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최대 승리자 사마의(司馬懿)의 스승은 덕망과 절조로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호소(胡昭)이다
글: 위문한사(魏門寒士) 삼국시대의 사마의는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삼국시대에 사마씨가족은 최대의 승리자이니까. 이는 사마의가 지닌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보면 사마의는 분명 명사(名師)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같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 방통의 두 천재는 모두 사마휘(司馬徽)의 제자이다. 사마휘는 사마의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사마의는 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마의의 스승은 누구일까? 기실 사마의의 두 아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마의의 가장 유명한 두 아들은 바로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둘일 것이다. 두 사람은 적출이면서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사소(師昭)"이다. 그렇다고 사마의의 스승이 사소라는 것은 아니다. 사마의의 스승은 소(昭)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성은 호(胡)이다. 삼국시대의 역사인물들 중에 호소라는 대은사(大隱士)가 있다. 그의 명망은 사마의의 스승이 될 만할 정도이다. 사마의는 박릉(博陵)의 명문집안이므로 스승을 구할 때도 분명 유명한 사람을 골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소는 얼마나 유명했을까? 먼저, 호소는 서예가 뛰어났다. 종요(鍾繇), 한단순(邯鄲淳), 위기(衛覬), 위탄(韋誕)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종씨소교(鍾氏小巧), 호씨호방(胡氏豪放)"이라는 평을 들었고, 세상사람들은 그와 종요를 묶어서 "종호(鍾胡)"라 불렀다. 다음으로, 호소는 은사이다. 덕망과 절조로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면 호소의 덕행이 어느 정도로 높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동한말기 천하는 혼란에 빠진다. 당시 호소는 기주(冀州)에 피난가 있었다. 기주는 삼국시대초기 원소(袁紹)의 세력범위내이다. 원소는 호소가 기주로 피난왔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호소에게 관직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호소는 전원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관도지전후, 조조는 북방을 평정한 후 역시 호소에게 관직을 내리고 싶었다. 호소는 원래 거절하고자 했으나, 조조가 한번, 두번, 세번 계속하여 호조에게 조정에 나올 것을 청한다. 부득이 호소는 그렇겠다고 한다. 그러나 관직을 맡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조에게 자신은 관직에 뜻이 없고, 경전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안다고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조조는 호조가 벼슬에 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었다.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각유지(人各有志), 출처이취(出處異趣), 면졸아상(勉卒雅尙), 의불상굴(義不相屈)" "사람마다 뜻이 다 다른 법이다. 관직에 나가건 재야에 남건 각자 취향이 있다. 그대의 뜻을 존중하여 억지로 강요하지 않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난세에 호소는 자신의 노력으로 혼란을 바로잡고자 하지 않았고, 그저 난세에 안신입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고상한 품덕이 훼손되지는 않았다. 218년, 손랑(孫狼)등이 관우에 투항한다. 관우도 관인을 그들에게 내린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도적이 된다. 그들 몇명이 장락정(長樂亭)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서로 이 곳은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왜냐하면 이 지방에 호소가 있기 때문이다. 호소는 현자이므로 도적들까지도 감히 침범하지 않았다. <삼국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도육혼남장락정(到陸渾南長樂亭), 자상약서(自相約誓), 언(言): "호거사현자야(胡居士賢者也), 일부득범기부락(一不得犯其部落)" "육혼의 남쪽 장락정에 도착하여 서로 약속하여 맹세했다: 호거사(호소)는 현인이다. 그의 부락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이를 보면, 호소의 명성은 도적들까지도 존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호소는큰 재능을 가진 은사였는데, 이런 은사가 어떻게 사마의를 제자로 삼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모두 지금의 하남(河南) 사람이다. 호소는 은사로 자주 산과 물 사이를 여행했고, 한가할 때는 서당을 열어 제자를 가르쳤다. 약간의 수입은 있어야 하니까. 사마의는 그렇게 호소의 제자가 된다. 학생들 중에도 좋은 학생이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다. 사마의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좋은 학생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서당에서 나쁜 학생의 대표인물은 주생(周生)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항상 다른 학생을 괴롭혔다. 사마의는 도저히 참지 못하여 주생을 혼내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학생이라도 나쁜 학생의 위엄을 침범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주생은 동네의 깡패들 몇몇을 모아서 사마의를 혼내주려고 한다. 이 일을 호소가 알게 되었다. 호소는 급히 달려간다. 그리고 그 청년깡패들에게 사마의를 놓아주라고 애걸한다. <고사전(高士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군주생등모해제(同郡周生等謀害帝), 소문이보척험(昭聞而步陟險), 요생우효,민지간(邀生於崤渑之間), 지생(止生), 생불긍(生不肯). 소읍여결성(昭泣與結誠), 생감기의(生感其義), 내지(乃止)" "같은 군(郡)의 주생등이 황제(사마의)를 해채고자 했다. 호소가 그 말을 듣고 험한 길을 걸어가서 주생을 효산과 민하사이에서 만나 주생에게 그만두라고 했으나 주생이 듣지 않았다. 호소는 눈물을 흘리면서 성의를 가지고 설득했다. 주생은 그의 의로움에 감동하여 그만두게 된다." 사마의를 구해주기 위하여, 호소는 자신의 위엄도 내려놓았다. 이를 보면 호소가 이 아끼는 제자에게 아주 큰 희망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마의와 그 자손이 삼국을 통일했으니 호소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호소의 자가 공명(孔明)이라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또 한명의 공명이 누구인지는 알 것이다. 바로 제갈량이다. 사마의는 공명을 스승으로 모셨고, 공명은 사마의를 아주 잘 대해주었다; 그런데 또 한명의 공명은 사마의의 필생의 적수였다. 역사의 기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마의의 일생은 공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