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靜宜)는 왕정의이고, 육용(育容)은 임육용이다. 전자는 출토문물같지만, 후자는 현대중국역사상 몇 손가락 내에 꼽히는 인물이며, 누구도 그를 현대사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가장 혁혁한 인물중 하나이다. 기실,분명히 당신도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사에서 통상적으로 임표라고 불린다.
한 프롤레타리아혁명가는 임표와 같은 고향사람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향에 이런 말이 있다. 임표의 조상이 살던 곳은 왕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다. 임표는 혁명하러 가면서 첫번째 부인을 버렸는데, 그녀는 평생 시집을 가지 않고 매일 임표의 집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원녀(怨女)의 음기가 중하여 임표의 왕기가 꺽였다." 필자는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 일을 알아보기 위하여 임표의 한 비서를 만난 적이 있다. 아래의 이야기는 그 비서가 친히 말해준 내용이다.
1) 1924년, 임표의 부친 임명경(林明卿)은 임표에게 며느리를 구했다고 얘기한다. 여자의 이름은 왕정의(汪靜宜)이고 1907년 12월 6일생이며 임가대만(林家大灣)사람이다. 임표보다 하루 늦게 세상에 나왔다. 왕씨집안은 현지의 유명한 대갓집이다. 한 해는 두 도적이 담장을 넘어 왕씨집에 숨어들어 사십일을 먹고 자고 했는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보면 왕씨의 집이 얼마나 크고,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왕씨집안은 조상의 가훈을 지켜, 여자에게는 글을 읽지 못하게 했다. 왕정의는 명문집안출신이지만 글을 전혀 몰랐다.
임표는 웅자영발(雄姿英發)하여 반드시 크게 성공할 것으로 보았다. 왕씨집안은 그것때문에 딸을 임표에게 시집보내기로 한다. 임표는 어른들의 뜻을 꺽지 못하고 이 혼인에 동의한다. 그러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러 떠난다. 이때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항전후기에 그는 섭군(葉群)과 결혼하여 임립형(林立衡, 린리헝)과 임입과(林立果, 린리궈)를 낳는다. 1949년, 제4야전군이 남하한다. 임표는 금의환향한다. 우한을 함락시킨 후, 임표는 호북의 최고군정장관이 된다. 임명경은 우한으로 그를 보러 가서 맗해준다: 왕정의는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 임표는 나를 불러서 임가대만으로 가서 이 일을 처리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2천위안의 돈을 왕정의에게 보내고, 임표와 섭군이 같이 찍은 사진도 주면서 나에게 왕정의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이것으로 아마 그녀의 마음을 끊으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왕정의는 예쁘진 않았다. 젊었을 때는 약간 뚱뚱했다. 임가대만에서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아주 유명했다.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좌르를 흘러래닌다. 그녀는 머리를 빗는 것을 좋아했고, 자주 거울 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곤 했다.
머리카락은 그녀의 보배였다. 그녀는 심계가 있었다. 임표가 상친(相親)을 위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오는 날 낮에는 죽어도 규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밤이 되면 나가겠다고 한다. 아가씨는 낮에는 임표가 자신의 용모를 너무 잘 볼 수 있어서, 어둠으로 가리려 한 것이다. 그녀는 문틈으로 임표를 훔쳐보고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임표는 젊고 짙은 눈썹은 칼과 같았다. 눈빛은 번개와 같았다. 왕씨집안으로 들어온 후에는 계속하여 침목을 지킨다.
임표의 침묵은 항상 아무리 단단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밤이 되자, 왕정위는 임표와 만난다. 그녀는 그를 보지 않았다. 그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보지 않은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고, 그가 그녀를 보지 않은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이다. 왕정의의 규방 앞에는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배는 아주 달았다. 왕정의는 임표를 위하여 한 개를 따준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임표에게 복을 빌어주고, 배를 건넨다.
임표는 한 입 먹었는데, 물기가 배어 나왔다. 임표가 말한다: "맛이 좋다." 사람들이 나가고 집에는 그들 둘만 남는다. 왕정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필 이럴 때 사고가 난다. 그녀는 건너편의 의자에 앉았는데, 의자가 쓰러져 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전부터 이미 튼튼하지 못했던 것같다. 그래도 왜 하필 이럴 때 무너진단 말인가? 그녀는 얼굴이 발개져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헤어진다. 임표는 다시 왕정의를 찾지 않는다.
왕정의는 몰리 임표를 몇번 보러 간다. 임표는 한번 떠나가 황학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왕정의는 1년 또 1년을 기다린다. 집앞의 배나무꽃도 지고 다시 폈다. 매번 배가 익을 때면, 왕정의는 가장 크고 가장 좋은 것을 따로 한광주리 담아서 임표를 위하여 남겨둔다. 배는 점점 상해가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평형관대첩대, 북방에서 소식이 전해진다. 임표가 팔로군의 고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정의는 임표가 돌아와서 자신을 부인으로 맞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항상 문앞에 기대어 서서, 멀리 큰 길을 바라본다. 군인이 그녀의 집으로 오지 않는지 보고 있던 것이다.
2.) 나는 임가대만으로 간 후, 먼저 왕정의의 부친에게 온 뜻을 말한다. 왕정의의 부친은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왕정의의 부친은 나를 데리고 왕정의를 만나러 갔다. 아가씨는 마침 머리를 빗고 있었다. 그녀늬 모습은 고귀한 공주와도 같았다. 단정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정말 예뻤다. 먹처럼 새카맣고, 숲처럼 많았고, 거울처럼 빛났다. 두발무세월(頭髮無歲月), 소하유춘추(梳下有春秋). 그녀는 이미 사십이었다. 그녀는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뚱뚱하지는 않았다. 화장대 위에 작은 배광주리가 있었다. 바로 배가 익을 때였다. 나뭇가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마치 치심(痴心)의 아가씨의 슬픔과 같았다. 나는 왕정의에게 온 뜻을 얘기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를 바닥없는 심연으로 몰아넣었던 것같다. 그녀는 기절한다. 왕씨집안 사람들은 모두 통곡을 했다. 이십년간 기다렸는데, 인연을 이루지 못했다. 강철같은 마음이라고 견디기 힘들 것인데, 하물며 약한 여자임에야. 그녀는 깨어난 후에 얼굴을 감싸고 뛰어나간다.
사람들이 전체 마을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왕정의의 부친이 말한다: "분명히 형룡산(迥龍山)의 뒤에 있는 그 길에 가 있을 것이다." 임표는 어려서 준신소학을 다닐 때부터 발의 힘을 기르기 위하여, 두 다리에 각각 모래주머니를 매고, 달려서 학교로 가곤 했다. 임표의 모친이 이를 발견하고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그는 방학을 하면 형룡산의 뒤에 있는 작은 길에서 달렸고, 왕왕 한밤중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여러해동안 이를 쉬지 않았다. 왕정의와 알고 난 후에 아가씨는 이 비밀을 듣는다. 그래서 밤이면 작은 길로 간다. 그녀는 아직 혼인하지 않은 정혼자를 부르지 못하고, 그저 나무 뒤에 숨어서 그를 살펴보았다. 작은 길을 동네사람들이 석재를 채취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길에는 돌조각이 항상 떨어져 있었다. 왕정의는 임표보다 먼저 도착해서, 길에서 비교적 큰 돌맹이들을 치워놓았다. 그녀는 임표가 돌맹이에 걸려 넘어질까봐 걱정해준 것이다. 그녀는 반년이나 이렇게 했다. 임표가 떠난 후, 그녀는 그곳에 가기를 좋아했다.
왕정의는 과연 그 작은 길에 있었다. 달이 떠오르고, 맑은 빛이 온 산을 비춘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유령과 같았다. 왕정의의 부친은 딸의 손을 잡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왕정의는 부친의 품에서 대성통곡한다: "아빠, 힘들어요..."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임표와 섭군의 사진을 왕정의에게 건낸다. 두 사람은 모두 군복을 입고 있었다. 각반을 차고, 등에는 모두 두립(斗笠)을 매고 있었다. 왕정의는 보지도 않고 찢어버린다. 사람들이 떠나가, 왕정의는 다시 사진을 붙이고, 다시 찢었다. 이렇게 붙이고, 찢고를 밤새도록 여러번 한다.
다음 날, 나는 우한으로 돌아왔고, 왕씨집안과 작별한다. 단지 하룻밤만에 아가씨는 급변한다. 어제는 얼굴색이 복숭아꽃과 같았는데, 오늘은 죽은 얼굴이다. 어제는 아가씨였는데, 오늘은 아줌마가 되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틀어올렸다. 그녀의 머리에는 한줄기 백발이 보였다. 그것은 어제 저녁에 나온 것이다. 틀어올린 머리카락은 백발을 감추어 주었다. 아가씨는 이미 평정을 되찾았다. 제대로 차려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귀한 신색이 나타났다. 나는 임표가 준 2천위안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묵묵히 받았다. 그날 아침, 왕정의는 쌀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다시 한 그릇을 푼다. 왕정의의 부친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본다. 아가씨가 세번째 밥그릇을 먹으려 할 때,부친은 참지 못하고, "야. 너 미쳤느냐"라고 말한다. 아가씨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입으로 밥을 쑤셔넣었다. 볼이 가득하였다. 두 줄기 맑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서 밥그릇으로 떨여졌고, 그녀는 밥과 함께 먹고 있었다.
3) 해방후, 천지개변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진다. 구사회에서 사람을 착취했던 사람들은 이제는 사람들에게 착취당하게 된다.
왕정의의 집안은 지주로 규정된다. 왕정의의 셋째오빠는 국민당의 관리를 지낸 바 있어, 진압된다. 왕정의의 부친은 병사한다. 죽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은 "나는 일생동안 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은 바로 딸 정의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이다. 만일 내 딸이 공부를 했다면 임표가 그녀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왕정의에게는 난장이인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역시 시집을 가지 못했다. 두 아가씨는 서로 의지해서 살았다. 집과 전답을 모조리 빼앗겼다. 임표의 체면을 봐주어서, 규방은 그녀 둘이 살도록 남겨주었다. 어떤 사람은 왕정의에게 시집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왕정의는 말한다: "일처리가 바르지 못하면 뒤에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육용(임표의 본명)은 다른 사람을 찾았지만, 나는 찾지 않겠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도록 하지 않겠다. 나는 옥쇄할지언정 흰색을 바꾸지는 않겠고, 대나무를 불태워도 절개는 바꾸지 않겠다. 나는 살아서도 임씨집안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임씨집안의 귀신이다." 1960년, 호북에 대기근이 발생한다. 임가대만에서는 임표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한다. 그때 왕정의의 이야기도 전한다. 임표에게 왕정의는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임표는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그녀가 아직도 나를 기다린다고?" 이 순간 얼굴은 잠시 발그레졌다. 임표는 섭군과 상의한 후, 왕정의를 집으로 불러 보모로 쓰기로 한다. 나는 두번째로 임가대만으로 간다.
땅은 헐벗었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지경이었다. 이 즈음 왕정의의 생활은 아주 곤궁했다. 그녀는 포혜(布鞋)을 만들 줄 알았다. 여동생이 바깥으로 나가서 낡은 베를 구해오면 그녀가 신발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오른 손가락에는 깊은 홈이 패인다. 그녀는 신발을 팔아서 식량을 구했다. 중매를 서려는 사람들은 매번 그녀에게 거절당한다. 몇년전에 한 생산대장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다. "너를 보자마자 내 바지가 다 내려갈 뻔했다." 왕정의는 굳게 거절한다. 생산대장은 화가나서 말한다: "남자도 없는 냄새나는 아줌마!" 왕정의는 한바탕 곡을 하고 여동생에게 말한다: "남자가 없지만 있는 척하자." 이때부터 그녀는 임명경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임표의 아버지는 얼굴이 붉어져서 마치 남의 집안 것을 훔친 것같았다.
나는 다시 왕정의를 만난다. 그녀는 늙었다. 그녀는 베나무 아래에 정좌하고 앉아서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곁에는 몇 켤레의 포혜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나타났고 약간 말랐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많았지만, 흰 머리칼과 검은 머리칼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아주 집중하여 포혜를 만들고 있었다. 햇볕은 아주 좋았다. 그녀의 손에서 은빛 침을 볼 수 있었다. 간부 모양의 옷을 입은 사람이 그녀의 앞에 멈추어 섰다. 그녀는 놀라서 침에 손이 찔린다. 손에서는 붉은 피가 꽃처럼 흘렀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입으로 손가락을 빨았다. 회백색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그 사람이 말한다: "신발을 사겠다." 돈을 내려놓았지만, 포혜를 집지 않았다. 왕정의는 포혜를 집어서 건네주었지만, 그는 받지 않고 가버린다. 그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가련한 왕정의를 도와주려는 것이다. 왕정의는 쫓아가서 돈을 그에게 돌려준다. "나는 당신의 돈을 그냥 받을 수 없다."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포혜를 한 켤레 받아서 간다.
나는 온 뜻을 얘기한다. 나는 왕정의가 기꺼이 응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는 얼굴색이 차가워지더니 말한다: "나는 안간다."
나는 말했다: "섭군 동지가 재삼 당부했다. 당신 혼자서 농촌에서 너무 힘들게 사니. 당신을 북경으로 데려오고싶다고."
왕정의는 차가운 웃음을 남기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은 문앞에서 기다렸다. 왕정의가 마음을 바꾸기를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동생 왕금의(汪金宜)가 나와서 말한다:
"언니가 말하기를 동사영풍참(凍死迎風站), 아사불만요(餓死不彎腰). 얼어죽어도 바람을 맞고 서있을 것이고, 굶어죽어도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 당신들은 더 권하지 마세요."
나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녁후 나는 다시 촌간부와 왕정의를 만나러 간다. 왕정의와 여동생은 모두 집에 없었다. 촌간부는 머리를 탁 치더니. "그렇구나" 하더니 말한다. 어느 촌민노파가 오늘 자식을 낳는데, 왕정의는 분명 거기에 도와주러 갔을 거리고. 최근 임가대만의 어느 집에 자식을 낳으면 왕정의는 꼭 간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를 좋아하고, 임산부가 애낳는 것을 도와주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사람들도 그녀가 오면 좋아했다. 한가지 규칙이 있다: 갈때는 기뻐서 가지만, 올때는 우울해 한다. 어떤 때는 병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촉경생정(觸景生情)일 것이다. 왕정의는 오십여세이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여인들은 대부분 자손이 많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다. 내심으로 고통이 심했을 것이다. 한 해는 강에 더러운 플라스틱 완구인형이 떠내려 왔다. 왕정의는 건져올려서 깨끗하게 씻고는 침대옆에 두었다. 인간세상의 비극은 이보다 더할 수 있겠는가? 여인으로 태어나서, 처가 되고 모친이 될 권리를 잃다니. 다른 사람들이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어찌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겪지 않았겠는가? 아가씨, 당신은 연약한 몸 속에 얼마나 강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가. 촌간부가 가서 그녀를 찾았다. 작은 강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와 마주쳤다. 왕정의는 조용히 말한다: "아이를 낳는데 피를 세 통이나 흘렸다." 목소리는 비감했다. 돌연 그녀는 헛발을 디뎌 강에 빠진다. 강은 깊지 않아서, 그녀 스스로 기어올라왔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말한다: "강물이 원래 뜨거웠구나."
임표는 왕정의의 상황을 보고받은 후,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섭군의 눈은 촉촉해 진다. 나중에 그녀는 황강지구정부에 지시하여 왕정의에게 "광영혁명노인"증서를 주도록 한다. 그렇게 하여 지방에서 특수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왕정의가 죽은 후, 증서는 그녀의 여동생이 보관한다. "9.13"사변후에 회수된다.
4) 1963년 가을, 황강시위는 전보를 보낸다: "왕정의의 병이 위중하다." 임표는 나에게 다시 임가대만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근1년간 왕정의의 몸은 아주 좋지 않았다. 각혈도 했다. 어제는 일찍 일어나더니 그녀가 말했다. "시간이 되었다." 여동생에게 자신을 부축해서 형룡산 뒤의 작은 길로 가자고 한다. 그녀는 힘없이 한 돌맹이 위에 앉아서, 깊이있는 눈으로 이 낯익은 작은 길을 훑어보았다. 40년전에, 한 소녀가 이 곳에서 연소했다. 오늘 한 노인이 이곳에서 열반한다. 인생은 오래 가기 어렵다. 청산도 백두로 바뀐다. 오로치 처연한 애정만이 영원히 남는다. 여동생은 울었다. 그러나 언니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녀의 눈물을 이미 말랐다. 그녀는 조용히 석상처럼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는 쓰러진다.
나는 급히 왕정의의 집으로 갔다. 배나무는 이미 늙었다. 배나무도 울고 있었다. 마른 나뭇잎이 떨어져 내린다. 왕정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동생은 침대 앞의 숯불쟁만에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소학생이 쓰는 공책이었다. 그 위에는 비뚤비뚤한 글자가 가득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왕정의는 몰래 글을 배웠구나. 이 아가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항전했구나. 나는 눈물이 흘렀다.
왕정의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금의, 언니의 머리를 빗겨줘라." 여동생이 그녀를 부축해서 앉혔다. 그녀의 머리는 모조리 흰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성했다. 여동생이 가볍게 머리를 빗겨준다. 왕정의의 입에는 있는듯 없는듯 미소가 떠올랐다. 임종때, 왕정의는 여동생에게 당부한다: "내가 죽은 후 나를 산에 묻어도 좋다. 나의 묘 옆에는 빈 무덤을 하나 말들어 두어라. 그것은 그의...." 말을 마치고, 왕정의는 영원히 눈을 감는다. 나중에 내가 듣기로 같은 시간에 북경, 임표가 있는 서재에 태양이 비추는데, 한 마리의 제비가 유리창에 부딛쳐 죽었다고 한다. 임표가 말했다: "왕정의가 죽었구나"
1963년 가을, 왕정의는 세상을 떠난다. 임종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일생은 명이 좋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그녀의 후사를 처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아래에 임표가 그에게 보내준 붉은비단옷과 임표가 그녀에게 준 두터운 돈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임씨집안에서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 깜짝 놀란다. 족보를 만들 때, 임씨집안사람들은 왕정의의 일생을 동정하여, 임표의 이름 아래에 그녀의 이름을 써넣는다. 그리고 "빙(聘)"이라고 써둔다. 그 뜻은 집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경의 임표는 이 소식을 들은 후 탄식한다: "세상에 어찌 이런 여자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