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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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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6부


51. 가련의 문전에서 가련과 이별하니(可憐門前別可憐)


김삿갓이 행장을 꾸리고 뜰 아래로 내려서자 가련(可憐)은 치마귀로 입을 가리며 눈물만 글썽거릴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김삿갓도 그 모양(模樣)을 보고서는 발길을 돌리기가 거북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사람아! 불전(佛典)에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무얼 그리 섭섭해 하는가. 자네는 시를 좋아하니 내 떠나기 전에 자네한테 옛 시 한 수 읊어 줌세." 


      새들은 같은 나무에서 잠을 자도

      날이 밝으면 뿔뿔이 헤어지네.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와 같으니

      어쩌다 눈물 흘려 옷깃 적시나.


      衆鳥同枝宿

      天明各自飛

      人生亦如此

      何必淚沾衣


가련(可憐)은 그 시를 듣자 마음이 한결 넓어지며 슬픔이 많이 가셔지는 것만 같았다. 「부디 평안이 가시옵소서.」 가련(可憐)이 문간에 기대서서 눈물을 씹어 삼키며 전송(餞送)을 하고 있으려니 김삿갓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 어려운지 가련(可憐)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결별시(訣別詩)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가련의 문전에서 가련과 이별하니 

      가련한 나그네가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몸 떠나감을 슬퍼 말아라

      가련을 잊지 않았다가 가련에게 다시 오리.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결별시(訣別詩)를 들은 가련(可憐)은 얼굴을 치마폭에 묻고 어깨를 들먹이기만 했다. 김삿갓은 잠시 주저(躊躇)하다가 


 「꽃이 피면 비바람 많듯, 

    인생에는 이별도 많구나.」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하고 옛 시 한 구절을 중얼거리며 허탈한 자세로 휘적휘적 발길을 옮겨 나갔다.


52. 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묻노니(問爾窓前鳥)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보니 이름 조자 모를 조그만 새가 창가에 앉아 명랑(明朗)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산새가 창가에서 우짖는 것을 보니 이제 봄이 온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각한 김삿갓은 그 자리에서 즉흥시(卽興詩) 한수를 읊었다.


     창가에 앉은 새야 너에게 묻노니

     어느 산에서 자고 일찍 왔느냐

     산속의 일을 너는 응당 알고 있겠지

     진달래꽃이 피었더냐 아니더냐.


     問爾窓前鳥

     何山宿早來

     應知山中事

     杜鵑花開否


깊은 산골에도 봄이 왔으니 이제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 드디어 함관령(咸關嶺)에 도달하니 계절(季節)은 어느덧 4월이건만 골짜기에는 아직도 잔설(殘雪)이 쌓여있다. 기후가 어찌나 찬지, 평지에는 진달래가 핀 지 이미 오랬는데 함관령(咸關嶺) 위에는 이제야 겨우 피기 시작하였다.


     4월의 함관령

     북청군수 추위에 떨겠구나

     진달래가 이제야 피기 시작했으니

     봄도 산이 높아 오르기가 어려운가 보다.


     四月咸關嶺

     北靑郡守寒

     杜鵑今始發

     春亦上山難


53. 시선(詩仙)과 주선(酒仙)의 만남 


함관령(咸關嶺)을 넘은 김삿갓은 홍원(洪原)고을에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오초시(吳初試)영감을 만났다. 이름을 성보(聖甫)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성보라고 부르지 않고 주보(酒甫)라고 불렀다. 학식(學識)도 웬만한 그였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김삿갓에게 도리어 웬 술을 그리도 좋아하느냐? 고 묻는다. 김삿갓은 대답대신에 이태백(李太白)의 시 한 구절(句節)을 읊었다.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주성이라는 별이 어찌 하늘에 있으며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땅에 주천이라는 샘은 없었을 것이오.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자기 자신은 하늘과 땅의 섭리(攝理)에 순응(順應)하여 인생을 술로써 즐겁게 살아 오노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오초시(吳初試)영감님은 깊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共感)을 표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자작시(自作詩) 한 수를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덧 칠십, 나도 이제는 죽을 나이

       뼈를 묻을 산이야 어딘들 없으리오.

       바라건대 옹기전의 흙 속에 묻혔다가 

       술독이 되고 싶소, 술잔이 되고 싶소.


       七十我當死

       到處有靑山

       願埋陶廛土

       爲甕亦爲盃


김삿갓은 그 시를 듣고 오(吳)노인의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애주정신(愛酒精神)에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주선(酒仙)이 따로 있는가? 사람이 죽은 뒤에는 명당에 뭍이고 싶은 것이 모두의 욕망(慾望)이건만, 오노인은 죽은 후에 술독이나 술잔이 되고 싶다니 그 얼마나 술을 사랑한다는 증거(證據)인가. 참된 주선(酒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도달(到達)할 수 없는 높은 경지(境地)에 이른 것만 같았다.


54.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吉州吉州不吉州)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인심이 사나워서 길주(吉州) 사람들은 낮 선 사람을 좀처럼 재워주려 하지 않았다. 이 고을에서 제법 잘 산다는 허부자(許富者)집을 찾아 가 보았지만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당하고 말았다. 오랑캐들의 침략(侵略)을 자주 받아 온 탓으로 인심(人心)이 그렇게 모질어 진 모양(模樣)이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난 김삿갓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 

       길한 고을이 아니고

       성씨를 허가라고 하건만 

       허락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할 수 없이 김삿갓은 명천(明川)으로 발길을 돌렸다. 명천은 생선이 많이 잡히는 곳이니 명천에 가면 생선만은 잘 얻어먹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명천에 들어서니 아무리 밥을 얻어먹어도 생선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명천 고을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어느 집 밥상에도 생선은 없다.


       明川明川不明川

       漁佃漁佃食無魚


길주 명천을 총총히 떠난 김삿갓은 함경도의 북단인 종성(鏡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성(鐘城)은 자고로 북방을 지키던 역사가 많은 곳이지만 종성(鏡城) 명기(名妓) 홍랑(洪娘)과 함경평사(咸鏡評事)를 지낸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과의 애정비화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경창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 올 제 함관령(咸關嶺)까지 배응 나온 홍랑은 버들가지하나를 꺾어 올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고. 고죽(孤竹)은 즉석에서 그 시조를 한시로 옮기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임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折柳寄與千里人

       爲我試種門庭前

       須知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


사랑하는 여인이 읊어 준 시조(時調)를 즉석에서 한시로 옮겨 놓았다는 것은 얼마나 운치(韻致) 있는 일인가. 그 후 홍랑(洪娘)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사(戰死)한 최경창(崔慶昌)의 무덤 옆에서 3년 동안 수묘(守墓)를 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남겨 놓은 시집(詩集)을 항상 품속에 지녔던 덕택에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던 최경창(崔慶昌)의 주옥같은 시가 병화(兵禍)를 면하고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충절에 감동하여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洪娘)이 죽은 후에 그의 시신을 최경창(崔慶昌)의 무덤 옆에 묻어 주었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파주 교하에 신분을 초월(超越)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看直)한 채, 꿈에 그리던 님과 나란히 잠들어 있다.


55. 매화(梅花)의 고향 종성(鐘城)에서 (1) 


김삿갓이 함경도(咸境道) 최북단의 종성(鍾城)을 찾은 것은 그 옛날 한때 인연을 맺었던 매화라는 기생(妓生)을 잊지 못해서였다. 그는 헤어지면서 자기 고향은 종성이고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니 후일 혹 종성에 들으시거든 꼭 찾아 달라고 했었다.


종성(鍾城)으로 향하는 김삿갓의 무딘 가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었다. 얼마나 정겨운 여인이었던가. 시문(詩文)에 능하여 바로 서로를 알았고, 매화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우면서도 다정다감(多情多感)했던 그였다. 애정(愛情)이 깊어 가던 무렵 김삿갓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어 보인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손 뿌리쳐 어울리기 어렵더니 

       자리를 같이 해 보니 쉽사리 친해지네.

       주선이 시정에 숨은 선비와 사귀려니

       여장부 그대는 과연 문장이로다.


       却把同調難

       還爲一席親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이불 펴려는 마음 서로 맞을 무렵

       달과 술과 여자가 어우러져 마음 새롭네.

       동곽의 달빛 아래 서로 끌어안고

       봄 매화 떨어진 위에 취해 쓰러졌어라. 

  

       太半衾合期

       成三意態新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달콤한 추억에 젖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성(鍾城)고을에 당도한 김삿갓은 어느 주막에 쉬면서 주모에게 혹 매화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이 좁은 고장에서 매화를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면서 향교(鄕校) 뒤에 조그만 초가집 한 채가 있는데 그 집이 바로 매화(梅花)의 집이라 했다. 


56.매화(梅花)의 고향 종성(鐘城)에서 (2)  


김삿갓은 주모(酒母)의 말대로 향교 뒤에 있는 매화의 집을 찾아 갔다. 날은 어느덧 저물어오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 집에서는 난데없는 거문고(玄琴)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는가.  


가만히 들어보니 채조곡(採藻曲)이 분명하였다. 그 옛날 매화가 귀제곡(歸薺曲)을 즐겨 불렀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 감회(感懷)가 새삼스러웠다. 잠시 후면 꿈에 그리던 매화를 직접 만날 수 있겠기에 재회의 감격(感激)을 그려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


     헤어져 있었기로 옛정을 잊을쏘냐.

     너도 늙었겠지만 내 머리도 세었노라

     거울 빛은 차갑고 봄기운은 적적한데

     소식 끊긴 지 오래 달빛조차 막막하구나.


     一從別後豈堪忘

     汝骨爲粉我首霜

     鸞鏡影寒春寂寂

     風簫音斷月茫茫 


     지난날은 귀제곡 즐겨 부르더니

     지금은 헛되이 채조곡이 웬 말이냐

     어딘지 간 곳 몰라 만나 보기 어렵다가 

     이제야 거름 멈추고 들꽃 향기 즐기노라.


     早今衛北歸薺曲

     虛負周南採藻曲

     舊路無痕難再訪

     停車坐愛野花芳


김삿갓은 매화(梅花)와의 재회(再會)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와서 거문고(玄琴) 소리를 들어가며 시까지 읊었다. 이윽고 거문고 소리가 끊기자 김삿갓은 큰 기침을 하고 나서 사뭇 정겨운 목소리로 매화를 불렀다. 


57. 돈(錢)


매화(梅花)의 집에서는 매화는 보이지 않고 생판 모르는 여인이 방문(訪問)을 배시시 열고 내다보더니 매화는 몇 달 전에 강 건너 청국사람에게 시집을 갔다면서 손님은 혹시 삿갓양반이라는 분이 아니시냐고 묻는다. 김삿갓은 가슴이 철렁하여 자기 귀를 의심(疑心)하면서 매화가 시집을 갔다는 것은 무슨 소리이고 나를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그를 방으로 안내하고 나서 자기는 퇴기(退妓) 추월(秋月)이라고 소개한 후에 매화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삿갓양반을 매양 그리워하던 매화는 그에게 매달려 있는 아홉 명의 식구가 굶어죽을 형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청국(淸國) 부자의 첩으로 팔려가면서 온 식구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아주 뙤땅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뙤땅>이라는 말에서 "뙤땅에는 꽃이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고 노래했던 왕소군(王昭君)의 고사(故事)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 매화가 그렇게도 삭막한 곳으로 팔려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김삿갓의 심사를 짐작(斟酌)한 추월이 술상을 보아 와서 술을 권한다. 술을 연거푸 몇 잔 마시면서 '그놈의 돈이 뭐 길래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팔려간단 말이냐'고 중얼거리자 추월(秋月)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기도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이제껏 몰랐느냐고 나물한다. 유리걸식(遊離乞食)을 하면서도 돈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김삿갓에게 이처럼 돈이 원망(怨望)스러울 때가 없었다. '과연 그대 말이 옳은 말일세.' 하고 울부짖듯 외치다가 그는 즉석에서 돈에 대한 시를 이렇게 읊었다. 


      세상을 두루 돌아도 모두가 환영하고 

      나라와 가문을 일으켜주는 그 위세 대단하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구나.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捨死死能生


58. 퇴기 추월(退妓秋月)


김삿갓을 위로(慰勞)하려고 그와 대작(對酌)하던 퇴기 추월은 늙은 탓인지 술 몇 잔이 들어가자 그만 먼저 취하는 모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침울(沈鬱)하여 보이는 그였지만 옛날가락이 발동하는지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른다. 목소리가 찢어져 듣기가 거북하건만 어느덧 그녀는 추파(秋波)까지 보내고 있었다. 술잔을 거듭할수록 옛 정인(情人) 매화(梅花)생각만 되살아나는 김삿갓은 노기(老妓) 추월(秋月)을 상대로 춘정(春情)을 발동시킬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술이나 마시면서 적당히 얼버무려 응수(應酬)하다가 다음과 같은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읊었다.


      봄은 와서 화창한데 그대 홀로 침울하니 

      묵은 시름 쌓여서 걱정이 깊음인 듯

      구름 잠긴 절간의 늙은 중 이런가

      달밤에 배 저어 가는 병든 나그네런가.


      萬木春陽獨抱陰

      聊將殘愁意惟深

      白雲古寺枯禪夢

      明月孤舟病客心


      깡마른 얼굴을 찡그리니 보기 흉하고

      노래는 바스러져 알아 줄 이 없는데

      내 글이 그러하고 그대 몰골 그러하니

      청루에 장단 치며 우는 것만 같구나.


      嚬亦魂衰多見罵

      唱還啁啾少知音 

      文章到此猶如此

      擊節靑樓慷慨吟


시 한 수를 읊고 난 김삿갓은 뙤땅에 팔려 간 매화(梅花)를 다시 생각하며, 오랑캐에게 끌려가는  왕소군(王昭君)의 모습을 그린 이태백(李太白)의 시를 머리에 떠 올리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애정비극(愛情悲劇)을 오늘의 매화에게 비겨 본다.


     아름다운 안장을 쓰다듬는 왕소군

     말 위에서 고운 얼굴에 눈물 지운다.

     오늘은 한 나라 제왕의 후궁이더니

     내일은 오랑캐 땅의 첩이 되는구나.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顔

     今日漢宮人

     明朝胡地妾


59. 개(狗)


종성(鐘城)에서 호지(胡地)의 첩이 된 매화(梅花)를 그리며 울적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던 김삿갓은 꿈에 흰 옷을 입고 나타난 어머니를 만나보고 불현듯 고향(故鄕)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노모가 위중(危重)한 병환(病患) 중에 계시거나 아니면 이미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함경도 최북단에서 강원도(江原道) 영월(寧越)까지는 머나먼 천릿길, 고향으로 돌아가려니 마음은 바쁜데 길은 너무도 멀었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어계실 것만 같아 운명(殞命)하시기 전에 뵙고 싶은 마음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건만 노루목 마을은 10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변한 데가 없었다. 김삿갓은 패군지장(敗軍之將)이 면목 없이 돌아오는 심정으로 조심(操心)스럽게 자기 집으로 다가갔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건만 집안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삽살개 한 마리가 있어 곰상스럽게 짖어 대고 있었다.


전에도 항상 그러했듯이 모두들 밭에 나간 모양이니 어머님이 병석(病席)에 누워 계신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우선 안도(安堵)의 숨을 내쉬면서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던 김삿갓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장난을 치다가 그 모양이 하도 귀여워서 시한 수를 읊었다.


     천성이 먹여 주는 주인에게 충성스러워

     부르면 오고 쫓으면 가고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긴다.

     눈앞에서 뛰어 오르고 꼬리 치다가 어리광이 지나치면

     물러나 머리 숙이고 꾸지람을 달게 받네.


     稟性忠於主饋人 

     呼來斥去任其身

     跳前搖尾偏蒙愛

     退後垂頭却被嗔 


     교활한 도둑 지키는 직분이 그 할 일이라

     의롭게 죽은 그 이름 자주 전해 온다.

     자고로 공훈에는 상을 주는 법이지만

     무사안일한 신하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


     職察奸偸司守固

     名傳義塚領聲頻

     褒勳自古恃帷蓋

     反愧無力尸位臣


김삿갓은 무엇이던지 보고 느끼는 대로 시화(詩化)해 버리는 버릇이 있는지라,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식구들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강아지와 장난을 치다가 뜻하지 않게 시 한 수를 얻은 셈이었다.


 60. 고 양 이(猫)


얼마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밭에서 일하던 아내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다리고 들어왔다. 김삿갓은 반가우면서도 놀라웠다. 어머니는 어데 가셨고, 자기가 떠날 때 세살이었던 아들 학균(鶴均)이가 아직도 저렇게 어리지는 않을 것인데 그 애는 어디 가고 저 애는 누구란 말인가?


알고 보니 그 간의 사연(事緣)은 이러했다. 어머니는 50을 겨우 넘긴 친정 오라비 내외가 80노모를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의지할 곳 없는 친정어머니를 봉양(奉養)하고 어린조카들을 거두려고 충청도(忠淸道) 홍성(洪城)으로 가셨고, 학균(鶴均)이는 아들이 없는 그의 큰아버지가 양자로 데려갔으며, 


열 살짜리 아이는 부인이 임신(妊娠)한 것도 모르고 김삿갓이 방랑길에 오른 8개월 후에 낳았는데 아버지가 친히 이름 지어주기를 기다리느라고 아직도 둘째라고만 부른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한 김삿갓은 우선 둘째의 이름을 익균(翼均)이라고 지었다. 


벌서 맹자(孟子)를 읽는다는 익균(翼均)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매우 총명(聰明)하였다. 처음 보는 아버지를 무척 따르며 어리광을 부리던 익균(翼均)이는 글방 선생님에게서 아버지는 시를 짓는데 귀신이라고 들었다면서 시 한 수를 지어 달라고 보채는데 마침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밤을 타서 이리 저리 싸돌아다니니

      여우 살쾡이와 함께 세 걸물이로다.

      검은 털에 흰 털 박혀 수를 놓은 듯

      푸르고 누런 눈에 쪽빛이 반짝이네.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猩傑爲三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


      귀한손님 밥상에서 맛난 반찬 훔쳐내고

      노인들 품속에서 따뜻하게 지내누나.

      새나 쥐 따위가 어찌 교만할 수 있으랴

      사냥할 때 그 날쌤 큰소리 칠만 하구나.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談


시를 지어 종이에 써놓고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說明)해 주니 소년은 들을수록 재미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귀신같다' 면서 고양이에 대한 시를 한 수 더 지어보란다. '이 녀석이 아비를 시험(試驗)해도 분수가 있지' 하면서도 대견한 아들을 바라보며 내심 흐뭇하여 다시 한 수를 지었다.


      온갖 짐승 중에 네 재주가 으뜸이라

      날쌔게 오고 가도 먼지 하나 안 나누나

      가다가 범을 보면 잠시 자취를 감추고

      뛰다가 개를 보면 뺨을 건드려 놀린다.


      三百群中秀爾才

      作來作去不飛埃

      行時見虎暫藏跡

      走處逢尨每打顕  


      주인집 쥐를 잡아 칭찬은 들어오나

      이웃 닭 없어지면 의심 받기 일쑤로다

      이곳저곳 다니며 울음소리 괴상해

      밤에 울던 아이들 겁에 질려 멈추네.


      獵鼠主家雖得譽

      捉鷄隣里豈無猜

      南街北巷啼歸路

      能劫千村夜哭孩 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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