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水滸志)'에는 탄압(彈壓)받는 민중의 절망적인 한숨과 좌절(挫折)이 있고 부패(腐敗)와 부정에 항거하는 열화 같은 분노와 반항(反抗)이 있다.
썩어 빠진 조정에 분연히 반기를 들고 탐관오리(貪官汚吏)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의 활약은 민중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그들의 울분을 달래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영웅담 형식(英雄譚形式)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흐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힘없고 가련한 민중의 애환(哀歡)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情報化時代)의 물결을 타고 지나친 기계화(機械化)와 함께 인간성의 상실을 개탄(慨嘆)하는 목소리가 높은 오늘날에 의기(意氣)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양산박 호걸(梁山泊豪傑)들의 훈훈한 인간미는 우리들에게 시사(時事)하는 바가 크리라고 생각된다.
사진(史進)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23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미성(天微星)에 해당한다. 용맹스러운 미남자(美男子)로 상반신에 9마리의 청룡(靑龍)을 본 따 만든 멋진 문신을 하고 있어서 구문룡(九紋龍)이라는 별호로 불린다.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의 명수로 108성 중 소설 상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다.
화주(華州) 화음현(華陰縣) 사가촌(史家村)의 대장원주(大莊園主)의 아들이며 농사일을 싫어하고 매일 무예를 연마(練磨)하는 데에만 매달렸다. 이에 어머니는 화병으로 죽었으며 아버지는 사진에게 농사일을 시키는 것을 포기(抛棄)하고 7 ~ 8여명의 봉술(杖術) 스승을 찾아 주거나 등에 청룡 무늬 문신을 새겨주었다. 어느 날 밤 언제나처럼 정원에서 봉술 연습(棒術演習)을 하고 있던 도중 고구(高俅)에게 쫓겨 도주 중이던 금군교두(禁軍敎頭) 왕진(王進)에게 "소질은 있지만 빈틈이 있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에 분노한 사진(史進)은 왕진(王進)에게 한 수 시합을 제의했지만 단번에 패하고 말았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왕진(王進)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自請)해 왕진(王進)에게 무예십팔반(武藝十八般)을 배웠으며 6개월 뒤 금군교두(禁軍敎頭) 왕진(王進)은 사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 뒤 연안부(延安府)로 길을 떠났다.
그 뒤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잠시 가업(家業)을 이었으며 주변에 있던 소화산(少華山)의 산적인 주무(朱武), 진달(陳達), 양춘(楊春)이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해오자 진달과 일대일 승부에서 승리해 진달(陳達)을 붙잡았다. 이후 주무(朱武)와 양춘(楊春)이 아무런 무기 없이 단 둘이서 사진(史進)에게로 가 진달(陳達)의 석방을 요청하였고 사진은 이들의 의협심(義俠心)에 반해 진달(陳達)을 석방한 뒤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관원들에게 발각되었고 결국 관원(官員)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 뒤 자신을 산적(山賊)의 두령으로 삼으려는 세 사람의 요청을 거부하고 방랑(放浪)의 길에 나섰다.
이후 스승인 왕진(王進)을 만나러 가는 도중 들른 위주(渭州)에서 제할(提轄)을 맡고 있던 노달(魯達)과 의기투합(意氣投合)했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 뒤 와관사(瓦官寺)에서 노달과 다시 만나 와관사(瓦官寺)를 거점으로 노상강도를 하고 있던 최도성(崔道成)과 구소을(丘小乙)을 퇴치했으며 이후 노달(魯達)과 다시 헤어져 전국을 방랑한 끝에 소화산(少華山)으로 들어가 두령이 되었다.
몇 년 뒤 화주(華州)의 태수(太守)가 북경(北京)의 화가인 왕의(王義)의 딸과 강제로 혼인하려 하자 이에 분노해 태수를 죽이려 하였으나 반대로 잡혀 버렸다. 그 때 노지심(魯智深) 등 양산박(梁山泊)의 호걸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으며 노지심의 추천으로 소화산(少華山)의 산적들과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갔다. 이후 탕산(碭山)의 번서(樊瑞) 일당과의 싸움에서 선봉에 나섰으나 패배했고 동평부(東平府) 전투 당시에는 성 내부로 잠입(潛入)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기병군(騎兵軍) 팔호장(八虎將) 겸 선봉사(先鋒使)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관군과의 싸움에서 동관(童貫)이 이끄는 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수많은 장수(將帥)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뒤 방납(方臘)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석수(石秀) 등 5명의 두령과 함께 정찰에 나섰으나 적에게 발각되어 궁술(弓術)의 명인인 방만춘(龐萬春)이 날린 화살에 목을 맞고 사망(死亡)했다. 즉 조정에 귀순(歸順)한 후엔 요의 초명옥, 조명제, 경요납연을 죽이고 방납(方臘)의 장수 심강, 진성을 살해하는 등의 공적(功績)을 세웠다. 하지만 방납 토벌(方臘討伐) 중에 욱령관에서 소양유기 방만춘(方萬春)이 쏜 화살에 맞고 전사한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때 흡주(翕州) 욱령관을 치기 위해 석수(石秀), 이충(李忠), 설영(薛永), 진달(陳達), 양춘(楊春)과 함께 정탐(偵探)하던 중 적장 방만춘(方萬春)이 쏜 화살에 혼절(昏絶)했다. 다른 장수들이 그를 구해 말에 태워 달아났으나 매복하고 있던 뇌형과 계직의 군사들이 쏜 쇠뇌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전 '삼국지(三國志)'의 책장을 열면 맨 먼저 도원결의(桃園結義)가 나온다. 도원결의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은 것을 말한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意氣投合)을 한 것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에 대한 저자의 법률적 해석이 압권(壓卷)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의형제(義兄弟)가 되기로 맹세한다...이런 경우 호형호제(呼兄呼弟)를 넘어 법적으로도 형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민법은 법정혈족(法定血族)이 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적(制限的)으로 규정하고 있다. 입양을 통해 양자와 양부모 사이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형제자매(兄弟姉妹)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안타깝지만 유비(劉備)와 관우(關羽), 장비(張飛)는 법적으로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관우(關羽)는 관평(關平)을 입양해 친족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죽기로 결의를 한 유비(劉備), 장비(張飛)와는 친족 관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상속권(相續權)을 가질 수도 없다. 유비(劉備)와 장비(張飛)는 관우(關羽)의 분신과도 같은 적토마(赤免馬)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상속받을 수 없다. 도원결의까지 한 유비(劉備)와 장비(張飛)가 적토마(赤免馬)와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상속받을 수 없다니 너무 분하지 않을까. 방법(方法)이 없지는 않다. 바로 유증(遺贈)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증(遺贈)은 죽음과 동시에 증여(贈與)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친족 관계(親族關係)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다만 관우(關羽)가 죽기 전에 미리 의사표시를 해 놓았어야 한다.
뇌를 보면 친구관계(親舊關係) 알 수 있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江南) 간다’는 말이 있다. 친구에게 끌려서 덩달아 어떤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같이 ‘서로에게 끌리는’ 학교 동창(學校同窓)이나 또래 친구(親舊)들끼리 의기투합(意氣投合)해서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남녀노소를 불문(不問)하고 마음과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일은 중요한 사회생활(社會生活)의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의 뇌 과학 연구에서도 친구들은 실제 현실세계(現實世界)에 대해 서로 비슷한 신경반응을 나타내며 각자는 친구들이 하는 방식대로 세계를 인지(認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이런 유사성(類似性)을 통해 친구를 가려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팀은 비디오를 보여주고 뇌가 반응하는 모습을 분석(分析)해 누가 친구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硏究)를 내놓았다. 친구들은 가장 유사한 신경활동(神經活動) 패턴을 가지고 있었고 이어 친구의 친구가 ‘친구(親舊)의 친구의 친구’보다 좀 더 유사(類似)한 신경활동 패턴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사회관계(社會關係)에서의 신경 활동 연구한 첫 사례이다. 약 280명이 모여 있는 대학원생 집단(大學院生集團)의 우정 혹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 연구팀은 상호 기술한 사회적 유대관계(紐帶關係)를 바탕으로 개별 짝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추산(推算)했다. 학생 42명에게는 다양한 비디오를 보도록 하고 비디오를 보는 동안의 신경활동(神經活動)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磁氣共鳴映像) 스캐너로 기록했다.
신경 반응의 유사성(類似性)과 친구들 사이에 가장 강하다. 비디오 내용(內容)은 정치, 과학, 코미디 및 뮤직 비디오 등 여러 주제(主題)와 장르를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반응(反應)이 예상됐다. 각 참가자(參加者)들은 똑 같은 지침(指針)에 따라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같은 순서로 시청(視聽)했다. 연구팀은 친구 사이인 학생들의 쌍들이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서로 좀 더 떨어져 있는 다른 쌍들에 비해 두뇌 활동(頭腦活動)이 더 유사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체 학생집단의 신경 반응(神經反應)을 쌍으로 비교(比較)했다.
분석 결과 신경 반응의 유사성(類似性)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고 이 패턴은 정서적(情緖的)인 반응 및 사물에 대한 관심과 고차원(高次元)의 추론을 이끌어내는 뇌 영역들에서 명확(明確)하게 드러났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연령, 성별, 인종, 국적 등의 변수를 감안(勘案)했는데도 친구들 사이의 신경 활동 유사성은 여전히 분명(分明)했다.
연구에 의하면 fMRI로 검사한 반응(反應)의 유사성을 통해 한 쌍의 짝이 친구(親舊)들인지의 여부뿐만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社會的距離)가 얼마나 되는가를 예측(豫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發見)했다.
친구지간의 관계는 자연적(自然的)으로 끌릴까, 함께 경험 나누어서 끌릴까. 인간인 우리는 사회적인 종(種)으로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 인간의 두뇌(頭腦)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理解)하려면 두뇌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작동(作動)하는지 마음들이 어떻게 서로를 형성하는지를 이해(理解)할 필요가 있다.
연구(硏究)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향력(影響力)이 있으며 우리의 사회관계에서 어떤 위치(位置)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생각하는 방식(方式)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자연적으로 끌리는 것인지 혹은 경험을 공유(共有)하면 더욱 비슷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의 ‘역학(力學)’이 서로를 강화하는지를 탐구(探究)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