 황제가 친히 찍어서 순염어사(巡鹽御史)로 내보내는데 40세에 요절(夭折)한다. 모친인 가민(賈敏)은 가정(賈政)의 여동생인데 일찌기 죽었다. 임대옥(林黛玉)의 외삼촌인 가정(賈政)도 원외랑으로 지위는 왕자등(王子騰)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가정은 평소에 그저 손님들과 술 마시고 바둑 두며 집안일을 돌보지 않아서 집안일은 모두 부인인 왕부인의 손에 장악(掌握)되어 있었다.

설보채(薛寶釵)는 왕부인의 친여동생의 딸이고 임대옥(林黛玉)은 왕부인의 시누이인 가민의 딸이다. 설보채(薛寶釵)는 왕부인과 혈연관계가 있지만 임대옥(林黛玉)은 왕부인과 혈연관계(血緣關係)가 없다. 누가 가깝고 누가 먼지는 분명한 일이다.

2. 경제조건상
1. 설보채(薛寶釵)의 집안은 황상(皇商)이다. 부친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상당한 재산을 남겨두었고 전당포(典當鋪)도 열고 있었다. 경제조건(經濟條件)은 아주 뛰어났다.

2. 임대옥(林黛玉)의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가부에 의탁(依託)했다. 먹고 입는 것을 모두 가부에 의지했다. 그래서 언행에 항상 조심했고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 설가처럼 가부 내에서 태연하게 머물 수 있는 입장(立場)이 아니었다.

가부에서 가보옥(賈寶玉)을 제외하고는 아랫사람 윗사람 모두 부귀(富貴)를 중시했고 체면을 중시(重視)했으며 모두 가난한 주인을 싫어했다. 이런 환경에서 임대옥(林黛玉)은 자연히 꾹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고 점차 스스로를 고립(孤立)시키게 된다.

3. 위인처세상
1. 설보채(薛寶釵)는 성격이 활달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임대옥(林黛玉)보다 아랫사람들의 인심을 얻었다. 가부의 시녀들은 설보채(薛寶釵)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이외에 설보채(薛寶釵)는 수시로 가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예를 들어 각 자매들에게 궁화(宮花)를 보낸다든지 설반(薛蟠)이 출장(出張)갔을 때 가져온 물건들을 나눠준다든지 했다. 조이낭(趙姨娘)까지도 설가의 선물(膳物)을 받은 후 기분이 좋아져서 왕부인에게 가서 설가에 대하여 좋게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2. 임대옥(林黛玉)은 가부에 들어온 이후 가모(賈母, 가정의 모친)의 보살핌으로 살았다. 의식에 부족한 점은 없었지만 누구도 정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고고(孤高)하였고 속된 것은 눈에 두지도 않았다. 그리고 수시로 성깔을 부렸다. 가보옥(賈寶玉)이 그녀만을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

설보채(薛寶釵)는 가부에서 주인으로서의 이미지나 시녀(侍女)들의 지지에 있어서 모두 임대옥(林黛玉)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설보채(薛寶釵)의 인간관계는 이 점에서 임대옥(林黛玉)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4. 관리능력상
1. 설보채(薛寶釵)는 비록 대갓집 소저(小姐)였지만 어려서부터 모친을 도와 집안일을 보살폈다. 아주 세심하고 근면했다. 설보채(薛寶釵)는 왕희봉(王熙鳳)이 병으로 쉬는 기간 동안 이환(李紈)과 함께 가탐춘(賈探春)을 도와서 집안일을 했으며 가씨집안을 관리하는 삼두마차의 한 명이었다.

2. 임대옥(林黛玉)은 이런 재능이 없었다. 임대옥(林黛玉)은 그저 시를 짓고 소녀의 아름다운 꿈에 탐닉(耽溺)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우수에 젖은 얼굴로 눈물이 그치질 않았으며 가부의 집안일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가부의 일은 어쨌든 왕부인에게서 가보옥(賈寶玉)의 부인에게로 넘어가야 했다. 하물며 가부의 현재상황은 외부적(外部的)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내부는 이미 썩어있었다. 한걸음 한걸음씩 저점 쇠락(衰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더욱 집안경영을 잘하는 사람이 이 국면을 지탱(支撑)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설보채(薛寶釵)는 임대옥(林黛玉)보다 훨씬 적임자(適任者)였다.

5. 거주환경상
1. 설보채(薛寶釵)는 대관원(大觀園)내에서 "형무원(蘅蕪園)"에 거주했다. 원내에는 돌이 영롱(玲瓏)하고 기이한 풀들이 나 있으며 향기가 풍부했다. 양쪽으로는 유랑이 있어 걸어 들어오기 편했고 5칸짜리 깨끗한 집이 연이어 지어져 있었으며 4방으로 복도가 있었다. 녹색창에 기름종이 바른 벽이 아주 청아(淸雅)했다.

2. 임대옥(林黛玉)이 대관원(大觀園)내에서 거주하는 곳은 "소상관(瀟湘館)"이다. 원내의 양쪽에 취죽(翠竹)의 협로(夾路)가 있으며 땅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 찼다. 중간에는 꼬불꼬불한 돌길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꾸불꾸불한 유랑을 지난다. 정방은 3칸인데 하나는 밝고 둘은 어두웠다. 꽃이 피어있고 버드나무그늘이 져있으며 새소리와 계곡물소리가 들렸다.

방위적으로 보면 형무원(蘅蕪園)은 대관원(大觀園)의 정문에서 가장 가깝다. 그러나 소상관(瀟湘館)은 아주 귀퉁이에 놓여 있다. 배치(配置)에서 보면 형무원(蘅蕪園)은 기세가 크고 5칸의 깨끗한 집이다. 그러나 소상관(瀟湘館)은 자그마하면서 운치(韻致) 있게 지었고 정방이 3칸이다. 원내에 심은 식물(植物)로 보더라도 형무원내에는 곳곳에 기이(奇異)한 꽃과 풀이 있고 향기가 가득하나 소상관(瀟湘館)내에는 취죽(翠竹; 푸른 대나무)의 좁은 길이 있고 아주 차갑고 쓸쓸한 느낌이다. 이렇게 집은 나눈 것만 보더라도 설보채(薛寶釵)의 지위가 임대옥(林黛玉)보다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건강상태상
1. 설보채(薛寶釵)는 건강이 아주 좋지는 않아서 자주 "냉향환(冷香丸)"을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태어난 듯하다. 태어나면서 태열(胎熱)에 시달렸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냉향환(冷香丸) 한 알만 먹으면 해결(解決)된다.

2. 임대옥(林黛玉)은 어려서부터 아주 허약했고 기혈(氣血)이 부족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약을 같이 먹는데 어려서부터 계속 이러했다. 그리고 수시로 기침을 하고 식사(食事)를 잘 못하거나 잠을 잘 못자거나 하여 건강상태(健康狀態)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몸은 살아가는 근본(根本)이다. 건강은 성공의 전제(前提)이다. 가씨집안의 며느리가 되려면 수십 수백 건의 집안일을 처리(處理)해야 하고 후손을 잇는 일도 해야 한다. 임대옥(林黛玉)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데도 힘이 부족(不足)하니 다른 일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7. 애정혼인상
1. 설보채(薛寶釵)는 "금옥양연(金玉良緣)"의 장점과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결국 가보옥(賈寶玉)에게 시집간다. 그리고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가부의 며느리가 된다.

2. 임대옥(林黛玉)은 비록 가보옥과 "목석전맹(木石前盟)"이 있었고 가모가 아껴주고 보살펴주었으며 가보옥(賈寶玉)이 그렇게 사랑했지만 결국 가보옥(賈寶玉)과 인연(因緣)이 없었다. 눈물이 마르면서 결국 죽었다.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이 죽기 살기로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임대옥(林黛玉)의 한을 품고 죽어야 하는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가보옥(賈寶玉)은 설보채(薛寶釵)와 결혼하여 금슬(琴瑟)이 좋지는 못했지만 결국 그녀를 처로 맞이해야 하는 운명(運命)을 거스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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