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전례 없는 규모의 안보 지원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부정적인 국내 여론과 하원의장 축출로 혼란에 빠진 미 의회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실제 계획대로 집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9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내일(20일)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긴급 예산 요청을 의회에 보내려고 한다"며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 몇 세대에 걸쳐 배당금을 지급하는 '현명한 투자'(Smart Investment)"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와 푸틴은 서로 다른 위협을 나타내지만, 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며 "그들은 둘 다 이웃한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하기를 원한다"고 말해 예산 지원의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이 테러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때, 독재자들이 그들의 침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때, 그들은 더 많은 혼란과 죽음,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줬다"며 러시아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들의 계속된 행동에 비용과 위협은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구를 막지 않는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에만 국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워버리도록 내버려둔다면, 세계에서 침략을 원하는 이들도 같은 시도를 할 것"이라며 "분쟁과 혼란의 위험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인 인도 태평양, 특히 중동 지역에서 확산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리더십은 전 세계를 함께 묶는 것이고, 미국이 동맹국들은 미국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라며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떠나고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의 안보에 있어 두 전쟁은 핵심적"이라고 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미국 내 여론은 대외 지원에 대한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방송 <CNN>은 지난 8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의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사용하는 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에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원에 불리한 여론을 극복하기 위해 생명보다는 자본 축적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한 셈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장비들은 우리가 확보한 재고품 내에서 보낸다. 그리고 우리가 의회로부터 배정받은 자금을 사용할 때, 우리는 재고를 새로운 장비로 보충한다"라며 "미국을 방어하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장비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인력은 전쟁 현장에 투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기 위해 미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바라는 것은 무기, 군수품, 방공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방송은 이날 연설에 대해 "백악관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 그리고 멕시코-미국 국경에 대한 지원 및 사업을 위해 의회로부터 1000억 달러(한화 약 130조 원)를 요청하기 전날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현재 미 하원이 의장 축출 이후 새 의장을 선출하지 못한 점, 또 11월 중순 이후 정부의 자체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정부의 요구안대로 예산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방송은 이어 공화당 의원의 4분의 3이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 의원의 62%가 우크라이나 자금 지원을 지지하고 있는 양당의 대립이 백악관의 대규모 긴급 안보 지원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도 문제다. 18일 미 <CNBC> 방송이 지난 11~15일 미국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37%로 집계됐는데, 이는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던 2022년 7월 36%에 비해 불과 1% 높은 수치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와는 달리 동맹국들과의 규합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대해 응답자의 31%만이 지지하고 60%가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13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이스라엘을 포함해 요르단 등 중동의 다른 국가도 방문하려 했으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 이후 이스라엘 외의 국가 방문이 취소되면서 현 상황에 대한 중재 및 휴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당분간 대외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