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동노경(河東老景) <사기.항우본기>에는 이런 기재가 있다: "무릇 진이 육국을 멸할 때, 초나라가 가장 죄가 없었다. 초회왕이 진에 들어간 이래 반기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초회왕을 가련하게 여긴다. 그래서 초남공은 "초수삼소, 망질필초"라고 하였다." (남공은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음양가이며 <남공> 31편을 지었다.) 족보에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초나라는 세자로 대표되는 왕족(적장자 혹은 왕장자)이외에, 나머지는 갈라져 나가서 많은 "씨(氏)"를 가진다. 초왕의 나머지 아들들은 "씨"를 가진다는것이다. 그 중에서도 소(昭), 굴(屈), 경(景)의 세 씨가 가장 강대해서 초나라의 지주였다. 삼족의 자제들은 초나라의 고위관직을 세습하여 맡아왔다. 굴원은 일찌기 삼려대부(三閭大夫)를 맡았는데, 그 뜻은 왕족 삼씨의 관리를 관리하는 것이다. 경양(景陽)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대장인데, 제, 한, 위 삼국이 연을 공격할 때, 연나라는 태자를 보내 초나라에 구원을 청한다. 초왕은 경양을 장수로 삼아 연을 구한다. 경양은 연으로 가지 않고 위의 구를 공격하여, 이를 취한 다음 송에 준다. 그리하여 삼국이 두려워하며 군사행동을 멈추었다. 연나라는 위기를 넘켰다. 경양의 이 전술은 <전국책>에 실려 있다. 굴원이 왜 '삼려대부'를 맡았는가? '삼려대부'에 대한 왕일(王逸)의 해석은 '삼려의 직은 왕족 삼성 즉, 소, 굴, 경씨를 관장하는 것이다. 이 관직은 공족을 관리하는 것이고, 그 세대의 관리를 관장하는 것이다. 직능은 동주의 '종백(宗伯)', '종인(宗人)', '종로(宗老)','공족(公族)'(혹은 공족대부)같은 류의 관직과 유사하다. 이를 보면, '삼호(三戶)'라는 것은 3개성씨를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 세 씨는 이미 초나라의 망족이 된다. 제나라의 전씨, 조, 위, 한등이 씨와 함게 모두 당시에 가장 왕성한 몇 개의 성씨에 속했다. 1. <사기집해>(작자는 유송시대의 배인)은 찬(瓚)의 주장을 인용하였는데, '삼호인가(三戶人家)'로 보았다. '신찬(臣瓚)이 말하기를, '초나라사람들은 진나라를 원먕하여 비록 삼호이더라로 진나라를 망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신찬'은 서진의 학자로 아마도 박찬(博瓚)일 것이다. 여기의 '신'은 신하로 자칭하는 말일 것이다. 2. <사기색은>(작자는 당나라때의 사마정)은 두 가지 해석을 인용한다. 첫째, 위소(韋昭)의 주장을 인용하여, "삼호, 초나라의 삼대성 굴,경,소이다." (위소는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이다) 둘째, 소림(蘇林)과 신찬의 주장을 인용하여, "다만 삼호만 남더라도, 그 원한이 깊어서 진나라를 멸망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하여, 근현대 사학자 전목(錢穆)은 다음과 같이 논술한다: 첫째, 춘추열국에는 종족이 있었다. <좌씨내외전>에는 노나라에 삼환, 정나라에 칠목, 송나라에 대환의 팔족, 진(晋)에 팔성, 십일족, 은(殷)의 육족, 칠족, 회성구종(懷姓九宗), 축융팔성, 같은 류가 있다. 숫자로 종실성을 말하는 것은 그 수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초나라의 삼호인 소, 굴, 경도 그 중 하나이다. 둘째, 삼호를 '삼호인가(三戶人家)'라고 보는 것은 '망문생의(望文生義)'의 해석이다. 즉, 글자를 보고 그 뜻을 그대로 읽은 것이다. 무릇, 남공의 뜻은 공족중 비록 소, 굴, 경의 삼가만 남더라도 충분히 진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일반 백성의 집안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그후 진승오광의 난으로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모두 육국을 새로 세우는데, 초회왕 이외에 위표, 조헐, 한성, 전불은 모조리 고국의 옛종족이다. 나머지는 일시에 병력을 이끌더라도, 대부분 명문귀족의 후예라고 들고 나왔다. 비록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치면서 평민들도 나라를 세우는 상황이었지만, 진영의 모친은 명족에 의지하고자 한 것이다. 하물며 초남공은 멀리 전란이 일어나기 전인데, 어찌 망한 나라를 복국시키는 책임을 평범한 백성들에게 맡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지명(地名)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사마정은 <색은>에서 여러 주장을 물리치고 '삼호'를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항우가 삼호진(三戶津)을 건너 장한을 격파하였으니, 초남공의 참어가 들어맞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원래 삼호라는 지명이 원래 초나라가 단양에서 일어났고, 소,굴,경 삼족이 발적(發迹)한 땅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남공의 말을 지명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므로 '삼호'는 위소의 견해가 가장 부합한다. 이를 보면, '초수삼호'의 삼호는 '소, 굴, 경'의 삼족을 말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초국왕족 경씨(景氏) 미성(芈姓), 초나라 공족이다. 봉읍을 씨로 했다. 굴씨(屈氏) 미성(芈姓), 초나라 공족이다. 봉지를 씨로 명명했다. 춘추시대 초무왕의 아들 하(瑕)가 막오(莫敖)에 부임했고, 굴읍을 봉지로 받는다. 소씨(昭氏) 미성(芈姓), 초나라 공족이다. 족(族)을 씨로 했다. 오씨(伍氏) 미성(芈姓), 초나라의 대부 오참(伍參)의 후손이다. 능씨(能氏) 미성(芈姓), 초나라 웅지(熊摯)의 후손이고 난을 피해 능씨로 고쳤다. 죽씨(鬻氏) 미성(芈姓), 초나라 죽웅(鬻熊)의 아들 죽권(鬻拳)의 후손이다. 반씨(班氏) 미성(芈姓), 초나라 약오(若敖)가 투백비(鬪伯比)를 낳고, 백비는 영윤(令尹) 자문(子文)(을 낳는데, 호랑이가 젖을 먹인다. 호랑이에게는 반문(班紋)이 있어서, 이를 씨로 삼는다. 취씨(翠氏) 미성(芈姓), 초나라장수 경취(景翠)의 후손이다. 묘씨(苗氏) 미성(芈姓), 지명으로 명명된 씨이다. 성씨(成氏) 미성(芈姓), 춘추시기 초나라국군의 아들의 자(字)가 성호(成虎)인데, 후세자손은 그 '성(成)'을 따서 씨로 삼는다. 건씨(建氏) 미성(芈姓), 초나라 태자건(太子建)의 후손이다. 반씨(潘氏) 미성(芈姓), 주나라때 초나라왕족의 후손 사씨(査氏) 미성(芈姓), 춘추시대, 초나라의 공족대부가 사를 봉읍으로 받는다. 그 후손은 사씨라 칭한다. 형씨(荊氏) 미성(芈姓), 초문왕 이전의 형군(荊君), 서출자손은 국호를 씨로 삼아 '형씨'라 한다. 장씨(莊氏) 미성(芈姓), 춘추시대 초나라국군 려(旅)는 사후이 시호를 장(莊)으로 받는다. 그의 후세자손들은 이 시호리르 씨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