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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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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지정학과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전쟁 피로감은 높아지고 무고한 피해도 늘어나고 있지만, 종전이나 평화 회복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이 전쟁을 거치면서 치열해진 미·중 전략 경쟁도 조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러·우 전쟁과 미·중 경쟁은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 사안을 포함해 세계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합리적인 선택을 도모해야 할 까닭입니다.

이에 창간 22주년을 맞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외교광장 및 평화네트워크와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아래는 이날 토론회 발표를 맡은 전 국립외교원장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속 한국의 선택-미·중 전략경쟁,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발표문 전문입니다. 

▲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미·중 전략경쟁,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에서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가 주제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이명선)

대전환의 시대

세계는 지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세계화와 민족주의와 지정학 부활의 파편화라는 두 개의 '메가트렌드'가 혼재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비정상 상태가 안정화되기보다는 불안정성, 불평등성, 불가측성을 특징을 하는 '뉴노멀'(New Normal)이 혼란과 혼재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다. 

인류 역사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대전환'을 이야기했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예측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에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시대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전성기를 맞았고, 우리는 그것을 세계화로 명명했다. 세계화는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패권 질서를 일정한 규칙과 규범의 틀 안에서 운용하게 만듦으로써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형성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요동쳤다. 

2001년 9.11과 2008년 국제금융위기는 미국 패권체제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심각한 약점을 드러냈고,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골몰하는 동안 중국의 부상과 도전은 본격화되었다. 

또한, 세계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전체적으로는 번영을 가져다주었을지 모르나, 극심한 불평등 및 빈부격차를 초래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는 근로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자본소득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빈부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라며 자본주의의 치명적 약점을 저격했다. 

2016년의 두 사건,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당선은 탈냉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역류하는 전환점이었다. 협력과 통합이 아니라 내부의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혐오를 선동하는 극우 포퓰리즘이 동반되었다. 

기존 질서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기보다는 일부 세력의 이익을 위한 선동의 정치가 부상했다.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은 질서 변동의 결과이자, 동시에 근본적 변화를 가속하는 촉매였다. 미국은 세계화의 리더 역할을 거부하고 자국 이익을 우선했으며, 팍스아메리카나는 흔들렸다. 

미국 또는 중국이 장기적으로 안정 질서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은 압도적인 패권의 존재가 국제정치의 안정성을 확보해준다는 '패권안정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미국 사회의 분열과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미국 사회 내부에서도 당면한 위기가 매우 다층적이고 전례 없는 규모라고 입을 모은다. 2020년 대선에서 회자했던 미국의 위기 5종 세트는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의 보건 위기, 1920년대 말 대공황 이후 90년 만의 경제위기,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이래 60년 만의 인종 갈등 위기,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정치 분열 위기, 그리고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기후변화다. 

트럼프의 집권과 부상은 미국이 맞닥뜨린 총체적 위기의 결과이자 곧 더 큰 변화를 초래한 촉매라고 해석한다. 미국은 전통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었고, 금융 자본주의의 득세와 왜곡으로 소득의 양극화가 초래되었으며, 중산층이 붕괴했다. 여기에 백인 숫자의 상대적 감소와 이민 유입이 증가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등장은 백인 기득권에는 큰 충격으로 내재했다. 게다가 노동자 대변을 자처하던 민주당은 입으로만 진보를 내세우는 '브라만 좌파,' 우리로 치면 '강남좌파'의 위선이라는 공격과 외면 끝에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 패배하는 큰 빌미가 되었다. 

트럼프는 본능적으로 이러한 질서 변화를 감지해 활용함으로써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공화당 경선부터 기성 질서에 도전하는 이단아로서 자리매김하며 급부상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이민자 추방으로 대표되는 반이민 및 반난민 정책을 통해 거리낌 없이 인종주의를 표방했고, 기성 세력의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비난하며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폭발적 환호를 끌어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주의를 공격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반복하면서 국가 이기주의를 노골적으로 천명했다. 2020년의 미국 대선은 트럼프가 4년간 구축했던 각자도생의 질서와 도전자 바이든이 상징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 사이의 선택이기도 했었다. 

바이든의 극적인 당선은, 일단은 국내외의 분열과 파편화에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갈라치기' 정치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만들고, 망가진 글로벌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선언했었다. 자신의 당선을 역사의 ”변곡점“이라 칭했고,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대외정책이 트럼프와 다른 것처럼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트럼프 2.0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 외교의 전통적 다자주의보다는 자국 위주의 노선으로 기울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위협인식으로 인한 전략적 강박증에 빠져버려, 대선 당시 약속했던 미국은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이든이 승리했지만, 실상은 트럼피즘에 대한 단절은 실패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을 재확인했고, 트럼프가 패배하기는 했지만, 당시 바이든을 제외하면 역대 어떤 승리한 대통령들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트럼프는 꺾었지만, 트럼피즘은 꺾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른바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은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국제정치학자 스테판 월트 교수는 ”선거는 끝났지만, 이념 갈등은 이제 시작이“라며 미국 내 극단적인 이념 분열 현상에 주목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공화당이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점령당했다고 생각하고, 공화당 지지자의 82%가 넘는 사람들은 민주당이 좌파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 조사는 심각한 분열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 사회의 주도권을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백인들의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두려움은 감성적 미사여구와 단순한 화해의 언술만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 

미국 국내 사회는 물론이고 국제질서가 협력과 통합의 질서가 어려워지는 가장 큰 장애물은 중국과 벌이는 전략경쟁의 심화이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외교의 가장 중요한 영역은 중국과의 전략경쟁일 수밖에 없고, 바이든은 이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질서의 운명은 양국 전략경쟁의 양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다. 먼저 국제정치의 '권력 전이(power shift)'에 의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오가는 정권교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누가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느냐의 결과보다도, 이미 두 국가의 권력 분포가 급변하고 있다는 자체가 전 지구적 불안정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또한, 양국 여론의 서로에 대한 반감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반중여론이 80퍼센트를 훌쩍 넘기고 있기에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중국 때리기는 정권 획득과 유지에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양국 관계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 2020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AP=연합뉴스

미국 내 대중 전략노선들 

미국 내의 대중 노선들은 크게 보면 힘과 힘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자는 존 미어샤이머 류의 공격적 현실주의자와 아직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을 주장하고, 또 가능하다고 믿는 조셉 나이 류의 자유주의자들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거론한 세계화와 파편화라는 국제질서의 두 가지 메가트렌드의 혼재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그런데 두 관점은 지금까지 대중 경제협력과 포용을 지속하면 중국이 변할 것이라는 과거 미·중 정상화를 끌어냈던 헨리 키신저류의 기능주의 접근의 오류를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결국 외부적 압박이나 봉쇄를 통해 중국 체제의 변화를 이끌 수 있으며 동시에 미국이 전략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노선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직전에 거론한 키신저류의 현실주의는 1970년대 데탕트라는 대중 포용 정책의 결과적 실패에 대한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미국의 네오콘 방식의 대중 정책이 오히려 미국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반격한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전략적인 강박증(strategic obsession)'에 사로잡혀 이념과 가치를 망라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외교 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미국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현재의 미국의 저인망식 봉쇄는 미국의 외교적 자산을 낭비하는 것이며, 중국의 반칙행위에 대해서 선택식 견제만으로도 대중 격차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으며, 투명성, 민주성, 개방성에 바탕을 둔 미국 체제의 우월성을 통한 점진적 압박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과거에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잡아 사회주의 진영의 불러온 것처럼, 지금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거나 최소한 중·러 사이를 분열시키는 이른바 '역(逆) 키신저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반(反)글로벌리스트'로 집약할 수 있는 관점인데, 트럼프식 대외정책으로 미국 이기주의이자 동시에 고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가 재임 중에 그랬듯이 민주당 리버럴의 '정치적 올바름'을 저격하는 동시에 공화당 내부의 글로벌리스트를 공격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지금까지 글로벌리스트 은행가, 방산업체, 다국적 대기업의 연대에 의한 '딥스테이트'가 지배해왔기 때문에,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며 미국의 청년들을 사지에 몰아넣었으며, 국제기구와 동맹 네트워크로 인해 미국의 경쟁력을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NATO와 CIA를 해체하고,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장악하고, 동맹을 해체하며, 국제금융통신망(SWIFT)을 폐지하고, 언론매체의 선동 능력을 궤멸해야 미국이 다시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유엔 연설에서 반세계화를 부르짖고, 파리기후협약을 거부했고, WTO를 마비시켰다. 그는 현재 대선 재도전에서 공화당 후보 경선 경쟁자인 드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도 중국, 유럽, 아시아와 기타 지역을 탈피하지 못하는 글로벌리스트에 포획되어있으며, 자신만이 '미국 제일'(America First)의 입장이며 그것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부터 중국을 적으로 돌리거나 신냉전 구도로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다만 규칙을 위반해온 중국을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단호한 대중전략을 추구하되 트럼프처럼 신냉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않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실수는 미국의 정책을 군사 일변도로 이끌 수 있으며, 상황이 악화할 경우, 미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유탄을 맞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행의 자유에 대한 글로벌 공약을 강조함으로써 남중국해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군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한편, 대만 관계법을 존중하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원한다. 홍콩사태와 관련해서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지지하고, 홍콩의 인권 가치를 수호하며, 민주주의적 법치를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 홍콩과 함께 중국이 신장·위구르에 대해 인권탄압을 규탄한다. 

이렇게 보면 바이든의 대외정책이 트럼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실제로는 차이가 크지 않고 오히려 유사성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바이든은 2차 대전 이후 지속해왔던 미국 대외정책의 원칙인 국제주의를 선언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이나 고립주의적 경향도 내재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글로벌거버넌스의 지속에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이 달려있다는 원칙은 약화하고, 해외 군사개입을 하는 것이 국익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 외교협회 회장 리차드 하스는 바이든의 대외정책은 순전한 고립주의라기보다 미국의 전형적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경한 대중 정책을 보면 고립주의라고 하기는 어렵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가장 큰 유사성은 역시 미·중 전략경쟁이 외교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정책 설계자였던 전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메튜 포틴저는 아예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대중전략을 총지휘하는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은 대중 관계를 관여나 포용이라고 정의하던 시대는 종식되었다고 했다. 즉, 과거 키신저 등이 중국을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에 편입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환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대만 정책은 더욱 연속성이 두드러지는데, 미국과 대만의 공식적인 접촉을 금지하던 것을 해제했을 뿐 아니라 고위급 간의 접촉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무역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매우 과장된 언술과 일방적 행보를 보였다는 차이는 있지만, 바이든은 새로운 자유무역정책은 거의 없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들을 계승하거나 약간의 변화만 주고 있다. 관세정책이나 수출규제, 중국 보조금 기업 조사 등도 트럼프 시절의 정책들을 대부분 계승했다. 

다만 트럼프가 아예 대놓고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했고, 상대적으로 고립주의적 경향이 더 강했다고 한다면, 바이든의 경우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비롯해 팬데믹 대처를 위한 백신 정책 등에서 보인 자국중심주의는 명확하다.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한편, 미국 제조업 경쟁력의 부활을 위해 리쇼어링(re-shoring)부터 니어쇼이링(near-shoring)과 프랜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이나, 아프간 철군 등도 트럼프와 맥을 같이 한다. 민주당 정부가 주장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가치문제는 트럼프의 철저한 비즈니스 계약적 사고와 차이가 크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는 가치를 오히려 장애물로 생각했고, 독재자들과의 개인적 친분 등을 선호했다. 하지만 바이든 역시 중국과의 대립구조에서 미국의 전략에 도움이 되는 필리핀, 인디아, 베트남, 미얀마, 사우디 등의 반민주정권의 가치 이슈들은 모른 척했다. 

미국의 국내 정치적 분열은 점차 극대화하고 있지만, 대외정책은 꽤 합의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런 합의가 그것이 미국의 장기적 이익이나 국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이행한다는 차원에서는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20년 이상 끌어오던 아프간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철수한 것을 다른 동맹국에 대한 신뢰 문제와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 결정이라는 점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과 진정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겉으로는 세계를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나누고 가치의 투쟁을 벌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패권 갈등을 벌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유럽의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만 적용된다. 바이든의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프간 철수였다. 바이든은 아프간 전쟁의 원래 이유는 테러리스트 위협 제거였고, 이것이 달성되었기에 철수하는 것이라면서 민주화를 포함한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인들의 몫이라는 냉정한 말을 남겼다.

▲ 202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8월 26일(현지 시각) 아프간 카불 공항 테러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역내 안정을 위협하는 미국의 전략 

바이든의 외교는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네오콘의 국제주의가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 봉쇄를 위해서는 네오콘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글로벌리스트 외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이든은 자신의 신냉전 반대 천명과는 달리 가치와 이념 연대를 통한 중국봉쇄에 '올인'하다시피 한다. 또한 전 세계 동맹 네트워크를 부활하는 동시에 과거 미국이 친미라면 독재정권이라도 지지했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던 민주당이 주도하는 매우 반동적 대외정책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을 '악(惡)의 진영'으로 규정하면서 한국, 베트남, 인도 등의 반민주적 정권들과는 '선(善)의 진영'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이익이 분명하지 않은 일에는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일에는 국제주의를 거부한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이후로 민주당·공화당 관계없이 아무리 정당하고 명분이 있는 해외 분쟁이라도 인적 개입은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다. 또한 미국은 자신이 구축하고 또 유지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인 유엔, WTO, WHO 등 국제기구들의 무력화를 주도하고,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다자 합의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다만 의회의 비준이 필요 없는 행정명령을 동원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같은 보호주의와 블록화를 조장한다. 목표는 중국 배제와 봉쇄를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공급망 재편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군사·안보적으로는 1975년 헬싱키조약 이후의 국제정치의 협력안보 또는 공동안보 체제를 무너뜨리고 진영화를 통한 대결구조의 부활이 진행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키신저류가 말하는 중러 분열 전략은 흑백론의 사고로 무장한 네오콘의 세계관으로는 불가능하다. 중러 분열 전략을 배제하고 나면 차선의 전략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다.

아시아는 유럽과는 달리 나토로 대표되는 단일한 집단동맹이 아닌 중첩적 쌍무동맹으로 이뤄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근간이었다. 그러나 소위 '아시아의 나토화'에 대한 미국 외교의 꿈은 초기부터 있었고, 지금은 대중 봉쇄라는 목표로 인해 더욱 강력해졌다.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쿼드와 미국-영국-호주의 오커스는 물론이고, 한-미-일의 안보 협력체 구축도 아시아의 나토화의 일환이다. 

이와 함께 나토와 아시아의 동맹 간 연계 전략도 구사되고 있다. 2022년 나토가 전략개념을 집단안보에서 집단동맹으로 바꾸고 중국과 러시아를 도전과 위협으로 적시하는 자리에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를 초대했고, 2023년에도 불렀다. 간헐적으로 제기되는 한반도의 유엔군 사령부를 나토 사령부로 확대·개편하겠다는 것도 가능한 옵션이다. 프랑스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미국이 일본에 나토지부를 설치하겠다는 의도에서도 읽힌다.

미국이 유엔사를 확대하는 방식이든, 아니면 기존의 동맹 또는 안보 협력체를 연결하는 방식인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아시아의 집단동맹 구축이라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이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직후 바이든이 역사적 합의로 치켜세우며 만족스럽다고 감격하고, 뉴욕타임스가 미국 외교 70년의 숙원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던 이유였다. 

한반도의 운명과 생존전략 

세계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의 전략적 갈등이 영역적으로는 무역, 통화, 기술, 체제 우위를 놓고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지만, 물리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중심에 두고 집중되는 경향을 띤다. 

지구적 경쟁에서는 아직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데는 역부족일 수 있으나, 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팽팽한 세력 다툼이 벌어진다. 

양국의 세력권 경계 설정이 관건인데, 한반도, 동중국해, 중국-대만 양안,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로 패권 대결의 단층선 역할을 한다. 이 지점들을 연결하면 동아시아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경계선이 그어지는데, 중국은 이를 돌파하려 하고, 미국은 어떻게든 봉쇄하려 한다. 

경계선을 두고 이미 충돌의 예고편들이 불거진 바 있다. 아래부터 살펴보면 남중국해는 중국으로서는 자신들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송하는 해로의 안전을 미국에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반대로 미국은 중국이 이곳을 봉쇄하거나 통제할 경우 한국과 일본이 있는 동북아로의 바닷길이 막히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서로 신뢰가 있고 협력적인 분위기였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미·중 간의 불신이 커지면서 의도적 군사 활동 증가와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대만 양안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과 본토와의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국민당 정부의 집권에 따라 양안 관계는 요동쳤다. 그러다가 2016년 민진당이 집권한 이후 대만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어려워지던 가운데 발생한 홍콩의 '우산 혁명'과 이를 힘으로 억압한 시진핑의 행보에 대만 내 반중 정서가 폭발했다. 이는 민진당의 재집권으로 이어졌으며, 곧바로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고, 미국의 노골적 대만 챙기기로 갈등은 깊어졌다.

동중국해 역시 충돌 포인트로서 꾸준하게 긴장이 고조되어왔다. 일본 명칭으로는 센카쿠이고, 중국 명칭으로는 댜오위다오인데 여러 섬이 연결된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데다, 과거사 반감과 민족주의적 감정 격돌로 인해 일본과 중국의 분쟁지역이 되었다. 

일본은 1895년 영유권을 주장할 때까지 아무도 살지 않는 주인 없는 섬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그 이전부터 중국의 소유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가 재부상한 것이 2010년에 발생했던 불법 조업하던 중국 배를 일본 해양경비대가 체포하는 사건 이후였다. 이후 오바마 정부가 개입하면서 문제는 커졌다. 한편으로는 중일 양국의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미일 안보 조약에 의거 센카쿠는 일본 영토이며, 미국이 보호할 것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소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미국과 일본은 <미일 안보가이드라인>을 변경하면서 밀월관계를 구축했다.

단층선을 구성하는 4개의 충돌지점 중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것은 일단 중국-대만 양안일 것이다. 그러나 양안에서 충돌하는 것은 곧 공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로에 대한 공격적 언급에 비해 실제로 충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대만에서의 긴장 고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무력 충돌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대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중국의 침공을 방어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도의 간접적 지원을 추구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상대방에 엄포를 놓을 수는 있어도, 실제 무력 충돌로 갈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이를 고려하면 미·중 전략경쟁의 국면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시험하고, 기 싸움에서부터 경고하는 활용도 면에서 한반도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는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를 강화함으로써 비용을 치를 것인지, 아니면 경계의 자리에서 완충의 역할을 할지 기로인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을 단순히 신냉전 질서의 고착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이해도 아닐뿐더러 우리의 향후 행보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까지 분석한 것처럼 미국의 진영화 시도와 함께 각자도생의 파편화가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부터 거의 절대적인 진영편향 외교와 힘을 통한 안보를 내세우며 지정학적 위기를 배가해왔다. 

미국은 이념에 기초한 글로벌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윤석열 정부의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국가전략이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지점에서 미국은 해양 세력의 전위대의 역할을 주문하고, 한국은 충실하게 따른다. 

윤 정부의 안보 절대주의와 동맹 신화의 맹목적 추종은 우리의 역량을 지정학과 미국의 전략적 범위 안에 갇히도록 만들 것이다. 확장 억제,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훈련 확대 등을 통한 외교의 안보화와 경제와 기술 등 가히 모든 영역의 군사화로 위기를 자초한다. 

최근 한국의 극우 인사들이 윤 정부의 시대적 사명을 '좌파 척결'로 정조준하고,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이러한 흑백 논리는 대외정책에도 반영되어, 미국의 네오콘과 일본의 극우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냉전 시절을 소환하면서 우리는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미들 파워(middle power)' 또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가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판에서 배타적 선택의 프레임에 빠져들지 말고, 유사한 입장과 능력을 지닌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완충지대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 6월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6개의 중간 국가들이 미래의 지정학을 결정할 것이다(6 Swing States Will Decide the Future of Geopolitics)"라는 분석 기사에서 앞으로 국제정치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할 국가로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를 꼽았다. 가장 큰 이유는 미·중 전략경쟁의 판도에서 오히려 어느 한쪽 진영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역학 구도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구애하는 나라들이다. 과거에는 국력의 크기로 미들 파워, 즉 중견국이라는 용어가 유행했지만, 이제는 양쪽 진영이 아닌 제3의 지대를 만들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과거 냉전 시절 G77이나 비동맹 운동의 단순한 부활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일찌감치 미국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영향력을 스스로 감소해버린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과 대비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며 진영싸움의 최전방 돌격대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는 최악의 선택으로 한국 외교의 불행한 미래를 예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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