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의 주인공들인 양산박 호걸들을 여러가지 개성있는 인물들로 재해석하면서 작품에 신선함을 부여했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세계관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수호전을 만나 작품의 탄생 배경과 전달하고자 하는 의중을 알아봤다.
우선 수호전의 인물들이 결코 정의로운 영웅들이 아니다. 불의를 못 참기도 하지만 자기 분을 못 이겨 살인을 하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그것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다. 원래 정의로우면서 사심없이 정의만을 위해 악과 싸우는 영웅은 지금의 트렌드는 아닌 것 같아요. 악이 악을 응징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권선징악의 그것보다 더 매력있게 느껴집니다. 다만 이렇게만 전개되면 정의는 아무 힘이 없는 것으로 스토리가 나갈 수도 있어서 양산박의 심경 변화라든지,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등의 장치를 구상해 뒀습니다. 이야기를 진행을 통한 캐릭터의 변화를 살펴보시는 것도 좋은 감상포인트가 될 수 있겠네요.
작품의 카피가 ‘모든 영웅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인데요. 지구를 지옥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나타난 악마들, 그리고 그 지구를 지옥으로 넘기지 않기 위해 고용된 또 다른 악마들 사이의 전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지구를 배경으로 제국군과 양산박 사이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극락의 옥황상제와 지옥의 염라대왕 간의 암투가 존재하는 다층적인 스토리입니다. 이 두 가지가 수호전의 독자층을 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지향으로 만들고 있다 보는데요. 소년만화 특유의 열혈 액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앞으로는 의외의 슬픈 전개도 펼쳐질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극중의 배경이 지구, 극락, 지옥에 이르는 방대한 세계관이라 가볍게 웹툰을 즐기시는 독자들보다 만화를 깊게 파고드는 독자분들께 더 어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호지에 남자가 있는가? 아마 이렇게 물으면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108명의 사나이들 중에 여자는 몇 명이 없다. 나머지는 전부 남자들이 아닌가?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남자로서 약간 이상한 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왜 대부분 마누라를 두지 않았는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성년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천성이다. 속담을 빌리자면 개가 자라면 자연히 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호지의 남자들은 왜 대부분 마누라나 첩을 두지 않았을까? 그들은 곳곳에서 강도짓을 하고 다녔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야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잣집의 규수들도 그들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믿지 못하겠다. 그녀들의 하늘하늘한 아름다움과 교태어린 말투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송나라 때의 남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는지를 의심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금방 이런 생각을 버렸다. 고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충의 처를 취하려 했고 서문경은 우리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도호(鄭屠戶, 노지심에게 맞아죽은 사람)의 곁에도 여인이 무리지어 있었고 중(僧)인 배여해(裴如海)도 밥이나 축내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로써 볼 때 그 당시의 남자들의 심리나 생리는 모두 정상이었다.
마누라들은 왜 모두 흡인력이 없는가? 반금련은 별론으로 하자. 이 불쌍한 여인은 소똥에 꽂은 예쁜 꽃과 같으니 바람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양웅(楊雄)은 망나니이다. 그런데 반교운(潘巧雲)은 그에게 시집간다. 그러니 처음에 그의 직업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남자로서의 기운이 넘치고 절대 중인 배여해(裴如海)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교운(潘巧雲)은 늙은 중과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양웅이 반교운의 오장육부를 나무에 걸어두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아마도 스스로 비참하게 생각되어 극악한 짓거리를 하게 된 것일 것이다. 송강이 양산에 올라 급시우(及時雨)로 존경받게 되는 것은 이 많은 사나이들을 관장할 수 있고 그 많은 돈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성공남자의 기본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처인 염파석(閻婆惜)은 장삼(張三)과 놀아난다. 이는 송강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자기의 마누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사나이들 중에는 마누라를 가진 경우도 여럿 있다. 모야차(母夜叉), 호삼랑(扈三娘)과 모대충(母大蟲)과 같은 괴물들이다. 남자들보다도 흉맹하고 거칠다. 이런 마누라들이 남자의 흥미를 끌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들은 그저 '형제'로 칠뿐이다.
수호전에 나오는 남자들은 아무도 자식을 두지 못한 것 같다. 마누라가 없는 사람이야 그만이라고 쳐도 마누라를 취하고도 아들딸을 하나도 두지 못하였을까? 옥시 내가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나 부주의하여 빠트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주 유감이다. 사나이의 사업이라는 것은 대대로 계승해야 한다. 후계자가 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런데도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생리적(生理的)으로 문제가 있는가? 이것도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더 이상은 추측하지 않겠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주제로 돌아와서 제대로 얘기해보자. 수호전의 작가인 시내암(施耐庵)의 이력을 약간만 주의해본 독자라면 이 자는 관료로서의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파락호, 떠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다 보니 자연히 대갓집 규수들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자신은 진사로서의 자부심은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먹을 수 없는 포도는 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는 소설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시내암 진사는 여자의 머리에 똥물을 끼얹었으니, 남자들의 불알을 까는 일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분투해야 하고, 항쟁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하더라도 여자를 가지고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폄하하고, 여자들을 화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좋다. 그래도 여자들은 강한 남자를 도와서 천하를 얻고, 강한 남자를 도와서 천하를 망하게도 한다.
3.18사건의 사료를 읽다보니 단기서의 병사들이 여학생을 공격했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 마을에 예쁘기로 유명한 여선생이 있었는데 문혁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마을의 남자들이 그녀를 욕하는 말은 거의 모두 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떻게 역겹고 어떻게 욕을 하는지 마치 그녀는 천하에서 가장 못생기고 가장 음탕하고 가장 악독한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그저 보통의 여선생이었을 뿐이다. 나중에 그녀가 아주 비참하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후에 그 곳에 있지 않았으니까?
얻지 못하겠는 것은 밟아서 죽여 버린다. 이것이 바로 여자를 능멸(凌蔑)하는 논리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당당한 이유를 내세우더라도 그들이 여자를 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서양철학의 원조인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는 욕설은 기본이고 쩍하면 남편을 손찌검까지 해서 악처로 전해지고 있다. 크산티페가 처음부터 악처였을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결혼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 왜 그녀가 악처로 변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에 대해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자는 결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인데 여자가 문제라는 것이 전통사회의 남존여비 기본관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제자가 문전을 차고 넘쳐 수입이 짭짤했다. 그러나 아내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 많은 돈을 모두 유흥에 탕진했다. 그것도 모자라 동성애에 빠져 아내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가 악처로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고기잡이 달인이었던 강태공은 세상도 들어 올려 유명해졌다. 강태공은 젊어서 책벌레였다. 가족이 입에 풀칠 어려워도 전혀 개의치 않고 책만 붙잡고 있었다. 어느 하루 아내가 곡식을 말리려고 뜨락에 널어놓고 밭일 나갔다. 그 시대는 일기예보도 신통치 않아 설마하면서 널어놓았고 가령 비가 내리면 남편이 집에 있으니 당연히 거둬들이겠거니 하고 시름 놓았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곡식은 한 알도 남지 않고 몽땅 비에 쓸려갔다. 곡식이 없으니 뭘 먹고 살아간단 말인가? 이정도로 맹하기 그지없는 남편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서 강태공의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갔던 것이다.
훗날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져 그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이 크게 출세하자 집 나갔던 아내가 찾아왔다. 강태공은 대야에 담은 물을 바닥에 엎질러 놓고 아내더러 주워 담으라 했다. 아내가 이미 엎지른 물을 어떻게 주워 담느냐고 물었더니 강태공은 ‘너의 처지가 이 물과 같으니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했다.‘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은 이 고사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공부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허생은 젊어서 아내와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딱 10년 만 참고 기다리면 내가 크게 출세하여 호광 시켜 줄 것이니라.’ 그러니까 ‘나는 10년 동안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책만 읽겠으니 네가 고생을 다 하게나.’는 약속이었다. 아내가 약속은 했지만 7년을 버티고 도무지 더 지탱할 수가 없어 그만 집을 나가고 말았다. 후에 허생은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할 만큼 출세하였고 그의 아내는 집 나간 것이 죄가 되어 악처로 이름을 남겼다.
강태공의 아내와 허생의 아내는 제 발로 집 나간 사례이나 역사적으로 아내를 쫓아낸 유명인사도 꽤 많다. 따지고 보면 쫓아낼 사유도 아닌 것을 갖고 아내를 쫓아냈으니 어이없는 일로 보이지만 그 시대상황에서는 쫓겨난 아내들을 모두 악처로 평가했다.
공자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늘 목이 좋지 않았다. 공자의 아내가 남편을 걱정하여 배즙을 짜서 다려 대접했다. 그런데 공자는 배즙이 제대로 덥혀지지 않았단 이유로 아내를 쫓아냈다. 공자는 이와 같이 별거 아닌 일로 아내를 세 번이나 쫓아냈다. 이유가 아닌 이유로 아내를 세 번이나 쫓아냈으면서도 불구하고 공자는 인류역사 이래 최고의 도덕권좌에 올라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지만 이것 갖고 후세 사람들이 공자를 폄하하지 않았고 그의 성인의 지위는 굳건했다.
오기(吳起)가 아내를 쫓아낸 이유는 더욱 가관이다. 오기는 전국시대 초기 위(衛)나라 사람으로 대략 기원전 440년에 태어나 기원전 38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찍이 노(魯)·위(魏)·초(楚)에서 벼슬하면서 많은 공을 세우고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오기는 아내에게 실로 허리띠를 짜게 했는데 폭이 치수보다 좁았다. 오기는 그것을 고치게 했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 “알았어요.” 허리띠가 완성되어 다시 재보니 여전히 치수에 맞지 않았다. 오기는 화를 냈다. 그의 아내가 대답했다. “저는 시작할 때 날줄(經)을 매어놓았기 때문에 고칠 수 없어요.” 오기는 그녀를 내쫓았다. 그의 아내는 오라비에게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오기는 법을 실행하는 자이다. 법을 실행하는 것은 만승의 나라를 위해 공을 이루려는 것이다., 반드시 먼저 처첩에게 실천한 뒤에 국가에 실행하는 것이다. 너는 집으로 들어가기를 기대하지 마라.” 오기의 처의 동생 또한 위나라 왕에게 중용했으므로 위나라 왕의 권세로 오기에게 다시 부탁했다. 오기는 따르지 않고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들어갔다. 일설에는 이렇게 돼 있다. 오기는 그의 아내에게 허리띠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나를 위해 허리띠를 만들되 이것과 똑 같이 하시오.” 오기의 아내가 허리띠가 완성되자 가져왔는데 그 허리띠는 매우 훌륭했다. 오기가 말했다. “당신에게 허리띠를 만들도록 하면서 이것과 똑같게 하라고 했소. 그런데 지금 것이 더욱 훌륭하니 어찌 된 일이오?” 그의 아내가 말했다. “사용한 자료는 똑같은 것이지만 공을 더했더니 훌륭하게 됐습니다.” 오기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과 다르오.” 그러고는 아내를 친정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서 딸을 받아주기를 요청했지만 오기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안은 빈말을 못합니다.” 진짜 트집이라도 이런 트집이 없다. 그러나 억울한 아내는 억울한 여자가 아니라 악처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전통사회 악처들을 요즘 세월 기준으로 말하면 악처가 아니다. 물론 전통사회에서도 남편을 음해한다던가, 시댁식구들을 못 살게 군다든가 하는 부녀들이 꽤 많았는데 이런 부류의 여자를 악처라 부르지 않고 독부(毒婦)라 지칭하였던 것이다.
독부라 하면 대개 미녀가 떠오르고 미녀는 마음이 독한 여자로 취급되었다.중국어 속담에 “만 가지 악 중에서 음란함이 으뜸이고, 가장 독한 것은 여자의 마음이다.(萬惡淫爲首, 最毒婦女心)”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인은 일반 부녀보다 미녀는 바람기가 가득하고 음란하고 또 독하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수호지』에 등장하는 반금련, 염파석, 반교운, 가씨 등 미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수호지』에서 반금련의 자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른봄 버들잎 같은 눈썹에는 언제나 운우의 정을 그리워하는 듯 한과 시름을 품고 있고, 춘삼월 복사꽃 같은 얼굴에는 은은히 바람기를 감추고 있었다. 가는 허리는 걸을 때마다 하늘거렸고, 도톰한 입은 향기를 뿜어 벌과 나비가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기타 미녀들의 자태도 거의 이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들을 모두 음란한 것으로 취급했다. 이것이 실제역사사실이든 가공이든 하여튼 모든 남자들이 미녀를 품어보고 싶어 하면서도 미녀에게 이상할리만치 편견을 갖고 있고 또 조건반사적으로 미녀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썹이 이른 봄 버들잎 같은” 여자를 보게 되면 반사적으로 그녀가 “늘 운우의 정이 그리워 한과 시름을 품고 있다.”고 믿게 되고, “얼굴이 복사꽃 같은” 여자를 보게 되면 자연적으로 “은은히 바람기를 감추고 있다.”고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실제로 반금련은 자색이 뛰어난데다가 요염한 기운이 넘쳐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서문경은 반금련을 처음 보자마자 그만 몸이 흐믈해졌고 그녀에게 넋을 잃고 말았다. 서문경이 퇴자를 맞을까봐 두려워 머뭇거리자 반금련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주동이 되어 “공연히 소란스럽게 하실 필요가 없어요, 정말로 저를 꾀어보려고 하세요?”라고 말하자 두 사람은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한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염파석과 장문원, 반교운과 배여해, 가씨와 이고가 간통했는데 모두 남자들이 여자에게 혼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이외에『수호지』에 등장하는 미녀인 이사사와 백수영은 작부와 기생이어서 모든 남자를 지아비로 삼는 여자였다.
다음 미녀는 대개 독부라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실제로『수호지』에서 반금련은 제 손으로 무대랑을 독살하였고, 반교운은 애매하게 석수를 모함하였다. 염파석은 송강을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안달하였고, 백수영은 뇌형을 희롱하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그의 어머니까지 구타하였다. 가씨는 관청에 출두하여 남편 노준의를 무고하고 증인으로 나서 자칫하면 노준의는 죽음을 뻔 했다. 한나라 초기 여후(呂後)는 남편인 유방이 죽자 애첩이었던 척부인을 산채로 돼지우리에 처넣었다. 개국공신이었던 한신도 그녀의 꾀임에 빠져 죽었다.
무측천은 더욱 악독했다. “호랑이가 아무리 독해도 제 새끼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딸을 제 손으로 죽이고, 태자 이현(李賢)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젊어서는 물론이고 노인이 되어서도 젊은 남자들을 끌어들여 난륜을 하는 등 음란하기로 소문이 났다.그래서 중국인은 미녀 하면 음란함이 떠오르고 독부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민간에서는 미녀를 며느리로 맞으면 집안에 화를 불러온다고 믿고 있어 설사 당사자들이 마음에 들어 해도 부모나 형제들의 관문을 넘지 못해 혼사가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녀들이 음란하고 독하고 일등신붓감으로 외면당한 데는 그녀들의 탓보다 남자들의 탓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사내다운 호한들은 대개 여자를 가까이 하면 영웅이 될 수 없고 진정한 사내가 아니라고 여자를 멀리했다. 그리하여 미녀들은 할 수 없이 백면서생이거나 병신 같은 남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백면서생이거나 병신 같은 남자들은 사내다운 면이 없어 그녀들의 생리적 욕구를 포함해 기타 사내에 대한 여러 가지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래서 그녀들의 마음이 흔들리게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호한들이 그녀들을 멀리하므로 할 수 없이 반금련과 같은 미녀는 건달인 서문경(전통관념으로 보면 건달이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여러모로 잘나가는 인간이었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문경도 무대랑이 간통현장에 들이닥쳤을 때 놀란 나머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었다. 반금련은 이렇게 원망한다. “평소에는 권술과 봉술을 잘한다고 떠벌리더니 급해지니까 종이호랑이처럼 아무 쓸모도 없네. 저렇게 놀라는 꼴이란!”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악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미녀들이 늘 운우의 정을 그리워하여 음란하고 독한 마음을 갖도록 만든 장본인은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남분여장하고 무대에 올라 앵앵거리는 여인의 목소리로 관객을 귀신 홀리듯 인기 높았던 전통희극을 보면 중국전통사회모습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