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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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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하사한 천리마 척설오추의 실제 이름은 적토마라는 일부 견해에 대하여

图片信息 相传项羽逃之此地 乌骓马踏下山头 今马蹄印尚存于石上.


오추마(烏騅馬)의 실제 이름은 "추(騅)"로, 관련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가 해하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에 최후를 직감하고 부른 ‘해하가(垓下歌)에서 그 애첩이었던 미녀 우희(虞姬)와 함께 언급될 뿐이다. 이 대목에서 사마천(司馬遷)이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후 항우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강동으로 피신 할 것을 권한 오강의 정장에게 천리마를 주었는데 이 '추(騅)' 라는 언급은 없지만 항우가 타고 다니던 명마였다고 하니 아마 정장에게 준 말이 바로 오추마(烏騅馬)였을 것이다.

"추(騅)"에 대한 기록은 고작 이것 뿐 인지라 이 말이 나름 준수한 말이었으며 항우의 애마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중국사 최강의 용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던 초패왕(楚霸王) 항우의 애마였던지라 후대 사람들에게는 여포(呂布)가 타고 다녔다는 적토마(赤免馬)와 더불어 명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하의 이야기는 모두 후대의 소설 속 창작이다.

이후 항우에 대한 민담과 야사가 조합되면서 명나라 대에 창작된 소설 ’서한연의(西漢演義)‘ 등에서는 "오추마"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외모는 각색자들에 따라서 검은 바탕 혹은 청색 털에 흰털이 솟아났다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얼룩말 기본적인 베이스는 칠흑같이 검은 흑마의 모습인데 이는 오추마의 '오(烏)' 자가 주로 오골계(烏骨鷄)처럼 칠흑같이 검은 대상을 나타낼 때 쓰는 까마귀 오(烏) 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는 점은 본디 개천의 흑룡(黑龍)이었으나 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 정도이다. 논밭을 횡행하면서 작물을 짓밟고 다녔으나 기질이 굉장히 난폭(亂暴)하여 아무도 다룰 엄두를 못 냈는데 이 소문을 들은 항우(項羽)가 다가가더니 약 반나절 만에 완전히 길들여 버렸다. 그 이후로 항우와 함께 숱한 전장을 내달렸다. 이문열(李文烈)의 초한지(楚漢志)에서는 이 용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항량의 독백을 빌어 원래 군마로 쓰이다 야생마(野生馬)가 된 말을 잡아다 바치면서 덧붙인 프로파간다 정도로 묘사한다. 보면 알겠지만 부케팔로스 설화와 비슷하다. 어딜 가든 사람 생각은 비슷하나 보다. 또한 항우가 오추마를 길들이는 과정을 지켜본 부농이 항우에게 자신의 딸(虞美人)을 첩으로 삼으라고 부탁하였는데 본의 아니게 중매역도 서게 된 셈.

이후 항우가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고 더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에 휘하에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결사의 탈출을 시도하였을 때에도 함께 하였다. 항우(項羽)가 목숨을 잃고 오강을 통하여 남은 강동의 정병들이 떠날 때 함께 배에 올라탔으나 주인이 목숨을 잃은 것을 알아채고는 한 차례 울부짖고 강으로 뛰어들었다가 그만 물살에 휩쓸려 가라앉았다가 더는 나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이야기로는 항우가 죽음을 결심하면서 살아남은 부하들을 배에 태우고 이 오추마(烏騅馬)도 부하들에게 마지막 보내는 선물 삼아 같이 태웠는데 오추마는 배에 올라타게 된 후에야 주인이 자신과 헤어지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강으로 뛰어들다가 그만 가라앉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애처로운 이야기.

이런 드라마틱한 묘사들은 후대의 각색일 뿐, 앞서 언급하였듯이 실제 항우(項羽)의 애마였던 "추"에 대한 기록은 ’사기‘에 대한 짤막한 구절이 전부인지라 그저 항우가 저런 이름의 말을 타고 다녔다는 점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말이 중간에 한번 바뀌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으며 이문열 초한지에서도 이 설을 채택한다. 말이 전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이 유방(劉邦)과 항우가 싸운 기간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중간에 말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추측은 적토마에도 나오지만 사실 적토마(赤免馬)의 경우 사서에 한줄 달랑 나온 걸 주인을 3번이나 바꿔가며 30년 동안 써먹은 소설의 창작에 가깝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그런데 항우의 활동 기간은 7년 정도에 불과하다. 스토리가 꽤나 긴 것 같지만 실상 몇 년 되지 않는 초한지와 시작부터 최소 제갈량(諸葛亮) 사후까지 50년인 삼국지와 호흡이 비슷해서 일어나는 착각에 가까우며 7년 정도면 큰 외상을 입지 않는 한 말 한 마리가 팔팔하게 뛰어다니기는 충분한 기간이다. 이문열의 초한지에서는 이 때문에 오추마(烏騅馬)가 함양 함락 후 급사, 항우가 은밀하게 다른 말을 찾아 대신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추마가 상징하던 항우의 어떤 권위가 퇴색하기 시작했다는 암시적 장치인 듯하다.

최소한 호복기사(胡服騎射)부터, 전마(戰馬)는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반려였다. 북방의 흉노, 거란, 여진, 몽골 등 민족이 중원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심지어 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기병(騎兵)이 강대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냉병기(冷兵器)시대에만 적합할 뿐 아니라 근대 내지 현대의 전쟁에도 여전히 이 병종이 있다. 치빙강장(馳騁疆場)이라는 단어는 설명해준다. 전선에 나가있는 장수에게 좋은 말을 하나 가진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좋은 자가용을 하나 가진 것과 같다. 그래서 "분치(奔馳)", "보마(寶馬)"라는 번역명칭이 나온 것이다.

사대명저 중에서 ’홍루몽‘을 제외하고는 모두 명마(名馬)를 묘사하고 있다. ’서유기‘에는 당승(唐僧)이 타는 백룡마(白龍馬)가 있고 필마온(弼馬溫)이 기르는 많은 천마(天馬)가 있다. ’삼국연의‘에는 단계(檀溪)를 날아 넘어 유비의 목숨을 구한 노마(盧馬)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것은 먼저 여포의 것이었다가 나중에 관우의 것이 되는 적토마(赤兎馬)일 것이다. ’수호전‘에도 두 필의 좋은 말이 묘사된다. 한 필은 송휘종(宋徽宗)이 호연작(呼延灼)에게 하사하는 척설오추이고 다른 한 필은 단경주(段景住)가 송강(宋江)에게 보내려고 하는 조야옥사자(照夜玉獅子)이다. 조천왕(晁天王)의 생진강(生辰綱)을 강탈한 논리대로라면, 불의지재(不義之財)는 누구든지 빼앗아 가질 수 있다. 단경주가 금나라에서 훔쳐온, 이 조야옥사자는 도중에 증두시(曾頭市)에 강탈당한다. 그래서 양산박(梁山泊)과 증두시 두 비관방군사집단(非官方軍事集團)은 이 '불의지재'의 소유권을 쟁탈하기 위하여 양산박의 제2대 지도자의 핵심인 조개는 독화살에 목숨을 잃었고, 증두시는 촌파인망(村破人亡)의 침중한 댓가를 치렀다.

여기서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척설오추(踢雪烏騅)'이다. 고구(高俅)는 양산박의 호한들이 고당주(高唐州)를 무너뜨리고 그의 숙백형제인 고렴(高廉)을 죽인데 한을 품고 황상에 주절을 올려 조정에서 병력을 파견하여 양산박의 도적을 평정하도록 요청한다. 여기서 뽑힌 장수는 하북명장(河北名將) 호연찬(呼延贊)의 적계자손인 호연작이었다. 명장에게는 명마가 있어야 한다. 송휘종은 그 자리에서 호연작에게 척설오추마(踢雪烏騅馬)를 하사한다. 책에는 이 말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말은 온 몸이 묵정(墨錠)처럼 새카맣고 네발은 눈처럼 하얗다. 그래서 척설오추(踢雪烏騅)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말은 하루에 천리를 간다."(제54회). 무릇 상사가 부하에게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은(하물며 황제가 주는 것은), 하나는 부하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를 격려하는 것이다. 황제가 천리마(千里馬)를 하사한 뜻은 분명하다. 그것은 호연작(呼延灼)이 성은을 어기지 않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라는 것이다.

예술에 뛰어난 송휘종(宋徽宗)은 비록 황제의 역할을 잘하지 못했지만 이 출발점은 문제가 없다. 이것은 어떤 권력가가 가노를 매수하거나 타수(打手)를 고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고상하다. 유사한 사례는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온다. 동탁(董卓)은 적토마를 줌으로써 여포로 하여금 옛 주인을 배신하고 동탁의 방흉(幇凶)과 조아(爪牙)가 된다. 이리하여 소설에서 가장 욕을 얻어먹는 '삼성가노(三姓家奴)'가 된다. 

조조(曹操)는 적토마를 다시 관우(關羽)에게 준 동기도 그다지 고상하지 못하다. 관우를 자신의 다리 아래의 천리마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상마제금(上馬提金), 하마제은(下馬提銀), 삼일에 작은 연회와 오일에 큰 연회를 베풀고 심지어 한수정후(漢壽亭侯)로 봉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관우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적토마(赤免馬)를 하사하자 관우(關羽)는 즉시 엎드려 감사인사를 한다. 조조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말한다. "내가 미녀와 금은보화를 내려도 공은 절을 하지 않더니 이제 내가 말을 내리지, 기뻐하면서 다시 절을 하다니 어찌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짐승을 귀하게 여기는가?"(삼국연의 제25회). 관우는 '신재조영심재한(身在曹營心在漢)", 참안량(斬顔良), 주문추(誅文醜)했지만 어쨌든 조조를 도와 백마지위(白馬之圍)를 풀어준다.

호연작(呼延灼)이 이 척설오추(踢雪烏騅)를 하사받은 것은 기실 그도 조송황실이 쓰는 천리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운이 따르지 않아 전투에서 패배하고 호연작은 필마단편(匹馬單鞭)으로 청주(靑州)로 도망간다. 그에게 유일하게 다행스러운 것은 이 황제가 하사한 명마이다. 그래서 그는 도중에 점포에 머무를 때 특별히 주보(酒保, 술집종업원)에게 부탁한다. "나는 조정의 군관이다. 양산박을 치려다가 실패해서 청주의 모용지부(慕容知府)에게 가는 중이다. 너는 이 말을 잘 먹여라. 이건 황상(皇上)이 하사한 것이고 이름은 '척설오추마(踢雪烏騅)'이다. 내일 너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제57회). 미인은 청경(靑鏡)을 좋아하고, 명사는 고연(古硯)을 좋아하고 대장은 양마(良馬)를 좋아한다. 하물며 양마가 황상이 하사한 것임에야. 

김성탄(金聖嘆)은 호연작(呼延灼)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한다. "이 글에 쓴 것은 대군이 전멸한 이후이다. 다른 뛰어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으면서, 그저 이 말만 자랑한다." 그래서 이 말은 그의 유일한 정치자본이자 정신지주(精神支柱)가 된다. 애마가 도화산(桃花山)의 도적에게 도둑맞자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그는 정말 알거지가 되었다.

김성탄(金聖嘆)이 말한다. "무릇 호연작(呼延灼)이 말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데서도 아니고 그 신마가 아까워서도 아니고 이를 가지고 회복하려 해서도 아니다. 천하의 감정은 환난을 같이 겪은 것보다 깊은 것이 없다. 인생의 정은 오랫동안 함께 한 것보다 중한 것이 없다." 이 말은 이치에 맞는 것 같으면서도 맞지 않는다. 호연작(呼延灼)과 이 명마는 환난을 함께 했다. 이는 형이상학적인 분석의 단계이다. 그러나 호연작(呼延灼)에게는 현실의 곤경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시급한 일이다. 

명장은 명마를 사랑한다. 신마를 잃은 것은 당연히 안타깝다. 하물며 이 말은 황상의 '특별한 은혜(恩惠)"를 상징하는 것이다. 더더구나 중요한 것은 호연작(呼延灼)이 청주로 도망가서 모용지부(慕容知府)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것은 바로 모용귀비(慕容貴妃)의 베개송사를 위한 것이고 '이를 기화로 회복'하고 동산재기(東山再起)하려고 꾀하였기 때문이다.

양산박은 여러 번에 걸친 전투에서 조정의 명장을 포로로 잡으면 송강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당금 조정은 어두워서 간신이 득세한다." 어쩌고저쩌고한다. 간신이 득세한다는 것은 충신들이 쓰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호연작의 문제에서, 이런 말은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호연작(呼延灼)은 여녕군도통제(汝寧郡道統制)로 지금으로 하면 지구사령관의 지위이다. 그가 대송왕조의 만 명이 넘는 정예병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고태위(高太尉)가 추천해준 공이 크다. 이것은 양지(楊志)가 평생을 분투해도 얻지 못했던 기우(機遇)이다. 

양지(楊志)는 동경에서 고구에 의하여 전수부(殿帥府)를 쫓겨난 후 일찌기 객점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일신의 재능을 가지고 창하나 칼 하나를 가지고 봉처음자(封妻蔭子)를 얻어내고 조상을 빛내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쫓겨나는구나. 고태위(高太尉) 너는 너무 악독하다. 이렇게 각박하구나."(제22회). 양지(楊志)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임충(林沖), 서녕(徐寧) 등도 그렇지 않았는가?

태평성대에 간신이 사람을 기용하는 기본원칙은 무대랑개점(武大郞開店)이다. 항상 '구웅(狗熊)'을 쓰지, 영웅을 쓰지 않는다. 용재(庸才)를 쓰지 인재(人才)를 쓰지 않는다. '구웅'과 '용재'의 아부(阿附)는 권세가에게 정신적인 기쁨을 주고 영웅이나 인재처럼 간신소인의 무능과 볼품없음을 드러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허영, 지위 및 권세에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전란시대가 되면 고구(高俅)와 같이 동생의 복수를 생각할 때는 곁에 있는 아부를 잘하는 용재와 노재(駑才)는 어쨌든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 이런 때 호연작(呼延灼)과 같은 진정한 영웅과 인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영웅과 인재라고 하더라도 고구의 마음속에서는 그 지위가 척설오마(踢雪烏騅)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그저 그를 태워주고 그가 쓸 수 있는 한 마리의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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