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13일 총통 선거로 2024년 연중 이어질 주요국 선거 레이스의 막을 열었다. 올해는 대만에 이어 한국·미국·러시아·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총선과 대선이 예정돼 있어 국제 정세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선·총선을 치르는 나라 인구를 합치면 약 33억7780만명, 지방선거 등 보다 작은 선거까지 합치면 지구촌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0억명이 한 표 이상을 행사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수퍼 선거의 해’를 분석해 보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성실히 이행 중인 나라가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도자를 국민이 뽑는다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독재자의 집권에 명분을 주기 위한 요식 행위로 선거가 전락한 경우도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2024년에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분석 기사를 통해 “역사학자들이 2024년을 고대 아테네 광장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로 여길 것이라 상상한다면 가슴 벅찰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올해 선거는 세계적으로 비(非)자유주의가 확산하고 (독재를 견제할) 독립 기구들이 약화하며 젊은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취지 자체에 대한 환멸이 퍼지는 상황에서 실시된다”고 분석했다.
자유민주주의 위기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계열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과 협업해 매년 2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한다. 2006년부터 측정한 이 지수는 전 세계 167국을 총 다섯 지표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다섯 지표는 다원주의, 정부 기능, 정치 참여, 민주적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이다.
점수에 따라 국가들을 ‘완전한 민주주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 ‘혼합(민주주의+권위주의)주의’ ‘권위주의’ 네 항목으로 나눈다. 본지 분석 결과 올해 대선·총선을 치르는 46국 중 ‘완전한 민주주의’에 속하는 국가는 대만·한국·핀란드 등 7국, 그나마 민주주의 쪽에 가까운 ‘결함 있는 민주주의’는 18국에 그친다. 절반에 가까운(46%) 21국은 권위주의로 변질하는 중이거나(혼합·9국), 완전히 권위주의 국가(12국)인 경우다.
실제로 오는 3월 대선을 앞둔 러시아(권위주의)에선 푸틴의 재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인도(결함 민주주의)도 4월 총선에서 사실상 모디 총리의 임기가 연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야당 정치인 및 언론 탄압,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운 이슬람·기독교 억압, 반대파 학자들에 대한 압력 등 인도에선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인도는 독재국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7일 총선을 실시한 방글라데시(혼합주의)는 야당이 보이콧(투표 거부)을 선언하고 투표소 인근에서 테러가 발생하며 엉망진창이 됐다. 3월 총선을 치르는 이란도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장’ 격인 미국도 상황이 밝지만은 않다. 11월 대선에서 야당인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커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를 모의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EIU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라고 평가한다.
일부 국가는 세습 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인도네시아(결함 민주주의)는 다음 달 대통령을 뽑는데,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선거 규정 탓에 3선에 나가지 못하자 아들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아들이 당선될 경우 위도도 대통령이 은퇴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같은 달 상원 선거를 앞둔 캄보디아(권위주의)에선 이미 지난해 8월 38년간 장기 집권한 훈센이 장남 훈마넷에게 총리직을 넘겨줬고, 국방부·내무부 장관도 아들에게 직을 물려주는 등 부패가 만연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