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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탄제일미녀(上海灘第一美女) 장매영(蔣梅英)살인사건


글: 시광고사(時光故事)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월이 흘러도 용모가 노쇠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여인들의 갈망이다.
오늘 얘기할 주인공은 천생여질(天生麗質)의 미인으로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녀의 미모가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비극적인 운명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상해탄제일미녀"라고 불리우던 장매영이었다. 그녀는 바로 "미려(美麗)"브랜드 담배의 모델이기도 했다.
강소, 절강은 자고 이래로 미녀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장매영은 1913년 절강성 진해(鎭海)의 한 부유한 상인집안에서 태어난다. 부모는 모두 비교적 개명한 사람들이어서, 당시 사상이 수구적인 사람들처럼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덕이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장매영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했고, 재능이 있었으며, 용모도 뛰어났다. 그녀를 앙모하는 사람들이 문앞에 줄을 서서 그녀의 미모를 한번 보려고 할 정도였다.
하루는 장매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남자가 계속 뒤를 쫓아왔다. 문앞에 이르자, 그 남자는 앞을 막아선다.
원래 이 남자는 장매영에게 모델을 제의하려는 것이었다. "미려"브랜드의 담배의 선전화를 찍고자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그냥 사진만 몇장 찍으면 되고, 그러면 명성을 떨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그녀는 호기심에 상해로 가서 '미려'브랜드의 모델사진을 찍는다. 장매영이 모델을 한 미려브랜드담배가 출시되자 인기리에 팔리게 되고,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 미인화를 소장하기 위해 담배를 살 정도였다.
당시 미려브랜드담배는 상해화성연초공사(上海華成煙草公司)에서 생산했고, 장매영을 모델로 하는 외에 담배갑에는 수호전의 108명의 호한의 그림도 한장씩 그려놓았다. 108명의 그림을 모두 모으면 황금2냥을 받아갈 수 있었다.
이런 마케팅전략으로, 미려브랜드담배는 인기를 끌게 되고, 상해탄에서 최고로 잘 팔리는 담배가 된다. 장매영의 미모도 담배가 인기리에 팔림에 따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 심지어 국민당 특무국장 대립(戴笠)까지도 상해로 올 때마다 장매영을 그의 댄스파트너로 지명할 정도였다.
인기를 글게 되니, 그녀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들은 각종 수단을 써서 장매영과 만나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미친 듯한 거동과 행동들에 장매영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하루빨리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금방 장매영은 성실한 주군무(周軍武)를 만난다. 그녀는 바로 마음이 동하고, 두 사람은 취미도 같았으며 공동의 화제가 있었다. 둘은 금방 사랑에 빠졌고, 자연스럽게 혼인에 골인한다. 결혼후 장매영은 1남1녀를 낳고, 남편과 자식들을 돌보면서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시간은 흘러 1971년이 되었다. 장매영은 이미 58세이다. 남편 주군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자녀들도 모두 성인이 되어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장매영은 혼자서 상해 연안서로의 20여평방미터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자녀들은 모친이 다시 좋은 인연을 만나 노년생활에 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장매영은 사랑은 하나뿐이라며 고집스럽게 거절했다.
당시의 장매영은 비록 환갑의 나이이고, 남편을 잃은 고통을 겼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녀의 용모는 마치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것인지 세월이 흘러도 그녀의 얼굴에 그다지 많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성숙한 여성의 특유한 우아한 매력이 넘쳤다.
그녀의 피부는 여전히 소녀처럼 탄력이 있었고, 그녀의 손동작이나 걸음걸이도 세월로 닦여진 우아한 기질을 드러내어 더욱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장매영의 용모를 이렇게 평했다; 그녀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의사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은행에 돈을 예금하러 갔는데, 은행원이 그녀의 얼굴에 시선이 꽂히더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1974년, 이미 61세가 된 장매영은 야채를 사러 외출했다. 그런데 그때 한 젊은 상해의 공안(公安) 주영학(周榮鶴)을 만나게 된다. 주영학은 26살이었고, 군대에서 퇴역한 후, 장녕공안분국(長寧公安分局)의 강소로파출소(江蘇路派出所)로 배치받아 호적을 담당하는 경찰이었다.
당시 상사인 손발의(孫發儀)는 주영학을 데리고 관할지역의 상황을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그가 장매영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저 여자가 바로 민국시기 미려브랜드 담배의 모델인 장매영이다"
무심하게 던진 이 한 마디와 그녀의 뒷모습은 주영학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결국 주용학은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그녀는 문을 열고나서 주영학이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자 경계를 늦춘다. 주영학은 자신을 소개하고난 후에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장매영의 여러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을.
장매영은 처음에는 잘 응대했다. 공안이 찾아왔으니 최대한 협조한 것이다. 설사 주영학의 말이 좀 부적절하기는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협조해주고, 예의를 차려서 나가달라고 말한다.
주영학은 장매영의 치파오에 가려진 풍성한 몸매를 보고서 일찌감치 나쁜 생각을 품었다. 그는 장매영을 끌어안고 강제로 키스를 한다. 그러나 장매영은 그를 밀쳐낸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주영학은 황급히 도망친다. 문을 나서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후로 주영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못된 행동은 장매영이 오랫동안 잊지 못했고, 자신이 모욕을 당하였다고 생각하여 침중한 심리적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아들 주덕안(周德安)이 모친을 만나러 왔을 때, 장매영은 결국 그 일을 아들에게 얘기한다.
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978년, 즉 사건발생후 4년이 지나서, 장매영은 고발장을 써서 주영학이 일하는 장안분국으로 보낸다.
고발장을 받은 장안분국은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고, 그 고발장은 그대로 묻어둔다. 주영학은 이때 공안계통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1974년 장매영에게 몹쓸 짓을 한 9년후에 주영학은 말단의 호적담당경찰에서 강소로파출소의 부소장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1983년부터는 장안분국의 단위서기(團委書記)도 맡는다. 주영학의 직급이 고속승진하는 9년동안, 그의 사생활은 문란했다. 앞뒤로 3명의 부녀를 간음한다.
1983년, 중국대륙에는 대규모의 "엄타(嚴打, 엄중단속)"이 시작된다. 문혁때 남겨진 사회문제에 대하여 각종 범죄를 엄격히 단속하는 것이었다.
이번 "엄타"에서 가정댄스파티를 조직하거나, 혼외성관계를 가지거나, 심지어 재물을 조금 훔친 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남녀간의 연애가 조금 선을 벗어나거나, 혹은 신체를 노출하더라도 바로 노동개조형에 처해졌다.
당시의 주영학은 한참 잘 나갈 때였다. 그녀가 이전에 장매영 및 3명의 부녀에게 했던 일을 생각하니, 일단 탄로나면, 자신의 관직은 물론이고 생명도 보존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영학은 3명의 부녀를 찾아가서 이익으로 회유하고 협박하는 강온양책을 써서 그녀들로부터 자신의 고발하지 않겠다는 동의를 받아낸다. 이제 남은 것은 장매영 뿐이었다.
1983년 10월 21일, 주영학이 장매영에게 몹쓸 짓을 한 9년후, 그는 다시 한번 연안서로의 작은 집 대문을 두드린다.
이미 70세가 된 장매영은 문을 열자마자 문앞에 서 있는 주영학을 본다. 그리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9년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영학은 장매영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보자 바로 걸어들어간다. 이웃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내가 오늘 온 것은 사죄하기 위함이다. 이전에 내가 당신을 모욕했었고, 당신을 존중하지 못했다. 용서해달라. 오늘 온 것은 당신에게 인사하고, 나를 고발하지 말아달라고 하기 위함이다. 내가 잘못했다." 주영학은 바로 이렇게 말한다.
"됐다. 됐다. 이미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장매영은 이전에 발생한 일 때문에 마음 속으로 거리낌이 있어서, 얘기를 빨리 끝내고 주영학을 내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그녀는 주영학에게는 마음 속으로부터 혐오의 감정이 있기 때문에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게 된다.
주영학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들의 말을 이웃이 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여 겁을 먹는다. 무의식중에 그는 장매영의 입을 틀어막는다. 장매영은 그 모습을 보자 주영학이 다시 예전처럼 무례를 범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크게 소리지른다.
아마도 그것이 주영학을 분노하게 한 것같다. 그는 장매영을 의자에 눌러앉힌다. 장매영은 죽어라 발버둥친다. 주영학의 손은 그녀의 입을 더욱 꽉 막게 된다. 또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두 다리로는 그녀의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녀가 발로 바닥을 쳐서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영학은 공안이고, 이전에 군대에도 있었다. 힘이 셌다. 장매영은 이미 70 노인이니 전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금방 주영학에 의해 입이 막히고, 목이 졸린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일찌기 '상해탄제일미녀'라고 불리던 여인이 '미려'브랜드 담배의 모델을 했던 우아한 여인이 이렇게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주영학은 진정하고 현장을 정리한다. 자신의 지문을 모두 지운 후 몰래 현장을 떠난다.
며칠 후, 이웃은 장매영의 집 문에 계속 닫혀 있는 것을 보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장매영은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했고, 매일 새벽에 나와서 신체단련을 했다 .이웃은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여기고 공안에 신고한다.
공안은 장매영이 이미 살해된지 며칠이 지났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구례정(裘禮庭)을 조장으로 하는 전안조(專案組)를 조직하여 조사를 시작한다.
주영학은 당시에 이미 장안분국의 단위서기이므로, 그는 적극적으로 사건해결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서, 온갖 수단으로 수사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자신이 혐의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는 구례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곳 파출소의 부소장을 맡았다. 그래서 비교적 이 지역을 잘 안다. 장매영은 일찌기 '미려'브랜드 담배의 모델이었고, 소문에는 군통의 우두머리 대립과도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당특무가 정치적암살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례정은 즉시 주영학의 말을 부정한다. 그는 국민당특무라면 해방초기에 손을 쓸 수 있었는데, 30여년이나 기다려서 손을 쓸 이유가 없다.  그후 전안조는 중점을 장매영의 생전 인간관계로 두고 모두 100여명을 조사한다. 그러나 모두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었다.
조사가 미궁에 빠질 때, 한 수사관이 구례정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장매영의 아들에 따르면, 모친이 생전에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해를 당하면, 흉수는 아마도 장녕분국의 주영학일 것이라고. 모친은 1974년 주영학이 집에서 강제로 입을 맞추려했다는 것도 얘기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장녕분국에 고발장도 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이 단서를 전안조는 중시한다. 다만 공안내부인원이고, 특히 주영학은 이미 공안계통의 간부이므로, 전안조는 틉결히 장안분국의 국장에게 보고를 한다. 그러나 국장은 이것은 인민경찰을 모함하는 것이라 여기고 주영학에 대한 입건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전안조는 단서를 상해시형정처에 보고하고, 거기에서 수사개시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다.
며칠 후, 주영학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전안조는 회의개최를 명목으로 주영학을 신강빈관(申江賓館)으로 부른다. 주영학이 회의실 문을 들어서면서,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전안조조장인 구예정등이라는 것을 보고는 어찌된 일인치 바로 눈치챈다.
1985년, 주영학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 전안조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원래 처음 장매영이 주영학에 대한 고발장을 냈을 때 그 고발장을 중시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두 사람의 운명은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다. 인생은 이렇다. 영원히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뒤로 돌릴 수가 없다.  

上海灘第一美女蔣梅英殺人案


文章:時光故事
自古至今, 希望歲月流逝, 容貌不衰老是許多女人的渴望。
今天要講的主人公是天生麗質的美人,花甲之年依然保持着美貌,但她的美貌並沒有給她帶來名聲,而是給她帶來了悲劇性的命運。
她就是被稱爲"上海灘第一美女"的張梅英。 她就是"美麗"品牌香菸的代言人。
江蘇、浙江自古以來是美女輩出的地區。 張梅英1913年出生於浙江鎮海的一個富商之家。 父母都是比較開明的人,所以不像當時思想守舊的人那樣認爲"女人沒有本事是多虧的" 張梅英從小就學習,很有才能,容貌也很出衆。 仰慕她的人們甚至在門前排隊想看看她的美貌。
一天,張梅英在回家的路上,一個男人一直跟在後面。 走到門口,那個男人攔住了前面。
原來這個男人是要給張梅英當模特的。 這是爲了拍攝"美麗"品牌的香菸的宣傳畫。 男人告訴她,只要拍幾張照片就可以,這樣就能名聲大噪。
於是她好奇地去上海拍"美麗"品牌的模特照。 張梅英代言的美女品牌香菸一上市就大受歡迎,甚至不吸菸的人也爲了收藏這幅美人畫而購買香菸。
當時美麗品牌香菸由上海華成菸草總公司生產,除張梅英爲模特外,香菸盒上還畫了一張《水滸傳》的108名好漢的畫。 如果把108人的畫全部收集起來,就能拿到2兩黃金。
通過這種營銷戰略,美麗品牌香菸會大受歡迎,成爲上海灘最暢銷的香菸。 隨着香菸的熱銷,張梅英的美貌也無人不曉。 甚至國民黨特務局長戴笠也每次來上海時都會指名張梅英爲他的舞蹈夥伴。
人氣一落千丈,想見她的人就多了。 他們想用各種手段去見張梅英。 而且對於這種瘋狂的行動和行動,張梅英感到不舒服,爲了擺脫這種狀況,她決定儘快結婚。
不久,張梅英遇到了誠實的周軍武。 她立刻動心,兩人興趣相同,有共同的話題。 兩人很快就墜入愛河,自然而然地步入婚姻殿堂。 結婚後張梅英生了一男一女,照顧丈夫和子女,逐漸被人們遺忘。
時間流逝到了1971年。 張梅英已經五十八歲了。 丈夫周君武因癌症去世。 子女們也都成年了,生活在其他城市。 張梅英獨自一人住在上海沿岸西路20多平方米的小房子裏。
子女們認爲母親再次遇到好姻緣,希望在老年生活中有另一半,但張梅英堅持拒絕說:"愛情只有一個。"
當時的張梅英雖然年過花甲, 飽受失去丈夫之苦, 但神奇的是, 她的容貌彷彿得到了上天的呵護, 歲月流逝, 她的臉上也沒有留下多少痕跡。 反而她充滿了成熟女性特有的優雅魅力。
她的皮膚依然像少女一樣有彈性,她的手勢和步伐也展現了歲月流逝的優雅氣質,讓人覺得更加美麗。 有人這樣評價張梅英的容貌;她到醫院看病, 醫生緊緊抓住她的手不放; 她去銀行存錢, 銀行職員把目光投向她的臉上, 無法把目光投向別處。
1974年,已經61歲的張梅英外出買蔬菜。 但那時遇到了一位年輕的上海公安周榮鶴。 朱英學26歲,從軍隊退役後,被分配到長寧公安分局江蘇路派出所擔任戶籍警察。
當時上司孫發儀帶着朱英學介紹了管轄地區的情況,他指着張梅英的背影這樣說:"那個女人就是民國時期美麗品牌香菸的代言人張梅英。"
不經意間拋出的這一句話和她的背影深深銘刻在周英學的腦海裏。 最終朱龍學以調查的名義到她家去。
她開門一看朱英學穿着警察制服就放鬆警惕。 周永學介紹自己後開始問長問短。 相當於張梅英各種隱私的內容。
張梅英一開始很會應酬。 因爲公安來了,所以儘可能地協助了。 雖然周永學的話有些不妥。 耐心地給予協助,禮貌地出去。
朱英學看到張梅英被旗袍遮住的豐滿身材後,很早就產生了不好的想法。 他抱着張梅英強行接吻。 但是張梅英卻把他推開。
沒有達到目的的朱英學慌忙逃跑。 出門說一句話:"今天的事不要告訴任何人!"
此後,朱英學就再也沒有出現過。 但是他的惡劣行爲讓張梅英久久不能忘記,認爲自己受到了侮辱,留下了沉重的心理負擔。 後來兒子周德安來看望母親時,張梅英最終把那件事告訴了兒子。
在兒子的積極幫助下,1978年,即事件發生4年後,張梅英寫檢舉信,送到朱英學工作的長安分局。
接到舉報信的長安分局不做任何處理,直接將舉報信埋葬。 朱英學當時正在公安系統乘勝追擊。
1974年對張梅英做壞事的9年後,朱英學從末端的戶籍擔當警察晉升爲江蘇路派出所副所長。 此外,他還將從1983年開始擔任長安分局的團委書記。 在朱英學級別高速晉升的9年裏,他的私生活非常混亂。 前後姦淫三名婦女。
1983年,中國大陸開始了大規模的"嚴打"。 對文革時期遺留的社會問題,嚴格查處各種犯罪。
這次"嚴打"中組織家庭舞會、發生婚外性關係、甚至偷竊一些財物,就足以判處死刑。 男女間的戀愛即使稍微脫離界限或暴露身體,也馬上被處以勞動改造刑。
當時朱英學正紅火的時候。 一想起她以前對張梅英及三名婦女所做的事, 就覺得一旦暴露, 不僅不能保住自己的官職, 連生命也保不住。
於是, 周英學找到3名婦女, 用利誘和脅迫的軟硬兼施, 從她們那裏得到不告發自己的同意。 現在只剩下張梅英了。
1983年10月21日,朱英學對張梅英做壞事的9年後,他再次敲開了延安西路的小屋大門。
已經70歲的張梅英一開門就看到了站在門前的朱英學。 而且只能緊張起來。 因爲想起了9年前的痛苦記憶。
朱英學看到張梅英一個人在家就走了進去。 爲了不被鄰居發現。
"我今天來是爲了道歉。 以前我侮辱過你,不尊重你。 請原諒。今天來是爲了向您問好,不要告發我。 是我錯了。" 周永學就是這樣說的。
"好了,好了。 已經過去這麼長時間了,不用再說了。" 張梅英因爲以前發生的事心裏很忌諱,所以想盡快結束談話,讓朱英學離開。 再加上她對朱英學有着從心裏厭惡的感情,所以聲音也越來越大。
朱英學看到她的樣子後,覺得鄰居們可能會聽到她的話,就害怕了。 無意中他捂住了張梅英的嘴。 張梅英看到那個樣子後,覺得朱英學再次像以前一樣無禮,所以大聲喊道。
也許這激怒了周永學。 他把張梅英壓在椅子上。 張梅英拼命掙扎。 朱英學的手更封住了她的嘴。 另一隻手掐住了她的脖子。 雙腿使她的雙腿無法動彈。 因爲她用腳踩地板,所以不知道住在樓下的人能不能看出來。
周永學是公安,以前軍隊也有過 力氣大。張梅英已經是七十高齡了,完全招架不住。
剛被朱英學堵住嘴,勒住脖子的她就停止了活動。 曾經被稱爲"上海灘第一美女"的女人,成爲"美麗"品牌香菸模特的優雅女人就這樣失去了生命。 周永學鎮定下來,整理現場。 把自己的指紋都刪掉後偷偷離開現場。
幾天後,鄰居看到張梅英家的門一直關着,覺得有什麼不對勁。 張梅英每天有規律地生活,每天凌晨出來鍛鍊身體。鄰居以爲出了什麼事,向公安舉報。
公安機關發現張梅英已經遇害好幾天了。 於是組織以求禮庭爲組長的專案組開始調查。
周永學當時已經是長安分局的團委書記了,他積極出面參與破案,千方百計把偵查方向轉向別處。 爲了自己不受嫌疑。
他對求禮亭這樣說:"我擔任了這裏派出所副所長。 所以比較瞭解這個地區。 張梅英曾經是"美麗"品牌香菸的代言人,傳聞中也有與軍統頭子對立的往來。 因此,我認爲國民黨特務是不是進行了政治暗殺。"
求禮亭立即否定周永學的話。 他說:"如果是國民黨特務,在解放初期就可以出手,沒有理由等30多年纔出手。 此後,全安組將重點定爲張梅英生前的人際關係,共調查100多人。 但都沒有引發事件的可能性。
調查陷入迷宮時,一名調查官這樣向求禮亭報告。 據張梅英的兒子介紹,母親生前曾對他說過這樣的話。 假如自己受到傷害,兇手可能是長寧分局的朱英學 母親還講述了1974年朱英學試圖在家裏強行接吻的事情。 於是她向長寧分局遞交了檢舉信,說沒有任何措施。
前案組重視這個線索。 只是公安內部人員,特別是朱英學已經是公安系統的幹部, 全安組特地向長安分局的局長報告。 但是局長認爲這是誣陷人民警察的行爲,不同意對朱英學進行立案調查。 最終,全案組將線索上報上海市刑政處,並在那裏徵得對開始調查的同意。
幾天後,爲了不引起周永學的注意,全安祖以召開會議爲名,將周永學稱爲申江賓館。 朱英學走進會議室大門, 看到坐在那裏的人是前案組組組長的具禮正燈, 不知怎麼回事, 馬上就察覺到了。
1985年,對朱英學執行死刑。 田安祖不禁嘆息。 如果張梅英在第一次對朱英學提交告發狀時重視該告發狀,就不會發生這樣的悲劇。 也許兩人的命運是不同的。 人生就是這樣。 時間永遠向前流逝。 轉不過身來。

 
上海滩第一美女,62岁被26岁小伙惦记,9年后为何惨遭灭口?
 

看到这样一个题目,想必大家跟我一样,首先会想这个美女到底是谁?我们不卖关子,这位上海滩第一美女就是蒋梅英,对于如今的人们来说,这个名字是陌生的,但是对于那个时代的上海来说,蒋梅英是一个明星般的存在。

蒋梅英

美女如同香烟,让男性为此如痴如醉,三十年代的上海滩,香烟是很多男人的必需品,美女也是,而蒋梅英就被称为“香烟美女”,当时的香烟包装盒上就是蒋梅英的肖像,商家以蒋梅英的美貌以及名人效应来吸引顾客。旧上海的灯红酒绿中,从来不缺美女,蒋梅英是美女如云的上海滩最特别的一个,她五官精致,皮肤白皙,性格孤傲,越是得不到的越是迷人,这样清冷的蒋梅英简直让男人们疯狂。

香烟盒上的蒋梅英像

追求蒋梅英的男人从来不在少数,即使被拒绝,这些人仍然坚持不懈地去讨好,但是蒋梅英却没有给这些人幻想的机会,她对周武军一见倾心,两人情投意合,很快就走进了婚姻的殿堂。但是即使蒋梅英用已婚这样的身份来拒绝外界的追求者,还是有人迷恋她的容貌,穷追不舍的人还一直存在。

蒋梅英婚后一直与丈夫恩恩爱爱,完全不理会那些追求者,但是这样的生活却没有一直持续下去。1971年,蒋梅英的丈夫因病去世,只剩下蒋梅英一个人独自生活在上海,失去丈夫的蒋梅英很快又成了上海滩的吸睛人物,倾慕者们又开始了不懈的追求。但是尽管追求者怎样示好,蒋梅英的心里依然装着自己的丈夫,并没有理睬他们。62岁的蒋梅英在年龄上不再年轻,但是岁月好像丝毫没有改变她的容貌,反而经过岁月的洗礼,蒋梅英更加的有魅力,依然貌美不可方物。

62岁的蒋梅英怎么也没有想到,自己在这个年纪,居然还因为美貌招来了横祸。独身一人的蒋梅英被26岁的周荣鹤惦记上了,周荣鹤是一名警察,他利用职位之变到蒋梅英家里视察,在临走的时候他实在忍不住,就一把抱住蒋梅英并且亲了一口。冒犯完之后他还威胁蒋梅英不要说出去,然后像个没事人一样走了,但是蒋梅英从此却不能像没事人一样生活,她的心里时长想着这个耻辱,内心极度痛苦。

这件事之后这几年,蒋梅英内心压力一直很大,而这件事的始作俑者周荣鹤却依然用职务之便去做不齿之事,除了蒋梅英,被冒犯过的女子还有三人。周荣鹤一直威胁这几位女子,不让他们说出去,其他的女子由于没有身份地位,丝毫不敢声张,但是蒋梅英却不是一个会忍气吞声的人,她曾将事情告诉自己的儿子,但是碍于周荣鹤的警察身份,一直也没把没法扳倒他。

周荣鹤渐渐也开始害怕这件事真的被捅出来,那样的话他一定会身败名裂的,所以他再次去威胁了他冒犯过的女子,最后他去找了蒋梅英。这些女子中,周荣鹤最不放心的就是蒋梅英,刚开始他好言好语的请求,奈何蒋梅英一直将他怀恨在心,丝毫不想这样忍气吞声,蒋梅英越说声音越大,周荣鹤为了不被别人听到,就死死地捂住了蒋梅英的嘴巴。谁知道蒋梅英一直挣扎,周荣鹤也心慌一直捂着不松手,就这样一条美丽的生命就这样折损了。

最后,周荣鹤并没有逃脱法律责任,蒋梅英的死查到了他的身上,周荣鹤得到了应有的惩罚。自古红颜薄命,蒋梅英因为长相貌美,婚前一直被人骚扰,婚后终于过上了相对安稳的生活,但是丈夫却离世剩下她一个人,本想安稳过完后半生,但是仍然是因为美貌被侮辱,最后还惨遭毒手。实在是可惜,毕竟她并没有做错什么事,只是因为长相出众,所以长相美丽也是福祸不可测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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