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앨런 와이즈먼은 왜 <인간 없는 세상> 썼을까?

▲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랜덤하우스
 
 
글 : 박병상 60+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기고] 젖은 낙엽이 떠올린 책
이른 아침.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완연한 가을이다. 어젯밤 비바람에 나뒹굴던 낙엽은 젖어 추레하다. 발길 피하는데, 주차된 고급 승용차에 덕지덕지 붙었다. 유난스레 비가 많던 올여름은 지나갔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겠지. 올겨울 거리에 눈이 며칠이나 쌓일지 궁금한데, 고맙게 우리는 4계절을 잃지 않았다.

부지런한 미화원의 빗자루로 커다란 자루에 담긴 낙엽은 저녁이면 한쪽에 쌓일 것이다. 어디로 갈까? 시립 양묘장에서 퇴비로 활용한다면 다행인데 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젖은 낙엽은 민원을 부르니 미화원들은 서두르고 싶을 텐데, 문득 '낙엽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고 싶다.

미화원은 물론, 어느 날 모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낙엽에 가려진 도로와 골목, 그리고 도시는 장차 어떻게 변할까? 비와 눈을 맞으며 쌓인 낙엽 사이로 새 풀이 돋겠지?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풀이 비집고 나온 이 길은 어떻게 변할까? 그런 점을 눈여겨본 과학저술가가 있다. 

앨런 와이즈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그는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했던 곳이 50년 만에 야생동물의 훌륭한 피난처로 변한 모습에 경탄했다. 내전으로 황폐해진 니카라과 해안이 10년 만에 되살아났으니 50년이면 충분하다는 걸 되새기면서 걱정한다. 지뢰가 사람 접근을 봉쇄하는 폭 4킬로미터에 241킬로미터 길이의 비무장지대는 스스로 복원되었다. 귀룽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두루미와 물까치가 넘나들며 고라니와 산양이 누비는 생태계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까? 개발 삽날이 여전하다. 

두루미가 날아든 비무장지대가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자연생태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 앨런 와이즈먼은 묵시록부터 펼친다. 자동차 충돌로 거리가 온통 엉망일 텐데, 이틀 지나면 뉴욕 지하철에 물이 가득해지고 일주일 지나면 핵발전소의 냉각수 순환 모터가 정지되리라 추정한다.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한다. 1년 후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10억 마리의 새들이 자유를 구가하며, 100년 후 상아 잃을 일 없는 코끼리가 20배 이상 늘어난다는 건데, 의외로 너구리와 여우는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해 밀려날 것으로 짐작한다. 

정유 시설과 화학공장들은 어떻게 될까? 비상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는 순간 통제장치는 기능을 잃고, 석유가스와 수소탱크가 새며 폭발해 시멘트 구조물들이 박살될 것이다. 탈황장치가 멈출 테니 산성비가 한동안 대지를 적실 것이다. 멕시코만이나 쿠웨이트의 가스매장 지대는 무척 오래, 어쩌면 영원히 불타겠지만, 공장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미생물이 석유화학 찌꺼기를 제거하면 나무가 자라오르고, 시내가 흐르면서 방울뱀과 비버도 돌아올 것이다. 우리나라 석유화학단지는 대개 갯벌 매립한 자리를 차지했다. 갯지렁이와 조개들이 들어오겠지. 

3만 개 넘는 핵폭탄은 임계질량 넘지 않아 무사하겠지만 핵발전소는 다르다. 핵폐기물이 모인 수조의 물이 끓어넘치며 어마어마한 방사능을 함유하는 증기가 거대한 버섯구름처럼 폭발하고 오염된 수많은 동식물이 돌연히 변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체르노빌을 보라. 이건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세월이 더 필요하더라도 푸틴이 일으킨 전쟁 와중에도 겉보기 평온하다. 사람이 비키자마자 나무와 풀이 무성해졌다.

500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맨해튼의 마천루 자리에 해양성 나무와 풀이 들어와 안정될 것으로 짐작하는 앤런 와이즈먼은 1000년 뒤 돌담마저 무너지면 인간이 세운 거대한 구조물은 영불 해저터널이 유일할 것으로 예상한다. 3만 5천 년이 지나면 굴뚝산업의 오염물질이 토양에서 자취를 감추고 10만 년이 지나면 온실가스가 인류 이전 상태로 줄어들며 25만 년이 지나면 방사능이 자연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수백만 년 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진화할 것이며 30억 년 후 상상 불가능한 갖가지 생물체가 번성할 지구는 50억 년 후 태양과 더불어 불타버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영원히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라는데, 인간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먼 훗날보다 눈앞의 변화가 궁금한데, 낙엽에 덮일 거리는 누가 차지할까? 톡톡이와 거미를 찾아 도롱뇽과 두더지가 돌아다니고 뱀 노리는 올빼미와 족제비가 삵과 경쟁하는 동식물의 터전으로 회복하려나. 

수억 년, 아니 수천 년도 생소한 인간은 수십 년 앞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며 하루를 불사른다. 내일을 위한다면서 미래세대의 안전을 해친다. 돈과 기술과 에너지를 들여 관리해야 유지되는 시설을 늘어놓고 뿌듯해하면서 수익을 위해 아이 세대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4대강 사업' 같은 토목건축이 그렇지만 생명공학과 핵산업도 마찬가지다. 갯벌 매립에 이은 초고층빌딩이 그렇다. 명단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50년 만에 자연을 거의 회복한 비무장지대처럼 독일 베를린의 화물터미널도 50년 방치하자 자연스러워졌다. 그 부지는 공원으로 개방했는데, 비무장지대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우리 새 정부는 보전할 의지가 있을까? 휴식년제가 등산로 통행을 3년 막자 꼬리치레도롱뇽이 마등령 계곡을 되찾았지만 개방하자마자 사라졌다. 온갖 생물이 떠난 강, 산, 바다, 갯벌은 회복할 기회를 찾지 못하지만, 석유와 기술과 자본은 한계가 분명하다. 자연은 결국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석유는 고갈이 눈앞이다. 관리하지 못하면 콘크리트도 아스팔트도 삭는다. 

다채로운 생물로 안정된 생태계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오만해졌다.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화석연료 과소비로 자연을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기상이변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비행기와 선박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지만, 코로나19 된서리를 맞았다. 온실가스 증가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어떤 감염병이 치명적으로 창궐할지 전전긍긍한다. 화석연료 없이 무용지물인 최첨단 기술과 도구는 생태계가 안정돼 있을 때 유용할 따름이거늘, 오늘도 순환을 거부하는 플라스틱이 지층에 쌓인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 도시를 스친 바람은 건물 사이에서 베르누이 정리를 증명했다. 간선도로에 드문드문한 낙엽이 골목에 쌓여 빗물에 젖었다. 그대로 두면 봄부터 톡톡이가 뜯어낸 낙엽을 미생물이 분해하겠지. 어딘가에서 도마뱀이 찾아오고 도마뱀 노리는 족제비가 두리번거리겠지. 풀이 돋으면 초식동물이 돌아오겠고,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동물도 찾을 텐데, 공장식 축사의 소와 돼지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개와 고양이는 사람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가축을 먹어치우다 늑대와 삵으로 돌아갈까? 

웬걸! 낙엽은 구역 미화원이 말끔히 치워낼 것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왜 <인간 없는 세상> 썼을까?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리 없으니 소용없는 상상이라는 걸 잘 알면서. 더욱 거대해지는 기계가 없다면 신기루 같은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하는 거겠지. 그때가 언제일까? 당장 내일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해마다 심각해지지만, 내년도 아닐 것이다. 현재 환경을 30년 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 세대 뒤의 환경을 누가 점치려나? 

분명한 건, 환경은 과거보다 빠르게 변하고 에너지와 기술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지구촌 기상이변은 사회적 약자부터 고통을 안기건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안은 그저 평온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도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뿐, 자연에 관심이 없다. 산후조리원과 요양원이 고독한 세대를 돌볼 따름이다. 그러므로 비에 젖은 낙엽이 떠올린 <인간 없는 세상>은 내일을 위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중국에서 석탄을 자제해 그런지, 요사이 파란 하늘이 자주 나타난다. 중국으로 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도 화석연료다. 즐거울 수 없는 행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파란 하늘 아래, 가을비에 젖은 거리를 지하철까지 걸으며 아침부터 생각이 많았다.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약속에 늦을라.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