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과 소련 몰락으로 유일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쇠퇴는 '제국의 야욕'에서 비롯됐다.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네오콘(조지 W. 부시 행정부의 핵심 세력)은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에서 그 기회를 찾고자 했다.
외교적 해법을 무시하고 알-카에다 은신처로 지목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강행했고, 9·11 테러와 아무 관계가 없었던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또 미국 스스로도 "국제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라고 말했던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파기해 군비경쟁을 촉발했다. 급기야 이라크 침공을 강행해 중동의 '지옥의 문'마저 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미국이 너무 나갔다고 판단했는지, 1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9·11 테러 당시 미국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마스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과잉 군사 행동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 현지시각으로 18일과 19일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미국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데 이어 "전례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장국인 브라질이 제출한 결의안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규탄하는 한편, 민간인을 향한 모든 폭력의 중단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구호 접근의 허용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이 결의안에 미국의 동맹국들인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한 12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러시아는 기권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자위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은 무산되고 말았다.
다음날인 19일 저녁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중요하다"며 이들 나라에 대규모 긴급 군사원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마스와 푸틴은 각기 다른 위협을 대표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며, "그들 모두 이웃한 민주국가를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의 주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과 미사일방어체제(MD)를 앞세운 동유럽의 군사화에 있었다.
또 하마스가 민주적인 선거에서 승리해 팔레스타인의 집권 세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스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나라 가운데에는 미국도 포함되었었다. 미국이 간접적이지만, 중대하게 개입하고 있는 두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스라엘 군사원조는 이스라엘의 방위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즘이 본격화된 1946년부터 2022년까지 이스라엘에 제공한 군사원조는 무려 2600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2016년에는 이스라엘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매년 38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해오고 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추경예산을 편성해 이스라엘에 14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군사원조를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올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군사원조는 178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자체 국방비 242억 달러를 더하면 이스라엘의 올해 실질 군사비는 420억 달러가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주는 무기가 무고한 민간인 학살로 이용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에 따르면, 2021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6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이 공습에 사용된 탄약 가운데 상당량이 미국이 제공한 것이었다. 더구나 공습 대상은 군사 목표물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더구나 가자지구의 인도적 대재앙이 현실화되고 확전의 위험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엇나간 선택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외교적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고 "전례 없는" 군사원조를 통해 이미 군사강국이자 테러국가인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더더욱 키워주고 있다. 국제 여론을 의식해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의사도 밝히고 있지만, 이는 '큰 병 주면서 찔끔 약주는 것'에 불과하다.
21세기 초반 '제국의 꿈'을 안고 강행한 두 전쟁이 제국의 쇠퇴를 재촉했다면, 오늘날 두 전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국제정세는 물론이고 미국의 위상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방지와 종전에는 도통 무관심한 미국이 불가능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도모할수록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를 중심으로 반감은 커지고 서방의 전쟁 피로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위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적 방패와 군사적 원조를 앞세워 이스라엘 강경파의 편에 설수록 미국에 등을 돌리는 나라들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15개국의 이사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두 전쟁에 계속 기름을 부을 것이 아니라 조속히 휴전과 종전을 도모하는 것이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미국의 이익은 군산복합체와 유대계 로비스트, 그리고 이들과 결탁된 정치인들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