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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특채'가 역차별? 그들의 삶은 더 고달프다

ⓒ연합뉴스
 
 
허환주 기자
[기자의 눈]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게 공정인가

경기도가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공직에 진출할 기회를 확대한다. 올해부터 학교장 추천을 받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종합고 졸업자(졸업 예정자)를 일반행정 수습 직원으로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2명을 선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인원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경기도는 학교 교육을 성실히 받은 인재가 학력에 구애없이 공직에 들어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전국지자체에서는 경기도가 최초 도입했다.

 

무엇이든 '최초'라는 닉네임이 서두에 붙으면 여러 논란도 따라 붙기 마련이다. 경기도의 이번 '고졸 특채'를 두고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렵게 대학에 가고, 거기에서 스펙을 쌓은 뒤, 밤낮 가리지 않고 공시 준비를 해도 입사의 문은 좁은데,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로 특채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절차와 형평에 맞게 시험을 보고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일견 이해되기도 한다. 어렵게 노력해서 능력을 갖췄는데 이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고졸들에게 '기회'라는 게 주어지고 있나

의문도 든다. '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스펙을 쌓고 공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모두 오롯이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걸까. 고졸들에게는 '이들'에게 주어진 만큼의 '기회'라는 게 주어지고 있는 걸까.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학교 취학률은 71.9%다. 10명 중 7명은 대학에 가는 세상이다. 반대로 말하면 대학에 가지 않는 이들이 30%다. 이들은 공부를 못해서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도 있겠으나, 집안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취업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직업계고(특성화고) 학생들이 대표적이다. 

 

실제 가정의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직업계고 진학 선호도가 낮아지는 점도 확인됐다. 연구 기준상 가정의 월 평균 소득이 한 단위 증가할 때, 특성화고 진학 결정은 0.797배로 감소했다. 또한 직업계고 진학요인으로는 경제성(27.3%)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개인의 적성(19.4%), 사회적 안정성(18.5%), 사회적 인식(7.7%) 순으로 나타났다.('중학생 진학진로 인식 분석 : 서울지역 중학생 희망 고교, 고교계열별 비교, 2012년, 오석영·임정만, 아시아교육연구, 275p~296p)

<프레시안>에서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서울시 교육청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일반고(인문계)의 경우, 중식비 지원 학생 비율이 전체의 13%(2만7766명)이지만, 특성화고는 전체의 35%(1만6565명)나 차지했다. 중식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한부모가족보호대상자, 특수교육대상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 학생이다.

집안 환경 수준이 대학에 갈지를 정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부모의 종착점은 자식의 출발점 

문제는 그렇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저임금, 저숙련, 고위험, 장시간 노동이다. 전 같으면 고졸자들이 취업할 수 있었던 일자리도 이제는 대졸자들의 몫이 됐다. 자연히 이들 일자리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직업계고 졸업생 대다수가 취업하는 곳은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가 전체 사업장의 7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이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학생들은 그렇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기술을 습득할 기회도 접하지 못한 채 소모품으로 사용된다. 운이 나쁘면 죽거나 다치는 식이다.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다음 소희>의 실제 주인공 홍수연 양이 대표적이다. 홍 양 말고도 제주도 이민호 군, 여수 홍정운 군 등 다수의 학생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개인의 부단한 노력으로 대학에 가고 그곳에서 스펙을 쌓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 사례를 앞세워 '노력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역시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의 종착점이 자식의 출발점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환경, 즉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부모가 어느 정도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자식에게는 실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혜택과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실패한다 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건 어렵지 않다. 

 

반면, 고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등 떠밀려 나온 사회에서는 교육이나 기술 습득은 요원하다. 뒤늦게라도 대학에 들어가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렇다 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세대로 반복되고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경기도의 고졸(예정자) 채용을 두고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과연 '공정'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사회적 자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이들을 또다른 '사회적 자본'이 배려하는 게 공정을 해치는 일이고 역차별인 걸까. 그들을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지금의 작은 시도를 잠시 지켜봐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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