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도형 신성장 거점,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란?
필자는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의 측면에서 우리나라 국토구조의 패러다임을 만든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꼽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 국가주도형 수출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성장축인 경부축을 만들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40년 후인 2000년대 초반, 비수도권 중심의 지역산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균형발전에 초점을 둔 분배축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산업정책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60년 이상을 존속해 왔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산업 전체 부가가치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에 달하는, 강한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유산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첨단전략산업의 지역 거점 선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시행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이하 '특화단지') 사업'의 개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2023. 7. 20). 먼저, 이 정책은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에서 초격차 확보를 주목적으로 선도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생태계의 발전 가능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한 주요 정책 수단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부지 조성에 초점을 둔 혁신의 하부구조 지원과 첨단기술에 기초한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을 들 수 있다. 정부는 <그림 1>과 같이, 2023년 7월 26일 3개 산업분야(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에서 총 7개의 첨단전략산업 거점을 지정하면서, 2042년까지 정부 지원의 근간을 마련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서울과 경상권을 중심으로 산업 선별 정책을, 노무현 대통령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산업 선별 정책을,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의 손길이 닿는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 선별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 정책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고려사항을 첨단산업 지역이 지닌 생물적 본능 차원에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글로컬 가치사슬 경쟁력의 침식 방지를 위한 노력 필요
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해 가지만, 그 활동은 철저히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거점을 구축하면서 이루어지는 '장소적·영역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해당 기업들이 입지하는 로컬 경쟁력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 글로컬 가치사슬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윤석열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원 정책은 해외에도 투자거점을 둔 국내 대기업들의 모국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면서 산업 영토의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글로컬 가치사슬 경쟁력 확보 정책에 해당한다.
이같은 정책의 대표 사례로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리쇼어링, 온쇼어링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정책의 활성화는 전염병, 전쟁, 산업 발전에 내재된 정치적 긴장 관계 형성 등으로 인해 산업입지를 지정학적 차원에서 재배치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 정책의 성공여부는 '특화단지'로 선정된 지역들이 이와 같은 지정학적 환경에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산업의 글로컬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의 경험에 있어서 대기업과 지역 간 상호작용에 대한 성공과 실패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그러므로 반도체 산업의 특화단지들이 위치한 수도권이 '예상대로'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이차전지 및 디스플레이 산업의 특화단지들이 입지한 비수도권 지역들이 이 정책으로 약진할 수 있을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성과 점검 영역에 해당한다.
이 정책은 공간 단위가 국가이면서, 동시에 균형발전 요소를 고려한 지역을 겨냥하는,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즉, 박정희 패러다임과 노무현 패러다임의 조화다.
이러한 정책 추진의 속성으로 인해서 해당 지자체들이 이 사업에 광적으로 도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첨단산업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현재의 정책이 '정치적 속성'에 기인한 업적주의적 정책으로 변질되어 글로컬 경쟁력을 침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부가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규모 국책사업들이 시행단계의 초심과는 달리 집행단계에서는 방관만 하면서 방치된 경우가 더러 있으며, 나중에는 중앙정부도, 지자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20년 이상 방치된 사업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서 첨단산업 지역이 지닌 생물적 본능이 침식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첨단산업 잠재력 보유지역에 대한 기회발전 부여 : 지역산업 정책의 필요성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대상은 대기업의 존재와 지자체의 의지도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의 역사 및 경쟁력, 정치력 등의 한계로 인해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선정되지 못한 지역들이다.
산업은 하나의 지역에서만 성장한다고 글로벌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산업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요소를 포섭하고, 육성하면서 거대한 체계를 이루어 나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의 주장은 이번 선정에서 탈락한 지역들에 대한 정책적 포섭이 필요하며, 특화단지 사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첨단산업 공동체 형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화단지' 사업에 지정되지 못한 경상북도 상주시의 예를 들어보자. 상주시는 정책적으로 인구소멸 위기지역에 해당한다. 2021년 이후 상주시에는 이차전지 '실리콘 음극재' 분야에서 대기업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2032년까지 이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규 고용은 1060명이다. 이는 향후 상주시가 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상주시가 해당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이유는 이 사업의 핵심 평가 기준(취약한 연관 산업의 집적도, 전문 인력 및 기관 미흡, '양극재' 관련 기술 보유 등)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업의 선정에 대한 최종 발표(7월 20일)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 8월 16일에 '양극재 기술은 한계이며, 음극재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물론 보도자료만을 두고 정책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으며, 현재 특화단지 선정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특화단지 사업의 시간적 범위가 약 20년 후인 2042년까지이며, 첨단산업 제품의 수명주기는 전통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패누적 산업'인 첨단산업의 속성을 고려할 때, 정부는 첨단 산업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지닌 지역과 기업에 대한 정책적 포섭력을 갖출 필요가 있으며, 선정되지 못한 지역에 대해서도 발전의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산업 정책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특화단지' 사업은 국가와 지역이 의기투합하여 추진하는 정책이긴 하나, '첨단산업의 잠재력'을 보유한 지역에게는 매우 박한 정책이다. 그래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잠재력을 보유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산업' 정책 수단(지역적 차원의 기업유치 인센티브 확보, R&D 정비·확충, 인력양성, 추진체계에 대한 협력적 정비 등)을 동원하여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지역 첨단산업 발전의 다양성 확보, 노동시장의 질적 구조고도화, 특성화고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인력양성 체계 구축·운영의 내실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지역은 생물이다. 첨단산업의 영역에서 지역은 생물적 본능이 극에 달하며, 조그마한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20년이라는 장시간 동안 실패를 두려워하고, 획일화된 접근으로는 첨단산업과 지역을 발전시키기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