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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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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나라의 공자이고 한왕헐(韓王歇)의 아들인 한비자(韓非子)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전국책에서 알아본다

图片信息 韩非子

글: 초근야담역사(草根也談歷史)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이러하다: 한비자는 이사(李斯)가 모함하여 죽었다. 그리고, 원인은 바로 이사가 한비자의 총명함을 질투했고, 한비자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봐 우려해서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 <전국책>에는 또 다른 내용이 실려 있는데, 한비자의 신분이나 당시에 처한 상황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전국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1. 우수한 한비자
한비자는 한(韓)나라의 공자이고, 한왕헐(韓王歇)의 아들이다. 출신이 존귀하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거유인 순경(荀卿)의 문하에 들어간다. 이사와는 동문사형제가 된다.
두 사람은 모두 공부를 좋아하고, 아주 우수했다. 졸업후, 이사는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관직을 얻으려 했고, 결국 천신만고끝에 진나라로 갔다. 그러나, 한비자는 이 방면에서 걱정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유유자적하게 지냈다.
한편으로 부친을 도와 정사에 참여하면서 부국강병의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한편으로 책을 쓰는데, 여러 편의 뛰어난 문장을 남긴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진나라의 영정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영정은 한비자의 문장을 보고 바로 한비자의 광팬이 된다. 진왕이 광팬이 되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탄식을 하게 된다: "안타깝도다.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서 같이 놀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기실, 영정은 그렇게까지 상심할 필요가 없었다. 얼마 후 한비자가 진나라로 오고, 진왕 영정에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2. 한비자가 진나라로 오다
기원전233년,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한다. 역대이래 삼진일체(三晋一體, 晋에서 갈라진 한, 위, 조는 하나처럼 움직였음)이므로, 한나라는 공황에 빠진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정리한 후에 이어서 한나라까지도 손보려 할까봐 걱정한 것이다. 만일 진나라가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미연에 방지하는 편이 좋다. 이런 이유로 한비자의 형이자 당시 왕위를 계승한지 8년이 된 한왕안(韓王安)은 한비자를 진나라로 파견하게 되는 것이다.
진나라에 파견하는 것은 무슨 목적에서일까?
하나는 적국의 동향을 탐지하고, 둘째는 한비자는 이사와 동문사형제라는 교분이 있으므로 진,한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어쩔 수 없을 때는 공적인 일을 사적인 친분을 이용하여 해결하기도 한다. 이건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한비자는 진나라로 간 것이다.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현인이 마침내 진나라로 오다니, 진왕 영정은 당연히 잠을 자고 싶은데 베개를 만난 셈이다. 베개를 만나면 무엇을 할까?
옛날 맹상군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왔을 때, 진소양왕(秦昭襄王)은 그를 붙잡아 인질로 삼았다.
이런 일을 진나라가 한두번 한 것도 아니다. 이미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비자를 붙잡아 놓았다. 매일 잘 먹이고 접대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한비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에 변화가 발생한다.

3. 풍향이 바뀌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서 파견한 장수는나중에 배신을 하여 연나라로 도망치고 결국 자신의 수급이 베인 번어기(樊於期)였다. 조나라는 만만치 않았다. 전국사대명장중 한 명이며 흉노를 쳐서 흉노가 이름만 들어도 도망친다는 이목(李牧)이 총사령관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만 듣더라도, 피래미가 대어를 만난 것같지 않은가? 전투를 엉망진창으로 진행해 버리게 된다.
조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잠시 놔두고, 한왕안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낸 것은 조나라가 패전할까봐 걱정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가 오히려 패전했고, 조나라는 기세등등하다. 조나라는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다 함꼐 진나라를 쳐버리자고 설득하고, 금방 초나라, 위나라, 연나라에서 호응을 받아낸다.
풍향이 바뀌였다. 원래는 서풍이 동풍을 압도했는데, 지금은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한왕안도 멍청하지는 않다. 급히 내리막을 만나자 말에서 내리듯이 입장을 바군다. 진나라의 여러가지 나쁜 점을 생각해낸 것처럼 즉시 조, 초, 위, 연과 결맹을 맺는다.
이렇게 되니, 다섯나라가 진나라를 협공하는 국면이 된다.
진왕 영정은 원래 한비자를 풀어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니 더더욱 풀어줄 수 없었다. 풀어주게 되면 적의 실력만 키우는 꼴이 된다. 이제는 한비자의 일은 내버려두고 어떻게 오국연합이 진나라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4. 진왕의 도량이 넓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진왕 영정은 도량이 넓었다. 한비자를 자기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공공연히 그를 진나라의 조정회의에 참가시키고, 오국이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그리고, 회의에서 직접적으로 묻는다: "조, 초, 위, 연의 네 나라가 하나가 되어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는데, 짐은 안에서 자금이 부족하고, 백성들은 밖에서 사기가 떨어져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진왕 영정이 물을 때 일부러 한나라를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한비자가 난감해 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것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진왕 영정의 통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영정의 이런 태도에도 한비자는 아예 못들은 척하며 조정에서 눈을 코를 보고, 코는 입을 보고, 입은 마음을 보고 스님이 좌정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진나라조정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객경 요고(姚賈)가 일어나서 가슴을 치면서 보증했다: "제가 나서서 사국에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그들의 연합을 깨고 병력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영정에게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그에게 많은 돈과 자신이 입던 의복, 모자, 보검을 하사하며 요고를 전권대사로 임명한다. 일개 객경이 세치 혀만 놀려서 이런 대우를 받다니, 그렇다면 요고는 성공했을까?

5. 한비자의 보복
요고는 성공한다.
4개국은 속속 사신을 진나라로 파견하며, 진나라와의 우의를 다시 맺겠다고 말한다. "네 나라가 하나가 되어 진나라를 공격하려한다"는 것은 그저 헛소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진나라는 위기를 가볍게 넘긴다. 요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왕 영정은 즉시 그를 상경(上卿)에 임명하고, 천호(千戶)를 하사한다. 요고는 성공했는데, 한비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는 무척이나 화가났을 것이다. 왜 화가 났을까?
이름도 없는 자가 진나라를 구해낸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동쪽의 여러 나라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는 도저히 참기 힘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정회의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그가 적극적으로 진왕 영정의 곁으로 가서 미친듯한 보복을 시작한다.
그는 어떻게 보복했을까?
진왕에게 두 가지를 얘기한다
하나는 요고가 사신으로 간 동안에 진나라의 돈을 이용하여 여러 나라의 국왕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이는 공적인 일을 빌미로 사적인 일을 한 것이니, 대왕에게 불충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요고는 위나라 문관(門官)의 아들이고, 일찌기 조나라왕을 보좌했다가 조나라왕에게 쫓겨났다. 그의 출신이 비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품도 저열하다. 이런 자를 고위직에 앉히게 되면 여러 신하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힘들다.
<오두(五蠹)>, <설난(說難)>을 쓴 바 있고, 유세술을 잘 알고 있는 한비자의 이런 말은 정말 수준떨어진다. 남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자잘한 일로 꼬투리를 잡는 것도 그렇고, 남의 출신을 가지고 비난한 것도 그러하다.
목적은 바로 영정과 요고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이고, 요고에게 불충의 죄명을 씌워 죽여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비자는 목적을 달성했을까?

6. 요고가 손을 쓰다.
한비자가 이 말을 할 때 아마도 잠시 잊어버린 듯하다. 육국 가운데 진나라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아니라, 출신에 대하여 가장 신경쓰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진나라는 진목공때부터 객경제를 시행했고, 백리해같은 노비출신도 고관에 앉혔다. 하물며 문감의 아들이라면 문감도 하급관리가 아닌가.
한비자는 자신이 왕의 아들이다보니, 하급관리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같다.
그러나 진왕 영정이 어떻게 했을까?
한비자는 어쨌든 인물이다. 자신이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요고를 불러서 경위를 물어본다.
요고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태공망 강태공은 제나라에서 쫓겨나고, 조가에서도 버림받고, 자량에게도 쫓겨난 신하이지만 문왕이 그를 기용하여 나중에 왕에 오른다. 관중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상인이고, 남양에서 유폐되고, 노나라에서 죄수였지만, 환공이 그를 기용하여 나중에 작위가 백에 이른다. 백리해는 우의 걸인이고 전해지기로 다섯마리의 양가죽으로 사왔다고 하는데 진목공은 그를 재상으로 삼아 서융을 쳤다. 문공은 중산의 도둑을 기용하여 성복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들 네명의 선비는 모두 오점이 있고, 천하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현명한 군주가 이들을 기용하여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변수, 무광, 신도획이라 하더라도 어찌 기용하지 못하겠습니까. 현명한 군주라면 그 오점을 취하지 않고, 그 비난하는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살펴서 자신을 위하여 일하도록 기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직을 보존해준 사람이라면 비록 밖에서 비방하더라도 듣지를 않아야 하고, 비록 세상에 높은 명성이 있다하더라도 아무런 공로가 없다면 상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신하들이 감히 헛되이 왕께 무엇을 바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출신이 낮다고? 백리해, 범수는 나보다도 못했다. 하물며 여러 나라의 군주는 진나라의 얼굴을 봐서 나와 좋게 지낸 것이다. 만일 내가 진나라에 불충하고 군왕의 총애를 잃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이 굳이 나와 가까이 지내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진왕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린다. 원래 한비자가 충신을 모함한 것이다. 그럼 충신을 모함한 한비자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한비자의 마음은 항상 밖을 향해 있었고, 우리와 한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를 살려두어서 무엇할 것인가: 요고를 시켜 한비자를 주살하게 한다.
요고에 대하여는 신뢰를 하고, 한비자에 대하여는 잡아서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비자의 죽음은 이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고 다른 사람때문이 아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점은 이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고, 완전히 한비자가 스스로 돌을 들어 자신의 발등을 찧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한비자의 높은 인격이 유지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만일 이사가 현명한 그의 재능을 질투하여 죽이게 된 것이라면, 한비자는 왕자로서 모국을 배반하고 모국의 적국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위의 내용대로라면, 모국을 위하여 적국의 군신관계를 이간하고, 적국조정의 역량을 약화시키려다가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모국을 위하여 노력을 한 것이다. 이러한 한비자야말로 진정한 역사상의 한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조국을 영원히 생각하는 인물이고, 그를 위하여는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從全國書籍中瞭解一下韓朝孔子、韓王歇之子韓非子的死亡真相。


文章:草根也談歷史
我們通常知道的事實是這樣的:韓非子是李斯誣陷而死。 原因就是理事嫉妒韓非子的聰明,擔心韓非子奪走自己的位置。
但是,關於這個問題 , 《 戰國策》中還有其他內容,符合韓非子的身份或當時的處境。 那麼,《戰國策》裏寫了什麼呢?

1.優秀的韓非子
韓非子是韓朝的孔子,也是韓王歇的兒子。 因爲出身尊貴,他從小就有機會讀書,進入居留人巡警的門下。 與理事成爲同門師兄弟。
兩人都喜歡學習,都很優秀。 畢業後,理事四處奔走,想謀取官職,結果千辛萬苦纔去了晉國。 然而,韓非子在這方面卻無憂無慮,回到故鄉悠閒自在。
一方面幫助父親參與政事,提出富國強兵的想法,另一方面寫書,留下多篇精彩的文章。
隨着時間的推移,他的名聲不斷提高,甚至傳入秦國遺像的耳朵裏。 遺像看到韓非子的文章就成了韓非子的狂熱粉絲。 如果秦王成了狂粉,接下來會怎麼樣呢?
就這樣嘆息:"真可惜。 寡人能見到這個人一起玩,死而無憾!"
紀實,遺像不必那麼傷心。 不久後,韓非子來到晉國,對秦王遺像表現出十分恭敬的態度。

2.韓非子來到晉國
公元前233年,秦攻趙。 歷代以來三晉一體(從晉中分裂的漢、魏、朝一體)因此,一個國家陷入恐慌。 他擔心秦國整理完趙國之後,連漢國也要修補。 萬一秦國那樣做,該怎麼辦?
當然要防止未然。 因此,韓非子的哥哥、當時繼承王位已有8年的韓王安將派遣韓非子前往晉國。
派到晉國有什麼目的?
其一,探知敵國的動向;其二,韓非子與理事有同門師兄弟的交情,使真、韓關係保持友好。 國與國之間沒有辦法的時候,也會利用私人交情解決公事。 這沒什麼了不起的。
於是韓非子去了晉國。
仰慕已久的賢人終於來到秦國,秦王遺像當然想睡覺,卻遇到了枕頭。 遇到枕頭會做什麼?
古代孟祥君作爲使臣來到秦朝時,秦昭襄王將他抓獲並當作人質。
這種事情,秦國不止一兩次。 已經有了經驗。 於是把一個簽證留了下來。 每天吃飽招待。 不允許回到祖國。
韓簽證該怎麼辦?
幸好沒過多久情況就發生了變化。

3. 風向改變。
秦國攻擊趙國時派遣的將帥後來背叛逃往燕國,最終被斬首。 趙國不容小覷。 李牧是全國師大名將之一,總司令說,匈奴一聽到名字就逃走。
光聽兩個人的名字,不就象小金魚見了大魚嗎? 戰鬥進行得一塌糊塗。
暫且不管趙國有多厲害,韓王安只能愣住了。
原來,把韓非子作爲使臣送到晉國是因爲擔心趙國戰敗。 但是現在秦國反而戰敗了,趙國氣勢洶洶。 趙國向多個國家派遣使臣,說服他們一起攻打秦國,很快得到楚國、魏國、燕國的響應。
風向變了。 原來西風壓倒了東風,現在東風壓倒了西風。 漢王安也不糊塗。 急着遇到下坡,馬不停蹄地改變立場。 如想到了秦國的種種壞處,立即與曹、楚、魏、燕結盟。
這樣一來,形成了五國夾攻秦國的局面。
秦王遺像本來不想放過韓非子,但這樣更不能放過。 如果放開,就等於培養了敵人的實力。 現在,應該考慮的是,韓非子的事情怎麼放任不管,如何不讓吳國聯合攻擊秦國。

4. 秦王氣度恢弘
事到如今,秦王遺像卻胸襟恢弘 開始把韓非子當成自己的人。 明目張膽地讓他參加秦朝的朝廷會議,討論如何應對吳國聯合攻打秦朝。
還有,會議直接提問 : " 曹、楚、魏、燕四國合一,欲攻秦,行李裏頭資金不足,老百姓外頭士氣低落。 怎麼辦纔好?"
秦王遺像問起時故意沒有提到漢朝。 也許是爲了不讓韓非子感到爲難。 由此可以看出秦王遺像的桶很大。
但是,面對遺像的這種態度,韓非子乾脆裝作沒聽見,在朝廷裏看着眼睛、鼻子看着嘴、嘴看着心,就像大師坐下來一樣一動不動。
他什麼話也不說,秦朝不是沒有人的 不太出名的客警姚佳站起來拍胸脯保證 : " 我站出來,去死國當使臣。 我會打破他們的聯合,不發動兵力。"
遺像也沒有其他選擇的餘地。 只賜予他很多錢和自己穿過的衣服、帽子、寶劍,任命約翰爲全權大使。 一介客警竟會因爲耍嘴皮子而受到這樣的待遇,那這個遊戲能成功嗎?

5.韓非子的報復
最高級是成功的。
四國陸續派遣使臣前往晉國,表示將與晉國重新建立友誼。 他說:"四個國家團結一心攻擊秦國"只是謠言而已。
事到如今,秦國輕而易舉地度過了危機。 這到底是怎麼回事呢? 秦王遺像立即任命他爲上卿,賜予千戶。 最高考成功了,韓非子會怎麼樣呢?
他可能非常生氣. 爲什麼生氣呢?
無名者救出了秦 於是,東邊的許多國家又面臨危險。 這是很難忍受的事情。 那該怎麼辦呢?
在調解會議上什麼話都沒說的他積極走到秦王遺像身邊,開始了瘋狂的報復。
他是如何報復的呢?
跟秦王說兩件事
一是在約戈去使臣期間,利用秦國的錢與許多國家的國王建立了良好的關係。 這是假公濟私, 對大王是不忠的
另一個是遼古是魏國門官的兒子,早前輔佐趙王被趙王趕下臺。 別說是他出身低賤,就是人品低劣。 如果讓這樣的人擔任高層職務,就很難給很多臣子樹立榜樣。
韓非子曾經寫過《五斗》、《說難》,非常瞭解遊說術,這樣的說法真的沒有水準。 在別人執行業務的過程中,因瑣事找茬也是這樣,對別人的出身進行指責也是這樣。
目的就是離間遺像和略高的關係,給略高扣上不忠的罪名,使其死掉。
那麼韓非子達到了目的嗎?

6. 約翰動手。
韓非子說這話時,可能一時忘了。 在六國中,秦國不僅不擇手段,而且是最不注重出身的國家。
秦國從晉穆公時期開始實行客商經濟,百里海等奴婢出身的人也擔任高官。 更何況是文監的兒子,文監也是下級官員。
韓非子說:"因爲自己是王的兒子,所以好像根本就沒有看中下級官員。
但是,秦王遺像是怎麼做的呢?
韓非子畢竟是個人物。 自己判斷是沒有根據的。 所以會叫來要聞來龍去脈的來龍去脈。
略高聽了這話,這樣說道:太公望姜太公被趕出齊國,曹家也被拋棄,子樑也被趕出,雖然是臣子,但文王起用他,後來登上王位。 關中是人所不齒的商人,南陽幽禁,魯國囚徒,但桓公起用他,後來爵位上百。 聽說白立海是友誼的傑出人物,是傳說中用五隻羊皮買來的,真木匠拿他當宰相,打西戎。 文公起用中山賊,在聖福的戰鬥中獲勝。 這四位儒生都有污點,天下有非,但賢明君主起用他們立下了汗馬功勞。 即使是變數、無光、神圖劃,也不能起用。 如果是賢明的君主,就不會取其污點,也不會聽其指責的話,而是會讓他察看,爲自己做事。 所以,如果你是保住社稷的人,即使是在外面誹謗也不應該聽,即使世上有很高的聲譽,如果沒有任何功勞,也不應該頒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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