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산병원 선별진료소 찾은 20대 여성 작은 목소리로 “저는 신천지 신도입니다” 전국서 모인 기독 의료인들 대구 병원서 자원봉사 이모저모
“우주복(레벨D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은 무겁고 숨쉬기 힘든 우주복. 안경엔 이슬이 맺혀 시야를 가린다.… 20대 여자분이 진료소를 찾았다. 그녀가 (나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신천지 신도’라고 얘기했다.”
대구기독의사회장인 동산병원 황재석 교수는 최근 동료 의사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대구는 지난달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대구센터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온 뒤 환자 수가 급증했다. 이 지역 의료진은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황 교수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다. 그는 “확진자와 접촉했다고 오신 분, 감기몸살로 오신 분, 증상은 없으나 불안감 때문에 오신 분…. 모두 다 불안해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황 교수는 10일 “20대 여성이 신천지 신도라고 말할 때 순간적으로 갈등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물었더니 교육생이라 답했다”며 “젊은이는 판단력이 있으니 많은 정보를 듣고 스스로 판단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녀에 대한 진료는 끝났지만, 기독 의료인으로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때 심경을 글로 써 동료 기독 의사들과 공유했다. “기침과 가래, 고열이 나는 20대 중반 여성이 신천지 신도라고 얘기했다. 진료하고 검사 장소를 알려줄 때 그의 눈빛에서 어느 먼 외국의 무의촌에서 보잘것없는 장비와 약품에도 머리 숙여 고마워하던 촌로의 모습이 겹쳤다. 그때는 참 보람이 있었는데 오늘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 것은 무엇 때문인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안과 개원의인 서정성 원장은 광주에 있는 병원 문을 닫고 지난달 28일 대구에 왔다. 광주 ‘달빛 의료지원단’과 함께였다. 서 원장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동산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진료한다. 4시간 만에 방호복을 벗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병원으로 돌아온다. 다시 방호복을 입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코로나19 확진자들을 회진했다.
서 원장은 “방호복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숨쉬기 힘들고 땀은 나는데 활동 반경은 좁다”고 토로했다. 방호복보다 어려운 건 신천지 신도들을 진료할 때였다. 그는 “기독인으로서 신천지를 보면 안타까우면서 화도 났다”며 “그러나 이분들도 아픈 환자들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기독 의료인의 손길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서 원장은 기독병원인 동산병원이 지역 거점병원이라는 점에 안도했다. 그는 “이곳 의료진은 물론 자원봉사자 중에도 기독인이 많다”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를 찾지 못한 기독 의료인들은 물적 지원에 나섰다. 황 교수는 “기독 의사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필요한 물품 정보를 알렸더니 서울은 물론이고 캐나다와 호주 등에서도 방호복 등 물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에는 기도를 요청했다. 황 교수는 ‘코로나19가 진정되는 것’을 첫 번째 기도 제목으로 꼽았다. 지금 상황이 길어지면 의료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서 원장은 “아내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며 울고 계신 분, 다른 곳에 격리돼 힘들어하는 부부 등 환자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질병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들 마음의 회복도 중요하다”고 했다.
의료진과 그 가족을 응원해 달라고도 했다. 황 교수는 “집에 가지도 못하고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이 건강을 유지하고 진료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 원장은 “우리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도 힘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