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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라는 인재, 사회재난에 대하여

ⓒ연합뉴스

 

: 고태은

[인권의 바람] 재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가 나설 때

넘쳐나는 말과 사건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벼리기 위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들의 고민을 <프레시안>에 연재합니다. 우리의 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싹이 되고, 인권 감수성을 돋우는 생각의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34.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었나요?

지난 34일은 대선 사전투표 기간이었다. 이번 사전투표는 36.9%로 역대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 대선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언론과 포털, 소셜미디어까지 많은 공간에서도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투표율과 막바지 선거 유세를 중점 보도했고 특보로 대선 결과에 대한 예측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기대는 5년간, 우리 모두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 모였다.

 

그러나 대선 뉴스에 집중할 수 없던 이들이 있었다. 동시기에 동해안에서 역대 최악의 피해를 준 산불이 났기 때문이다. 산불 소식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긴급재난 문자로 대피하라는 알림이 뜨지만, 뉴스에서는 여전히 대선 특보가 보도되고 있었다. 산불은 실시간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재난지역에 가까울수록 바람이 어디로 붙고 있는지, 산불 진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 대피소가 어디로 정해졌는지 같은 정보는 모두 실시간으로 결정되고 통보될 수밖에 없다.

 

산불의 진로와 속도, 진화 정도에 따라 주민들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산림지역의 주민들은 산불이 날 때마다 산불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며 주시하는 것에 익숙하다.

 

35일 밤 발생한 강릉 산불은 밤 11, 새벽 3시경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재난 관련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은 필수지만, 대선 뉴스 사이에서 실시간 산불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산불 정보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이번 한 번의 특수한 상황 때문은 아니다. 산불 관련 소식은 아무리 대형 산불이라고 하더라도 메인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산불은 다수의 인구가 거주하는 수도권에서 발생하지 않고, 일부 지역에서 경험하는 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산불 진화 실황이 담긴 소식과 산불에 대한 기부 기사가 뒤엉켜 있는 뉴스는 산불 기사를 검색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전혀 헤아리고 있지 못했다. 산불은 열흘 동안 이어지다가 역대 최대 피해, 최장기 산불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남긴 채 봄비로 완전히 소강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재(人災)인 산불

산불은 지진이나 해일, 수해와 다르게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이다. '산에서 난 불'이니 자연재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가까운 자연에 인간이 일으킨 가해에 가깝다.

 

산불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피해를 주목하더라도, 이는 인간으로 인한 재난이고 인간 사회의 대응 실패로 인한 피해라고 볼 수 있다.

 

산불은 인재다. 자연발화가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산불은 담배꽁초, 라이터와 같은 인간의 소지품에서 시작된다. 심지어 나흘간 동해와 강릉 지역의 큰 피해를 준 옥계 산불은 방화로 인한 산불이었다.

 

산불은 초기 진화가 중요하고, 골든타임을 놓치면 진화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야간에는 대부분의 소방헬기가 운행되기 어려워 소방차량 및 인력에 의한 감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야간 진화 작업은 대체로 방어선을 잘 구축하여 불길이 더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에 집중된다.

 

산불은 밤낮이 없지만, 인간은 낮에만 불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진화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장기 진화작업에 돌입할 경우 소방인력의 과로 문제도 심각하다. 야간 진화작업이 대체로 사람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야간노동이 필수적이고, 온종일 극한의 상황에서 이어지는 소방 활동과 체온 유지가 어려운 조건 등은 당연히 인체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고 높은 과로의 위험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산불피해 지역이 넓어지고, 총력전이 필요해지지만 제대로 진화되지 않을 경우 예측할 수 없는 비상 근무가 이어진다. 산불 지역은 소방 외에도 많은 공무직 노동자들이 야간 노동에 동원되고 있고, 심지어 산불 특수진화대라는 소방인력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산불 특수진화대는 초과근무수당도 없는 계약직 노동자로 산불 진화와 관련한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소방인력의 사망 소식은, '숭고한 희생' 이전에 사회적 대응 실패로 인한 인재라 봐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재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가 나설 때

큰 산불이 완전 진화 된 지금 우리는 진짜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 이 사회재난의 극복을 위하여 우리는 피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산불피해 지역 외에도 매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산불 피해를 본 지역도 존재한다.

 

지역과 전소 지역 이재민의 피해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산불 또한 인명피해는 적었지만,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이 상실된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유독 재난과 같이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대하여 개인의 불행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재난은 불가피하고, 이전 시기에 개인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재난이 아닐까.

 

사회안전망이란, 사회구성원 누구나 이 안전망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뢰를 할 때 비로소 안전망으로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재난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여전히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산불로 대두된 소방인력의 노동 안전 문제가 논의될 필요가 있다. 특히 산불 특수진화대와 같이 산불집중 기간에 초과근무와 높은 수준의 위험 강도가 있는 일, 과로가 예상되는 직종의 고용 안정성 확보나 충분한 인력배치도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현재는 고용된 산불 특수진화대조차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제대로 소방용품이 지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적어도 현재의 산불 특수진화대원들이 고용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과 변화가 시급하다.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산불은 산림을 전소시키고, 전소된 산림은 오랜 기간 돌아오기 어렵다. 타버린 산림을 살리기 위해서는 비워진 자리에 나무를 심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해버린 토양은 지력을 잃고, 새롭게 세워진 숲에 다시금 주변 동식물들이 자리 잡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렇게 예전처럼 토양에 나무가 자리 잡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큰 산불에 터전을 잃거나, 죽어버린 생명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열흘 동안에 타버린 산림의 회복은 적어도 반세기 이상 바라보아야 한다.

 

원래부터 한반도의 봄철은 작은 불씨도 큰 산불로 키우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봄 가뭄이 악화하였고, 며칠간 지속한 풍랑주의보는 산불이 크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겨우내 건조하게 마른 산림은 불이 붙기 좋았고, 겨우 주불을 잡더라도 낙엽 사이에 숨어 있다가 거센 바람에 다시 살아나기 일쑤다. 봄 동안 지속하는 산불 방재 활동이 무색하게, 한 번 불길이 시작되면 쉽게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앞으로 더욱 지속할 수밖에 없다.

 

역대급 산불 피해라고 하지만, 산불 위협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산불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산불 방재 기간 산불이 주로 나는 지역을 위주로 진행되는 방재 활동이 아닌 온 지구 시민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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