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 줍는
春
지난 겨울이 몹시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어요. 뼈속까지 추위를 느꼈는데,
어느새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어납니다. 화창한 봄날은 산과 들에
초록색을 껴묻혀 선보이네요.
올해에 더 왕성해 보이는 꽃망울은 겨우내 간직했던 자기만의 특색을 뽐내듯 자랑합니다. 길 옆 멀지
않는 수풀에 모습을 감추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옵니다. 나는
후미진 시냇길을 건너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훌렁 내려놓고 시냇가 백사장에 몸을 던졌습니다. 봄이 한창이라, 화사한 햇살에
피어난 풀내음 꽃내음이 싱그럽고 향긋합니다. 해당화 핀 백사장에 홀로 누워 깊은 명상에 잠기다 보니 미처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해는 시간에
쫓기듯 서산으로 꼴깍 넘어 갑니다.
워낙 나의 성미는 조용하고 사색적입니다. 그런고로 한적한 곳을 찾아 즐기길 좋아합니다. 번뇌를 훌훌
다 털어버리고, 마음을 텅텅 비우면 기분이 왕창 홀가분해집니다. 또한 봄날의 정취에 흠뻑 젖어 있으면 심신이 건강해집니다. 아무렴 이때가 제일
행복하고 제일 평화롭습니다. 오긴 뭔가를 하려고 왔는데, 그 생각마저 잊어버릴 만큼 행복합니다.
우리는
항상 바쁜 일상에 매달려 맴돕니다. 힘들어 지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 피곤에서 고마움과 감사함을 배움니다. 정말 바쁨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합니다. 나와 가족의 의식주, 나와 동료의 교제, 나와 사회의 관계는 바로 그 바쁨 속에서 이룩됩니다. 아울러 바쁨이 우리에게서 가져가는
것도 꽤 많습니다. 피로한 몸은 하루 일과를 마쳤지만, 머리에선 수많은 번민이 쌓이고 쌓입니다. 그 번민이 우리를 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육체적
피곤은 잠시 휴식하면 금방 사라지지만,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고 지칩니다. 만약 정신을 칭칭 감아 놓고, 꽁꽁 묶어놓은 쇠바줄을
끊을 힘이 없다면, 결코 정신적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을 겁니다.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눈이 즐거운 어여쁜 꽃들, 귀맛 좋은 명랑한 새소리들, 그보다 더
오묘한 정서(情緖)를 감수(感受)하는 하얀 백사장을 찾아갑니다. 맨발로 기분좋게 걸었던 두 줄기 발자국은 이미 바람에 지워져 애틋한 옛추억이 되었고, 새롭고 감미로운 이야기를
엮어갈 아늑한 곳을 또다시 찾아 갑니다. 낮에는 봄을 줍고, 저녁에는 석양에 물들고, 밤에는 달빛에 어화둥둥 취하며...
봄은 제법 재주가 뛰어납니다. 메말라 앙상했던 산천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폭을 점철(點綴)합니다.
그리고 저 먼 곳에 있는 성숙한 사색까지 고이고이 불러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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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 執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