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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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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금주정책과 양조비법 및 수호전에 나오는 주점의 서비스인원

图片信息 军队禁酒令题材黑板报


중국은 예로부터 금주정책(禁酒政策)을 시행하지 않아 양조비법(釀造祕法)이 쭉 전수돼 왔다. 덕분에 전국 어디를 가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술을 마실 수 있다. 지방 특산주(特産酒)는 우선 가격이 싸고 또 싸기 때문에 가짜가 적어 믿을 만하다. 무엇보다 그 지방의 음식과는 궁합(宮合)이 잘 맞는다. 중국 속담에 “외진 데서 좋은 술 나고 깊은 산에 명차 있다(僻鄕出好酒 深山有名茶)”는 말이 있다. 중국 대륙처럼 넓은 땅에 좋은 술이 어찌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예를 들어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요리가 많은 산동(山東)·사천(四川) 지방에서는 향이 강한 바이주(白酒)를 택하고 담백하고 해물이나 채소요리가 많은 광둥(廣東)·상하이(上海)에서는 황주 또는 맑은 향의 바이주를 택한다. 얼궈터우주(二鍋頭酒)의 역사는 금(金)나라가 베이징을 중도(中都)로 정하던 무렵 시작됐다. 얼궈터우주(二鍋頭酒)는 베이징을 찾는 세 가지 즐거움 중에 “만리장성(萬里長城)에 오르고 취안쥐더(全聚德)에서 오리를 먹으며 훙싱 얼궈터우(紅星二鍋頭)를 마신다”고 표시할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서민 애주가(愛酒家)들을 위해 저가(低價)를 유지하라는 모택동(毛澤東)의 지시에 부응하느라 한때 품질이 나빠졌다. 이는 훙싱 얼궈터우(二鍋頭酒)가 국가 전매품으로 지정되고 국가 물가지수의 산출항목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중시되면서 품질보다 가격에 연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엔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중국에서 최고 명주로 치는 모태(茅台)·오량액(五粮液)보다 한국인들은 값이 더 비싼 수정방(水井坊)을 선호한다. 수정방(水井坊)은 사천성(四川省) 성도인 성도시(成都市)를 흐르는 금강(錦江)의 물로 만든다. 성도시(成都市)는 예로부터 오곡이 풍성해 양조산업(釀造産業)이 발달됐다.
 
청(淸) 건륭제 연간에 시작된 전흥대취주(全興大麴酒)는 청두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1998년 8월 이 회사는 강변 수정방(水井坊)에 있던 양조장을 개축하다 고대 양조장인 주방(酒坊) 유적을 발굴한다. 국가문물국은 이곳이 원(元)·명(明)·청 3대에 걸친 옛 양조장(釀造場) 터였다고 인정했다. 당시까지 공인된 최고(最古)의 양조장은 1573년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천성(四川省) 노주(瀘州)의 술 발효창고였다. 600여 종의 미생물이 술맛을 깊게 한다는 ‘궈자오1573’은 노주(瀘州)의 명주다. 전흥대취주(全興大麴酒)를 만들던 청두의 주류업체는 역전의 계기를 찾았다.

2000년 수정방(水井坊)이란 술을 당시 최고가인 병당 600위안에 출시했다. 철저한 고가전략(高價戰略)이었다. “가장 오래된 발효지(醱酵地)에서 만든 가장 아름다운 술”이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중국의 국주(國酒)라는 모태주(茅台酒)는 귀주성(貴州省) 인회현(仁懷縣)의 모태진(茅台鎭)을 흐르는 적수하(赤水河) 물로 빚는다. 이곳 강물은 붉은색 토질의 영향을 받아 광물질(鑛物質)이 풍부해 술맛을 깊게 한다.

중국에서 술은 망국(亡國)의 소재로도 자주 인용(引用)됐다. 그래서 국정 운영을 재정비하려는 통치자들은 곧잘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곤 했다. 성군의 대명사인 우(禹)임금은 신하가 올린 술을 마신 뒤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과연 하(夏)의 걸(桀) 왕, 은(殷)의 주(紂) 왕이 모두 술과 미녀에 빠져 나라를 잃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이때 나왔다.

중국 사회에선 술에 대해 험담(險談과 예찬(禮讚)이 교차한다. 애주가 구양수(歐陽脩)는 이렇게 말했다. “취옹의 뜻은 본래 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산수 자연에 있다. 산수 자연의 정취를 마음으로 느끼고 술에 기탁한 것이다(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山水之樂, 得之心而寓之酒也).” 술은 수단일 뿐 술에 사로잡혀 본말을 전도(顚倒)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다.

1. 주보(酒保) - 중국고대의 백화소설(白話小說)에서 주점(酒店)이 언급되는 곳이면 거의 모두 주보(酒保)가 등장한다. 주보는 우리가 가장 익숙한 이 업계의 대표인물이다. 주보는 2가지 신분으로 나뉜다. (1) 술을 파는 사람. (2) 술집의 일꾼. 술을 파는 사람으로써 주보의 신분은 독립적인 것이다. 일꾼으로서 주보는 피고용노동자이다. 옛소설의 주보(酒保)는 대부분 후자의 신분이다. 말할 것도 없이 신분이 비천하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이 일찌기 이 일을 했다고 하여 배척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서한(西漢)의 공신 팽월(彭越)은 '한서(漢書).난포전((欒布傳)'에 따르면 가난했을 때 "위주가보(爲酒家保)"를 했다고 되어 있다. '주가보'라는 세 글자는 안사고의 고증에 따를 때 바로 술집에서 일하는 일꾼이며 술집의 피고용인(被雇用人)이라고 한다. 주보(酒保)는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수호전(水滸傳)'을 읽을 때 나오는 주보(酒保)는 대부분 이런 신분이다. 당연히 술파는 사람이 1명뿐이라면 혹은 술집의 일꾼이 술도 파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 신분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는 주인이며 일꾼이 된다. 예를 들어 제10회 임충(林冲)이 창주(滄州)로 유배를 갈 때 만난 주생아(酒生兒) 이소삼(李小三)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주생아(酒生兒)'는 바로 '주보(酒保)'이다. 수호전에서는 여기서 단 한번 언급된다.

2. 양주인(量酒人) - 역시 주보(酒保)이다. 옛날에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 주보(酒保)는 술의 양을 재는 도구를 이용하여 양을 쟀다. 양주인은 '양주(量酒)'라고도 부르고 '양주박사(量酒博士)'라고도 부른다.

양주인(量酒人)에 관하여 '수호전(水滸傳)'에 두 번 언급된다. 제19회의 유당(劉當)이 조개(晁蓋)의 명을 받아 송강(宋江)에게 감사하러 갈 때 기밀에 관련된 일이어서 송강이 유당(劉當)을 골목내의 주점(酒店)으로 데려가서 조용한 방안에서 '양주를 불러 술을 가져오게 하고 고기를 크게 썰어서 한 접시 가져오게 하며 다과 등을 차린 다음 양주인(量酒人)에게 술을 골라서 유당(劉當)에게 마시게 했다'는 내용이 있고 제25회의 무송(武松)이 형님 무대랑(武大郎)의 죽음이 이상하다고 여길 때 제주부(濟州府)의 시체 검시관(檢屍官) 단두(團頭) 하구숙(何九淑)이 '골목입구의 주점(酒店)에 앉아서 양주인(量酒人)에게 2각(角)의 술을 가져오도록 시켰다" 옛날에는 동물 뿔에 술을 담았다. 송나라 때는 더 이상 동물 뿔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각'이라는 명칭은 남아있었고 둘을 담는 도구라는 명칭으로 쓰였다.

3. 과매(過賣) - 주점(酒店)에서 물건을 파는 일꾼이다. 이것도 주보(酒保)로 이해할 수 있다. '수호전(水滸傳)' 제38회에 이규(李逵)가 손가락으로 노래 부르는 가녀(歌女)를 눌러 쓰러뜨리자 '주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보(酒保), 과매(過賣)를 모두 불러서 그녀를 구하게 하였다' 여기서 주보(酒保)와 과매(過賣)는 구분되었다. '몽량록(夢粱錄)'에도 "손님이 자리에 좌정하면 과매(過賣) 한 명이 와서 젓가락을 집고 좌객에게 물었다." 여기서 과매(過賣)는 국수집의 일꾼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의 활동범위는 주점(酒店)에 한정되지 않았다.

4. 장가(庄家) - 제3회에 노지심(魯智深)이 한 주점(酒店)에 가서 술을 마시는데 '장가'가 그를 보고는 말했다. "스님 어디서 옵니까?" 노지심(魯智深)이 말한다. "나는 행각승이오. 이곳을 지나가는 길인데 술을 사서 마시려고 합니다."

여기서 '장가(庄家)'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농사꾼. (2) 가게주인. 여기서는 가게주인을 장가(庄家)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여기의 주점(酒店)은 술을 팔면서도 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5. 주인가(主人家) - 즉, 가게주인이다. 이 칭호는 주점(酒店)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다. 술을 마시려는 사람은 가게주인을 '주인가'라고 부른다. 가게주인은 술을 마시는 사람을 '손님(客人)'이라고 부른다. '수호전(水滸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22회의 무송(武松)이 경양강 주점(景陽岡酒店)에서 가게주인을 부르는 칭호(稱號)는 '주인장 술을 가져오시오'이다. 가게주인은 '손님 몇 각의 술을 드릴까요?"이다.

이상이 바로 주점(酒店)의 주요한 서비스인원이다. 가게주인 - 주인가, 피고용인 - 주보(酒保), 과매(過賣), 양주인(量酒人). 주점(酒店)의 규모가 적어서 1명이거나 부부 2명이면 점주(店主)와 피고용인은 합쳐진다. 주점(酒店)에는 이들 고정인원이외에 유동인원(流動人員)도 있다.

6. 작주좌(綽酒座) - '간좌자(赶座子)라고도 부른다. '묵아소록(墨娥小录)'에서는 '간주좌(赶酒座)'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술집 안에서 좌석(座席)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돈을 받는 가녀(歌女)를 말한다.

'수호전' 제2회에 노지심과 사진, 이충이 반가주점에서 술을 마실 때, 곁에 있는 방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노지심이 접시와 잔을 바닥에 던진다. 주보가 금히 다가와서 말했다. '어르신 진정하십시오...울고 있는 것은 '작주좌'의 부녀 두 사람입니다.' 이 '작주좌'는 바로 노지심으로 하여금 정도를 때려죽이게 만든 김취련 즉 자칭 '이 술집에 온 간좌자'이다. 노지심은 김취련 부녀에게 동정화 협의로 대하지만 이규는 전혀 아끼는 마음이 없다. 제37회에서 송강, 대종, 장순, 이규가 비파정에서 술을 마시는데 돌연 한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나이는 이팔이고, 사의(紗衣)를 걸치고 앞으로 다가와서 복받으라고 네번 예기한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규는 마침 자신이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던 호걸로서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망쳐지고 세 사람이 모두 노래를 들으려고 하며 그가 말하는 것을 막자. 이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벌떡 일어나서 두 손가락으로 그 여자아이의 이마를 눌렀고 그 여자아이는 소리를 꽥지르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여러 사람이 다가와서 보니 여자아이는 뺨이 흙색이었고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물을 뿌려서 깨어나게 했는데 이마에 피부가 벗겨졌다.

이규의 행동을 '수호전'의 작가는 학을 삶아먹고 거문고(琴)로 불을 때는 것과 같다(煮鶴焚琴)고 조소하지만 흑선풍 이규때문에 작주좌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상황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경몽화록'에는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서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떠나갈 때 돈이나 물건을 받고 간다. 이를 찰객(札客)이라고도 부르고 '타주좌(打酒座)'라고도 부른다.'

7. 분두(粉頭) - '수호전' 제25회에는 무송이 사자루로 서문경을 찾아간다. "서문경이 주인자리에 앉아 있고 건너편에는 손님이 앉아있고 두 명의 노래부르는 분두가 양 곁에 앉아 있다." 분두는 얼굴에 분칠을 한 여인을 말하는데 나중에는 기녀(妓女)를 의미하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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