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宋江)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숙야(張叔夜)에게 토멸당하였다" 정도가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양산박이 의(義)를 내세우는 집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대 두령 조개(晁蓋)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송강(宋江)의 취임식 행사 때 발견된 비문(碑文)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어 이후 주장과 부장을 결정하는 데에도 이 서열(序列)에 따랐다는 점이다.
양산박의 최대파벌(最大派閥)은 의심할 여지없이 송강(宋江) 자신의 파벌이다. 송강의 적계(嫡系)는 3부분을 구성된다.
첫째는 그의 적계(嫡系)의 적계이다. 여기에는 송강(宋江)이 양산박에 들어가기 전의 친구형제인 화영(花榮), 오용(吳勇), 주동(朱仝), 뇌횡(雷橫), 그의 친동생인 송청(宋淸), 그리고 강주감옥(江州監獄)에서 생사를 함께 한 대종(戴宗), 또한 그를 따르는 이규(李逵)가 있다. 또한 그의 제자인 공명(孔明), 공량(孔亮)도 있다. 여기에 그의 신변호위인 여방(呂方), 곽승(郭勝)이 있다. 둘째는 송강에 의존하는 소계파(小系派)이다. 주로 청주(靑州)의 항장(降將)인 진명(秦明), 황신(黃信)이 있다. 그중 진명은 화영과 처남매부간이다. 이 관계로 진명은 송강의 직계(直系)의 직계로 분류할 수도 있다. 청풍산(淸風山)의 연순(燕順), 왕왜호(王矮虎), 정천수(鄭天壽), 여기에 나중에 왕왜호(王矮虎)에 시집간 호삼낭(扈三娘)이 있다. 게양진(揭陽鎭)의 이준(李俊), 이립(李立), 목홍(穆弘), 목춘(穆春), 장횡(張橫), 장순(張順), 동위(董威), 동맹(董猛), 설영(薛永), 후건(侯健)이 있다. 황문산(黃門山)의 구붕(歐鵬), 장경(蔣敬), 마린(馬麟), 도종왕(陶宗旺)이 있다. 이들은 모두 송강이 직접 초모(招募)한 자들이다. 셋째는 간접적으로 송강파벌에 투신(投身)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투신해온 석용(石勇), 대종이 초모한 양림(楊林), 이규가 초모해온 탕륭(湯隆), 초정(焦挺), 포욱(鮑旭), 주부(朱富)등이 있다. 합계 38명이다. 이는 양산박(梁山泊) 조직의 1/3이다. 여기서 언급(言及)할만한 점이라면 이준(李俊)을 우두머리로 하는 게양진파벌(揭陽鎭派閥)은 합계 10명인데 비록 송강에 의탁(依託)하였지만 단독으로 독립(獨立)하더라도 상당히 실력(實力)있는 파벌이 될 것이다.
양산박의 제2대 파벌은 노지심(魯智深)의 삼산(三山)계통이다. 삼산은 원래 이룡산(二龍山)의 노지심, 양지(楊志), 무송(武松), 시은(施恩), 조정(曹正), 장청(張靑), 손이낭(孫二娘)과 도화산(桃花山)의 주통(周通), 이충(李忠)과 그리고 백호산(白虎山)의 공명(孔明), 공량(孔亮)을 가리킨다. 다만 공명, 공량은 송강의 제자라는 관계가 있고 두 사람은 양산박에서 송강(宋江)의 신변호위를 맡기도 했으므로 송강의 적계(嫡系)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소화산(少華山)의 사진(史進), 주무(朱武), 진달(陳達), 양춘(楊春)은 노지심(魯智深)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다. 그래서 삼산(三山)은 이룡산(二龍山), 도화산(桃花山)과 소화산(少華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파벌에는 13명이 있다. 그중 무송(武松)은 송강과 관계가 깊다. 일찌기 시진(史進)의 장에서 무송은 송강에게 회유(懷柔)된다.
양산박의 제3대 파벌은 원래 양산박의 조개(晁蓋) 계통이다. 조개가 죽은 후에는 임충(林沖)이 이 파벌(派閥)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들은 송강(宋江)이 양산박에 올랐을 때 왼쪽에 앉아있던 그 두령들이다. 임충(林沖), 유당(劉唐),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 완소칠(阮小七), 두천(杜遷), 송만(宋萬), 주귀(朱貴), 백승(白勝)이다. 그중 주귀(朱貴)는 송강 적계(嫡系)인 주부(朱富)와 형제간이다. 이 파벌은 양산박의 가장 원로(元老)들이고 양산박에 대한 공헌(貢獻)이 가장 큰 파벌이다. 그중 유당(劉唐)과 삼완(三阮)은 모두 오용(吳用)과 함께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한 생사형제(生死兄弟)로 송강과도 관계가 깊다. 임충은 삼산계통(三山系統)의 우두머리인 노지심(魯智深)과 생사지교(生死之交)이다. 이 파벌은 모두 9명이 있다.
양산박의 제4대 파벌은 항장(降將)파벌이다. 주로 여러 번에 걸쳐서 양산을 토벌하거나 양산이 적극적으로 관군을 공격(攻擊)할 때 양산박에 항복(降伏)한 정부군의 군관들로 구성되었다. 임충(林沖), 진명(秦明), 화영(花榮) 등은 비록 전 정부군 군관출신(軍官出身)이지만 양산박과 관계가 깊다. 일찌기 가입했으므로 항장계통(降將系統)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파벌은 비교적 느슨하다. 명목상의 영수(領袖)는 대도 관승(關勝)이다. 그리고 3개의 소파벌에다가 쌍창장 동평(東平)이 추가된다. 3개의 소파벌은 호연작(呼延灼)파벌, 관승파벌, 그리고 장청(張淸)파벌이다. 호연작 파벌은 주로 양산박이 고당주(高唐州)를 격파한 후 제1차로 조정(朝廷)이 파견한 토벌군의 군관으로 호연작(呼延灼), 한도(韓滔), 팽사(彭사), 능진(凌振)의 4명이다. 관승파벌은 비교적 큰 파벌인데 주로 양산 대명부(大名府) 때 조정이 파견한 두 번의 토벌군 군관이다. 모두 관승(關勝), 선찬(宣贊), 단정규(單廷珪), 위정국(魏定國) 에 관승이 복속(服屬)시킨 대명부 상교단장 색초(索超)의 6명이다. 장청파벌(張淸派閥)은 양산이 동창부(東昌府)를 칠 때 받아들인 동창부의 정부군 군관이다. 장청(張淸), 공왕(龔旺), 정득손(丁得孫)의 3명이다. 이 느슨한 항장파벌(降將派閥)은 합계 14명이다. 다만 개별파벌(個別派閥)의 인수가 비교적 적고 전체적으로 연결이 긴밀(緊密)하지 않아서 여기서 이를 제4대 파벌로 놓는다.
양산의 제5대 파벌은 노준의(盧俊義) 파벌이다. 노준의는 양산박에 들어온 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의 파벌(派閥)은 있다. 주요 구성원은 충성심(忠誠心)이 가득한 연청(燕靑)과 북경에서 감옥(監獄)에 있을 때 생사지교를 맺은 석수(石秀), 석수와 노준의(盧俊義)의 관계는 대종(戴宗)과 송강(宋江)의 관계에 비견(比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도우는 채복(蔡福), 채경(蔡慶) 형제가 있다. 양웅(楊雄), 시천(時遷)은 석수와 일체이다. 그래서 석수(石秀)의 관계로 이 두 사람도 노준의(盧俊義) 파벌에 포함시킬 수 있다. 노준의(盧俊義) 파벌은 모두 7명이다.
이외에 양산박에는 소파벌(小派閥)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손립(孫立)의 등주(登州)파벌이 있다. 이들은 삼타축가장(三打祝家莊) 때 양산에 의탁한 해진(解珍), 해보(解寶), 손립, 손신(孫新), 추연(鄒淵), 추윤(鄒潤), 고대수(顧大嫂), 낙화(樂和)등 8명이다. 이 파벌(派閥)의 인원은 적지 않으나 중량급의 인물이 없어서 소파벌에 머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파벌은 공손승(公孫勝)파벌이다. 주요 인원은 망탕산(芒砀山)의 번서(樊瑞), 항충(項沖), 이곤(李袞)의 세 사람이다. 공손승(公孫勝)이 번서를 제자로 거두어 망탕산의 일파는 공손승의 휘하로 들어간다. 공손승(公孫勝)은 오용(吳用) 및 조개파벌(晁蓋派閥)과 관계가 깊다. 본인도 기인이사(奇人異士이다. 비록 양산의 지위는 높지만 본인이 수도인(修道人)이고 조용히 지내기 때문에 이 파벌은 아주 조용한 편이다.
그리고 음마천(飮馬川)파벌이 있다. 모두 배의(裴宜), 등비(鄧飛), 맹강(孟康)의 세 명이다. 이 파벌은 송강(宋江)의 적계의 적계(嫡系)인 대종(戴宗)이 양산박으로 끌어들였다. 송강적계에 의탁(依託)한 소파벌로 보아도 좋다.
또한 이가장(李家莊)의 이응(李應)과 두흥(杜興)이 있다. 비록 2명이지만 소파벌(派閥)로 볼 수 있다. 이 파벌의 두흥(杜興)은 노준의 파벌의 양웅과 연원이 깊다. 이응(李應) 본인의 배경과 처지는 노준의(盧俊義)와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소파벌은 노준의에 가깝다. 억지로 우겨넣는다면 노준의(盧俊義)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는 비교적 독립적인 10명의 호한이다. 그들은 시진(柴進), 서녕(徐寧), 소양(蕭讓), 김대견(金大堅), 안도전(安道全), 왕정륙(王定六), 이운(李雲), 황보단(皇甫端), 욱보사(郁保四), 단경주(段景住)이다. 그러나 고립(孤立)된 것은 아니다. 시진(柴進)은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많은 흑도분자(黑道分子)들에게 은혜가 있다. 양산박(梁山泊)에서 그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도 송강(宋江), 임충(林冲), 무송(武松)의 3명 중량급인물이 있다. 그래서 그의 지위는 아주 초연(超然)하다. 서령(徐寧)은 사촌동생 탕륭(湯隆)에게 속아서 양산으로 왔다. 본인은 전 정부군 군관이다. 항장파벌(降將派閥)과 비교적 가깝다. 소양(蕭讓)과 김대견(金大堅)은 대종(戴宗)이 양산으로 데려왔다. 이 두 사람은 송강적계(宋江嫡系)와 관계가 상대적으로 가깝다. 안도전(安道全)과 왕정륙(王定六)은 장순(張順)이 양산으로 데려왔다. 그중 왕정륙은 스스로 원해서 왔고 안도전은 협박(脅迫)을 받아서 왔다. 이운(李雲)은 주부(朱富)가 이규(李逵)와 함께 협박해서 양산으로 오게 만들었다. 황보단(皇甫端)은 장청(張淸)이 데려왔다. 그래서 항장파벌(降將派閥)과 관계가 비교적 좋다. 욱보사(郁保四)는 원래 양산의 적이다. 그런데 자신의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양산의 유혹(誘惑)에 넘어와 양산에 가입한다. 단경주(段景住)는 자신이 스스로 양산에 투신한다.
이 10명은 비교적 독립적인데 전문기술인재(專門技術人才)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서령(徐寧)은 구겸창(鉤鎌槍)의 기술전문가이다. 소양(蕭讓)은 서예전문가(書藝專門家)이다. 김대견(金大堅)은 전각(篆刻)전문가이다. 안도전(安道全)은 의사이다. 황보단(皇甫端)은 수의사이다. 단경주(段景住)는 상마(相馬)전문가이다. 이 각도에서 보자면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인물들은 비교적 파벌(派閥)에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고 이들 전문기술자(專門技術者)들은 조직에서 필요로 하지만 지위는 그다지 높지가 않다. 이 점은 양산박(梁山泊) 시대부터 그러했고 지금의 군대계통(軍隊系統)에서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