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컴퓨터(電腦)로 글을 쓴다. 아니, 컴퓨터로 타자(打字)한다. 그래서 펜과 종이를 멀리하는 편향(偏向)이 생겼다. 그러나 초고만은 펜으로 작성한다. 펜으로 작성하면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작정 아무 이유없이 펜으로 초고를 작성한다.
컴퓨터로 타자하면 번거로움이 적다. 종이와 펜을 갖출 필요(必要)가 없고 지우개 없어도 된다. 하룻동안 컴퓨터로 만자 내지 2만자를 단숨에 타자한다. 게다가 컴퓨터로 타자하니 첨삭(添削)하는 경우가 적다. 글쓰기 프로라면 적어도 내공(內功)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를 할 때 우선 먼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미리 구상(構想)한다. 그다음 구체적 언어구사, 단어선택, 문장구성, 글의 흐름을 정리(整理)한다. 그다음 일단 두뇌(頭腦) 버튼을 누르면 거침없는 강물마냥 글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중국어로 인간의 두뇌(頭腦)를 모방했다고 해서 컴퓨터를 ‘전기두뇌(電腦)’로 칭한다. 머리가 곧 전기두뇌이다. 컴퓨터로 타자하는 기계문명(機械文明)의 우월성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쓰기 쉽고 고치기 쉽고 저장하기 쉬운 천만 가지의 우월성(優越性)을 반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흠이라면 컴퓨터엔 천편일률(千篇一律) 기계적인 활자가 재생산(再生産)될 뿐이다. 물론 글줄과 그 행간 사이에서 발산(發散)하는 잉크의 향(香)을 맡을 수 없어 아쉽다.
현대 문명의 발전에 도취(陶醉)된 나의 이런 행위나 변명자체(辨明自體)가 “하늘에서 복이 떨어질” 만큼 안일(安逸)만을 추구한다. 전기적(電氣的)인 기계의 처리로 내 개성(個性)의 향기를 죽이고 있다. 이처럼 기계문명(機械文明)을 창조해 놓고 오히려 자신이 만든 기계문명(機械文明)의 노예로 되는 것을 망각(忘却)한 것은 나 자신이다. 물론 펜으로 쓰면 명작(名作)이 되고 컴퓨터로 타자하면 졸작(拙作)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펜과 컴퓨터의 사용을 대비(對比)해보기 위해서다. 기계 문명, 컴퓨터, 휴대폰을 주무르는 현실이 슬픈 모습(模襲)으로 내게 다가온다. 한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못살 것만 같이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사람을 “휴대폰을 가지고 노는 인형”이라고 야유(揶揄)한 사람이 있다. 휴대폰이 사람들을 조종(操縱)하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신(神)이 인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떠날 수 없어 하는 관념(觀念)과 같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꼭 컴퓨터로 써야 한다는 관념(觀念)에 너무 익숙해져 육필(肉筆)로 글을 쓸 수 없다고 한다. 기계 의존증(依存症)에 걸린 나머지 실제로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글을 써준다. 결국 또 하나의 기계문명의 노예로 돼서 본말전도(本末顚倒)가 되고 만다. 간혹 원고지(原稿紙)에 펜으로 글을 쓰면 연필을 쥐는 자세가 컴퓨터 건판을 치는 식으로 잡는 이상한 현상이 속출(續出)한다. 시대의 풍조나 기질이 농후(濃厚)한 나는 글 쓰는 내용만이 아니라 글 쓰는 스타일 역시 시대를 반영하는 경향(傾向)이 있다. 나는 컴퓨터로 때리면 글이 잘 안 나온다. 글은 써서 나오는 것이다. 때려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逆說的)으로 들릴 줄 모르지만, 컴퓨터를 치는 이는 타가(打家)이다. 손으로 손수 쓰는 것이 작가(作家)다. 물론 나는 컴퓨터로 쓰는 제현(諸賢)들을 아유(阿諛)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문명을 향유(享有)하지 못하는” 사회의 기성(旣成)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獨自的)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인 나 자신의 자조적(自嘲的) 익살이다. 일개 자기보다 자격이 월등한 경쟁자(競爭者)를 질투하는 자의 타령(打令) 일뿐이다. 그래도 내겐 동조자(同調者)가 예나 지금이나 숱하게 많아서 위안(慰安)을 느낀다. 기계 문명(機械文明)의 노예를 거부(拒否)하는 나는 여전히 펜으로 글쓰기를 좋아한다. 내 손때 묻은 펜으로 잉크 향 그윽한 나만의 글을 쓴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펜으로 쓴다는 모습으로 거듭나려고 매일 다지고 또 다진다. 결국(結局) 어느 때인가 종이와 펜이 살아질 때까지...