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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날벼락' 맞은 전력난과 경제난, 쿠바에서 무슨 일이?

▲쿠바에서 15년째 거주하고 있는 정호현 감독 ⓒ정호현 제공

[인터뷰] 쿠바에서 15년째 거주하는 정호현 감독

글 : 전홍기혜 기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그로 인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탄사스 대용량 원유저장창고에 불이 났다. 지난 8월 5일 저녁에 일어난 일이다. 화재 진압과정 중에 제2저장소가 온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폭발해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1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실종됐으며, 1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현재 화재는 모두 진압됐지만, 4개의 저장소 모두 전소됐다.

이 사고는 쿠바의 전력난을 악화시켰다. 현지의 상황을 15년째 쿠바에 살고 있는 정호현 감독(<쿠바의 연인> 등 연출)에게 들어보았다. 정 감독과는 한 차례 서면 인터뷰와 15일 밤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5일 밤 낙뢰로 쿠바 마탄사스의 대규모 원유저장소에 불이 났다. 불을 끄기 위해 헬기가 동원된 모습. 현재 화재는 진압됐지만 4개의 저장소가 전소됐다. ⓒAP= 연합뉴스
 

수도 아바나도 주 4회 가량 정전…갑작스런 정전으로 영화 상영회가 중단되기도

마탄사스 저장창고 화재로 발전소 공급용 원유가 전소되면서 수도 아바나에서도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바나는 일주일에 4회 정전, 한번 정전되면 4시간 혹은 8시간 정전이 지속됩니다. 다른 지방은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전기가 나가는 시간보다 훨씬 짧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그것도 매일 정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바나의 정전 사태는 급기야 정 감독이 진행을 도운 주멕시코한국문화원이 주최한 '한국문화돋움제'(8월 12-13일)에서도 발생했다. 

"<헤로니모>(쿠바 한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감독 전후석 씨를 초대해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는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됐어요. 잠시 기다리니까 다시 전기가 들어와 영화를 상영하던 도중 또 정전이 됐어요.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다 보기는 했습니다. 전 감독은 오히려 '가장 낭만적인 상영회였다'고 말했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피를 말리는 일이었죠." 

현대인의 삶에서 전기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이번 사고로 쿠바 전역이 '언제 전기가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서 주민들의 일상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더운 쿠바의 여름 날씨에 정전으로 냉장고가 돌아가지 못하니 음식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해 쉽게 상하고, 선풍기 하나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모기가 들끓어 뎅기열 감염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슈퍼마켓·주유소 앞에서 너댓시간씩 기다려야 

이런 전략난은 코로나19 사태로 급속화된 경제난과 맞물려 주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된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지원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쿠바는 전기뿐 아니라 식량, 기름,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물자 부족으로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슈퍼마켓 줄이 지구 한바퀴를 돌만큼 깁니다. 닭고기를 사기 위해 서너시간 씩 줄을 서야 합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서 너댓 시간, 심할 경우 이삼일을 줄을 서야 합니다."

쿠바 영주권자인 정 감독은 이전까지는 정부의 배급을 받지 않아왔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자 부족 상황이 악화되면서 어느 슈퍼마켓에 가도 설탕 등 기본 식료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배급을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트럼프의 '숨통 조르기' 정책에 팬데믹까지 겹쳐 악화된 쿠바 경제 

쿠바 경제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수십년째 계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이다. 1959년 쿠바 공산주의 혁명과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로 미국인의 쿠바 여행 금지, 각종 경제 제재 등 반세기 넘게 금수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에 물꼬가 트이는 듯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쿠바계 미국인들의 쿠바 방문 허용을 시작으로 2015년 쿠바를 대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체하고 양국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는 등 54년 만에 공식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오바마는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당시 미국으로 이민간 친인척들로부터 쿠바 현지인들에게 각종 지원과 투자가 쏟아졌다"며 쿠바 사회가 가장 희망에 찼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런 희망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물거품이 됐다. '반이민' 정책에 기반해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는 쿠바와 국교를 단절하지는 않았지만, 오바마 정부가 취한 정책을 무효로 만든데 이어 새로운 제재 조치도 추가했다. 트럼프는 퇴임 직전에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쿠바 경제를 그나마 지탱하던 관광산업이 쪼그라들면서 현 상태로 치닫게 됐다. 쿠바 정부는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년간 미국의 금수조치로 인한 피해액이 55억7000만 달러(약 6조2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0년 쿠바 경제는 11% 역성장하고 수출은 40% 가량 급감한 것으로 추산된다. 

1년전 대규모 반정부 시위…민심을 추스리기엔 너무 더딘 변화 

이런 상황에 민심이 폭발했던 사건이 작년 7월 수도 아바나 등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였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단시일 내에 극복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봉쇄 못지않게 국가가 주도하는 쿠바식 사회주의 경제가 가진 문제도 크기 때문이다. 

쿠바를 60년 넘게 통치해온 '카스트로 형제(피델 카스트로-라울 카스트로)' 시대가 끝나고 2021년 4월 첫 혁명 이후 세대 지도자인 미겔 디아스카넬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연일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효과를 기대하기엔 이르다. 

"현재 쿠바 정부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경제 정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흐름은 개인사업 영역을 넓히는 것입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로 국영기업이 전부였습니다. 최근 100명 이하 고용까지 가능한 개인 기업을 허용했습니다. 다만 개인사업에 아직까지도 많은 제약이 있어 큰 변화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루가 멀게 개인사업 등록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중학생 아이를 둔 정 감독은 8월말 학교가 개학한 뒤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호텔, 학교, 병원 등 주요 시설이 경유를 연료로 하는 개별 발전기를 갖고 있어서 정전 사태에 대비할 수 있지만 잦은 정전으로 경유값이 치솟고 절대적인 공급량도 태부족한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아바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시부모님들이 아바나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가이미또에 사시는데 언제 정전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이전과 다르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 수준이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반정부 시위 이래로 정치적 격변 상황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쿠바 정부는 당시 시위 자체를 강경 진압하는 등 발빠른 대처를 했다. 쿠바 정부는 이후 수주간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고, 시위 주동자 및 참가자들을 무더기로 연행했다. 쿠바 정부는 790명을 공공질서 훼손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지만, 외신 보도에 따르면 1500명 내외가 시위와 관련해 체포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최고 25년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를 주도했던 상당 수의 인사가 체포를 피해 스페인, 미국 등으로 망명을 떠나기도 했다. 

급증하는 불법 이민…불안한 쿠바의 앞날  

"솔직히 단시일 내에 경제난이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 등으로 불법이민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멕시코 국경을 넘어서 갑니다. 쿠바에서 니카라과로 가는데는 비자가 필요가 없어서, 니카라과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 줄은 닭고기를 사는 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고 합니다. 그렇게 니카라과로 가서, 국경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로 가서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대 아들을 둔 엄마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아들이 방에 있나 제일 먼저 살핀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언제, 어느 순간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삽니다. 돈이 있는 부모들은 브로커를 끼고 자녀들한테 멕시코 비자를 구해준다고 합니다. 그럴 돈도 없는 집 아이들은 배를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는 것이지요." 

▲8월 16일(현지시간) 쿠바에서 배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의 해변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들을 미국 해상 경비대가 제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7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라자팍사 대통령을 몰아낸 스리랑카처럼 국가 부도 사태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므로 최악의 경제난이어도 아무도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또 현 정치세력이 미친듯이 부정부패를 해서 나라가 이 꼴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경제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지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면 어떻게 되겠다 이런 생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체제가 곧 정부이며, 정부가 곧 이데올로기 자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엄두가 나지 않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 그렇게 체제를 바꾸면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올 것인가? 이 상태에서 무너지면 쿠바의 지정학적 위치상 푸에르토리코처럼 미국의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 이외에 미국 바로 밑에서 답이 뭐가 있을까요?"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었던 혁명 이전의 삶을 다수의 쿠바인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때로 되돌이가는 것이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장에선 다소 이해하기 힘든 정치적 선택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 감독은 현재 쿠바 입장에서 가장 간절한 것은 국제사회의 지원이라고 말한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이웃 국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쿠바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유니세프를 통해 2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쿠바 국민들은 지금도 정전 속에서 모기와 싸우며 닭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습니다. '혁명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현 정부가 정말 혁명 당시 구호처럼 바꿔야 할 것을 모두 바꿔서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쿠바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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