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시민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나노 재료'를 취급하는 대전 소재의 한 A기업 노동자들의 혈액을 검사한 결과, 노동자 대부분에서 정상 기준치인 1.2보다 3~4배 높은 인듐이 나왔다. 많게는 기준 정상치보다 15배 넘는 인듐이 검출된 노동자도 있었다. 인듐 수치가 정상 기준치보다 높게 나온 노동자들은 '직업병 요관찰자(C1·직업병으로 진전될 우려가 있어 추후 관찰이 필요한 작업자)'로 판정된다.
<프레시안>은 A기업에서 인듐에 노출되어 직업병 요관찰자로 판정된 뒤 퇴직한 노동자 두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헛기침을 반복하는 등 숨이 차고 답답한 증상을 호소했다. 이들은 작업 공정에서 인듐을 가열하고 연마하면서 발생하는 연기와 분진을 마셨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사를 퇴직한 이후에도 혈청 중 인듐 수치가 기준치를 각각 4배, 6배 넘게 초과하고 있었다.
이들은 인듐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회사의 대응을 지적했다.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반복했고 반감기가 3개월이어서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했다"거나, "녹즙을 하루에 하나 씩 먹게 했다"는 등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인듐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인듐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멀리 있는 공장으로 발령 내고, 그 자리에 계약직을 채용한 회사의 대응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A기업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전 사업장과 A 기업 본사에 수차례 전화 인터뷰를 시도 했으나 A기업은 "확인을 해줄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인듐이란?
희귀 금속인 '인듐'은 전기가 통하면서 가시광선의 투과성도 좋아 태양전지, 평판 디스플레이, 터치스크린 등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주요한 소재로 쓰이고 있다. 또한 인듐은 고체 금속 중 연하기 때문에 가공이 쉽고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어 쓰임이 많다.
하지만 인듐은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지정되었을 뿐 아니라 폐암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에 국제암연구소(IRAC)에서는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2001년 일본에서 간질성 폐렴과 기흉으로 사망한 최초의 사례를 시작으로 미국, 중국 등 인듐에 노출된 노동자가 기흉, 간질성폐질환 등의 질환을 호소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김부욱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1000도 이상의 고온을 가하는 공정에서 인듐은 나노 입자 사이즈의 초미세한 형태로 변형된다"며 "같은 인듐이라도 작은 사이즈의 입자들이 큰 입자보다 독성이 더 높고, 인듐은 간질성 폐질환과 기흉 등 폐암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례가 쌓이고 쌓여야만 독성 정보와 제도는 뒤늦게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인듐 녹이면서 발생하는 연기와 분진이 날리는데 면마스크만 끼고 일했다"
A회사에서 5년 동안 재직했던 B씨는 거의 매일 인듐을 끓여서 작업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흄(금속을 태우면서 발생하는 연기)과 분진을 마셨다고 밝혔다. B씨는 "쉽게 말하자면 타깃(재료)의 표면을 거칠게 한 뒤 인듐을 녹여서 본을 떠, 모양에 맞게 연마 작업을 한다"며 "인듐을 녹이면서 흄이 발생하고 연마하면서 인듐가루가 손에 묻고 날리기도 하는데 건강에 유해한지 잘 모르고 (인듐이 유해물질로 지정되기 전까지) 면마스크만 끼고 일했다"고 말했다.
인듐 수치가 정상기준치보다 높게 나왔던 B씨는 회사에 폐 CT 촬영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수 검진을 진행했던 산업보건협회에서 폐 CT 촬영을 추가로 하라고 했는데 회사에서는 산업보건협회에서 회사로 연락이 와야 찍어주겠다고 하면서 미뤘다"며 "회사에 내 병만 고쳐 달라고 요구 했었다"고 말했다.
반올림에 이같은 사실을 제보한 뒤 폐 CT를 찍은 B씨는 경미한 폐쇄성 폐기능 저하 소견과 함께 폐결절 등으로 재검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인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면서 헛구역질을 하고 헛기침이 지속된 지 1년이 넘었다"며 "이대목동병원에서 폐CT를 찍어봤는데 그때 문제가 많다고 했었다. A기업에 입사할 때는 없었던 병이니까 A기업에 있을 때 걸린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 C씨도 "회사를 출근하면 입구에서부터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마른 기침이 계속 나오고, 감기가 걸려도 오래가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것처럼 기침이 계속 났다"고 말했다.
"문제 없다며 '녹즙' 먹인 회사... 인듐 수치 높은 노동자 내쫓고 계약직 채용"
회사는 인듐수치가 높게 나온 노동자들에게 '녹즙'을 주는 황당한 처방을 내렸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C씨는 "회사에서는 (인듐 수치가 높게 나와도)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반복했고 반감기가 3개월이어서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했다"며 "녹즙이 중금속을 배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제품을 사서 하루에 한 병씩 먹게끔 했다"고 말했다.
인듐 반감기가 3개월이라는 사측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국내에서 실시한 '난용성 인듐 화학물에 의한 폐질환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듐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15년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녹즙이 인듐 배출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B씨는 인듐 수치가 정상기준치보다 높게 나온 노동자들을 대신해 계약직을 채용한 회사의 대응을 지적하기도 했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기자 다른 비정규직으로 갈아치우는 조치를 회사가 취한 셈이다. B씨는 "작년에 (회사가) 처음 혈액검사를 했고 그 결과 인듐 수치가 정상 기준치보다 높게 나온 사람들은 직무를 변경시켰다"며 "인듐 수치가 높은 노동자가 발생하자 그 전에는 없던 계약직 직원이 생겼다. 인듐수치가 높은 사람들을 원래 작업에서 빼고 그 자리에 계약직을 채웠다"고 주장했다.
C씨도 "이전에는 모든 공정에서 3개월 수습 후 정직원이 되는 게 절차였는데, 인듐 때문에 계약직이 들어오면서 그 사람들한테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인듐이 문제가 되기전에는 계약직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회사는 특수검진에서 인듐 수치가 높아 C1 판정을 받는 노동자가 생기자, 노동자를 내쫓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다"며 "혈청 인듐 수치가 높은 노동자들을 대전공장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세종공장으로 발령을 냈고 퇴사하는 노동자들이 다수 생기자 그 자리에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했다"고 부연했다.
2020년까지 A사 대전 공장은 전원 정규직이었는데 인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 의무화된 2021년 말에는 10명 중 8명이 계약직으로 바뀌었다는 게 이 노무사의 설명이다.
이 노무사는 "창사이래 만 10년 동안 한번도 검사가 없다가 작년에 처음 혈액검사를 실행한 것인데 퇴사자 등 기존에 노출됐지만 검사를 받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해서 제도적인 공백이 있기 때문에 노동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애초에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도록 소재개발이 이루어져야 하고, 현재의 유해물질에 대해서 최대한 노출이 되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노출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A기업의 입장과 반론을 듣기 위해 <프레시안>은 대전 공장과 A기업 본사에 수차례 전화 인터뷰를 시도 했으나 A기업 본사 생산 실무진은 "확인을 해줄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